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했는데 나이 많다고 부적격”…나이 차별은 생존 문제

입력 2022.06.28 (21:39) 수정 2022.06.2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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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이다. 나이 차별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그런데 나이로 차별하지 말라는 건 임금뿐만이 아닙니다.

고령자 고용법은 채용, 승진, 해고처럼 고용의 모든 분야에서 나이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걸 지키지 않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 처리된 사건이 최근 3년 동안 2백 건이 넘습니다.

채용 단계에서의 차별이 가장 많았고, 모집과 해고, 임금, 배치 등의 순이었습니다.

KBS는 나이 차별의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인권위가 나이 차별이라며 시정을 권고한 결정문 5년 치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홍성희 기자가 설명드립니다.

[리포트]

구인사이트에서 미화원을 모집한다는 글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지원 자격에 나이를 제한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화해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미화업체 관계자/안정희/70살 :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여기 나이가 안 나오는데 전 70이거든요. 나이 제한이 있나요? (네, 있어요. 65살 미만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5년간 나이 차별 시정을 권고한 16개 사건의 결정문을 분석한 결과 이 중 9건이 모집 단계에서의 차별이었습니다.

유지 보수 인력을 뽑으면서 지원자격을 50살 미만으로 하거나 지중 전기선로 순시원을 만 70살 미만으로 제조업 생산직을 40대로 제한한 사례 등이었습니다.

사업주 측은 "노동강도가 높아 체력을 감안했다." "집중력이 수반되는 업무다"라며 합리적이고 이유 있는 차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한 구체적 사례나 근거를 사업주 측이 제시하지 못했단 이유에섭니다.

특정 나이가 되면 일률적으로 업무능력이 쇠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채용단계에서 나타난 나이 차별 사례도 빈도가 높았습니다.

한 대학교수 지원자는 점수가 가장 높았지만 나이 때문에 부적격 처리됐습니다.

면접에서 "온몸으로 일해야 하는데 가능한가" "어린 교수 역할을 해야하는데 자신있나" "나이 든 선생님은 수업 공개를 하지 않으려 하는데 어떻게 할 건가"등 편견이 들어간 질문도 있었습니다.

나이만을 이유로 50대 전후에 보직을 해임하거나 고용승계를 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호승/한국노총 시니어노조 위원장 : "그 사람이 능력이 있던 또 어떻든 간에 건강 여부를 떠나서 나이가 70대다, 80대다 하면 벌써 그런 채용의 길이 멀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비참한 현실이죠."]

우리나라는 가난한 노인, 그리고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OECD 국가중 가장 높습니다.

나이차별은 생존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유인데요.

그렇다면 차별 받았다고 국가기관에 진정을 넣어 인정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채용이나 보상 등 구제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뭐가 문제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김지숙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5년 전 경남의 한 병원에서 미화 일을 하던 김진태씨는 동료 6명과 함께 해고됐습니다.

나이가 이유였습니다.

[김진태/전 OO병원 미화노동자 : "'이유 불문하고 65세 이상은 다 내보내라.' 좀 황당했죠. 황당했고 일을 못한다는 그 절망감보다는 차별을 둔다는 것…."]

김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도 차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나이를 제한하지 말고 빈 자리가 생기면 김 씨에게 기회를 주란 권고가 전부였습니다.

당장 다시 채용하란 게 아니었습니다.

KBS가 분석해 본 결과 결정 내용 중 12건이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거나 재발방지책을 세우란 거였습니다.

피해자 구제안 권고는 1건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전임 인권위원은 인권위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주고, 직접적인 개별 피해 구제는 법원을 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제는 '강제성'입니다.

인권위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따르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권고를 받은 기관이 그 권고 내용을 전부 따른 비율은 70%대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배상이나 개선명령처럼 강제 조치가 가능한 노동위원회도 나이 차별 문제 등을 다루게 하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승욱/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노동위 시정 제도는) 굉장히 신속하게, 그 다음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구제 조치가 나가기 때문에 차별 피해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고…."]

