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먹고 식중독 사망…‘무신경’에 ‘늑장 보고’ 의혹까지

입력 2022.06.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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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식당에 붙은 영업정지 안내문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식당에 붙은 영업정지 안내문

■ 냉면 먹은 60대 남성 장염 증상…사흘 만에 숨져

지난달 16일, 경남 김해에 사는 60대 남성이 아내와 함께 평소 즐겨가던 냉면집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비빔냉면을 시켜먹은 뒤 여느 때와 같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새벽, 60대 남성은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습니다. 동네 병원을 찾아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액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을 다녀온 뒤에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던 60대 남성은 지난달 18일, 종합병원을 찾았습니다. 심한 탈수 증상과 복통을 느끼던 이 남성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중환자실에서도 떨어진 산소포화도를 높이는 처치가 이어졌지만, 이튿날인 19일 오전 8시 이 남성은 병원에서 숨졌습니다. 냉면을 먹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이 남성의 사망 원인은 '패혈성 쇼크',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이 혈관까지 침투해 타고 흐르며 온몸에 염증을 일으킨 겁니다.

냉면 먹고 장염 증상 앓다 사흘 만에 숨진 60대 남성 사망진단서 내역냉면 먹고 장염 증상 앓다 사흘 만에 숨진 60대 남성 사망진단서 내역

■ 식약처 조사 결과 달걀지단에서 '살모넬라균' 확인

지난달 19일 오전 8시 40분, 60대 남성이 숨진 병원은 식중독 발생이 의심된다며 김해시에 보고했습니다. 김해시는 오전 9시 반쯤 문제가 된 식당에 도착했고, 곧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도 함께 현장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김해시는 실온에 보관돼 있던 달걀 1판과 냉장 보관돼 있던 달걀지단 등 조리 식품 13개와 칼이나 도마 같은 조리기구 12개 등 25개 물품에서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식약처도 같은 환경에서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그날 이뤄진 신속검사를 통해 식약처는 달걀지단에서 살모넬라균을 확인했습니다. 김해시는 식중독 증상을 보이는 30여 명에게서 채취한 살모넬라균과 식약처가 검출한 균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을 확인해 집단 식중독의 원인을 달걀지단으로 결론 냈습니다.

지난달 18일, 식중독 의심 신고에도 위생 상태 확인에만 그친 김해시지난달 18일, 식중독 의심 신고에도 위생 상태 확인에만 그친 김해시

■현장조사 하루 전 식중독 의심 제보…사흘간 식당 이용객 1,000여 명

그런데 김해시가 문제가 된 식당을 방문한 건 지난달 19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전인 18일 오후에 해당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냉면을 먹고 식중독 증상을 느꼈다는 제보 전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해시 당국은 18일엔 조리원의 보건증 확인과 위생상태 확인에 그쳤습니다. 여름철이면 식중독 의심 전화가 쇄도하고, 제보에 따라 모든 식당에서 검체 채취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문제는 사흘 동안 이 식당을 다녀간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는 점입니다. 김해시가 파악하고 있는 식중독 피해 인원은 모두 34명. 이 가운데 18명은 지난달 15일, 13명은 지난달 16일에 냉면을 먹었습니다. 시 당국이 현장 점검을 나갔던 지난달 18일에 냉면을 먹고 식중독 증상을 보인 사람도 3명이 있습니다.

식중독 증상을 느낀 사람이 나오고 있는 때에도 식당은 계속 영업을 이어온 겁니다. 결국 식중독으로 사망자가 나오고, 검체 채취 결과 살모넬라균이 확인된 뒤에야 식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 "○○식당에서 드셨죠?"…병원, 입원환자 8명인데도 늑장 보고 의혹

식중독 늑장 보고 의혹이 제기된 병원식중독 늑장 보고 의혹이 제기된 병원

숨진 60대 남성의 유족에게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모든 것이 의문투성입니다. 유족은 특히 진찰 과정에서 의료진이 했던 얘기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60대 남성의 식중독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18일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때입니다. 비빔냉면을 먹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환자의 말에 의료진은 "○○식당에서 드셨어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여러 사람이 먼저 입원해 있다"라며 "병원에서 김해시에 말했을 것"이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취재 결과, 숨진 남성이 병원을 찾은 지난달 18일에 해당 식당을 다녀온 뒤 식중독 증상으로 같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은 8명이나 있었습니다. 이 병원은 전날인 지난달 17일에 입원환자의 검체 조사를 시작했고, 이튿날인 18일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사망자가 나오고 40분이 지나서야 김해시에 식중독 발생을 보고했습니다.

