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인간은 왜 우주로 갈까?…‘퍼스트맨’은 이렇게 말했다
입력 2022.06.26 (08:01)
수정 2022.1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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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데이미언 셔젤 감독·2018) /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21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상공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누리호가 발사한 성능 검증 위성도 제 궤도에 안착해 교신에 성공했습니다. 순수 우리 힘, 우리 기술로 이룬 쾌거에 많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2030년엔 국내에서 달 착륙선을 쏘아 올려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에도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뉴스를 지켜 보며 우주 탐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에만 국가 예산 7,885억 원이 투입됐는데 차라리 이 돈으로 물가안정이나 기후위기 해소 등 당면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의문을 가져봄 직합니다.
사실 우주 개발의 역사 초기부터 이런 비판은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우주 개발의 효용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근본적인 질문이 찾아옵니다. 인간은 왜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영화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젊은 나이에 명성을 거머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달에 간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의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답을 내놨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2018년 작품 '퍼스트 맨'입니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는 우주 여행의 로망을 자극하는 화려한 CG 장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닐 암스트롱의 우주 비행사 경력 초기부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지상 복귀까지의 여정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동명의 전기를 쓴 작가 제임스 R. 한센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습니다. 한센은 수많은 전기 작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닐 암스트롱이 택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잘 몰랐던 암스트롱의 세세한 개인사가 꼼꼼히 담겼습니다. 영화를 본 암스트롱의 두 아들이 '부모님에 대한 묘사가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영화는 암스트롱의 딸 카렌에 주목합니다. 암스트롱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카렌이 희귀 난치성 뇌종양을 앓다가 2살 때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딸에 대해 암스트롱은 깊이 슬퍼했지만, 장례식 후 일주일 만에 일터에 복귀했고 동료들에게도 일절 딸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을 핑계 삼아, 최대한 딸의 죽음에서 감정적으로 멀어지려 했던 것 같다는 게 주위의 평가입니다.
달 착륙 장면의 대사를 실제 아폴로 11호 교신 기록에서 똑같이 가져 왔을 정도로 정확성에 공들인 영화지만,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보탭니다. 무사히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딸이 쓰던 팔찌를 깊은 크레이터 웅덩이 안에 남겨두고 온다는 설정입니다. 영화 초반, 딸이 죽은 뒤 혼자서 오열하는 암스트롱을 카메라가 비추는 시간은 단 몇 초. 그러나 그 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암스트롱의 마음속엔 항상 딸의 빈자리가 있었다는 걸, 영화는 담담한 연출을 통해 더욱 사무치게 전달합니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IMDB)
사실이 아닌 설정까지 덧붙여 가면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요? 감독은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존재의 유한함, 곧 '죽음'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노력의 첨단에 우주 여행이 있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만이 죽음을 극복하는 건 아니겠죠. 알지 못해 두렵고 무서운 것일 뿐,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건 더는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탐구하는 열정은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계의 근원을 이해해 보려는 열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속 암스트롱은 황량한 달 표면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비로소 딸과 작별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모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별 위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인연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되새기며 생의 일부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암스트롱은 우주 비행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우주개발로 뭘 발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탐험을 위한 탐험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가 오래전에 봤어야 할 그러나 미처 보지 못했던 뭔가를 볼 기회가 되겠죠." |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우주 독립'의 시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53년 전 '최초의 인간' 암스트롱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에 탑승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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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2-12-26 09:39:20
지난 21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상공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누리호가 발사한 성능 검증 위성도 제 궤도에 안착해 교신에 성공했습니다. 순수 우리 힘, 우리 기술로 이룬 쾌거에 많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2030년엔 국내에서 달 착륙선을 쏘아 올려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에도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뉴스를 지켜 보며 우주 탐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에만 국가 예산 7,885억 원이 투입됐는데 차라리 이 돈으로 물가안정이나 기후위기 해소 등 당면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의문을 가져봄 직합니다.
사실 우주 개발의 역사 초기부터 이런 비판은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우주 개발의 효용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근본적인 질문이 찾아옵니다. 인간은 왜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영화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젊은 나이에 명성을 거머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달에 간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의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답을 내놨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2018년 작품 '퍼스트 맨'입니다.
영화는 우주 여행의 로망을 자극하는 화려한 CG 장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닐 암스트롱의 우주 비행사 경력 초기부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지상 복귀까지의 여정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동명의 전기를 쓴 작가 제임스 R. 한센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습니다. 한센은 수많은 전기 작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닐 암스트롱이 택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잘 몰랐던 암스트롱의 세세한 개인사가 꼼꼼히 담겼습니다. 영화를 본 암스트롱의 두 아들이 '부모님에 대한 묘사가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영화는 암스트롱의 딸 카렌에 주목합니다. 암스트롱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카렌이 희귀 난치성 뇌종양을 앓다가 2살 때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딸에 대해 암스트롱은 깊이 슬퍼했지만, 장례식 후 일주일 만에 일터에 복귀했고 동료들에게도 일절 딸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을 핑계 삼아, 최대한 딸의 죽음에서 감정적으로 멀어지려 했던 것 같다는 게 주위의 평가입니다.
달 착륙 장면의 대사를 실제 아폴로 11호 교신 기록에서 똑같이 가져 왔을 정도로 정확성에 공들인 영화지만,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보탭니다. 무사히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딸이 쓰던 팔찌를 깊은 크레이터 웅덩이 안에 남겨두고 온다는 설정입니다. 영화 초반, 딸이 죽은 뒤 혼자서 오열하는 암스트롱을 카메라가 비추는 시간은 단 몇 초. 그러나 그 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암스트롱의 마음속엔 항상 딸의 빈자리가 있었다는 걸, 영화는 담담한 연출을 통해 더욱 사무치게 전달합니다.
사실이 아닌 설정까지 덧붙여 가면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요? 감독은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존재의 유한함, 곧 '죽음'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노력의 첨단에 우주 여행이 있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만이 죽음을 극복하는 건 아니겠죠. 알지 못해 두렵고 무서운 것일 뿐,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건 더는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탐구하는 열정은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계의 근원을 이해해 보려는 열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속 암스트롱은 황량한 달 표면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비로소 딸과 작별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모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별 위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인연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되새기며 생의 일부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암스트롱은 우주 비행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우주개발로 뭘 발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탐험을 위한 탐험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가 오래전에 봤어야 할 그러나 미처 보지 못했던 뭔가를 볼 기회가 되겠죠." |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우주 독립'의 시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53년 전 '최초의 인간' 암스트롱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에 탑승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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