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영옥이 언니 영희 “이번에는 영화에서 만나요”

입력 2022.06.20 (09:05) 수정 2022.06.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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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주)영화사 진진

사진제공 : (주)영화사 진진

-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배우이기 이전에 잘 나가는 캐리커처 작가.
- 만화가 어머니, "그림 그리면서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됐죠"
- 장애인이지만 개인별 특성에 맞춰서 교육이 이뤄졌으면.
- 다큐 감독 아버지 "은혜 씨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 모든 발달 장애인을 매력적으로 바라봐줬으면"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의 쌍둥이 언니로 나온 정은혜(33) 씨는 발달장애인이다. 생김새도 비장애인과는 다르고, 비장애인처럼 빠르게 말하지도 못하고 행동도 느리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 어느 비장애인보다 바쁘고 사랑받는 인기인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는 인기 캐리커처 인물화 작가로,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서는 멋진 주인공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배우로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어지는 언론의 인터뷰, 촬영 요청 때문에 소위 인기를 실감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의 인기스타 ‘정은혜’가 있기까지 그 뒤에는 대부분의 장애인 가정처럼 부모의 헌신과 뒷바라지가 있었다. 정은혜 작가와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정은혜 캐리커처 작가

Q 드라마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 드라마도 보셔서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사진 찍으려고 우르르 달려오세요.

Q 캐리커처 작가인데 전과 비교하면 그림 그려 달라는 사람들도 더 많이 늘었나요?
▲ 네

Q 평소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아는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 2016년 8월부터 경기도 양편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오래됐죠.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밀린 그림들도 그리고, 인터뷰도 하고 그래요. 작업실에 늘 나오기는 하는데 요즘에는 바빠서 잘 못 와요.

Q. 얼굴 그려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기 쉽거나 어려운 사람들이 따로 있나요?
▲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생긴 것이 다 다르지만 그런 거는 없어요.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도 없어요.

정은혜 씨의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감독, 어머니는 만화가로 활동 중이다.정은혜 씨의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감독, 어머니는 만화가로 활동 중이다.

■ 장차현실/어머니, 만화가
-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만화가로서 정은혜 씨가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다.

Q 은혜 씨가 그림 그릴 때 비장애인 작가랑 다른 점이 있나요?
▲ 그림 그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예전에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 생각을 안 한대요. 저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저는 생각하면서 그리죠. 눈은 이렇게, 코를 이렇게 입을 이렇게, 그런데 은혜는 생각해서 그리는 게 아니고 그냥 그 대상에 직관적으로 자기가 느끼는 그거를 그리는 거예요. 명상의 상태라고 있죠. 명상의 상태에서 ‘나를 비운다.’ 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은혜 씨는 보면 대상에 집중할 뿐이고 자기 안의 것들을 비워지는 상태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 눈이 이렇게 생겼어 코가 이렇게 생겼어”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고요. 실제로 얼굴을 어림잡아 놓고 그리는 게 아니라 위에서부터 쭉 그려 나가요.

Q 중간 필터링 과정이 없는 거네요?
▲ 그렇죠. 우리는 이성적인 필터링을 하죠.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더 부드럽게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더 귀엽게 표현하실 것인가. 이런 의도를 갖고 그리잖아요. 그런데 은혜 씨는 그런 의도가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Q 은혜 씨가 성인이 된 다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요.
▲ 저도 은혜가 2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장애인이 받아야 하는 특수교육을 받도록 집중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돈으로 따지면 집 한 채 값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특수교육이 끝나고 성인이 된 다음 교육을 받지 않으면서 퇴행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일하는 화실에서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은혜도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때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재능을 발견한 거죠.
그때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왜 은혜한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가르치려는 시도를 안 했을까 굉장히 가슴을 치고 후회했어요. 그때가 2013년 이십 대 초반이었어요. 이제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삶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지금은 완전히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됐죠.

Q. 어머니가 만화가이신데 어려서부터 그림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네요.
▲ 저도 딸을 사랑하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 했었는데 은혜를 그냥 장애인으로 생각하고 대상화했던 거죠. 장애인이 뭘 잘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요. 또 은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하는지도 생각 안 했고요. 그것보다는 장애인이니 교육을 받아서 비장애인들처럼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인 시설에 가지 않고 살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는 것에만 집중 했던 것 같아요.