식품위생법 86조. 식중독에 관한 조사 보고식품위생법 86조. 식중독에 관한 조사 보고

식품위생법은 의료진이 식중독 환자를 진단하면 '지체 없이' 관할 자치단체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식중독이 의심되는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고, 식중독균이 확인됐는데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사망자가 나올 때까지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겁니다.

병원 관계자는 장염 증상 환자가 많아서 바로 보고하기는 어려웠고, 자체 조사를 진행한 뒤 회의를 거쳐 곧바로 보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식당 한 달 영업정지·과태료 30만 원…김해시, 형사고발 검토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경남 김해의 냉면 전문점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경남 김해의 냉면 전문점

집단 식중독을 일으킨 식당은 '조리 식품 식중독균 검출'을 이유로 한 달 영업정지, 달걀을 냉장 보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30만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식당은 지난달 19일부터 영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한 차례 신고에도 현장 확인에 그친 김해시, 같은 날 입원환자가 8명이나 있었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야 자치단체에 보고한 병원, 식중독 우려가 있는지도 모른 채 음식을 제공한 식당. 어느 곳에서도 거름망이 없었기에 30여 명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고 1명이 숨지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학교나 병원 등 집단급식소는 집단 식중독이 생기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제공한 음식의 1인분 뜻하는 '보존식'을 144시간 이상 보관합니다. 하지만 일반음식점은 보존식 의무 보관 대상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식중독이 발생해도 늦게 알려지게 돼 원인 파악도 힘들고 피해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개개인에 따라 식중독균 발현이 달라서 식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확인되면 빨리 보고를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또 현재 법은 식중독이 생긴 뒤 사후 처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계절성 식중독 발생이 많은 여름철에는 불시 점검 기간을 운영하는 등 사전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식약처는 이번에 살모넬라균이 어떻게 유입됐는지 경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식당 업주의 과실 여부를 수사 중입니다. 식당 관리 책임이 있는 김해시도 최종 역학조사 결과보고서가 나오면 해당 식당에 대한 형사고발 여부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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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면 먹고 식중독 사망…‘무신경’에 ‘늑장 보고’ 의혹까지
    • 입력 2022-06-24 18:48:04
    취재K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식당에 붙은 영업정지 안내문
■ 냉면 먹은 60대 남성 장염 증상…사흘 만에 숨져

지난달 16일, 경남 김해에 사는 60대 남성이 아내와 함께 평소 즐겨가던 냉면집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비빔냉면을 시켜먹은 뒤 여느 때와 같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새벽, 60대 남성은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습니다. 동네 병원을 찾아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액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을 다녀온 뒤에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던 60대 남성은 지난달 18일, 종합병원을 찾았습니다. 심한 탈수 증상과 복통을 느끼던 이 남성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중환자실에서도 떨어진 산소포화도를 높이는 처치가 이어졌지만, 이튿날인 19일 오전 8시 이 남성은 병원에서 숨졌습니다. 냉면을 먹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이 남성의 사망 원인은 '패혈성 쇼크',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이 혈관까지 침투해 타고 흐르며 온몸에 염증을 일으킨 겁니다.

냉면 먹고 장염 증상 앓다 사흘 만에 숨진 60대 남성 사망진단서 내역
■ 식약처 조사 결과 달걀지단에서 '살모넬라균' 확인

지난달 19일 오전 8시 40분, 60대 남성이 숨진 병원은 식중독 발생이 의심된다며 김해시에 보고했습니다. 김해시는 오전 9시 반쯤 문제가 된 식당에 도착했고, 곧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도 함께 현장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김해시는 실온에 보관돼 있던 달걀 1판과 냉장 보관돼 있던 달걀지단 등 조리 식품 13개와 칼이나 도마 같은 조리기구 12개 등 25개 물품에서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식약처도 같은 환경에서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그날 이뤄진 신속검사를 통해 식약처는 달걀지단에서 살모넬라균을 확인했습니다. 김해시는 식중독 증상을 보이는 30여 명에게서 채취한 살모넬라균과 식약처가 검출한 균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을 확인해 집단 식중독의 원인을 달걀지단으로 결론 냈습니다.

