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근대 주거사 관통한 ‘충정 아파트’…역사 속으로

입력 2022.06.18 (07:00) 수정 2022.06.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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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재 충정 아파트의 모습. 출처 : KBS 이진성2022년 현재 충정 아파트의 모습. 출처 : KBS 이진성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은 아파트에 삽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한국에 등장한 것은 100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주거의 원형이 된 초기 아파트들은 의미를 돌아볼 틈도 없이 한국전쟁과 급속한 도시화, 재건축 열기 속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충정 아파트는 보기 드물게 남아있는 1930년대 아파트입니다. 충정 아파트는 쓰임과 형태를 바뀌어왔는데, 아직도 주거시설로 사용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불리기도 합니다.

최근 서울시는 이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굴곡 많은 한국도시주거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충정 아파트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 도요타 아파트 : 일본인이 지은 임대 아파트

이 아파트의 공식 기록은 토지대장에 오른 1937년 8월 29일부터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은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시기였습니다. 군수산업에 따른 산업화와 행정구역 확장으로, 1935년 40만 명이었던 서울 인구는 1942년 111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서울의 주택난도 심각해졌습니다.

이연경, 박진희, 남용협의 논문 '근대도시주거로서 충정 아파트의 특징 및 가치'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조선시대 주거지였던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당시 죽첨정) 일대에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문화주택'을 지어 상층 주거지로 개발했습니다. 1935년에는 충정로에 24m폭의 큰 도로가 개설됐고, 인근 논밭은 대지로 개발했습니다.

충정 아파트 중정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굴뚝. 굴뚝은 중앙난방시설로 추정된다.충정 아파트 중정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굴뚝. 굴뚝은 중앙난방시설로 추정된다.

1932년 3월 이 일대 부지를 사들였던 도요타 다네마쓰(豐田種松)라는 일본인은 이곳에 철근콘크리트 조의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을 지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독립 가구인 일반인에게 임대를 원칙으로 하는 도시형 공동주택으로 52세대의 세입자를 받았습니다. 정해진 명칭은 없었지만, 주인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 또는 한자음대로 '풍전 아파트'라고 불렸습니다.

아파트라는 명칭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대개 특정 학교나 공장에 다니는 학생이나 직원들의 기숙사로 쓰이는 관사 성격의 공동주택을 의미했습니다. 이와 달리 '도요타 아파트'는 처음부터 일반 개인이나 가정을 입주민으로 한 공동주택을 표방했습니다. '도요타 아파트'가 현대적 의미의 아파트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도요타 아파트' 입주민 중에는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훗날 법무부 장관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황산덕은 평양 출신인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대학 생활과 신혼살림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화가 김환기도 1940년경 일본의 미술전에 출품하며 자신의 주소를 '도요타 아파트'로 제출했습니다.

■ 트레머호텔 : 미군을 위한 호텔

주택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일제 강점기 임대료는 지속적으로 올랐습니다. 전시 체제로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임대료 상승에 한몫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39년 6월 임대료에 상한을 설정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더 큰 수익을 추구하는 일본인 주택임대사업자들은 이를 피해, 임대 주택을 호텔로 바꿔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요타 아파트' 역시 1940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호텔 허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호텔 영업은 생각보다 순조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훗날 신문에는 '도요타 아파트'는 호텔 영업이 적자를 면하지 못해 '오뎅 술집' 영업을 했다는 기사가 전합니다.

한국 전쟁 때 시가전이 벌어진 서울 충정로의 모습. 멀리 보이는 굴뚝 있는 건물이 ‘트레머 호텔’로 쓰인 ‘충정 아파트’.한국 전쟁 때 시가전이 벌어진 서울 충정로의 모습. 멀리 보이는 굴뚝 있는 건물이 ‘트레머 호텔’로 쓰인 ‘충정 아파트’.

해방 이후 일본인 소유의 건물은 모두 미 군정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도요타 아파트'는 '트레머 호텔(Traymore Hotel)'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트레머 호텔'은 미군 숙소로 이용됐고, 한국전쟁 기간에는 미 중앙정보국 (CIA)의 합동고문단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소유로 넘어온 이후에도 호텔 영업은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김병조라는 사람이 아들 6형제를 나라를 위해 바쳤다고 주장해 훈장을 받았는데,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이 아파트까지 무상으로 불하받았습니다. 김 씨는 4층이던 건물을 5층으로 증축하고 내부를 개조해 '코리아관광호텔'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건물은 다시 정부에 몰수됐습니다.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였습니다.


■ 유림 아파트 : 도로 확장에 건물 일부 철거

1962년 정부의 공매를 거쳐 이 건물은 다시 주거용 아파트인 '유림 아파트'로 전환됩니다. 여러 손바뀜을 거치는 사이, 권리관계도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1978년 아파트 앞 도로를 24m에서 40~50m로 넓히는 도로확장공사가 시행됐습니다.

