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마지막 홍콩 총독 “홍콩이 식민지가 아니었다니…”

입력 2022.06.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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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이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홍콩 재임기를 담은 저서 ‘홍콩 일기’ 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연합뉴스)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이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홍콩 재임기를 담은 저서 ‘홍콩 일기’ 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연합뉴스)

크리스토퍼 패튼.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대 총장이지만 원래 보수당의 거물 정치인입니다. 영국 하원과 상원의원은 물론 유럽의회 의원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으로 기억합니다.

■ 마지막 홍콩 총독 "중국,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 약속 어겼다"

패튼 총장은 오는 7월 1일 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저서 <홍콩 일기>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홍콩 상황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는 먼저 중국이 50년간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겠다던 약속을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어겼다고도 주장했습니다. 1997년 반환 이후 10여 년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동료들이 홍콩이 상징하는 바가 두려워 홍콩을 내리막길로 가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이 홍콩 반환일인 1997년 7월 1일 내려진 영국 국기를 받아드는 모습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이 홍콩 반환일인 1997년 7월 1일 내려진 영국 국기를 받아드는 모습

패튼 총장은 또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식민지 대신 점령지라 부르는데, 실제 홍콩을 점령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홍콩을 점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중국 본토의 공산주의로부터 도망친 난민 또는 그들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식민지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열린 사회를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새로운 교육이 홍콩 보안법과 함께 ‘일국양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CCTV 캡처)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새로운 교육이 홍콩 보안법과 함께 ‘일국양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CCTV 캡처)

앞서 홍콩의 새로운 고등학교 '공민사회발전'(시사 교양) 교과서 4종이 "중국 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이양하는 불평등 조약을 인정하거나 홍콩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기술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는 보도했습니다.

패튼은 이 같은 홍콩의 새 교육 내용을 정면 반박한 것입니다. 홍콩이 과거의 성취와 고유의 장점을 잃은 것은 물론 역사마저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 셈입니다.

■ 홍콩, 반환 25주년 앞두고 '중국화' 가속도

홍콩 당국은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공민사회발전 과목에 대한 전면 개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년 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이른바 범민주 세력 와해와 비판 언론 폐간이 이어진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홍콩 수습 경찰들이 제식훈련 중 무릎을 펴고 걷는 중국식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모습. 홍콩에서는 7월 1일부터 기존 영국식 대신 이 같은 중국식 제식훈련만 실시한다.(CCTV 캡처)홍콩 수습 경찰들이 제식훈련 중 무릎을 펴고 걷는 중국식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모습. 홍콩에서는 7월 1일부터 기존 영국식 대신 이 같은 중국식 제식훈련만 실시한다.(CCTV 캡처)

홍콩은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중국화에 속도를 내왔습니다. 선거법 개정으로 홍콩 의회를 친중파가 석권했고 신임 행정장관에는 반정부 시위 진압을 주도한 경찰 출신 존 리가 베이징의 낙점을 받아 경쟁 없이 당선됐습니다.

홍콩 경찰은 제식훈련을 할 때 기존 영국식 대신 중국식으로 걸음걸이를 걷도록 했습니다. 7월 1일부터는 모두 무릎을 굽히지 말고 똑바로 편 채 걸어야 합니다.

홍콩의 변화상을 중국의 시각에서 그린 애국주의 드라마 '사자산 아래 이야기'도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영국이 홍콩 반환 협정을 체결하던 1984년 이래 홍콩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고 특히 금융위기와 사스 대유행 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담았습니다.

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부터 홍콩에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사자산 아래 이야기’ (CCTV 캡처)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부터 홍콩에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사자산 아래 이야기’ (CCTV 캡처)

드마라 제목의 '사자산'은 흔히 '라이언 락'으로 불리는 홍콩의 랜드마크입니다. 구룡반도의 화강암 언덕으로 홍콩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에서 유래한 드라마는 원래 따로 있습니다. 1974년 홍콩 RTHK 방송사가 방송한 다섯 편의 드라마 시리즈 '사자산하(Below the Lion Rock)'입니다. 홍콩인 가운데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동명의 주제곡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가 쓴 홍콩의 이야기처럼 갈등을 제쳐두고 꿈을 추구하자'는 가사 내용이 공감을 얻으며 이른바 '사자산 정신'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 '중국 시각 드라마' 홍콩 방송 시작…70년대 인기 드라마 제목과 유사

이 드라마는 구룡지역에 살던 가난한 홍콩인들의 삶과 시대상을 그렸습니다. 사실 홍콩 이주민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1945년 60만 명이던 인구가 1951년 200만 명으로 늘면서 살 곳도 부족했습니다. 구룡 언덕에 가건물을 짓고 힘겹게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난을 이겨내며 이후 활기찬 도시의 주인공이 된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사자산하'입니다. 그런데 40여 년이 흐른 뒤 중국의 시각을 담은 드라마를 만들며 유사한 제목을 쓴 것입니다. 전작의 유명세에 기대겠다는 의도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홍콩인의 집단 의식, 즉 '사자산 정신'을 홍콩 통치에 활용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선전 기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패튼이 현직 홍콩 총독이던 1990년대 중반, 그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홍콩 출신 미국 컬럼비아대 MBA 학생들이 그를 초대한 자리였습니다. 코앞으로 닥친 홍콩 반환에 대해 노련한 정치인답게 유려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불안과 호기심이 교차하던 홍콩 출신 청년들의 눈빛입니다. 50년 일국양제 약속이 틀어졌다고 패튼 스스로 토로하는 현재 상황을 당시 참석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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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마지막 홍콩 총독 “홍콩이 식민지가 아니었다니…”
    • 입력 2022-06-22 08:00:18
    특파원 리포트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이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홍콩 재임기를 담은 저서 ‘홍콩 일기’ 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연합뉴스)
크리스토퍼 패튼.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대 총장이지만 원래 보수당의 거물 정치인입니다. 영국 하원과 상원의원은 물론 유럽의회 의원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으로 기억합니다.

