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경제 위기는 왜 유독 10여 년마다 되풀이될까?

입력 2022.06.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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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시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가정하면 증시는 사실상 '제로섬(zero-sum)'게임이다. 당신은 이 게임에서 남의 돈을 뺏을 자신이 있는가?

# 당신과 함께 링에 오른 선수 중에는 '골드만삭스'나 '국민연금'이라는 선수도 있다. 당신이 진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가?(그들은 버거킹 와퍼에서 참깨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인도네시아산 참깨에 콜옵션을 거는 사람들이다)

# 한국 증시는 미국 등 선진국보다 한참 후진적이다. 우리 투자 마인드는 더 후진적이다. 덕분에 노동을 빨리 끝내겠다고 증시에 달려든 사람들의 부가 이미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들의 주머니로 계속 이전된다.

# 시장 가치가 오르지 않고, 흥분한 대중들이 참여해 끌어올린 시장은 결국 주저앉는다. 이 상투적인 사이클이 10여 년 만에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10여 년 전의 그 흥분과 고통을 잊어버리기 때문 아닐까?'

1. 테슬라 100주를 사면 2030년 내 인생은?

또 흥분할 때 알아봤다. 한국 청년들이 테슬라 주식에 10조 원 이상을 담그고 언론은 동학개미들의 성공을 연일 축복했다. 역대급 '불장'에서 수익 좀 올린 사람들이 유행처럼 계좌를 공개하고 자신의 '노동 해방일지'를 자랑할 때 느낌이 왔다. 또 그분이 오셨구나(인간 지표는 과학 아닌가?)

내 경험으로만 이번이 세 번째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의 블랙먼데이 폭락이 있었고) 90년대 말 한국 등 신흥국들의 경제가 망가졌으며, 그래도 잘 버티던 미국 경제는 2000년 IT 버블이 붕괴하고 2001년 9.11테러까지 터지면서 곤두박질쳤다. 2007년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부동산 시장이 폭락했고 이듬해 2008년엔 결국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그리고 2022년 다시 또 시장에 공포가 찾아왔다. 큰 손들은 이미 다 빠진 시장에서 어린 '동학개미'들만 처절하게 전선을 지킨다. 반 토막 난 주식이 천지다. 이제 남은 믿음은 '장투!'뿐이다. 다들 버티면 이긴다며 투쟁 의지를 다진다. 그런데 진짜 주식을 오래 들고 있으면 이기는 날이 올까? 그럼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왜 연일 주식을 팔아 재낄까?

지난 연말 증시가 뜨거울 때 '로시##'라는 투자자는 "지금 주당 1,056달러인 테슬라 주식 100주를 2030년까지 보유하면 지금 1억 2천만 원의 투자금이 23억 원으로 불어난다"는 엑셀 표를 트윗에 올렸다. 그의 노동 해방일지는 그렇게 완성됐다. 그는 이 '복리의 위대함'이 자신을 노동에서 해방 시켜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테슬라 주가는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라운지'라는 투자자는 "블루칩은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오래 버티면 더 찬란해진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대세 하락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요즘 삼성전자는 안녕한가? 서울의 집값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내리막을 걸었는데, '압구정 현대아파트 33'평은 그때 10억 원까지 밀렸다.

추락 장세에 예외는 없다. 그 '오래'란 얼마를 말하는 것일까? 1991년 1월 24,000포인트였던 니케이지수가 다시 24,000포인트를 회복한 것은 '29년'만인 2020년 11월이었다.

2.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

이맘때 등장하는 무서운 말이다. 주가는 계속 내리지 않는다. 사흘 내리다 하루쯤 반등한다. 희망을 던지며 절망으로 향한다. '데드 캣 바운스'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죽은 고양이도 한번은 뛰어오른다'는 말에서 생겨났다. 그렇게 희망이 확신에서 환호로 그리고 두려움과 부정, 절망으로 바뀌는 수많은 모델링이 있다.