당시 유림 아파트는 준공한 지 40년이 넘은 상태, 요즘이라면 도로용지를 내주고 남은 땅에 재건축을 했겠지만 그러기엔 권리관계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주민들은 건물 일부를 철거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도로 확장 공사 전후 유림 아파트의 모습 변화. 출처 : 스마트서울맵 항공사진도로 확장 공사 전후 유림 아파트의 모습 변화. 출처 : 스마트서울맵 항공사진

건물 전면의 7~8m를 철거하면서 유림 아파트는 외관이 크게 변형됐습니다. 엘리베이터, 계단실, 비상계단은 물론 19가구가 사라졌습니다. 필지의 모양대로 비정형에 가까운 원형은 가까스로 유지했지만, 도로에 접한 전면부는 디자인적인 요소와 비상 계단이 사라지고 밋밋한 모습이 됐습니다. 1962년 김병조가 개조하며 올린 경사지붕도 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집 일부가 허물어져 전용면적이 줄어든 주민들이 공용공간인 복도와 계단실, 중정을 점유했습니다. 다른 주민들의 반발로 일부는 철회됐지만, 107㎡였던 중정의 면적이 2/3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충정 아파트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이 일대가 처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이 즈음입니다.


■ 근대주거유산이지만…안전성 때문에 철거 결정

충정로에서 따 온 '충정 아파트'라는 명칭은 1980년대부터 쓰였습니다. 충정 아파트는 그동안 '최초의 아파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불리기도 했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건설 당시 도면과 원형 기록 등이 남아있지 않다보니, 준공 시기가 1930년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초기 아파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충정 아파트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근대도시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시는 한때 충정 아파트를 보존하기로 결정하고, 소유자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개발과 함께 보존하는 방안을 고민해왔습니다.

하지만 2018년에야 처음 시행한 안전진단에서, 충정 아파트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주요 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나 보강이 필요하고,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충정 아파트를 보존하는 안은 2021년 8월 처음 상정된 도시계획위원회부터 통과하지 못했고, 지난 15일 서울시 도계위는 충정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충정 아파트가 당장 철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통상의 재개발 사업 절차대로, 조합설립과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의 행정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충정 아파트 일대는 2008년 조합설립위원회가 구성된 상태입니다. 추진위원회는 충정 아파트 자리에 21층 높이의 주거시설을 세우는 안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서울시의 계획 변경에 따라 새로운 안을 만들 예정입니다.


<참고자료>
이연경·박진희·남용협, 근대도시주거로서 충정아파트의 특징 및 가치, 도시연구, 2018
박철수·권이철·오오세 루미코·황세원, 경성의 아파트, 집, 2021
장림종·박진희,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효형출판, 2009
박상현, 충정아파트의 일본인 건물주 성명 고찰, 일본문화연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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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년 근대 주거사 관통한 ‘충정 아파트’…역사 속으로
    • 입력 2022-06-18 07:00:50
    • 수정2022-06-18 09:36:15
    취재K
2022년 현재 충정 아파트의 모습. 출처 : KBS 이진성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은 아파트에 삽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한국에 등장한 것은 100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주거의 원형이 된 초기 아파트들은 의미를 돌아볼 틈도 없이 한국전쟁과 급속한 도시화, 재건축 열기 속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충정 아파트는 보기 드물게 남아있는 1930년대 아파트입니다. 충정 아파트는 쓰임과 형태를 바뀌어왔는데, 아직도 주거시설로 사용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불리기도 합니다.

최근 서울시는 이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굴곡 많은 한국도시주거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충정 아파트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 도요타 아파트 : 일본인이 지은 임대 아파트

이 아파트의 공식 기록은 토지대장에 오른 1937년 8월 29일부터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은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시기였습니다. 군수산업에 따른 산업화와 행정구역 확장으로, 1935년 40만 명이었던 서울 인구는 1942년 111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서울의 주택난도 심각해졌습니다.

이연경, 박진희, 남용협의 논문 '근대도시주거로서 충정 아파트의 특징 및 가치'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조선시대 주거지였던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당시 죽첨정) 일대에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문화주택'을 지어 상층 주거지로 개발했습니다. 1935년에는 충정로에 24m폭의 큰 도로가 개설됐고, 인근 논밭은 대지로 개발했습니다.

충정 아파트 중정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굴뚝. 굴뚝은 중앙난방시설로 추정된다.
1932년 3월 이 일대 부지를 사들였던 도요타 다네마쓰(豐田種松)라는 일본인은 이곳에 철근콘크리트 조의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을 지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독립 가구인 일반인에게 임대를 원칙으로 하는 도시형 공동주택으로 52세대의 세입자를 받았습니다. 정해진 명칭은 없었지만, 주인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 또는 한자음대로 '풍전 아파트'라고 불렸습니다.