지난달 18일, 식중독 의심 신고에도 위생 상태 확인에만 그친 김해시
■현장조사 하루 전 식중독 의심 제보…사흘간 식당 이용객 1,000여 명

그런데 김해시가 문제가 된 식당을 방문한 건 지난달 19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전인 18일 오후에 해당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냉면을 먹고 식중독 증상을 느꼈다는 제보 전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해시 당국은 18일엔 조리원의 보건증 확인과 위생상태 확인에 그쳤습니다. 여름철이면 식중독 의심 전화가 쇄도하고, 제보에 따라 모든 식당에서 검체 채취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문제는 사흘 동안 이 식당을 다녀간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는 점입니다. 김해시가 파악하고 있는 식중독 피해 인원은 모두 34명. 이 가운데 18명은 지난달 15일, 13명은 지난달 16일에 냉면을 먹었습니다. 시 당국이 현장 점검을 나갔던 지난달 18일에 냉면을 먹고 식중독 증상을 보인 사람도 3명이 있습니다.

식중독 증상을 느낀 사람이 나오고 있는 때에도 식당은 계속 영업을 이어온 겁니다. 결국 식중독으로 사망자가 나오고, 검체 채취 결과 살모넬라균이 확인된 뒤에야 식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 "○○식당에서 드셨죠?"…병원, 입원환자 8명인데도 늑장 보고 의혹

식중독 늑장 보고 의혹이 제기된 병원
숨진 60대 남성의 유족에게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모든 것이 의문투성입니다. 유족은 특히 진찰 과정에서 의료진이 했던 얘기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60대 남성의 식중독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18일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때입니다. 비빔냉면을 먹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환자의 말에 의료진은 "○○식당에서 드셨어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여러 사람이 먼저 입원해 있다"라며 "병원에서 김해시에 말했을 것"이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취재 결과, 숨진 남성이 병원을 찾은 지난달 18일에 해당 식당을 다녀온 뒤 식중독 증상으로 같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은 8명이나 있었습니다. 이 병원은 전날인 지난달 17일에 입원환자의 검체 조사를 시작했고, 이튿날인 18일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사망자가 나오고 40분이 지나서야 김해시에 식중독 발생을 보고했습니다.

식품위생법 86조. 식중독에 관한 조사 보고
식품위생법은 의료진이 식중독 환자를 진단하면 '지체 없이' 관할 자치단체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식중독이 의심되는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고, 식중독균이 확인됐는데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사망자가 나올 때까지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겁니다.

병원 관계자는 장염 증상 환자가 많아서 바로 보고하기는 어려웠고, 자체 조사를 진행한 뒤 회의를 거쳐 곧바로 보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식당 한 달 영업정지·과태료 30만 원…김해시, 형사고발 검토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경남 김해의 냉면 전문점
집단 식중독을 일으킨 식당은 '조리 식품 식중독균 검출'을 이유로 한 달 영업정지, 달걀을 냉장 보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30만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식당은 지난달 19일부터 영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한 차례 신고에도 현장 확인에 그친 김해시, 같은 날 입원환자가 8명이나 있었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야 자치단체에 보고한 병원, 식중독 우려가 있는지도 모른 채 음식을 제공한 식당. 어느 곳에서도 거름망이 없었기에 30여 명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고 1명이 숨지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학교나 병원 등 집단급식소는 집단 식중독이 생기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제공한 음식의 1인분 뜻하는 '보존식'을 144시간 이상 보관합니다. 하지만 일반음식점은 보존식 의무 보관 대상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식중독이 발생해도 늦게 알려지게 돼 원인 파악도 힘들고 피해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개개인에 따라 식중독균 발현이 달라서 식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확인되면 빨리 보고를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또 현재 법은 식중독이 생긴 뒤 사후 처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계절성 식중독 발생이 많은 여름철에는 불시 점검 기간을 운영하는 등 사전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식약처는 이번에 살모넬라균이 어떻게 유입됐는지 경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식당 업주의 과실 여부를 수사 중입니다. 식당 관리 책임이 있는 김해시도 최종 역학조사 결과보고서가 나오면 해당 식당에 대한 형사고발 여부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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