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넘기고 보증금은 꿀꺽…대법 “형사처벌 대상 아냐”

입력 2022.06.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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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지난 2013년 인천에서 건물 1층을 1년 동안 빌려 식당을 열었습니다. 보증금은 20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그해 말 건물주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라고 합니다)를 B 씨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A 씨는 건물주에겐 B 씨에게 채권을 넘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이를 몰랐던 건물주는 임대기간이 끝나자 A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줬습니다.

A 씨는 이 돈을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B 씨는 건물주에게 보증금을 받지 못했고, A 씨는 B 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A 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 기존 대법원 판례는 "횡령죄 맞다"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 거부함으로 성립하는 죄'를 뜻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주로 쟁점이 된 것은 A 씨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

즉, A 씨가 건물주에게서 돌려받은 보증금이 자신의 것이냐, B 씨의 것이냐가 문제된 사안이었습니다.

1심과 2심은 A 씨가 B 씨에게 채권을 이미 넘긴 만큼 보증금은 B 씨의 것이라고 판단하고, A 씨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1999년 유사한 사안에서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채권을 넘긴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는 채무자에게 돈을 받은 경우, 이 돈은 채권을 이미 넘겨 받은 사람의 소유이므로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채권을 넘긴 사람은 해당 채권을 넘겨 받은 사람을 위해 이 돈을 '보관하는 사람'에 해당한다며,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판례 변경

하지만 오늘(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횡령죄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해결하면 되고, 별도로 형사처벌까지 할 것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채권을 넘긴 사람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 채권을 넘겼다고 채무자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을 넘긴 사람이 채무자로부터 받은 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타인의 재물이 아니다"라며 "채권을 넘긴 사람은 채권을 넘겨받은 사람을 위해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가 B 씨를 '대신'해 보증금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없고, 이 돈을 B 씨의 소유라고 볼 다른 근거도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A 씨는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다만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소수 의견을 통해 기존 판례가 타당하다며 그대로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밝혔습니다.

김선수 대법관은 종례 판례대로 횡령죄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이 사안은 기존 판례가 적용되지 않아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별개 의견을 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통상의 계약관계에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그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니라면, 그러한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최근 횡령·배임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며 "채권을 넘기고 넘겨받는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강화한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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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권 넘기고 보증금은 꿀꺽…대법 “형사처벌 대상 아냐”
    • 입력 2022-06-23 17:00:24
    취재K

A 씨는 지난 2013년 인천에서 건물 1층을 1년 동안 빌려 식당을 열었습니다. 보증금은 20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그해 말 건물주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라고 합니다)를 B 씨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A 씨는 건물주에겐 B 씨에게 채권을 넘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이를 몰랐던 건물주는 임대기간이 끝나자 A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줬습니다.

A 씨는 이 돈을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B 씨는 건물주에게 보증금을 받지 못했고, A 씨는 B 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A 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 기존 대법원 판례는 "횡령죄 맞다"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 거부함으로 성립하는 죄'를 뜻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주로 쟁점이 된 것은 A 씨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

즉, A 씨가 건물주에게서 돌려받은 보증금이 자신의 것이냐, B 씨의 것이냐가 문제된 사안이었습니다.

1심과 2심은 A 씨가 B 씨에게 채권을 이미 넘긴 만큼 보증금은 B 씨의 것이라고 판단하고, A 씨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1999년 유사한 사안에서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채권을 넘긴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는 채무자에게 돈을 받은 경우, 이 돈은 채권을 이미 넘겨 받은 사람의 소유이므로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채권을 넘긴 사람은 해당 채권을 넘겨 받은 사람을 위해 이 돈을 '보관하는 사람'에 해당한다며,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판례 변경

하지만 오늘(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횡령죄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해결하면 되고, 별도로 형사처벌까지 할 것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채권을 넘긴 사람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 채권을 넘겼다고 채무자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을 넘긴 사람이 채무자로부터 받은 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타인의 재물이 아니다"라며 "채권을 넘긴 사람은 채권을 넘겨받은 사람을 위해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가 B 씨를 '대신'해 보증금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없고, 이 돈을 B 씨의 소유라고 볼 다른 근거도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A 씨는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다만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소수 의견을 통해 기존 판례가 타당하다며 그대로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밝혔습니다.

김선수 대법관은 종례 판례대로 횡령죄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이 사안은 기존 판례가 적용되지 않아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별개 의견을 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통상의 계약관계에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그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니라면, 그러한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최근 횡령·배임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며 "채권을 넘기고 넘겨받는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강화한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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