자산시장의 급등과 급락을 설명하는 모델 중 가장 잘 알려진 ‘하이먼 민스키’ 모델. 기관투자자들이 팔고 대중들이 열광하며 자산시장에 뛰어들 무렵 가격은 춤추듯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자산시장의 급등과 급락을 설명하는 모델 중 가장 잘 알려진 ‘하이먼 민스키’ 모델. 기관투자자들이 팔고 대중들이 열광하며 자산시장에 뛰어들 무렵 가격은 춤추듯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대중들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선제적으로 진입한 거대 자본이 1차 매도를 할 무렵, 주저하던 대중들이 너도나도 게임에 뛰어든다. '환상(delusion)'은 곧 현실이 될 것 같다. 수백, 수천만 원을 번 테슬라 계좌를 자랑하는 '인증 짤'이 범람한다. 이때가 고점이다.

이때가 피터 린치의 '칵테일파티' 이론에서 사람들이 피터 린치에게 특정 주식을 권하는 바로 그 시점이다. 가격은 급락한다. 몇 차례 현실을 부인하던 대중들은 하나둘 항복(capitulation)하며 자산을 팔고, 그렇게 절망이 시장을 접수한다.

그리고 절망한 투자자들이 지치고 지쳐 투자의 '투'자도 떠올리기 싫을 때(와이프가 "내 앞에서 주식 이야기 또 꺼내기만 해봐" 라고 소리칠 때!) 다시 가격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그 기간이 유독 10년쯤 되는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 그 기대와 환호, 환상과 절망을 잊어버리는데 10년쯤의 세월이 걸리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나 라면 물의 끓는 온도를 과학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가격(Price)은 예측하기가 어렵다. 가격에는 '인간의 마음'이 들어가고 여기서부터는 사실상 예측불가 영역이다(그래서 경제학을 쓸데없는(useless) 학문이라고들 한다).

민스키 모먼트(채무자의 부채 상환 능력이 악화돼 건전한 자산까지 팔게 되면서 금융위기를 맞이하는 시점)를 지연시키려는 수많은 노력이 이어지지만, 거품은 결국 빠진다. 시장은 주저앉고 장밋빛 내일을 설파하던 증시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춘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또 10년 전 인간의 탐욕과 부실한 금융시장의 규제를 꾸짖는 책을 살짝 고쳐서 발행하면 된다. 잘 팔린다.

한 경제 채널이 마련한 전문가들의 특별한 포트폴리오 대결. 시장경제에서 자산 가격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사진 트위터/매일경제 TV 캡처한 경제 채널이 마련한 전문가들의 특별한 포트폴리오 대결. 시장경제에서 자산 가격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사진 트위터/매일경제 TV 캡처

3. 개인투자자는 왜 맨날 패배하는가?

▲ 십여 년 만에 한 번 투자 열풍이 불면 투자금이 몰린다. 하지만 우리 자본시장은 '이때다'하고 물량을 쏟아낸다. 지난해 유상증자 물량만 18조 원을 넘는다. 시장에 거래되는 주식 수가 늘어나면 누군가는 주식을 더 사줘야 한다. 수급이 불안해진다. 여기에 신규상장(IPO)도 봇물이 터진다.

지난해에만 예년의 4배가 넘는 기업들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입성했다. 이 주식은 또 누가 받아줄 것인가? (이렇게 개인투자자들이 쌈짓돈으로 받아준 물량은 신규 상장되는 기업의 대주주에게 또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예를 들어 올리브영이 상장되면 CJ 이재현 회장 두 자녀의 지분은 3,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연봉 1억 원 급여생활자가 3,000년 모으면 3,000억 원이다)

반면 선진국은 오히려 자사주를 소각하며 주가를 부양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주식투자가 활성화된 미국은 대부분 퇴직자가 주식투자자다(젊었을 때 주식 비중이 높고 은퇴 후 연금개시가 가까워질수록 주식 비중이 줄어든다). 주가가 급락하면 퇴직자들의 연금수급액이 확 쪼그라든다. 그러니 정부가 무너지는 증시를 외면하기 힘들다. 슬그머니 끼어든다. 지난 2020년 봄, 코로나19로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심지어 연방준비제도(FED)가 나서 회사채를 사주면서까지 망하는 기업들을 살려냈다.

