[특파원 리포트] 中 ‘황당한 격리’…건강코드 조작 의혹 속 피해 현실화

입력 2022.06.17 (07:00) 수정 2022.06.1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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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 성공과 경제 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2년이 넘도록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건강코드입니다.

건물이건 식당이건 아파트 단지건 들어갈 때마다 큐알(QR)코드를 스캔해 상태를 관리인들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합니다.

건강코드 색깔이 녹색이면 ‘정상’, 빨간색이면 ‘비정상, 이상’이라는 뜻입니다.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면 아무 곳도 갈 수 없습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택시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산둥성에서 ‘정상’인데 허난성 오니 갑자기 ‘비정상’으로

중국 산둥성에 거주하면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최광우 대표는 지난 12일 출장차 중국인 직원과 함께 허난성 핑딩산시(河南省 平顶山市)를 찾았습니다. 산둥성을 출발하기 전 48시간 이내 받은 PCR검사에서 음성 결과가 나왔고 고속도로를 통해 아무런 문제 없이 허난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해 큐알(QR)코드를 스캔하자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중국인 직원의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호텔과 방역 당국에 문의하자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하룻밤을 호텔에서 보냈지만, 다음날이 되어서도 건강코드가 녹색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한총영사관을 통해 PCR 검사를 받아 이상이 없으면 호텔 밖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일 오후 5시쯤 결국 최 대표와 중국인 직원은 엠블란스에 실려 격리 시설로 무작정 옮겨졌습니다.

허난성의 건강코드에 외국인은 정보 입력이 안 돼 최 대표는 녹색으로 유지되던 산둥성 건강코드를 이용해 격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중국인 직원과 밀접접촉자라는 이유만으로 최 대표 역시 격리된 것입니다.

■ 농촌은행 부실 항의하며 예금주들 몰리자 건강코드 ‘이상’으로 바뀌어

중국 중부 허난성에 있는 4개 농촌은행인 위저우신민셩 은행, 상차이후이민 은행, 저청황화이 은행, 카이펑 신동방 은행의 예금이 지난 4월 18일부터 동결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습니다.

돈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예금주들 (출처:  바이두)돈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예금주들 (출처: 바이두)

허난성은 물론 베이징, 광둥성 등 전국 각지에 있던 예금주들은 허난성 성도(省都)인 정저우시에 있는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CBIRC) 허난 지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지 매체인 봉황망은 예금주가 40만 명이고, 동결된 금액이 400억 위안(우리 돈 약 7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허난성 이외 지역에서 허난성으로 들어온 예금주의 건강코드가 일제히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뀐 것입니다. 더욱이 허난성을 방문한 적이 없는 예금주들의 건강코드도 빨간색으로 변한 황당한 일이 빚어졌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돈을 돌려달라는 예금주들을 막기 위해 허난성 정부와 은행들이 결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건강코도 조작 의혹에 대해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비난하는 글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습니다.

건강코드에 대한 네티즌 반응건강코드에 대한 네티즌 반응

■은행, 예금주와 전혀 상관없는데도 무조건 건강코드 ‘빨간색’

최광우 대표의 경우를 보면 은행이나 예금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허난성을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 직원의 건강코드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빨간색의 의미는 코로나 19 위험지역에서 왔다는 표시로 무조건 격리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 대표는 격리될 때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핑딩산시(平顶山市) 방역 당국에 항의했지만, 핑딩산시는 정저우시로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건강코드 관리는 성도(省都)인 정저우(郑州)시에 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입니다.

최 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정저우시 방역 당국로부터는 건강코드 발생 이상 지역이 핑딩산시인 만큼 정저우시는 관련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두 지역은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며 떠넘기다 결국 정저우시가 건강코드 문제를 담당하기로 했지만, 그 이후에도 수십 차례에 걸친 항의 끝에서야 비로소 정저우시가 실수를 인정하고 15일 오후 중국인 직원의 건강코드를 ‘녹색’으로 변경해 줬습니다.

격리 시설은 창문이 안 닫히고 모기와 파리들이 들끓었다(제공: 최광우 대표)격리 시설은 창문이 안 닫히고 모기와 파리들이 들끓었다(제공: 최광우 대표)

■ 시설 엉망·건강코드 정상에도 계속 격리…일관성 없는 中 방역정책

갑작스런 격리에 아무런 준비 없이 격리시설로 옮겨진 최 대표와 중국인 직원은 격리시설을 보고 황당함을 넘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데다 창문이 안 닫혀 모기와 파리들이 들끓는 등 도저히 지낼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건강코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당장 열악한 시설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최 대표와 중국인 직원은 아직도 격리에서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격리를 안 풀어주느냐?”라고 방역 당국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격리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고 최 대표는 강하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격리해야 하냐”는 질문에도 정확한 격리 기간을 얘기해주지 않고 있다고 최 대표는 밝혔습니다.

결국, 허난성이 부실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예금주들의 건강코드를 조작했다는 의혹 속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는 일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최 대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사람이 허난성에 왔다고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고, 아무런 근거 없이 격리하고, 심지어 건강코드가 정상으로 바뀌었는데도 격리를 풀어주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이동과 자유를 박탈하는 인신구속”이며 “중국 방역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황당한 사건으로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있다”며 “언제 격리 시설에서 벗어날지 방역 당국과 또 싸워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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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中 ‘황당한 격리’…건강코드 조작 의혹 속 피해 현실화
    • 입력 2022-06-17 07:00:25
    • 수정2022-06-17 07:02:08
    특파원 리포트

코로나19 방역 성공과 경제 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2년이 넘도록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건강코드입니다.

