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목탑 기단 축조법 드러나…“첫 건축물 추정”
입력 2022.06.17 (07:39)
수정 2022.06.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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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임진왜란 전후로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지 목탑의 축조 방식과 규모 등을 살펴보기 위한 발굴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하층부에 돌을 채워넣는 공법이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으로 확인됐고, 미륵사지 건축물 중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을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이지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삼국시대 사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익산 미륵사지의 목탑터입니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지만, 기반 둘레석 일부과 대략적인 하부 구조를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최근 세 번째 조사에서 목탑터의 전체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바닥 기단의 축조 공정과 순서가 밝혀졌습니다.
[소재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 "과거 백제인들이 이 목탑지를 만들기 위해서 터파기와 밑에 기초시설을 어떻게 조성했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단의 아래 기초부는 깬 돌과 흙을 함께 쌓아 다져 올렸는데, 기단 외부는 돌을 대여섯 층으로, 안쪽은 두 개 층으로 쌓아올렸습니다.
지표 아래 기초닦기에 이처럼 돌을 사용한 공법은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 확인됐습니다.
사찰 뒤편 산에서 흘러내리는 지하수를 빼는 목적도 있지만, 지지 목적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송아름/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이 기초부가 얼마만큼 단단하게 조성돼 있는지에 따라서 위에 올라가는 건축물의 하중 같은 것이 계산이 되기 때문에…."]
토층의 단면에서는 목탑 기초공사가 사찰 터닦기공사보다 앞섰던 사실이 확인돼 미륵사 첫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 목탑이 바닥에 돌을 채워넣을 만큼 크고 견고했을 것으로 보고, 웅장했을 상부 구조물 복원을 위한 고증과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지현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임진왜란 전후로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지 목탑의 축조 방식과 규모 등을 살펴보기 위한 발굴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하층부에 돌을 채워넣는 공법이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으로 확인됐고, 미륵사지 건축물 중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을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이지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삼국시대 사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익산 미륵사지의 목탑터입니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지만, 기반 둘레석 일부과 대략적인 하부 구조를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최근 세 번째 조사에서 목탑터의 전체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바닥 기단의 축조 공정과 순서가 밝혀졌습니다.
[소재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 "과거 백제인들이 이 목탑지를 만들기 위해서 터파기와 밑에 기초시설을 어떻게 조성했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단의 아래 기초부는 깬 돌과 흙을 함께 쌓아 다져 올렸는데, 기단 외부는 돌을 대여섯 층으로, 안쪽은 두 개 층으로 쌓아올렸습니다.
지표 아래 기초닦기에 이처럼 돌을 사용한 공법은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 확인됐습니다.
사찰 뒤편 산에서 흘러내리는 지하수를 빼는 목적도 있지만, 지지 목적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송아름/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이 기초부가 얼마만큼 단단하게 조성돼 있는지에 따라서 위에 올라가는 건축물의 하중 같은 것이 계산이 되기 때문에…."]
토층의 단면에서는 목탑 기초공사가 사찰 터닦기공사보다 앞섰던 사실이 확인돼 미륵사 첫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 목탑이 바닥에 돌을 채워넣을 만큼 크고 견고했을 것으로 보고, 웅장했을 상부 구조물 복원을 위한 고증과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지현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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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로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지 목탑의 축조 방식과 규모 등을 살펴보기 위한 발굴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하층부에 돌을 채워넣는 공법이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으로 확인됐고, 미륵사지 건축물 중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을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이지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삼국시대 사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익산 미륵사지의 목탑터입니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지만, 기반 둘레석 일부과 대략적인 하부 구조를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최근 세 번째 조사에서 목탑터의 전체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바닥 기단의 축조 공정과 순서가 밝혀졌습니다.
[소재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 "과거 백제인들이 이 목탑지를 만들기 위해서 터파기와 밑에 기초시설을 어떻게 조성했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단의 아래 기초부는 깬 돌과 흙을 함께 쌓아 다져 올렸는데, 기단 외부는 돌을 대여섯 층으로, 안쪽은 두 개 층으로 쌓아올렸습니다.
지표 아래 기초닦기에 이처럼 돌을 사용한 공법은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 확인됐습니다.
사찰 뒤편 산에서 흘러내리는 지하수를 빼는 목적도 있지만, 지지 목적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송아름/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이 기초부가 얼마만큼 단단하게 조성돼 있는지에 따라서 위에 올라가는 건축물의 하중 같은 것이 계산이 되기 때문에…."]
토층의 단면에서는 목탑 기초공사가 사찰 터닦기공사보다 앞섰던 사실이 확인돼 미륵사 첫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 목탑이 바닥에 돌을 채워넣을 만큼 크고 견고했을 것으로 보고, 웅장했을 상부 구조물 복원을 위한 고증과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지현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임진왜란 전후로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지 목탑의 축조 방식과 규모 등을 살펴보기 위한 발굴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하층부에 돌을 채워넣는 공법이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으로 확인됐고, 미륵사지 건축물 중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을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이지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삼국시대 사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익산 미륵사지의 목탑터입니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지만, 기반 둘레석 일부과 대략적인 하부 구조를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최근 세 번째 조사에서 목탑터의 전체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바닥 기단의 축조 공정과 순서가 밝혀졌습니다.
[소재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 "과거 백제인들이 이 목탑지를 만들기 위해서 터파기와 밑에 기초시설을 어떻게 조성했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단의 아래 기초부는 깬 돌과 흙을 함께 쌓아 다져 올렸는데, 기단 외부는 돌을 대여섯 층으로, 안쪽은 두 개 층으로 쌓아올렸습니다.
지표 아래 기초닦기에 이처럼 돌을 사용한 공법은 백제 목탑 가운데 처음 확인됐습니다.
사찰 뒤편 산에서 흘러내리는 지하수를 빼는 목적도 있지만, 지지 목적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송아름/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이 기초부가 얼마만큼 단단하게 조성돼 있는지에 따라서 위에 올라가는 건축물의 하중 같은 것이 계산이 되기 때문에…."]
토층의 단면에서는 목탑 기초공사가 사찰 터닦기공사보다 앞섰던 사실이 확인돼 미륵사 첫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 목탑이 바닥에 돌을 채워넣을 만큼 크고 견고했을 것으로 보고, 웅장했을 상부 구조물 복원을 위한 고증과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지현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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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 id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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