▲ 여전히 빚내서 투자한다. 신용 잔고가 20조 원이나 된다. 주식 매매프로그램의 대출은 보통 이자율이 6~9% 정도다. 쉽게 계산해도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피 같은 돈 1조 원 이상이 이자로 금융회사로 이전된다. 노동시장에서 마흔 살에 조기 은퇴를 하겠다며 주식투자를 하지만 정작 앉아서 돈을 버는 사람은 이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본시장에선 이미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 승리하기 마련이다.

'일단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하면 마음이 급해지고 주식은 마음이 급해지면 십중팔구 지는 게임이다. 자신의 성문을 열어놓고 적의 성을 공격하러 간 장수가 승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우리는 기업문화 자체가 후진적이다. (회장님이 허락하지 않으니) 배당성향은 여전히 낮은 데다, 횡령·배임, 주가조작, 내부자 거래가 시총 조 단위 기업에서 마치 무슨 동네 계모임처럼 발생한다.

이런 환경에서 증권 관련 세금을 낮추면 증시가 활성화될까? 거래세와 양도세 모두 인하될 모양인데 대주주만 좋은 일이다. 주변에 증권거래세 비싸다며 증시를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해마다 주식 양도세로 1조 원 정도가 걷히는데, 이 세금을 내는 사람이 내 주변엔 아무도 없다. 일단 주식 양도세는 한 종목에서 10억 원 이상 거래해야 부과 대상이다).

▲ 세상엔 늘 운 좋은 사람들이 있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주식투자로 운 좋게 큰 돈을 번 사람이 뒤돌아 보지않고 증시를 떠나기는 쉽지 않다(경마장에도 예전에 한 번에 수천만 원 벌었다는 말밥꾼들 천지다). 결국 다시 돌아와 사고팔고를 반복하고, 그럴수록 계좌 잔고는 쪼그라든다. 우리 삶에는 시도 때도 없이 모두 우연의 요소가 끼어들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통화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합리적 기대효과'라는 게 있다. 인간은 소비나 투자를 할 때 (평균적으로) 합리적으로 대응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남들이 뛰면 따라 뛰어야 하는 존재다. 특히 누군가가 큰 돈을 벌었을 때는 더 그렇다. 왜 어디로 뛰는지는 두 번째 문제다. 그리고 가격이 급락하고 난 뒤에야 내가 매우 비싸게 산 그것이 사실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화폐'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게 우리 투자의 현실이다.

'남이 사면 나도 사는 이 집단적 우매함이 늘 거대 자본을 먹여 살린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증시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월가 투자은행의 유태인 CFO가 받는 연봉 수천억 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4. 이 모든 사이클을 이겨낼 방법이 있다.

주식의 본질을 성찰할 필요도 없고 시장을 이해하는 사유의 탁월함도 필요 없다. 돈을 빨리 벌고 싶으면 돈을 빨리 벌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몇 개 종목을 매월 각각 얼마씩 5년, 10년을 '꾸준히' 매입한다면 당신이 이길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주식투자의 최고 장점은 파는 시점을 내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쉬울까? 버핏은 "주식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꾸준히'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를 한번 돌아보자. 우리가 이번에도 패배한 이유는 이 '꾸준히' 사는 인생을 한방에 벗어나려고 해서는 아닌가?

여기저기서 경기침체(recession)의 조짐이 보인다(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면 경기침체라고 하는데, 사실은 주말 산행 인구가 늘거나 대학 동기 모임의 참석자가 자꾸 줄면 그게 경기침체다).

