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과 총격’ 첩보의 재구성

입력 2022.06.2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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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 현장(2022.06.16. 인천해양경찰서)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 현장(2022.06.16. 인천해양경찰서)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하였다.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0년 9월 24일, 이른바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에 대해 당시 합동참모본부 안영호 작전본부장이 발표한 내용이다. 명확하고도 강한 어조에서 보이듯 우리 군은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행위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내용은 첫 발표 전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참여한 안보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논의됐고 당연히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같은 날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분석 결과를 대면 보고했다. 대통령이 첩보의 신빙성을 다시 한번 물었고, 신빙성이 높다고 답변이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빙성이 높다는 그 첩보는 무엇이었을까?

■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다"

2020년 9월 북측의 '만행'이 벌어진 장소는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측으로 3~4km 떨어진 해상이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을 수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지역이다.

인근 대연평도와 소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측 감시장비에 실종된 공무원이 표류하거나 북한군과 만나는 모습이 녹화되지 않았다. 다만 어두워진 이후 뭔가를 태우는 '불빛'이 찍힌 사진만이 확보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군이 발표한 내용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상세했다. 실종자는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고, 부유물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타고 있었으며, 북측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방호복을 입은 채로 시신에 접근해 불태웠다는 등의 표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실종자가 총격을 당했고 시신은 소각됐다고 발표할 당시 "직접 목격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 아니다. 볼 수 없는 원거리 해역에서 일어난 일을 다양한 첩보를 종합 판단하여 재구성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입장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5가지 감각 가운데 시각에 의존한 결과가 아니라면 이 수준까지 상황 파악이 가능한 것은 청각 정도다. 따라서 우리 측이 북측의 뭔가를 감청한 것이 주요한 첩보 수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 군은 특수정보(SI)에 해당돼 공개될 경우 보유 중인 정보 능력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


■ 연유와 762

본 것이 아니고 들은 것이 포함돼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단초는 오래지 않아 공개됐다. 당시 국회는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 등을 통해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다. 민감한 내용 보고는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참석했던 의원 등을 통해 개략적인 내용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9월 2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북측이 "연유를 발라서 태우라"는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들었다고 강조했다. 연유라는 것은 북한 용어로 휘발유처럼 무엇을 태우는 데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10월 4일에는 북측이 “762를 하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762는 7.62mm 소총을 뜻하므로 북측이 총격의 수단까지 지정해 사살을 지시했다는 취지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군이 확보한 첩보 사항에 '사살', '사격' 등의 용어가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총격했을 정황, 불태운 정황 등이 보였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국방부는 당시 첩보가 조금씩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군의 민감한 첩보사항들이 임의대로 가공되거나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우리 군 임무 수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우리 군의 첩보사항들이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깊은 유감을, 우려를 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해경(2020.09.29.)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해경(2020.09.29.)

■ "'월북' 뜻하는 단어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월북' 여부에 대한 언급은 앞선 경우와 다소 달랐다. '총격이 가해지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내용은 공식 발표를 통해 공개된 반면, 월북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은 2020년 9월 24일 국방부 관계자가 별도로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처음 등장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하지 못한 이유는 확신이 부족해서였는지, 유족의 반발이 예상돼서였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있는 것을 왜곡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어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 인원은 선박으로부터 실종자와 일정 거리를 이격하여, 방독면을 착용한 채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에 더해 우리 군은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던 점 등 여러 정황을 월북 시도의 근거로 제시했다. 가장 핵심적인 '월북 진술'의 내용은 SI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고, 해경은 2020년 9월 29일 국방부 자료를 근거로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첩보의 일부 조각은 약 2주일 뒤 드러났다. 2020년 10월 8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원인철 합참의장이 군 첩보에 '월북'을 의미하는 단어가 포착됐다고 인정한 것이다. 실종자의 육성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상식적으로 우리가 희생자의 육성을 들을 순 없다"고 답해 북한군이 서로 주고받은 교신에서 '월북'을 뜻하는 단어를 감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 땅에 떨어진 '신빙성'

해경은 1년 9개월 뒤인 지난 16일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놨다. 실종된 공무원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월북'이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는 등 국방부가 입수한 관련 정황들은 사실을 뒷받침할 만큼 확실하지 못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로써 국방부 첩보의 신빙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국방부도 반성했다.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해 보니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월북 시도로 추정된다고 발표해 국민께 혼란을 줘 유감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자신의 분석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첩보 전체가 다 잘못된 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월북' 판단은 잘못됐어도, '총격을 했고 소각했다'는 정황은 그대로 명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첩보 내용은 달라진 것은 없지만 판단의 '일부'만 잘못됐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오락가락한다. 국민들은 국방부의 이 주장을 과연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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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북과 총격’ 첩보의 재구성
    • 입력 2022-06-21 18:49:19
    취재K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 현장(2022.06.16. 인천해양경찰서)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하였다.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0년 9월 24일, 이른바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에 대해 당시 합동참모본부 안영호 작전본부장이 발표한 내용이다. 명확하고도 강한 어조에서 보이듯 우리 군은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행위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내용은 첫 발표 전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참여한 안보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논의됐고 당연히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같은 날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분석 결과를 대면 보고했다. 대통령이 첩보의 신빙성을 다시 한번 물었고, 신빙성이 높다고 답변이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빙성이 높다는 그 첩보는 무엇이었을까?