아파트라는 명칭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대개 특정 학교나 공장에 다니는 학생이나 직원들의 기숙사로 쓰이는 관사 성격의 공동주택을 의미했습니다. 이와 달리 '도요타 아파트'는 처음부터 일반 개인이나 가정을 입주민으로 한 공동주택을 표방했습니다. '도요타 아파트'가 현대적 의미의 아파트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도요타 아파트' 입주민 중에는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훗날 법무부 장관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황산덕은 평양 출신인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대학 생활과 신혼살림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화가 김환기도 1940년경 일본의 미술전에 출품하며 자신의 주소를 '도요타 아파트'로 제출했습니다.

■ 트레머호텔 : 미군을 위한 호텔

주택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일제 강점기 임대료는 지속적으로 올랐습니다. 전시 체제로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임대료 상승에 한몫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39년 6월 임대료에 상한을 설정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더 큰 수익을 추구하는 일본인 주택임대사업자들은 이를 피해, 임대 주택을 호텔로 바꿔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요타 아파트' 역시 1940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호텔 허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호텔 영업은 생각보다 순조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훗날 신문에는 '도요타 아파트'는 호텔 영업이 적자를 면하지 못해 '오뎅 술집' 영업을 했다는 기사가 전합니다.

한국 전쟁 때 시가전이 벌어진 서울 충정로의 모습. 멀리 보이는 굴뚝 있는 건물이 ‘트레머 호텔’로 쓰인 ‘충정 아파트’.
해방 이후 일본인 소유의 건물은 모두 미 군정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도요타 아파트'는 '트레머 호텔(Traymore Hotel)'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트레머 호텔'은 미군 숙소로 이용됐고, 한국전쟁 기간에는 미 중앙정보국 (CIA)의 합동고문단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소유로 넘어온 이후에도 호텔 영업은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김병조라는 사람이 아들 6형제를 나라를 위해 바쳤다고 주장해 훈장을 받았는데,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이 아파트까지 무상으로 불하받았습니다. 김 씨는 4층이던 건물을 5층으로 증축하고 내부를 개조해 '코리아관광호텔'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건물은 다시 정부에 몰수됐습니다.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였습니다.


■ 유림 아파트 : 도로 확장에 건물 일부 철거

1962년 정부의 공매를 거쳐 이 건물은 다시 주거용 아파트인 '유림 아파트'로 전환됩니다. 여러 손바뀜을 거치는 사이, 권리관계도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1978년 아파트 앞 도로를 24m에서 40~50m로 넓히는 도로확장공사가 시행됐습니다.

당시 유림 아파트는 준공한 지 40년이 넘은 상태, 요즘이라면 도로용지를 내주고 남은 땅에 재건축을 했겠지만 그러기엔 권리관계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주민들은 건물 일부를 철거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도로 확장 공사 전후 유림 아파트의 모습 변화. 출처 : 스마트서울맵 항공사진
건물 전면의 7~8m를 철거하면서 유림 아파트는 외관이 크게 변형됐습니다. 엘리베이터, 계단실, 비상계단은 물론 19가구가 사라졌습니다. 필지의 모양대로 비정형에 가까운 원형은 가까스로 유지했지만, 도로에 접한 전면부는 디자인적인 요소와 비상 계단이 사라지고 밋밋한 모습이 됐습니다. 1962년 김병조가 개조하며 올린 경사지붕도 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집 일부가 허물어져 전용면적이 줄어든 주민들이 공용공간인 복도와 계단실, 중정을 점유했습니다. 다른 주민들의 반발로 일부는 철회됐지만, 107㎡였던 중정의 면적이 2/3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충정 아파트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이 일대가 처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이 즈음입니다.


■ 근대주거유산이지만…안전성 때문에 철거 결정

충정로에서 따 온 '충정 아파트'라는 명칭은 1980년대부터 쓰였습니다. 충정 아파트는 그동안 '최초의 아파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불리기도 했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건설 당시 도면과 원형 기록 등이 남아있지 않다보니, 준공 시기가 1930년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초기 아파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충정 아파트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근대도시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시는 한때 충정 아파트를 보존하기로 결정하고, 소유자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개발과 함께 보존하는 방안을 고민해왔습니다.

하지만 2018년에야 처음 시행한 안전진단에서, 충정 아파트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주요 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나 보강이 필요하고,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충정 아파트를 보존하는 안은 2021년 8월 처음 상정된 도시계획위원회부터 통과하지 못했고, 지난 15일 서울시 도계위는 충정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충정 아파트가 당장 철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통상의 재개발 사업 절차대로, 조합설립과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의 행정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충정 아파트 일대는 2008년 조합설립위원회가 구성된 상태입니다. 추진위원회는 충정 아파트 자리에 21층 높이의 주거시설을 세우는 안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서울시의 계획 변경에 따라 새로운 안을 만들 예정입니다.


<참고자료>
이연경·박진희·남용협, 근대도시주거로서 충정아파트의 특징 및 가치, 도시연구, 2018
박철수·권이철·오오세 루미코·황세원, 경성의 아파트, 집, 2021
장림종·박진희,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효형출판, 2009
박상현, 충정아파트의 일본인 건물주 성명 고찰, 일본문화연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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