Q.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 교육이라는 것이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좁히는 교육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거네요.
▲ 은혜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통해서 알게 된 거죠. 어떤 교육이라는 것이 장애인들의 개별적인 욕구 같은 것은 배제된 상태에서 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교육을 받으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 거죠. 교육하면 우리가 원하는 비장애인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거죠.

Q. 어떻게 하면 좀 더 비장애인처럼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는 거네요?
▲ 똑같은 장애여도 장애인의 상태에 따라서 너무나 다양한 모습이 있거든요. 정도의 차이도 있고, 장애 정도의 차이도 있고, 또 그 개개인의 성장 속도도 다르죠. 그런 것들이 구분되어서 교육이 됐으면 하는 거죠.

Q. 같은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님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실 것 같은데요.
▲ 제가 은혜를 키우면서 저를 못 믿었던 것 같아요. 자꾸 특수교육에 의존하고 다른 선생님께 의존하고 그러다 보니, 사실 은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판단하는 것들을 잘 믿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한 거죠. 그런데 결국 은혜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저였던 거예요. 다행히 제가 잘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암담한 청년기의 삶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해결했던 거죠.

Q 하지만 각 발달장애인 가족마다 경제적인 문제라든지 상황이 다르잖아요.
▲ 노동과 돌봄 문제를 공동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대를 통해서 같이 도와가면서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우리가 스스로 보여줘야죠.

Q 정부나 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쉽지 않은 부분일 텐데요.
▲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 대부분이 이것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죠. '부양의무제’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대표적이죠. ‘부양의무제’는 당신 장애 자녀의 문제는 당신 가족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 '부양의무제'는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나 자녀가 있을 때 이들에게 일차적인 '부양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가족에게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이지만 각 장애인 가정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의무만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Q. 논란 중인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정말 저 머리 길러보고 싶어요. 2018년부터 (삭발해서) 계속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부모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투쟁하고 싸우고 그러기 전에 국가가 먼저 좀 발달장애인을 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불행한 일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두 분이 말씀하시면서 정은혜 작가를 딸인데도 ‘은혜 씨’라고 호칭하시던데 이유가 있나요?
▲ 20살이 넘었는데도 주변에 사람들이 아이처럼 대하는 거예요. 사실 나이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은 성인이에요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희가 ‘은혜 씨’라는 호칭을 부르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는 ‘은혜야’ 라고 불러야 하는데 습관이 돼서 “은혜 씨 일어나세요.” 그렇게 말하죠. 그리고 본인도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정은혜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니얼굴’이 6월 23일 개봉된다.정은혜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니얼굴’이 6월 23일 개봉된다.

■ 서동일/아버지, 다큐멘터리 감독
정은혜 씨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2017년부터 딸 은혜 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의 촬영 감독을 맡았다. ‘니얼굴’은 2021년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우수상을 받았으며 6월 23일 개봉한다.

Q.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 은혜가 어렸을 때는 이제 비장애인의 삶을 따라가기 위한 여러 교육에 돈을 많이 투자했어요. 그런데 결국 성인이 됐는데 지역사회 어느 곳에도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거예요. 그냥 매일 매일 자기 방에서 뜨개질하면서 상상의 친구들 불러내서 싸우고, 소리 지르고 이랬어요.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 이제 아빠의 입장에서도 되게 암울했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이제 은혜 씨가 그림을 그리고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가서 ‘셀러’(판매자)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동안 아무도 자기한테 관심 주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을 오히려 자기 예술 세계로 초대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본 거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은혜 씨가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구나. ‘자기의 삶을 살고 싶구나.' 라는 의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은혜 씨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내가 잘 기록해둬야겠다는 아빠의 마음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감독의 입장에서도 내가 참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잘 살리면 사람들도 좀 좋아할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제작지원 신청을 영화진흥위원회 하게 됐죠.