자칫 불황(deflation)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다시 곳간 문을 열어 젖히고 돈을 풀 것이다. 파티는 생각보다 더 빨리 열릴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우리가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가 이기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증시는 제로섬 게임이고, 우리가 흥분하지 않으면 그들은 떼돈을 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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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경제 위기는 왜 유독 10여 년마다 되풀이될까?
    • 입력 2022-06-30 08:00:05
    특파원 리포트

# 증시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가정하면 증시는 사실상 '제로섬(zero-sum)'게임이다. 당신은 이 게임에서 남의 돈을 뺏을 자신이 있는가?

# 당신과 함께 링에 오른 선수 중에는 '골드만삭스'나 '국민연금'이라는 선수도 있다. 당신이 진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가?(그들은 버거킹 와퍼에서 참깨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인도네시아산 참깨에 콜옵션을 거는 사람들이다)

# 한국 증시는 미국 등 선진국보다 한참 후진적이다. 우리 투자 마인드는 더 후진적이다. 덕분에 노동을 빨리 끝내겠다고 증시에 달려든 사람들의 부가 이미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들의 주머니로 계속 이전된다.

# 시장 가치가 오르지 않고, 흥분한 대중들이 참여해 끌어올린 시장은 결국 주저앉는다. 이 상투적인 사이클이 10여 년 만에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10여 년 전의 그 흥분과 고통을 잊어버리기 때문 아닐까?'

1. 테슬라 100주를 사면 2030년 내 인생은?

또 흥분할 때 알아봤다. 한국 청년들이 테슬라 주식에 10조 원 이상을 담그고 언론은 동학개미들의 성공을 연일 축복했다. 역대급 '불장'에서 수익 좀 올린 사람들이 유행처럼 계좌를 공개하고 자신의 '노동 해방일지'를 자랑할 때 느낌이 왔다. 또 그분이 오셨구나(인간 지표는 과학 아닌가?)

내 경험으로만 이번이 세 번째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의 블랙먼데이 폭락이 있었고) 90년대 말 한국 등 신흥국들의 경제가 망가졌으며, 그래도 잘 버티던 미국 경제는 2000년 IT 버블이 붕괴하고 2001년 9.11테러까지 터지면서 곤두박질쳤다. 2007년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부동산 시장이 폭락했고 이듬해 2008년엔 결국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그리고 2022년 다시 또 시장에 공포가 찾아왔다. 큰 손들은 이미 다 빠진 시장에서 어린 '동학개미'들만 처절하게 전선을 지킨다. 반 토막 난 주식이 천지다. 이제 남은 믿음은 '장투!'뿐이다. 다들 버티면 이긴다며 투쟁 의지를 다진다. 그런데 진짜 주식을 오래 들고 있으면 이기는 날이 올까? 그럼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왜 연일 주식을 팔아 재낄까?

지난 연말 증시가 뜨거울 때 '로시##'라는 투자자는 "지금 주당 1,056달러인 테슬라 주식 100주를 2030년까지 보유하면 지금 1억 2천만 원의 투자금이 23억 원으로 불어난다"는 엑셀 표를 트윗에 올렸다. 그의 노동 해방일지는 그렇게 완성됐다. 그는 이 '복리의 위대함'이 자신을 노동에서 해방 시켜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테슬라 주가는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라운지'라는 투자자는 "블루칩은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오래 버티면 더 찬란해진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대세 하락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요즘 삼성전자는 안녕한가? 서울의 집값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내리막을 걸었는데, '압구정 현대아파트 33'평은 그때 10억 원까지 밀렸다.

추락 장세에 예외는 없다. 그 '오래'란 얼마를 말하는 것일까? 1991년 1월 24,000포인트였던 니케이지수가 다시 24,000포인트를 회복한 것은 '29년'만인 2020년 11월이었다.

2.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

이맘때 등장하는 무서운 말이다. 주가는 계속 내리지 않는다. 사흘 내리다 하루쯤 반등한다. 희망을 던지며 절망으로 향한다. '데드 캣 바운스'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죽은 고양이도 한번은 뛰어오른다'는 말에서 생겨났다. 그렇게 희망이 확신에서 환호로 그리고 두려움과 부정, 절망으로 바뀌는 수많은 모델링이 있다.

