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 합법화 판결’ 폐기…둘로 갈라진 미국

입력 2022.06.27 (15:49) 수정 2022.06.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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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 합법화 판결을 폐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26일(현지시각) 여성 운동가들이 워싱턴 DC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AFP)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 합법화 판결을 폐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26일(현지시각) 여성 운동가들이 워싱턴 DC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AFP)

미국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이에 따라 낙태권의 존폐 결정은 각 주 정부와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연방대법관 9명 중 5명이 판결 폐기에 찬성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문에서 대법원은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그런 권리는 헌법상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도 보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헌법에 언급 안 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있기는 하나 그런 권리는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질서 있는 자유의 개념에 내재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헌법에 유의해서 낙태 문제 결정을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줄 때"라고 덧붙였다.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1973년 미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 권리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 판결에 따라 각 주의 낙태 금지 입법이 사실상 금지되거나 사문화됐다.

■ 바이든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트럼프 "모두에게 도움 되는 일"

이번 판결로 미국 내에서 낙태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이 나온 직후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응한 행정명령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밖에서도 인권 후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UN) 인권 최고대표는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이 "여성 인권과 성 평등에 큰 타격"이라며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효과적인 낙태 권리는 국제 인권법에 기반을 두며, 자신의 신체와 삶에 있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성·소녀 자주권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낙태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며, "모든 여성에게 연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역시 SNS를 통해 "정부나 정치인 혹은 남성이 여성에게 그들의 몸과 관련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4일(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을 큰 후퇴로 생각한다"며, "나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권을 믿어왔고 그러한 시각을 견지해 왔다. 그게 바로 영국이 그런 법을 가진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각)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왼쪽)와 낙태 권리 운동가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출처/ AP)지난 25일(현지시각)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왼쪽)와 낙태 권리 운동가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출처/ AP)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전에 해야 했을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이번 판결을 지지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용감하고 옳은 판결"이라며 "헌법과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역사적 승리"라고 환영했다.

전통적으로 낙태에 반대해 온 교황청도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큰 나라가 이(낙태) 문제에서 견해를 바꿨다는 것은 전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낙태 제한' 26개 주 VS '낙태 허용' 24개 주 …"지역마다 다른 규정 불합리"

이번 판결에 따라 낙태 허용 여부를 주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싣고 "임신을 한 모든 여성에게 관련된 낙태가 미국 내 지역에 따라 규정이 다르다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내 낙태권 옹호 단체인 구트마허연구소는 이번 판결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이 가운데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곧바로 낙태를 규제할 수 있는 지역은 아칸소와 오클라호마, 미주리 등 13개 주다.

실제로 이들 지역의 일부 병원들은 판결이 나온 직후 임신 중단 수술을 속속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수술 예약이 취소되거나 병원이 문을 닫는 사례가 늘면서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플랜드 패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는 이번 판결로 가임기 여성 약 3,600만 명이 낙태권을 박탈당할 것이라고 BBC에 밝혔다.

■ 美 11월 중간선거…'낙태권' 정치 쟁점화되나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은 이번 판결을 정치 쟁점화 하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정부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핵심 쟁점으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미국 CBS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함께 지난 24∼25일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1%는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공화당은 낙태권 문제로 물가 인상 등 경제 이슈가 묻히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화당의 선거운동 전문가인 존 브라벤더는 워싱턴포스트(WP)에 "보편적 이슈는 경제에 대한 우려"라면서 "이것이 다른 어떤 이슈보다 선거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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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7 15: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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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 합법화 판결을 폐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26일(현지시각) 여성 운동가들이 워싱턴 DC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AFP)
미국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이에 따라 낙태권의 존폐 결정은 각 주 정부와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연방대법관 9명 중 5명이 판결 폐기에 찬성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문에서 대법원은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그런 권리는 헌법상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도 보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헌법에 언급 안 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있기는 하나 그런 권리는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질서 있는 자유의 개념에 내재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헌법에 유의해서 낙태 문제 결정을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줄 때"라고 덧붙였다.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1973년 미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 권리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 판결에 따라 각 주의 낙태 금지 입법이 사실상 금지되거나 사문화됐다.

■ 바이든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트럼프 "모두에게 도움 되는 일"

이번 판결로 미국 내에서 낙태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이 나온 직후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응한 행정명령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밖에서도 인권 후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UN) 인권 최고대표는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이 "여성 인권과 성 평등에 큰 타격"이라며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효과적인 낙태 권리는 국제 인권법에 기반을 두며, 자신의 신체와 삶에 있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성·소녀 자주권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낙태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며, "모든 여성에게 연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역시 SNS를 통해 "정부나 정치인 혹은 남성이 여성에게 그들의 몸과 관련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4일(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을 큰 후퇴로 생각한다"며, "나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권을 믿어왔고 그러한 시각을 견지해 왔다. 그게 바로 영국이 그런 법을 가진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각)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왼쪽)와 낙태 권리 운동가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출처/ AP)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전에 해야 했을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이번 판결을 지지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용감하고 옳은 판결"이라며 "헌법과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역사적 승리"라고 환영했다.

전통적으로 낙태에 반대해 온 교황청도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큰 나라가 이(낙태) 문제에서 견해를 바꿨다는 것은 전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낙태 제한' 26개 주 VS '낙태 허용' 24개 주 …"지역마다 다른 규정 불합리"

이번 판결에 따라 낙태 허용 여부를 주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싣고 "임신을 한 모든 여성에게 관련된 낙태가 미국 내 지역에 따라 규정이 다르다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내 낙태권 옹호 단체인 구트마허연구소는 이번 판결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이 가운데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곧바로 낙태를 규제할 수 있는 지역은 아칸소와 오클라호마, 미주리 등 13개 주다.

실제로 이들 지역의 일부 병원들은 판결이 나온 직후 임신 중단 수술을 속속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수술 예약이 취소되거나 병원이 문을 닫는 사례가 늘면서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플랜드 패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는 이번 판결로 가임기 여성 약 3,600만 명이 낙태권을 박탈당할 것이라고 BBC에 밝혔다.

■ 美 11월 중간선거…'낙태권' 정치 쟁점화되나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은 이번 판결을 정치 쟁점화 하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정부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핵심 쟁점으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미국 CBS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함께 지난 24∼25일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1%는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공화당은 낙태권 문제로 물가 인상 등 경제 이슈가 묻히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화당의 선거운동 전문가인 존 브라벤더는 워싱턴포스트(WP)에 "보편적 이슈는 경제에 대한 우려"라면서 "이것이 다른 어떤 이슈보다 선거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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