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 연준에게 더 남은 카드는…“없다”

입력 2022.06.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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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준 , "물가 잡을 때까지 금리 계속 올릴 것"= 결국 '수요' 통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지난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나 올리는 공격적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8.6%(1년 전 대비)를 찍은 기록적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직면한 연준의 선택은 결국 '자이언트 스텝'이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다음 달에도 0.5%p 이상 또 올리겠다고 했고, 물가가 잡힐 때까지 계속해서 올리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내내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고수하면서 너무 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도 거세지만, 어쨌든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을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지금 연준이 사용할 무기는 사실상 '금리'뿐이다.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지니,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걸 잡으려면 이 수요와 공급에 적당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공급은 연준의 영역도 아닐뿐더러 , 설사 건드리고 싶다 해도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공급망 악화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식량난까지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공급 쪽 문제는 이제 신의 영역으로 가버리다시피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급이 문제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은 별 효과가 없다며 연준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연준은 결국 수요를 잡아서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금리를 올려, 가계와 기업이 돈을 덜 빌리게 하고, 돈을 덜 쓰게 하는 식이다. 공급 문제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요를 통제해 물가가 낮아지도록 하는 거다.

이 지점에서 터져나오는 게 '경기침체' 우려다.

■ 금리 올려 돈 덜 쓰게, 돈 안 쓰게…경기 둔화는 당연한 것

미국은 전체 경제 성장의 70%를 소비가 담당한다. 미국 국민들이 돈을 많이 써야 나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경제위기 때마다 시중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풀어댄다. 국민들이 돈을 써야 나라 경제가 살아나니 그렇다.

그런데 이제 국민들이 돈 쓰는 걸 억제해 물가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렇다보니 미국 경제 성장 속도가 앞으로 둔화될 거라는 건 사실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문제는 경기 둔화를 넘어 미국 경제가 '침체'(recession/경제학적 정의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요즘은 각 나라 경제 사정에 맞춰 의미를 재설정하는 경향)로 갈 거냐는 건데, 현재 미국 경제학자들과 주요 기관들은 그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이코노미스트 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앞으로 1년 안에 미국에 경기침체가 닥칠 가능성은 44%로 집계됐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높게 나왔다.

연준은 물가 잡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연준은 금리를 더 급격하게, 더 공격적으로 올리는 비상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느슨한 긴축은 자칫 효과가 없을 수 있고, 급격한 긴축은 자칫 경제에 큰 충격을 줘 물가는 못 잡고 경기위축만 불러 올 수 있는데, 급해질 대로 급해진 연준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다시 말해 연준에겐 이제 브레이크 없이 금리 인상 액셀을 밟는 것밖에는 더 남은 카드가 없게 됐다.

그래도 미국은 경기침체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바이든 대통령부터 온 경제관료들이 한 목소리로 국민들을 달래고 있지만, 침체로 가도 미국 경제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 게 사실 더 솔직한 얘기일 거다. 아니 더 정확한 속내는 '물가 잡기 위해 경기는 포기할 수 있다' 가 맞을 수도 있겠다.

■ 최악의 시나리오는?... '금리 올리는데 물가 안 내려가고 경기만 엉망'

윌리엄 더들리 전 미국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기간 미국 행정부와 연준의 통화정책은 아주 넉넉한 나머지 자극적이었다. 연준의 실수는 이 통화정책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속도가 늦었다는 데에 있다. 작년에도 연준은 돈을 풀기 위해 하고 있던 자산매입을 중단하는 것 자체를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경제는 계속 고속 성장 중이었고,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목표치보다 훨씬 높았는데도…."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물가 상승률이 4%, 5%에서 바닥을 치고 더 내려가지 않아 연준이 금리를 적어도 5%~6%로는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라고 했는데, 연준의 정책엔 운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너무 많은 외부 변수가 있다 보니 그렇다는 거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5%, 6% 가 된다면 다른 나라들은, 특히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 방어 위해 미국 따라 금리 올리기에 나서게 되고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기초체력이 부실한 신흥국들은 이미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경기 살린다고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다가 뒤늦게 앞뒤 안 가리고 금리 올리겠다는 파월 의장의 연준은 아마 연준 역사에 최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는 파월의 연준에게 운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라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위기는 미국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늘 문제여서 그렇다. 미국 경제만 바라보고 있는 나라가 어디 한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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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1 10:11:52
    특파원 리포트

