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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가린 ‘선거 현수막’ 뗐다가…전과자 신세
입력 2022.06.26 (08:01) 취재K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끝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선거 전까진 정당과 후보자의 시간이었다면, 이후는 선거사범을 처리해야 하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법원의 시간입니다.

선거사범이라면 흔히들 정치인을 떠올리시는데요, 일반 국민들도 많습니다. 앞서 대검찰청은 이번 지방선거 관련해서 선거사범 1,003명 가운데 기소/불기소 처분된 이들을 제외한 878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당선자 48명과 선거 관계인 등을 제외하더라도 평범한 국민이 상당수 있다는 거죠.

공직선거 재판에서 언론의 주된 관심은 당선인들의 유무죄, 그리고 벌금 100만 원 이상 여부입니다. 공직선거법 제264조에 따라 징역 또는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죄를 저지르면 벌금 100만 원 이상이 선고될까요? 마침 지난 3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 관련 선거사범 1심 선고가 나오고 있는데요. 선거법을 위반한 평범한 장삼이사들에게 얼마만큼의 형량이 내려졌는지 소개합니다.

■ 후보자 현수막 훼손 : 벌금 100만 원

경북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A 씨. 지난 2월 자신의 가게 앞에 00 후보자의 현수막이 걸렸는데 하필 이 현수막이 가게를 가렸습니다. 이에 A 씨는 현수막 연결 끈을 잘라버렸는데 웬걸 이틀 뒤 같은 장소에 또 현수막이 설치됐고 A 씨는 한 번 더 현수막 끈을 잘랐습니다. 여기에 3월 초에 한 번 더 철거하는 등 A 씨는 모두 세 차례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현수막을 철거한 혐의로 기소됐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60살 평생 동안 죄 안 짓고 살았는데 그놈의 선거 현수막 때문에 빨간 줄이 그어졌습니다. (A씨가 철거한 현수막의 주인공 00 후보는 주요 정당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 등이 반영됐지만 벌금형을 피하진 못했습니다. 판결에 충격이 컸는지, 선고 직후 바로 법정을 떠나는 여느 피고인과 달리 A 씨는 선고 이후에도 한동안 법정 안에 서 있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현수막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70대 노인은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 투표용지 훼손, 선거 사무원 폭행 : 벌금 250만 원

B 씨는 선거 당일인 3월 9일, 투표했지만 기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단 이유로 투표 용지를 새로 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표 용지가 공개되고 말았습니다. 투표관리관은 "공개된 투표지는 무효"라고 안내하며 무효처리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화가 난 B 씨는 직원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투표 용지를 투표장 밖으로 들고 나가버렸고, 용지를 구겨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결국 투표용지를 훼손, 손괴하고 선거사무의 원활한 수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B 씨 역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던 탓에 전과자가 되고 말았고요, 흔히 '한 표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B 씨에겐 250만 원짜리 용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C 씨는 지난 2월, OO후보 운동원들이 길을 막고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면서 선거연락소장이 들고 있던 피켓을 3차례 밀었습니다. (OO 후보는 주요 정당의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C 씨의 이런 행동은 이는 선거의 자유를 보호하는 공직선거법의 취지를 훼손한 중대 범죄였고, 벌금 25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 공직선거법 벌금 100만 원의 무게는 모두에게 동등한가?

A, B, C의 행동은 분명 법을 위반한 잘못이고 그에 따라 처벌을 받았습니다. 다만 세 사람 모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 형량이 나온 것을 보면 선거범죄로 웬만해선 벌금 100만 원 이하로 받기도 어렵겠다 싶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수많은 당선인은 벌금 100만 원 미만의 형을 선고받고 제자리를 지킵니다. 고작 성질머리 못 참아서 투표 용지를 찢어버려도 벌금이 250만 원인데, 심지어 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보이는 정치인들은 어떻게 100만 원 미만의 형을 선고받아 빠져나간 걸까요?

이는 양형 기준에 있습니다. 선거범죄 양형 기준을 보면 <당선목적 허위사실공표>의 경우 기본은 '징역 ~ 10월, 벌금 200만 원 ~ 800만 원'인데요, 하지만 감경은 '벌금 70만 원 ~ 300만 원'입니다. 또 기부행위의 경우에도 감경은 '50만 원 ~ 300만 원'이죠. 기본 형량으로는 당선 무효형이 확실한데, 감경 형량을 적용받으면 빠져 나갈 길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감경 요소는 '진지한 반성'과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입니다.

양형위원회 홈페이지 중양형위원회 홈페이지 중

지방선거 관련 선거 사범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올해 중으로 기소와 1심 선고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수사 대상에 오른 당선인들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웃고 울게 될 겁니다.