Q 어떤 분들이 영화를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 사실 우리 은혜 씨가 가지고 있는 다운증후군 외모나 말투, 행동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낯설고 이상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요소들이죠. 그런데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을 통해서, 또 제 영화를 통해서 은혜 씨가 갖고 있는 모든 요소를 요즘은 너무 귀엽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매력적으로 봐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은혜 씨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발달 장애인들을 바라볼 때 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존재로 바라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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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의 블루스 영옥이 언니 영희 “이번에는 영화에서 만나요”
    • 입력 2022-06-20 09:05:06
    • 수정2022-06-20 11:05:41
    취재K

사진제공 : (주)영화사 진진

-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배우이기 이전에 잘 나가는 캐리커처 작가.
- 만화가 어머니, "그림 그리면서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됐죠"
- 장애인이지만 개인별 특성에 맞춰서 교육이 이뤄졌으면.
- 다큐 감독 아버지 "은혜 씨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 모든 발달 장애인을 매력적으로 바라봐줬으면"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의 쌍둥이 언니로 나온 정은혜(33) 씨는 발달장애인이다. 생김새도 비장애인과는 다르고, 비장애인처럼 빠르게 말하지도 못하고 행동도 느리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 어느 비장애인보다 바쁘고 사랑받는 인기인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는 인기 캐리커처 인물화 작가로,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서는 멋진 주인공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배우로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어지는 언론의 인터뷰, 촬영 요청 때문에 소위 인기를 실감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의 인기스타 ‘정은혜’가 있기까지 그 뒤에는 대부분의 장애인 가정처럼 부모의 헌신과 뒷바라지가 있었다. 정은혜 작가와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정은혜 캐리커처 작가

Q 드라마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 드라마도 보셔서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사진 찍으려고 우르르 달려오세요.

Q 캐리커처 작가인데 전과 비교하면 그림 그려 달라는 사람들도 더 많이 늘었나요?
▲ 네

Q 평소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아는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 2016년 8월부터 경기도 양편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오래됐죠.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밀린 그림들도 그리고, 인터뷰도 하고 그래요. 작업실에 늘 나오기는 하는데 요즘에는 바빠서 잘 못 와요.

Q. 얼굴 그려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기 쉽거나 어려운 사람들이 따로 있나요?
▲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생긴 것이 다 다르지만 그런 거는 없어요.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도 없어요.

정은혜 씨의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감독, 어머니는 만화가로 활동 중이다.
■ 장차현실/어머니, 만화가
-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만화가로서 정은혜 씨가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다.

Q 은혜 씨가 그림 그릴 때 비장애인 작가랑 다른 점이 있나요?
▲ 그림 그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예전에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 생각을 안 한대요. 저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저는 생각하면서 그리죠. 눈은 이렇게, 코를 이렇게 입을 이렇게, 그런데 은혜는 생각해서 그리는 게 아니고 그냥 그 대상에 직관적으로 자기가 느끼는 그거를 그리는 거예요. 명상의 상태라고 있죠. 명상의 상태에서 ‘나를 비운다.’ 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은혜 씨는 보면 대상에 집중할 뿐이고 자기 안의 것들을 비워지는 상태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 눈이 이렇게 생겼어 코가 이렇게 생겼어”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고요. 실제로 얼굴을 어림잡아 놓고 그리는 게 아니라 위에서부터 쭉 그려 나가요.

Q 중간 필터링 과정이 없는 거네요?
▲ 그렇죠. 우리는 이성적인 필터링을 하죠.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더 부드럽게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더 귀엽게 표현하실 것인가. 이런 의도를 갖고 그리잖아요. 그런데 은혜 씨는 그런 의도가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Q 은혜 씨가 성인이 된 다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요.
▲ 저도 은혜가 2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장애인이 받아야 하는 특수교육을 받도록 집중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돈으로 따지면 집 한 채 값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특수교육이 끝나고 성인이 된 다음 교육을 받지 않으면서 퇴행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일하는 화실에서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은혜도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때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재능을 발견한 거죠.
그때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왜 은혜한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가르치려는 시도를 안 했을까 굉장히 가슴을 치고 후회했어요. 그때가 2013년 이십 대 초반이었어요. 이제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삶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지금은 완전히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됐죠.

Q. 어머니가 만화가이신데 어려서부터 그림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네요.
▲ 저도 딸을 사랑하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 했었는데 은혜를 그냥 장애인으로 생각하고 대상화했던 거죠. 장애인이 뭘 잘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요. 또 은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하는지도 생각 안 했고요. 그것보다는 장애인이니 교육을 받아서 비장애인들처럼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인 시설에 가지 않고 살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는 것에만 집중 했던 것 같아요.

