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에게 휴대전화를 허한다, 더 오래!

입력 2022.06.17 (13:56) 수정 2022.06.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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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군 장병에게 둘러싸였다. 장병들은 앞다퉈 전투복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자신의 얼굴과 당선인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서둘러 담았다. 윤 당선인도 격의 없이 장병들의 '셀카 인증샷'에 맞춰 포즈를 취했다. 4월 초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했을 때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은 누군가에게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군대 내 부조리를 고발해 온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올라온 글에서 '카투사 병사들은 일과 시간 내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카투사 병사들이 일과 시간 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없다면, 일반 국군 병사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통령직 인수위는 "국군 병사들의 휴대전화 소지 시간 확대는 윤 당선인의 공약 사항"이라고 응했다.

■ 휴대전화 사용 확대는 '대세'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2014년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이후 찬반 논의와 시범 운영을 거쳐 2020년 7월 처음으로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됐다. 지난 정부 국방개혁 2.0의 주요 사업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휴대전화 사용 전면 허용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도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도 사용 시간 확대를 약속했다. 확대 여부를 논하는 단계를 넘어 확대 방법과 범위, 시점을 살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 훈련병 제외 병사에 한해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한 시간은 평일 일과 후인 오후 6∼9시, 휴일 은 오전 8시 30분∼오후 9시 사이다. 국방부는 훈련병까지 대상에 포함시키고 일과 시간을 사용 가능 시간에 포함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24시간 허용" vs "밤에는 곤란"


확대 방안으로는 현역병의 경우 3가지 유형이 검토되고 있다. 아침 점호 이후∼오전 8시 30분과 오후 5시 30분∼9시 시간대의 '최소형', 아침 점호 이후∼오후 9시의 '중간형', 24시간 소지하는 '자율형' 등이다. 훈련병에게는 제약이 더 많다. 입소 1주차 평일 30분과 주말·공휴일 1시간 사용을 허용하는 '최소형', 입소 기간 중 평일 30분과 주말·공휴일 1시간을 허용하는 '확대형' 으로 나뉜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육군 15사단 기간병 5천여 명, 훈련병 5백 명을 상대로 1차 시범 운영을 실시했고 오는 20일부터 연말까지는 군 별로 2~3개 부대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확대한다.

1차 시범운영 결과 일반 병사는 밤에도 사용을 허용했으면 좋겠다, 즉 전면 허용해 달라는 입장이 많았고 간부들은 그렇게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반 병사의 72%가 24시간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는 방안이 가장 좋다고 답했다. 간부들은 최소 밤에는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45%를 차지했다. 간부들은 훈련병들에 대해서도 휴대전화 사용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제한하는 방안을 제일 선호하기도 했다.

■ 국방정책 '의제설정'에도 기여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은 여러 순기능을 갖고있다.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역할하는 것에 더해 가족 및 사회와의 소통과 자기 계발, 여가 선용 등 개개인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국방부는 보고 있다. 또 복무 적응과 임무 수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사진 출처 : 연합뉴스

휴대전화 사용이 국방 정책에 직접 영향을 끼친 사례들도 있다. 지난해 부실급식 문제가 군대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서 공론화된 배경에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있었다. 변석언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강사 등은 '휴대전화를 활용한 내부 고발과 국방정책 의제설정 변화'라는 논문에서 '육대전'을 통한 고발에 주목했다. 육대전 제보량의 증가와 내용의 다양화는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보다 쉽게 군대 내부 문제를 사회 바깥으로 공론화할 수 있게 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사들도 국방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했다고 봤다. 외부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군의 특성상, 극적인 계기가 없다면 그동안 시민사회와 같은 군 외부의 비공식적 참여자가 국방정책의 의제를 주도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극적인 계기, 바로 휴대전화 사용이 병사와 군 외부의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가교가 됐고 그 결과 국방정책 과정 참여자에 '병사'가 포함됐다는 분석이다. 변석언 등은 앞으로의 국방정책과정에 병사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불편이 얼마든지 공론화돼 정책 문제화 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2020년 초부터 1년 반 동안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위반 행위를 적발한 결과 병사에게 내려진 징계가 1만 2,900여 건에 달했다. 사용 수칙 위반이 7,500여 건, 보안 위규 4,200여 건, 사이버 도박이 860건 등이었다.

휴대전화 사용이 허가된 이후 군대 내 사이버 범죄 건수가 2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군사경찰과 군검찰에 접수된 사이버 범죄 건수 수치가 2019년 115건에서 2020년 285건까지 증가했다. 사이버 범죄 유형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도청이나 불법 도박, 사이버 사기, 소셜미디어 등에서의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이었다.