건물이건 식당이건 아파트 단지건 들어갈 때마다 큐알(QR)코드를 스캔해 상태를 관리인들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합니다.

건강코드 색깔이 녹색이면 ‘정상’, 빨간색이면 ‘비정상, 이상’이라는 뜻입니다.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면 아무 곳도 갈 수 없습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택시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산둥성에서 ‘정상’인데 허난성 오니 갑자기 ‘비정상’으로

중국 산둥성에 거주하면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최광우 대표는 지난 12일 출장차 중국인 직원과 함께 허난성 핑딩산시(河南省 平顶山市)를 찾았습니다. 산둥성을 출발하기 전 48시간 이내 받은 PCR검사에서 음성 결과가 나왔고 고속도로를 통해 아무런 문제 없이 허난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해 큐알(QR)코드를 스캔하자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중국인 직원의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호텔과 방역 당국에 문의하자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하룻밤을 호텔에서 보냈지만, 다음날이 되어서도 건강코드가 녹색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한총영사관을 통해 PCR 검사를 받아 이상이 없으면 호텔 밖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일 오후 5시쯤 결국 최 대표와 중국인 직원은 엠블란스에 실려 격리 시설로 무작정 옮겨졌습니다.

허난성의 건강코드에 외국인은 정보 입력이 안 돼 최 대표는 녹색으로 유지되던 산둥성 건강코드를 이용해 격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중국인 직원과 밀접접촉자라는 이유만으로 최 대표 역시 격리된 것입니다.

■ 농촌은행 부실 항의하며 예금주들 몰리자 건강코드 ‘이상’으로 바뀌어

중국 중부 허난성에 있는 4개 농촌은행인 위저우신민셩 은행, 상차이후이민 은행, 저청황화이 은행, 카이펑 신동방 은행의 예금이 지난 4월 18일부터 동결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습니다.

돈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예금주들 (출처:  바이두)
허난성은 물론 베이징, 광둥성 등 전국 각지에 있던 예금주들은 허난성 성도(省都)인 정저우시에 있는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CBIRC) 허난 지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지 매체인 봉황망은 예금주가 40만 명이고, 동결된 금액이 400억 위안(우리 돈 약 7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허난성 이외 지역에서 허난성으로 들어온 예금주의 건강코드가 일제히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뀐 것입니다. 더욱이 허난성을 방문한 적이 없는 예금주들의 건강코드도 빨간색으로 변한 황당한 일이 빚어졌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돈을 돌려달라는 예금주들을 막기 위해 허난성 정부와 은행들이 결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건강코도 조작 의혹에 대해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비난하는 글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습니다.

건강코드에 대한 네티즌 반응
■은행, 예금주와 전혀 상관없는데도 무조건 건강코드 ‘빨간색’

최광우 대표의 경우를 보면 은행이나 예금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허난성을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 직원의 건강코드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빨간색의 의미는 코로나 19 위험지역에서 왔다는 표시로 무조건 격리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 대표는 격리될 때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핑딩산시(平顶山市) 방역 당국에 항의했지만, 핑딩산시는 정저우시로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건강코드 관리는 성도(省都)인 정저우(郑州)시에 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입니다.

최 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정저우시 방역 당국로부터는 건강코드 발생 이상 지역이 핑딩산시인 만큼 정저우시는 관련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두 지역은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며 떠넘기다 결국 정저우시가 건강코드 문제를 담당하기로 했지만, 그 이후에도 수십 차례에 걸친 항의 끝에서야 비로소 정저우시가 실수를 인정하고 15일 오후 중국인 직원의 건강코드를 ‘녹색’으로 변경해 줬습니다.

격리 시설은 창문이 안 닫히고 모기와 파리들이 들끓었다(제공: 최광우 대표)
■ 시설 엉망·건강코드 정상에도 계속 격리…일관성 없는 中 방역정책

갑작스런 격리에 아무런 준비 없이 격리시설로 옮겨진 최 대표와 중국인 직원은 격리시설을 보고 황당함을 넘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데다 창문이 안 닫혀 모기와 파리들이 들끓는 등 도저히 지낼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건강코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당장 열악한 시설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최 대표와 중국인 직원은 아직도 격리에서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격리를 안 풀어주느냐?”라고 방역 당국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격리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고 최 대표는 강하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격리해야 하냐”는 질문에도 정확한 격리 기간을 얘기해주지 않고 있다고 최 대표는 밝혔습니다.

결국, 허난성이 부실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예금주들의 건강코드를 조작했다는 의혹 속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는 일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최 대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사람이 허난성에 왔다고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고, 아무런 근거 없이 격리하고, 심지어 건강코드가 정상으로 바뀌었는데도 격리를 풀어주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이동과 자유를 박탈하는 인신구속”이며 “중국 방역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황당한 사건으로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있다”며 “언제 격리 시설에서 벗어날지 방역 당국과 또 싸워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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