Q.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 교육이라는 것이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좁히는 교육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거네요.
▲ 은혜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통해서 알게 된 거죠. 어떤 교육이라는 것이 장애인들의 개별적인 욕구 같은 것은 배제된 상태에서 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교육을 받으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 거죠. 교육하면 우리가 원하는 비장애인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거죠.

Q. 어떻게 하면 좀 더 비장애인처럼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는 거네요?
▲ 똑같은 장애여도 장애인의 상태에 따라서 너무나 다양한 모습이 있거든요. 정도의 차이도 있고, 장애 정도의 차이도 있고, 또 그 개개인의 성장 속도도 다르죠. 그런 것들이 구분되어서 교육이 됐으면 하는 거죠.

Q. 같은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님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실 것 같은데요.
▲ 제가 은혜를 키우면서 저를 못 믿었던 것 같아요. 자꾸 특수교육에 의존하고 다른 선생님께 의존하고 그러다 보니, 사실 은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판단하는 것들을 잘 믿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한 거죠. 그런데 결국 은혜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저였던 거예요. 다행히 제가 잘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암담한 청년기의 삶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해결했던 거죠.

Q 하지만 각 발달장애인 가족마다 경제적인 문제라든지 상황이 다르잖아요.
▲ 노동과 돌봄 문제를 공동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대를 통해서 같이 도와가면서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우리가 스스로 보여줘야죠.

Q 정부나 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쉽지 않은 부분일 텐데요.
▲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 대부분이 이것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죠. '부양의무제’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대표적이죠. ‘부양의무제’는 당신 장애 자녀의 문제는 당신 가족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 '부양의무제'는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나 자녀가 있을 때 이들에게 일차적인 '부양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가족에게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이지만 각 장애인 가정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의무만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Q. 논란 중인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정말 저 머리 길러보고 싶어요. 2018년부터 (삭발해서) 계속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부모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투쟁하고 싸우고 그러기 전에 국가가 먼저 좀 발달장애인을 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불행한 일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두 분이 말씀하시면서 정은혜 작가를 딸인데도 ‘은혜 씨’라고 호칭하시던데 이유가 있나요?
▲ 20살이 넘었는데도 주변에 사람들이 아이처럼 대하는 거예요. 사실 나이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은 성인이에요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희가 ‘은혜 씨’라는 호칭을 부르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는 ‘은혜야’ 라고 불러야 하는데 습관이 돼서 “은혜 씨 일어나세요.” 그렇게 말하죠. 그리고 본인도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정은혜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니얼굴’이 6월 23일 개봉된다.
■ 서동일/아버지, 다큐멘터리 감독
정은혜 씨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2017년부터 딸 은혜 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의 촬영 감독을 맡았다. ‘니얼굴’은 2021년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우수상을 받았으며 6월 23일 개봉한다.

Q.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 은혜가 어렸을 때는 이제 비장애인의 삶을 따라가기 위한 여러 교육에 돈을 많이 투자했어요. 그런데 결국 성인이 됐는데 지역사회 어느 곳에도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거예요. 그냥 매일 매일 자기 방에서 뜨개질하면서 상상의 친구들 불러내서 싸우고, 소리 지르고 이랬어요.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 이제 아빠의 입장에서도 되게 암울했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이제 은혜 씨가 그림을 그리고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가서 ‘셀러’(판매자)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동안 아무도 자기한테 관심 주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을 오히려 자기 예술 세계로 초대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본 거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은혜 씨가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구나. ‘자기의 삶을 살고 싶구나.' 라는 의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은혜 씨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내가 잘 기록해둬야겠다는 아빠의 마음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감독의 입장에서도 내가 참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잘 살리면 사람들도 좀 좋아할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제작지원 신청을 영화진흥위원회 하게 됐죠.

Q 어떤 분들이 영화를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 사실 우리 은혜 씨가 가지고 있는 다운증후군 외모나 말투, 행동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낯설고 이상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요소들이죠. 그런데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을 통해서, 또 제 영화를 통해서 은혜 씨가 갖고 있는 모든 요소를 요즘은 너무 귀엽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매력적으로 봐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은혜 씨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발달 장애인들을 바라볼 때 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존재로 바라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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