■미국 연준 , "물가 잡을 때까지 금리 계속 올릴 것"= 결국 '수요' 통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지난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나 올리는 공격적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8.6%(1년 전 대비)를 찍은 기록적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직면한 연준의 선택은 결국 '자이언트 스텝'이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다음 달에도 0.5%p 이상 또 올리겠다고 했고, 물가가 잡힐 때까지 계속해서 올리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내내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고수하면서 너무 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도 거세지만, 어쨌든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을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지금 연준이 사용할 무기는 사실상 '금리'뿐이다.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지니,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걸 잡으려면 이 수요와 공급에 적당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공급은 연준의 영역도 아닐뿐더러 , 설사 건드리고 싶다 해도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공급망 악화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식량난까지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공급 쪽 문제는 이제 신의 영역으로 가버리다시피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급이 문제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은 별 효과가 없다며 연준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연준은 결국 수요를 잡아서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금리를 올려, 가계와 기업이 돈을 덜 빌리게 하고, 돈을 덜 쓰게 하는 식이다. 공급 문제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요를 통제해 물가가 낮아지도록 하는 거다.

이 지점에서 터져나오는 게 '경기침체' 우려다.

■ 금리 올려 돈 덜 쓰게, 돈 안 쓰게…경기 둔화는 당연한 것

미국은 전체 경제 성장의 70%를 소비가 담당한다. 미국 국민들이 돈을 많이 써야 나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경제위기 때마다 시중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풀어댄다. 국민들이 돈을 써야 나라 경제가 살아나니 그렇다.

그런데 이제 국민들이 돈 쓰는 걸 억제해 물가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렇다보니 미국 경제 성장 속도가 앞으로 둔화될 거라는 건 사실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문제는 경기 둔화를 넘어 미국 경제가 '침체'(recession/경제학적 정의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요즘은 각 나라 경제 사정에 맞춰 의미를 재설정하는 경향)로 갈 거냐는 건데, 현재 미국 경제학자들과 주요 기관들은 그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이코노미스트 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앞으로 1년 안에 미국에 경기침체가 닥칠 가능성은 44%로 집계됐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높게 나왔다.

연준은 물가 잡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연준은 금리를 더 급격하게, 더 공격적으로 올리는 비상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느슨한 긴축은 자칫 효과가 없을 수 있고, 급격한 긴축은 자칫 경제에 큰 충격을 줘 물가는 못 잡고 경기위축만 불러 올 수 있는데, 급해질 대로 급해진 연준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다시 말해 연준에겐 이제 브레이크 없이 금리 인상 액셀을 밟는 것밖에는 더 남은 카드가 없게 됐다.

그래도 미국은 경기침체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바이든 대통령부터 온 경제관료들이 한 목소리로 국민들을 달래고 있지만, 침체로 가도 미국 경제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 게 사실 더 솔직한 얘기일 거다. 아니 더 정확한 속내는 '물가 잡기 위해 경기는 포기할 수 있다' 가 맞을 수도 있겠다.

■ 최악의 시나리오는?... '금리 올리는데 물가 안 내려가고 경기만 엉망'

윌리엄 더들리 전 미국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기간 미국 행정부와 연준의 통화정책은 아주 넉넉한 나머지 자극적이었다. 연준의 실수는 이 통화정책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속도가 늦었다는 데에 있다. 작년에도 연준은 돈을 풀기 위해 하고 있던 자산매입을 중단하는 것 자체를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경제는 계속 고속 성장 중이었고,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목표치보다 훨씬 높았는데도…."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물가 상승률이 4%, 5%에서 바닥을 치고 더 내려가지 않아 연준이 금리를 적어도 5%~6%로는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라고 했는데, 연준의 정책엔 운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너무 많은 외부 변수가 있다 보니 그렇다는 거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5%, 6% 가 된다면 다른 나라들은, 특히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 방어 위해 미국 따라 금리 올리기에 나서게 되고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기초체력이 부실한 신흥국들은 이미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경기 살린다고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다가 뒤늦게 앞뒤 안 가리고 금리 올리겠다는 파월 의장의 연준은 아마 연준 역사에 최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는 파월의 연준에게 운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라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위기는 미국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늘 문제여서 그렇다. 미국 경제만 바라보고 있는 나라가 어디 한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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