반면 인권위의 역할이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관련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촬영기자:이중우 김제원 김준우 임동수/영상편집:박은주 한찬의/그래픽:최창준 채상우/자료제공: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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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등 했는데 나이 많다고 부적격”…나이 차별은 생존 문제
    • 입력 2022-06-28 21:39:00
    • 수정2022-06-28 22:14:00
    뉴스 9
[앵커]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이다. 나이 차별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그런데 나이로 차별하지 말라는 건 임금뿐만이 아닙니다.

고령자 고용법은 채용, 승진, 해고처럼 고용의 모든 분야에서 나이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걸 지키지 않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 처리된 사건이 최근 3년 동안 2백 건이 넘습니다.

채용 단계에서의 차별이 가장 많았고, 모집과 해고, 임금, 배치 등의 순이었습니다.

KBS는 나이 차별의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인권위가 나이 차별이라며 시정을 권고한 결정문 5년 치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홍성희 기자가 설명드립니다.

[리포트]

구인사이트에서 미화원을 모집한다는 글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지원 자격에 나이를 제한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화해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미화업체 관계자/안정희/70살 :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여기 나이가 안 나오는데 전 70이거든요. 나이 제한이 있나요? (네, 있어요. 65살 미만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5년간 나이 차별 시정을 권고한 16개 사건의 결정문을 분석한 결과 이 중 9건이 모집 단계에서의 차별이었습니다.

유지 보수 인력을 뽑으면서 지원자격을 50살 미만으로 하거나 지중 전기선로 순시원을 만 70살 미만으로 제조업 생산직을 40대로 제한한 사례 등이었습니다.

사업주 측은 "노동강도가 높아 체력을 감안했다." "집중력이 수반되는 업무다"라며 합리적이고 이유 있는 차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한 구체적 사례나 근거를 사업주 측이 제시하지 못했단 이유에섭니다.

특정 나이가 되면 일률적으로 업무능력이 쇠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채용단계에서 나타난 나이 차별 사례도 빈도가 높았습니다.

한 대학교수 지원자는 점수가 가장 높았지만 나이 때문에 부적격 처리됐습니다.

면접에서 "온몸으로 일해야 하는데 가능한가" "어린 교수 역할을 해야하는데 자신있나" "나이 든 선생님은 수업 공개를 하지 않으려 하는데 어떻게 할 건가"등 편견이 들어간 질문도 있었습니다.

나이만을 이유로 50대 전후에 보직을 해임하거나 고용승계를 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호승/한국노총 시니어노조 위원장 : "그 사람이 능력이 있던 또 어떻든 간에 건강 여부를 떠나서 나이가 70대다, 80대다 하면 벌써 그런 채용의 길이 멀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비참한 현실이죠."]

우리나라는 가난한 노인, 그리고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OECD 국가중 가장 높습니다.

나이차별은 생존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유인데요.

그렇다면 차별 받았다고 국가기관에 진정을 넣어 인정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채용이나 보상 등 구제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뭐가 문제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김지숙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5년 전 경남의 한 병원에서 미화 일을 하던 김진태씨는 동료 6명과 함께 해고됐습니다.

나이가 이유였습니다.

[김진태/전 OO병원 미화노동자 : "'이유 불문하고 65세 이상은 다 내보내라.' 좀 황당했죠. 황당했고 일을 못한다는 그 절망감보다는 차별을 둔다는 것…."]

김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도 차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나이를 제한하지 말고 빈 자리가 생기면 김 씨에게 기회를 주란 권고가 전부였습니다.

당장 다시 채용하란 게 아니었습니다.

KBS가 분석해 본 결과 결정 내용 중 12건이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거나 재발방지책을 세우란 거였습니다.

피해자 구제안 권고는 1건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전임 인권위원은 인권위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주고, 직접적인 개별 피해 구제는 법원을 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제는 '강제성'입니다.

인권위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따르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권고를 받은 기관이 그 권고 내용을 전부 따른 비율은 70%대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배상이나 개선명령처럼 강제 조치가 가능한 노동위원회도 나이 차별 문제 등을 다루게 하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승욱/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노동위 시정 제도는) 굉장히 신속하게, 그 다음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구제 조치가 나가기 때문에 차별 피해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고…."]

반면 인권위의 역할이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관련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촬영기자:이중우 김제원 김준우 임동수/영상편집:박은주 한찬의/그래픽:최창준 채상우/자료제공: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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