자산시장의 급등과 급락을 설명하는 모델 중 가장 잘 알려진 ‘하이먼 민스키’ 모델. 기관투자자들이 팔고 대중들이 열광하며 자산시장에 뛰어들 무렵 가격은 춤추듯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대중들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선제적으로 진입한 거대 자본이 1차 매도를 할 무렵, 주저하던 대중들이 너도나도 게임에 뛰어든다. '환상(delusion)'은 곧 현실이 될 것 같다. 수백, 수천만 원을 번 테슬라 계좌를 자랑하는 '인증 짤'이 범람한다. 이때가 고점이다.

이때가 피터 린치의 '칵테일파티' 이론에서 사람들이 피터 린치에게 특정 주식을 권하는 바로 그 시점이다. 가격은 급락한다. 몇 차례 현실을 부인하던 대중들은 하나둘 항복(capitulation)하며 자산을 팔고, 그렇게 절망이 시장을 접수한다.

그리고 절망한 투자자들이 지치고 지쳐 투자의 '투'자도 떠올리기 싫을 때(와이프가 "내 앞에서 주식 이야기 또 꺼내기만 해봐" 라고 소리칠 때!) 다시 가격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그 기간이 유독 10년쯤 되는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 그 기대와 환호, 환상과 절망을 잊어버리는데 10년쯤의 세월이 걸리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나 라면 물의 끓는 온도를 과학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가격(Price)은 예측하기가 어렵다. 가격에는 '인간의 마음'이 들어가고 여기서부터는 사실상 예측불가 영역이다(그래서 경제학을 쓸데없는(useless) 학문이라고들 한다).

민스키 모먼트(채무자의 부채 상환 능력이 악화돼 건전한 자산까지 팔게 되면서 금융위기를 맞이하는 시점)를 지연시키려는 수많은 노력이 이어지지만, 거품은 결국 빠진다. 시장은 주저앉고 장밋빛 내일을 설파하던 증시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춘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또 10년 전 인간의 탐욕과 부실한 금융시장의 규제를 꾸짖는 책을 살짝 고쳐서 발행하면 된다. 잘 팔린다.

한 경제 채널이 마련한 전문가들의 특별한 포트폴리오 대결. 시장경제에서 자산 가격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사진 트위터/매일경제 TV 캡처
3. 개인투자자는 왜 맨날 패배하는가?

▲ 십여 년 만에 한 번 투자 열풍이 불면 투자금이 몰린다. 하지만 우리 자본시장은 '이때다'하고 물량을 쏟아낸다. 지난해 유상증자 물량만 18조 원을 넘는다. 시장에 거래되는 주식 수가 늘어나면 누군가는 주식을 더 사줘야 한다. 수급이 불안해진다. 여기에 신규상장(IPO)도 봇물이 터진다.

지난해에만 예년의 4배가 넘는 기업들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입성했다. 이 주식은 또 누가 받아줄 것인가? (이렇게 개인투자자들이 쌈짓돈으로 받아준 물량은 신규 상장되는 기업의 대주주에게 또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예를 들어 올리브영이 상장되면 CJ 이재현 회장 두 자녀의 지분은 3,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연봉 1억 원 급여생활자가 3,000년 모으면 3,000억 원이다)

반면 선진국은 오히려 자사주를 소각하며 주가를 부양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주식투자가 활성화된 미국은 대부분 퇴직자가 주식투자자다(젊었을 때 주식 비중이 높고 은퇴 후 연금개시가 가까워질수록 주식 비중이 줄어든다). 주가가 급락하면 퇴직자들의 연금수급액이 확 쪼그라든다. 그러니 정부가 무너지는 증시를 외면하기 힘들다. 슬그머니 끼어든다. 지난 2020년 봄, 코로나19로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심지어 연방준비제도(FED)가 나서 회사채를 사주면서까지 망하는 기업들을 살려냈다.