■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다"

2020년 9월 북측의 '만행'이 벌어진 장소는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측으로 3~4km 떨어진 해상이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을 수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지역이다.

인근 대연평도와 소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측 감시장비에 실종된 공무원이 표류하거나 북한군과 만나는 모습이 녹화되지 않았다. 다만 어두워진 이후 뭔가를 태우는 '불빛'이 찍힌 사진만이 확보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군이 발표한 내용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상세했다. 실종자는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고, 부유물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타고 있었으며, 북측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방호복을 입은 채로 시신에 접근해 불태웠다는 등의 표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실종자가 총격을 당했고 시신은 소각됐다고 발표할 당시 "직접 목격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 아니다. 볼 수 없는 원거리 해역에서 일어난 일을 다양한 첩보를 종합 판단하여 재구성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입장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5가지 감각 가운데 시각에 의존한 결과가 아니라면 이 수준까지 상황 파악이 가능한 것은 청각 정도다. 따라서 우리 측이 북측의 뭔가를 감청한 것이 주요한 첩보 수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 군은 특수정보(SI)에 해당돼 공개될 경우 보유 중인 정보 능력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


■ 연유와 762

본 것이 아니고 들은 것이 포함돼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단초는 오래지 않아 공개됐다. 당시 국회는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 등을 통해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다. 민감한 내용 보고는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참석했던 의원 등을 통해 개략적인 내용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9월 2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북측이 "연유를 발라서 태우라"는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들었다고 강조했다. 연유라는 것은 북한 용어로 휘발유처럼 무엇을 태우는 데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10월 4일에는 북측이 “762를 하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762는 7.62mm 소총을 뜻하므로 북측이 총격의 수단까지 지정해 사살을 지시했다는 취지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군이 확보한 첩보 사항에 '사살', '사격' 등의 용어가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총격했을 정황, 불태운 정황 등이 보였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국방부는 당시 첩보가 조금씩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군의 민감한 첩보사항들이 임의대로 가공되거나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우리 군 임무 수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우리 군의 첩보사항들이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깊은 유감을, 우려를 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해경(2020.09.29.)
■ "'월북' 뜻하는 단어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월북' 여부에 대한 언급은 앞선 경우와 다소 달랐다. '총격이 가해지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내용은 공식 발표를 통해 공개된 반면, 월북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은 2020년 9월 24일 국방부 관계자가 별도로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처음 등장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하지 못한 이유는 확신이 부족해서였는지, 유족의 반발이 예상돼서였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있는 것을 왜곡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어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 인원은 선박으로부터 실종자와 일정 거리를 이격하여, 방독면을 착용한 채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에 더해 우리 군은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던 점 등 여러 정황을 월북 시도의 근거로 제시했다. 가장 핵심적인 '월북 진술'의 내용은 SI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고, 해경은 2020년 9월 29일 국방부 자료를 근거로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첩보의 일부 조각은 약 2주일 뒤 드러났다. 2020년 10월 8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원인철 합참의장이 군 첩보에 '월북'을 의미하는 단어가 포착됐다고 인정한 것이다. 실종자의 육성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상식적으로 우리가 희생자의 육성을 들을 순 없다"고 답해 북한군이 서로 주고받은 교신에서 '월북'을 뜻하는 단어를 감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 땅에 떨어진 '신빙성'

해경은 1년 9개월 뒤인 지난 16일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놨다. 실종된 공무원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월북'이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는 등 국방부가 입수한 관련 정황들은 사실을 뒷받침할 만큼 확실하지 못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로써 국방부 첩보의 신빙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국방부도 반성했다.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해 보니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월북 시도로 추정된다고 발표해 국민께 혼란을 줘 유감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자신의 분석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첩보 전체가 다 잘못된 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월북' 판단은 잘못됐어도, '총격을 했고 소각했다'는 정황은 그대로 명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첩보 내용은 달라진 것은 없지만 판단의 '일부'만 잘못됐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오락가락한다. 국민들은 국방부의 이 주장을 과연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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