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태실 그림 ‘장조 태봉도’ 등 3점 보물 된다

입력 2022.06.30 (10:35) 수정 2022.06.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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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가 드문 조선왕실 태실 관련 그림 3점과 「건칠보살좌상」, 「묘법연화경」 등 고려 말~조선 초 불상, 조선 초기 불경 등 총 6건을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먼저 조선왕실 태실 그림 3점은 「장조 태봉도(莊祖 胎封圖)」, 「순조 태봉도(純祖 胎封圖)」, 「헌종 태봉도(憲宗 胎封圖)」입니다.

「장조 태봉도」는 1785년(정조 9) 정조(正祖)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 후에 장조로 추존)의 태실(胎室)과 주변 풍경을 담은 그림입니다. 좌우 사방으로 활짝 펼친 구도에 ▲지명(地名)을 써 놓은 방식, ▲줄지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산, ▲짙은 먹으로 거칠게 표현한 봉우리 등 지도식 표현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입니다.

장조의 태실은 1735년 출생 후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사(鳴鳳寺) 뒤편에 마련됐고, 1785년 사도세자로 추존되면서 난간석(欄干石)과 비석 등 석물이 추가로 배치됐습니다.

「순조 태봉도」는 순조가 1790년(정조 14)에 태어난 후,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에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한 태실의 형상과 그 주변 지형을 담은 그림입니다.

붉은 선으로 도로를 뚜렷하게 표시해 정확한 지리정보를 담고자 한 점, 필획을 반복해 무성한 나뭇잎을 표현한 점 등 전체적으로 지도와 산수화의 성격이 혼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헌종 태봉도」는 헌종이 1827년(순조 27)에 태어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마련된 태실과 주변 경관을 그린 작품입니다. 헌종이 1834년 즉위한 후, 13년이 지난 1847년(헌종 13) 그림 속 태실처럼 격식을 갖춘 것으로 보아 왕으로 즉위한 뒤 석물을 새롭게 조성한 태실가봉(胎室加封)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그림은 앞의 두 점과 달리 전경(前景), 중경(中景), 후경(後景)의 구성을 적용한 전형적인 산수화 구도를 보여줍니다.

문화재청은 이들 태봉도가 삼국시대부터 이어지던 장태(藏胎) 문화를 조선왕실에서 의례화시켜 새로 태어난 왕자녀의 태를 길지(吉地)에 묻는 독특한 안태의례(安胎儀禮)를 정착시킨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태실의 모습을 그린 태봉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역사성ㆍ희소성이 있고, 제작 동기와 제작 시기가 분명하며, 태실과 관련한 왕실 회화로서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은 고려 말~조선 초에 제작된 보살상으로,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은 설법인(說法印)을 결한 좌상입니다.

후대에 보수한 흔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현존하는 건칠보살상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 중량감 넘치는 조형미를 종합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건칠기법과 공예기술이 모두 반영된 점에서 보물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습니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金銅阿彌陀如來三尊像 및 腹藏遺物)」은 복장발원문을 통해 1333년(충숙왕 2)에 조성된 사실이 밝혀진 불상으로, 본존 아미타여래상과 좌우 협시인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로 구성돼 있습니다.

고려 14세기 삼존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췄고, 편년의 기준이 되는 도상과 양식을 지닌 점에서 한국불교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이 본존 아미타여래와 좌우 협시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이 제작 당시의 모습 그대로 모두 남아 전하는 사례로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불상이 지닌 양식과 도상, 조형성, 그리고 발원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고려 후기 불상의 제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1405년(태종 5) 음력 3월 하순 안심사(安心寺)에서 조성한 불교경판을 후대 인출한 경전으로서, 7권 2책으로 구성된 완질본입니다.

