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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우주로 갈까?…‘퍼스트맨’은 이렇게 말했다
입력 2022.06.26 (08:01) 취재K
‘퍼스트맨’(데이미언 셔젤 감독·2018) / 출처: 네이버 영화‘퍼스트맨’(데이미언 셔젤 감독·2018) /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21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상공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누리호가 발사한 성능 검증 위성도 제 궤도에 안착해 교신에 성공했습니다. 순수 우리 힘, 우리 기술로 이룬 쾌거에 많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2030년엔 국내에서 달 착륙선을 쏘아 올려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에도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뉴스를 지켜 보며 우주 탐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에만 국가 예산 7,885억 원이 투입됐는데 차라리 이 돈으로 물가안정이나 기후위기 해소 등 당면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의문을 가져봄 직합니다.

사실 우주 개발의 역사 초기부터 이런 비판은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우주 개발의 효용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근본적인 질문이 찾아옵니다. 인간은 왜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영화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젊은 나이에 명성을 거머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달에 간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의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답을 내놨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2018년 작품 '퍼스트 맨'입니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는 우주 여행의 로망을 자극하는 화려한 CG 장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닐 암스트롱의 우주 비행사 경력 초기부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지상 복귀까지의 여정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동명의 전기를 쓴 작가 제임스 R. 한센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습니다. 한센은 수많은 전기 작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닐 암스트롱이 택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잘 몰랐던 암스트롱의 세세한 개인사가 꼼꼼히 담겼습니다. 영화를 본 암스트롱의 두 아들이 '부모님에 대한 묘사가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영화는 암스트롱의 딸 카렌에 주목합니다. 암스트롱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카렌이 희귀 난치성 뇌종양을 앓다가 2살 때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딸에 대해 암스트롱은 깊이 슬퍼했지만, 장례식 후 일주일 만에 일터에 복귀했고 동료들에게도 일절 딸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을 핑계 삼아, 최대한 딸의 죽음에서 감정적으로 멀어지려 했던 것 같다는 게 주위의 평가입니다.

달 착륙 장면의 대사를 실제 아폴로 11호 교신 기록에서 똑같이 가져 왔을 정도로 정확성에 공들인 영화지만,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보탭니다. 무사히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딸이 쓰던 팔찌를 깊은 크레이터 웅덩이 안에 남겨두고 온다는 설정입니다. 영화 초반, 딸이 죽은 뒤 혼자서 오열하는 암스트롱을 카메라가 비추는 시간은 단 몇 초. 그러나 그 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암스트롱의 마음속엔 항상 딸의 빈자리가 있었다는 걸, 영화는 담담한 연출을 통해 더욱 사무치게 전달합니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IMDB)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IMDB)

사실이 아닌 설정까지 덧붙여 가면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요? 감독은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존재의 유한함, 곧 '죽음'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노력의 첨단에 우주 여행이 있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만이 죽음을 극복하는 건 아니겠죠. 알지 못해 두렵고 무서운 것일 뿐,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건 더는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탐구하는 열정은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계의 근원을 이해해 보려는 열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속 암스트롱은 황량한 달 표면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비로소 딸과 작별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모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별 위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인연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되새기며 생의 일부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암스트롱은 우주 비행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우주개발로 뭘 발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탐험을 위한 탐험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가 오래전에 봤어야 할 그러나 미처 보지 못했던 뭔가를 볼 기회가 되겠죠."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우주 독립'의 시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53년 전 '최초의 인간' 암스트롱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에 탑승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인간은 왜 우주로 갈까?…‘퍼스트맨’은 이렇게 말했다
    • 입력 2022-06-26 08:01:17
    취재K
‘퍼스트맨’(데이미언 셔젤 감독·2018) / 출처: 네이버 영화‘퍼스트맨’(데이미언 셔젤 감독·2018) /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21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상공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누리호가 발사한 성능 검증 위성도 제 궤도에 안착해 교신에 성공했습니다. 순수 우리 힘, 우리 기술로 이룬 쾌거에 많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2030년엔 국내에서 달 착륙선을 쏘아 올려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에도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뉴스를 지켜 보며 우주 탐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에만 국가 예산 7,885억 원이 투입됐는데 차라리 이 돈으로 물가안정이나 기후위기 해소 등 당면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의문을 가져봄 직합니다.

사실 우주 개발의 역사 초기부터 이런 비판은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우주 개발의 효용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근본적인 질문이 찾아옵니다. 인간은 왜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영화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젊은 나이에 명성을 거머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달에 간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의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답을 내놨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2018년 작품 '퍼스트 맨'입니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는 우주 여행의 로망을 자극하는 화려한 CG 장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닐 암스트롱의 우주 비행사 경력 초기부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지상 복귀까지의 여정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동명의 전기를 쓴 작가 제임스 R. 한센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습니다. 한센은 수많은 전기 작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닐 암스트롱이 택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잘 몰랐던 암스트롱의 세세한 개인사가 꼼꼼히 담겼습니다. 영화를 본 암스트롱의 두 아들이 '부모님에 대한 묘사가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영화는 암스트롱의 딸 카렌에 주목합니다. 암스트롱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카렌이 희귀 난치성 뇌종양을 앓다가 2살 때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딸에 대해 암스트롱은 깊이 슬퍼했지만, 장례식 후 일주일 만에 일터에 복귀했고 동료들에게도 일절 딸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을 핑계 삼아, 최대한 딸의 죽음에서 감정적으로 멀어지려 했던 것 같다는 게 주위의 평가입니다.

달 착륙 장면의 대사를 실제 아폴로 11호 교신 기록에서 똑같이 가져 왔을 정도로 정확성에 공들인 영화지만,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보탭니다. 무사히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딸이 쓰던 팔찌를 깊은 크레이터 웅덩이 안에 남겨두고 온다는 설정입니다. 영화 초반, 딸이 죽은 뒤 혼자서 오열하는 암스트롱을 카메라가 비추는 시간은 단 몇 초. 그러나 그 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암스트롱의 마음속엔 항상 딸의 빈자리가 있었다는 걸, 영화는 담담한 연출을 통해 더욱 사무치게 전달합니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IMDB)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출처:IMDB)

사실이 아닌 설정까지 덧붙여 가면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요? 감독은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존재의 유한함, 곧 '죽음'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노력의 첨단에 우주 여행이 있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만이 죽음을 극복하는 건 아니겠죠. 알지 못해 두렵고 무서운 것일 뿐,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건 더는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탐구하는 열정은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계의 근원을 이해해 보려는 열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속 암스트롱은 황량한 달 표면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비로소 딸과 작별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모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별 위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인연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되새기며 생의 일부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암스트롱은 우주 비행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우주개발로 뭘 발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탐험을 위한 탐험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가 오래전에 봤어야 할 그러나 미처 보지 못했던 뭔가를 볼 기회가 되겠죠."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우주 독립'의 시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53년 전 '최초의 인간' 암스트롱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에 탑승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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