▲ 여전히 빚내서 투자한다. 신용 잔고가 20조 원이나 된다. 주식 매매프로그램의 대출은 보통 이자율이 6~9% 정도다. 쉽게 계산해도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피 같은 돈 1조 원 이상이 이자로 금융회사로 이전된다. 노동시장에서 마흔 살에 조기 은퇴를 하겠다며 주식투자를 하지만 정작 앉아서 돈을 버는 사람은 이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본시장에선 이미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 승리하기 마련이다.

'일단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하면 마음이 급해지고 주식은 마음이 급해지면 십중팔구 지는 게임이다. 자신의 성문을 열어놓고 적의 성을 공격하러 간 장수가 승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우리는 기업문화 자체가 후진적이다. (회장님이 허락하지 않으니) 배당성향은 여전히 낮은 데다, 횡령·배임, 주가조작, 내부자 거래가 시총 조 단위 기업에서 마치 무슨 동네 계모임처럼 발생한다.

이런 환경에서 증권 관련 세금을 낮추면 증시가 활성화될까? 거래세와 양도세 모두 인하될 모양인데 대주주만 좋은 일이다. 주변에 증권거래세 비싸다며 증시를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해마다 주식 양도세로 1조 원 정도가 걷히는데, 이 세금을 내는 사람이 내 주변엔 아무도 없다. 일단 주식 양도세는 한 종목에서 10억 원 이상 거래해야 부과 대상이다).

▲ 세상엔 늘 운 좋은 사람들이 있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주식투자로 운 좋게 큰 돈을 번 사람이 뒤돌아 보지않고 증시를 떠나기는 쉽지 않다(경마장에도 예전에 한 번에 수천만 원 벌었다는 말밥꾼들 천지다). 결국 다시 돌아와 사고팔고를 반복하고, 그럴수록 계좌 잔고는 쪼그라든다. 우리 삶에는 시도 때도 없이 모두 우연의 요소가 끼어들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통화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합리적 기대효과'라는 게 있다. 인간은 소비나 투자를 할 때 (평균적으로) 합리적으로 대응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남들이 뛰면 따라 뛰어야 하는 존재다. 특히 누군가가 큰 돈을 벌었을 때는 더 그렇다. 왜 어디로 뛰는지는 두 번째 문제다. 그리고 가격이 급락하고 난 뒤에야 내가 매우 비싸게 산 그것이 사실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화폐'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게 우리 투자의 현실이다.

'남이 사면 나도 사는 이 집단적 우매함이 늘 거대 자본을 먹여 살린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증시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월가 투자은행의 유태인 CFO가 받는 연봉 수천억 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4. 이 모든 사이클을 이겨낼 방법이 있다.

주식의 본질을 성찰할 필요도 없고 시장을 이해하는 사유의 탁월함도 필요 없다. 돈을 빨리 벌고 싶으면 돈을 빨리 벌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몇 개 종목을 매월 각각 얼마씩 5년, 10년을 '꾸준히' 매입한다면 당신이 이길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주식투자의 최고 장점은 파는 시점을 내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쉬울까? 버핏은 "주식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꾸준히'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를 한번 돌아보자. 우리가 이번에도 패배한 이유는 이 '꾸준히' 사는 인생을 한방에 벗어나려고 해서는 아닌가?

여기저기서 경기침체(recession)의 조짐이 보인다(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면 경기침체라고 하는데, 사실은 주말 산행 인구가 늘거나 대학 동기 모임의 참석자가 자꾸 줄면 그게 경기침체다).

자칫 불황(deflation)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다시 곳간 문을 열어 젖히고 돈을 풀 것이다. 파티는 생각보다 더 빨리 열릴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우리가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가 이기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증시는 제로섬 게임이고, 우리가 흥분하지 않으면 그들은 떼돈을 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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