■ 마지막 홍콩 총독 "중국,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 약속 어겼다"

패튼 총장은 오는 7월 1일 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저서 <홍콩 일기>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홍콩 상황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는 먼저 중국이 50년간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겠다던 약속을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어겼다고도 주장했습니다. 1997년 반환 이후 10여 년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동료들이 홍콩이 상징하는 바가 두려워 홍콩을 내리막길로 가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이 홍콩 반환일인 1997년 7월 1일 내려진 영국 국기를 받아드는 모습
패튼 총장은 또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식민지 대신 점령지라 부르는데, 실제 홍콩을 점령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홍콩을 점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중국 본토의 공산주의로부터 도망친 난민 또는 그들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식민지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열린 사회를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새로운 교육이 홍콩 보안법과 함께 ‘일국양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CCTV 캡처)
앞서 홍콩의 새로운 고등학교 '공민사회발전'(시사 교양) 교과서 4종이 "중국 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이양하는 불평등 조약을 인정하거나 홍콩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기술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는 보도했습니다.

패튼은 이 같은 홍콩의 새 교육 내용을 정면 반박한 것입니다. 홍콩이 과거의 성취와 고유의 장점을 잃은 것은 물론 역사마저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 셈입니다.

■ 홍콩, 반환 25주년 앞두고 '중국화' 가속도

홍콩 당국은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공민사회발전 과목에 대한 전면 개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년 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이른바 범민주 세력 와해와 비판 언론 폐간이 이어진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홍콩 수습 경찰들이 제식훈련 중 무릎을 펴고 걷는 중국식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모습. 홍콩에서는 7월 1일부터 기존 영국식 대신 이 같은 중국식 제식훈련만 실시한다.(CCTV 캡처)
홍콩은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중국화에 속도를 내왔습니다. 선거법 개정으로 홍콩 의회를 친중파가 석권했고 신임 행정장관에는 반정부 시위 진압을 주도한 경찰 출신 존 리가 베이징의 낙점을 받아 경쟁 없이 당선됐습니다.

홍콩 경찰은 제식훈련을 할 때 기존 영국식 대신 중국식으로 걸음걸이를 걷도록 했습니다. 7월 1일부터는 모두 무릎을 굽히지 말고 똑바로 편 채 걸어야 합니다.

홍콩의 변화상을 중국의 시각에서 그린 애국주의 드라마 '사자산 아래 이야기'도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영국이 홍콩 반환 협정을 체결하던 1984년 이래 홍콩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고 특히 금융위기와 사스 대유행 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담았습니다.

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부터 홍콩에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사자산 아래 이야기’ (CCTV 캡처)
드마라 제목의 '사자산'은 흔히 '라이언 락'으로 불리는 홍콩의 랜드마크입니다. 구룡반도의 화강암 언덕으로 홍콩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에서 유래한 드라마는 원래 따로 있습니다. 1974년 홍콩 RTHK 방송사가 방송한 다섯 편의 드라마 시리즈 '사자산하(Below the Lion Rock)'입니다. 홍콩인 가운데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동명의 주제곡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가 쓴 홍콩의 이야기처럼 갈등을 제쳐두고 꿈을 추구하자'는 가사 내용이 공감을 얻으며 이른바 '사자산 정신'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 '중국 시각 드라마' 홍콩 방송 시작…70년대 인기 드라마 제목과 유사

이 드라마는 구룡지역에 살던 가난한 홍콩인들의 삶과 시대상을 그렸습니다. 사실 홍콩 이주민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1945년 60만 명이던 인구가 1951년 200만 명으로 늘면서 살 곳도 부족했습니다. 구룡 언덕에 가건물을 짓고 힘겹게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난을 이겨내며 이후 활기찬 도시의 주인공이 된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사자산하'입니다. 그런데 40여 년이 흐른 뒤 중국의 시각을 담은 드라마를 만들며 유사한 제목을 쓴 것입니다. 전작의 유명세에 기대겠다는 의도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홍콩인의 집단 의식, 즉 '사자산 정신'을 홍콩 통치에 활용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선전 기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패튼이 현직 홍콩 총독이던 1990년대 중반, 그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홍콩 출신 미국 컬럼비아대 MBA 학생들이 그를 초대한 자리였습니다. 코앞으로 닥친 홍콩 반환에 대해 노련한 정치인답게 유려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불안과 호기심이 교차하던 홍콩 출신 청년들의 눈빛입니다. 50년 일국양제 약속이 틀어졌다고 패튼 스스로 토로하는 현재 상황을 당시 참석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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