같은 경판에서 인출된 판본 중 이미 보물로 지정된 자료와 비교할 때 시주자와 간행정보가 모두 확인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고, 특히 이 가운데 권1~3은 매우 희소하다는 점에서 자료적인 완전성이 높습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이 조선 초기 불경 출판인쇄 경향과 각수(刻手)의 변상도(變相圖) 제작 수준, 고려 말~조선 초 불교사상의 경향을 추적할 수 있는 원천정보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문화적인 가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온전하고, 완질본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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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실 태실 그림 ‘장조 태봉도’ 등 3점 보물 된다
    • 입력 2022-06-30 10:35:12
    • 수정2022-06-30 10:39:46
    문화
유례가 드문 조선왕실 태실 관련 그림 3점과 「건칠보살좌상」, 「묘법연화경」 등 고려 말~조선 초 불상, 조선 초기 불경 등 총 6건을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먼저 조선왕실 태실 그림 3점은 「장조 태봉도(莊祖 胎封圖)」, 「순조 태봉도(純祖 胎封圖)」, 「헌종 태봉도(憲宗 胎封圖)」입니다.

「장조 태봉도」는 1785년(정조 9) 정조(正祖)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 후에 장조로 추존)의 태실(胎室)과 주변 풍경을 담은 그림입니다. 좌우 사방으로 활짝 펼친 구도에 ▲지명(地名)을 써 놓은 방식, ▲줄지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산, ▲짙은 먹으로 거칠게 표현한 봉우리 등 지도식 표현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입니다.

장조의 태실은 1735년 출생 후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사(鳴鳳寺) 뒤편에 마련됐고, 1785년 사도세자로 추존되면서 난간석(欄干石)과 비석 등 석물이 추가로 배치됐습니다.

「순조 태봉도」는 순조가 1790년(정조 14)에 태어난 후,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에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한 태실의 형상과 그 주변 지형을 담은 그림입니다.

붉은 선으로 도로를 뚜렷하게 표시해 정확한 지리정보를 담고자 한 점, 필획을 반복해 무성한 나뭇잎을 표현한 점 등 전체적으로 지도와 산수화의 성격이 혼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헌종 태봉도」는 헌종이 1827년(순조 27)에 태어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마련된 태실과 주변 경관을 그린 작품입니다. 헌종이 1834년 즉위한 후, 13년이 지난 1847년(헌종 13) 그림 속 태실처럼 격식을 갖춘 것으로 보아 왕으로 즉위한 뒤 석물을 새롭게 조성한 태실가봉(胎室加封)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그림은 앞의 두 점과 달리 전경(前景), 중경(中景), 후경(後景)의 구성을 적용한 전형적인 산수화 구도를 보여줍니다.

문화재청은 이들 태봉도가 삼국시대부터 이어지던 장태(藏胎) 문화를 조선왕실에서 의례화시켜 새로 태어난 왕자녀의 태를 길지(吉地)에 묻는 독특한 안태의례(安胎儀禮)를 정착시킨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태실의 모습을 그린 태봉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역사성ㆍ희소성이 있고, 제작 동기와 제작 시기가 분명하며, 태실과 관련한 왕실 회화로서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은 고려 말~조선 초에 제작된 보살상으로,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은 설법인(說法印)을 결한 좌상입니다.

후대에 보수한 흔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현존하는 건칠보살상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 중량감 넘치는 조형미를 종합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건칠기법과 공예기술이 모두 반영된 점에서 보물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습니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金銅阿彌陀如來三尊像 및 腹藏遺物)」은 복장발원문을 통해 1333년(충숙왕 2)에 조성된 사실이 밝혀진 불상으로, 본존 아미타여래상과 좌우 협시인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로 구성돼 있습니다.

고려 14세기 삼존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췄고, 편년의 기준이 되는 도상과 양식을 지닌 점에서 한국불교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이 본존 아미타여래와 좌우 협시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이 제작 당시의 모습 그대로 모두 남아 전하는 사례로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불상이 지닌 양식과 도상, 조형성, 그리고 발원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고려 후기 불상의 제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1405년(태종 5) 음력 3월 하순 안심사(安心寺)에서 조성한 불교경판을 후대 인출한 경전으로서, 7권 2책으로 구성된 완질본입니다.

같은 경판에서 인출된 판본 중 이미 보물로 지정된 자료와 비교할 때 시주자와 간행정보가 모두 확인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고, 특히 이 가운데 권1~3은 매우 희소하다는 점에서 자료적인 완전성이 높습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이 조선 초기 불경 출판인쇄 경향과 각수(刻手)의 변상도(變相圖) 제작 수준, 고려 말~조선 초 불교사상의 경향을 추적할 수 있는 원천정보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문화적인 가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온전하고, 완질본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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