한 육군 간부는 "부대 관리 측면에서 사고 예방이라는 좋은 효과가 있다"면서도 "반대로 종종 단결이나 조직 화합 측면에서 저해 요인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군 간부도 "병사들의 사이버 도박이나 주식 투자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도입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제도가 안정화되지는 못했다는 방증들이다. 시범 운영을 확대하는 국방부가 중점적으로 살펴야할 지점이다. 더불어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도 상존하는 만큼 이를 불식시킬 대비도 간과해서는 안 될 과제로 남아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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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사에게 휴대전화를 허한다, 더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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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2-06-17 14:46:46
    취재K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군 장병에게 둘러싸였다. 장병들은 앞다퉈 전투복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자신의 얼굴과 당선인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서둘러 담았다. 윤 당선인도 격의 없이 장병들의 '셀카 인증샷'에 맞춰 포즈를 취했다. 4월 초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했을 때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은 누군가에게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군대 내 부조리를 고발해 온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올라온 글에서 '카투사 병사들은 일과 시간 내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카투사 병사들이 일과 시간 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없다면, 일반 국군 병사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통령직 인수위는 "국군 병사들의 휴대전화 소지 시간 확대는 윤 당선인의 공약 사항"이라고 응했다.

■ 휴대전화 사용 확대는 '대세'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2014년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이후 찬반 논의와 시범 운영을 거쳐 2020년 7월 처음으로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됐다. 지난 정부 국방개혁 2.0의 주요 사업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휴대전화 사용 전면 허용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도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도 사용 시간 확대를 약속했다. 확대 여부를 논하는 단계를 넘어 확대 방법과 범위, 시점을 살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 훈련병 제외 병사에 한해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한 시간은 평일 일과 후인 오후 6∼9시, 휴일 은 오전 8시 30분∼오후 9시 사이다. 국방부는 훈련병까지 대상에 포함시키고 일과 시간을 사용 가능 시간에 포함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24시간 허용" vs "밤에는 곤란"


확대 방안으로는 현역병의 경우 3가지 유형이 검토되고 있다. 아침 점호 이후∼오전 8시 30분과 오후 5시 30분∼9시 시간대의 '최소형', 아침 점호 이후∼오후 9시의 '중간형', 24시간 소지하는 '자율형' 등이다. 훈련병에게는 제약이 더 많다. 입소 1주차 평일 30분과 주말·공휴일 1시간 사용을 허용하는 '최소형', 입소 기간 중 평일 30분과 주말·공휴일 1시간을 허용하는 '확대형' 으로 나뉜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육군 15사단 기간병 5천여 명, 훈련병 5백 명을 상대로 1차 시범 운영을 실시했고 오는 20일부터 연말까지는 군 별로 2~3개 부대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확대한다.

1차 시범운영 결과 일반 병사는 밤에도 사용을 허용했으면 좋겠다, 즉 전면 허용해 달라는 입장이 많았고 간부들은 그렇게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반 병사의 72%가 24시간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는 방안이 가장 좋다고 답했다. 간부들은 최소 밤에는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45%를 차지했다. 간부들은 훈련병들에 대해서도 휴대전화 사용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제한하는 방안을 제일 선호하기도 했다.

■ 국방정책 '의제설정'에도 기여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은 여러 순기능을 갖고있다.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역할하는 것에 더해 가족 및 사회와의 소통과 자기 계발, 여가 선용 등 개개인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국방부는 보고 있다. 또 복무 적응과 임무 수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휴대전화 사용이 국방 정책에 직접 영향을 끼친 사례들도 있다. 지난해 부실급식 문제가 군대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서 공론화된 배경에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있었다. 변석언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강사 등은 '휴대전화를 활용한 내부 고발과 국방정책 의제설정 변화'라는 논문에서 '육대전'을 통한 고발에 주목했다. 육대전 제보량의 증가와 내용의 다양화는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보다 쉽게 군대 내부 문제를 사회 바깥으로 공론화할 수 있게 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사들도 국방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했다고 봤다. 외부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군의 특성상, 극적인 계기가 없다면 그동안 시민사회와 같은 군 외부의 비공식적 참여자가 국방정책의 의제를 주도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극적인 계기, 바로 휴대전화 사용이 병사와 군 외부의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가교가 됐고 그 결과 국방정책 과정 참여자에 '병사'가 포함됐다는 분석이다. 변석언 등은 앞으로의 국방정책과정에 병사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불편이 얼마든지 공론화돼 정책 문제화 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2020년 초부터 1년 반 동안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위반 행위를 적발한 결과 병사에게 내려진 징계가 1만 2,900여 건에 달했다. 사용 수칙 위반이 7,500여 건, 보안 위규 4,200여 건, 사이버 도박이 860건 등이었다.

휴대전화 사용이 허가된 이후 군대 내 사이버 범죄 건수가 2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군사경찰과 군검찰에 접수된 사이버 범죄 건수 수치가 2019년 115건에서 2020년 285건까지 증가했다. 사이버 범죄 유형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도청이나 불법 도박, 사이버 사기, 소셜미디어 등에서의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이었다.

한 육군 간부는 "부대 관리 측면에서 사고 예방이라는 좋은 효과가 있다"면서도 "반대로 종종 단결이나 조직 화합 측면에서 저해 요인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군 간부도 "병사들의 사이버 도박이나 주식 투자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도입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제도가 안정화되지는 못했다는 방증들이다. 시범 운영을 확대하는 국방부가 중점적으로 살펴야할 지점이다. 더불어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도 상존하는 만큼 이를 불식시킬 대비도 간과해서는 안 될 과제로 남아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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