다만 정치인들에게 그리도 중요한 공직선거법 위반 벌금 100만 원, 평범한 이들에게도 같은 무게로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듯, 법은 정치인들이 만듭니다.
  • 가게 가린 ‘선거 현수막’ 뗐다가…전과자 신세
    • 입력 2022-06-26 08:01:17
    취재K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끝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선거 전까진 정당과 후보자의 시간이었다면, 이후는 선거사범을 처리해야 하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법원의 시간입니다.

선거사범이라면 흔히들 정치인을 떠올리시는데요, 일반 국민들도 많습니다. 앞서 대검찰청은 이번 지방선거 관련해서 선거사범 1,003명 가운데 기소/불기소 처분된 이들을 제외한 878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당선자 48명과 선거 관계인 등을 제외하더라도 평범한 국민이 상당수 있다는 거죠.

공직선거 재판에서 언론의 주된 관심은 당선인들의 유무죄, 그리고 벌금 100만 원 이상 여부입니다. 공직선거법 제264조에 따라 징역 또는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죄를 저지르면 벌금 100만 원 이상이 선고될까요? 마침 지난 3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 관련 선거사범 1심 선고가 나오고 있는데요. 선거법을 위반한 평범한 장삼이사들에게 얼마만큼의 형량이 내려졌는지 소개합니다.

■ 후보자 현수막 훼손 : 벌금 100만 원

경북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A 씨. 지난 2월 자신의 가게 앞에 00 후보자의 현수막이 걸렸는데 하필 이 현수막이 가게를 가렸습니다. 이에 A 씨는 현수막 연결 끈을 잘라버렸는데 웬걸 이틀 뒤 같은 장소에 또 현수막이 설치됐고 A 씨는 한 번 더 현수막 끈을 잘랐습니다. 여기에 3월 초에 한 번 더 철거하는 등 A 씨는 모두 세 차례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현수막을 철거한 혐의로 기소됐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60살 평생 동안 죄 안 짓고 살았는데 그놈의 선거 현수막 때문에 빨간 줄이 그어졌습니다. (A씨가 철거한 현수막의 주인공 00 후보는 주요 정당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 등이 반영됐지만 벌금형을 피하진 못했습니다. 판결에 충격이 컸는지, 선고 직후 바로 법정을 떠나는 여느 피고인과 달리 A 씨는 선고 이후에도 한동안 법정 안에 서 있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현수막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70대 노인은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 투표용지 훼손, 선거 사무원 폭행 : 벌금 250만 원

B 씨는 선거 당일인 3월 9일, 투표했지만 기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단 이유로 투표 용지를 새로 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표 용지가 공개되고 말았습니다. 투표관리관은 "공개된 투표지는 무효"라고 안내하며 무효처리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화가 난 B 씨는 직원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투표 용지를 투표장 밖으로 들고 나가버렸고, 용지를 구겨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결국 투표용지를 훼손, 손괴하고 선거사무의 원활한 수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B 씨 역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던 탓에 전과자가 되고 말았고요, 흔히 '한 표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B 씨에겐 250만 원짜리 용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C 씨는 지난 2월, OO후보 운동원들이 길을 막고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면서 선거연락소장이 들고 있던 피켓을 3차례 밀었습니다. (OO 후보는 주요 정당의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C 씨의 이런 행동은 이는 선거의 자유를 보호하는 공직선거법의 취지를 훼손한 중대 범죄였고, 벌금 25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 공직선거법 벌금 100만 원의 무게는 모두에게 동등한가?

A, B, C의 행동은 분명 법을 위반한 잘못이고 그에 따라 처벌을 받았습니다. 다만 세 사람 모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 형량이 나온 것을 보면 선거범죄로 웬만해선 벌금 100만 원 이하로 받기도 어렵겠다 싶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수많은 당선인은 벌금 100만 원 미만의 형을 선고받고 제자리를 지킵니다. 고작 성질머리 못 참아서 투표 용지를 찢어버려도 벌금이 250만 원인데, 심지어 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보이는 정치인들은 어떻게 100만 원 미만의 형을 선고받아 빠져나간 걸까요?

이는 양형 기준에 있습니다. 선거범죄 양형 기준을 보면 <당선목적 허위사실공표>의 경우 기본은 '징역 ~ 10월, 벌금 200만 원 ~ 800만 원'인데요, 하지만 감경은 '벌금 70만 원 ~ 300만 원'입니다. 또 기부행위의 경우에도 감경은 '50만 원 ~ 300만 원'이죠. 기본 형량으로는 당선 무효형이 확실한데, 감경 형량을 적용받으면 빠져 나갈 길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감경 요소는 '진지한 반성'과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입니다.

양형위원회 홈페이지 중양형위원회 홈페이지 중

지방선거 관련 선거 사범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올해 중으로 기소와 1심 선고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수사 대상에 오른 당선인들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웃고 울게 될 겁니다.

다만 정치인들에게 그리도 중요한 공직선거법 위반 벌금 100만 원, 평범한 이들에게도 같은 무게로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듯, 법은 정치인들이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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