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홍콩스타 장학우, 뭇매 맞은 이유…중국, 도 넘은 ‘애국주의’

입력 2022.07.04 (17:58) 수정 2022.07.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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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후반, 홍콩 느와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하면서 홍콩 영화배우들은 한국의 안방 스타보다 더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해 광고에도 출연했을 정도니 한국 내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겠죠?

왼쪽부터 곽부성, 유덕화, 장학우, 여명. 가수 겸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바이두)왼쪽부터 곽부성, 유덕화, 장학우, 여명. 가수 겸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바이두)

홍콩 스타 4인방은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요. 곽부성, 유덕화, 장학우, 여명 이들 4대 천왕은 홍콩과 중국 본토를 넘나들며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그런데 이 중 한 명인 장학우, 중국 현지명으로는 장쉐여우(張學友)가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을 축하하며 촬영한 영상이 중국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특정 단어'가 빠졌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보통 안 할 말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해야 할 말을 빼먹었다고 비난받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요.

홍콩 스타 장학우의 메시지, 어떤 내용?

홍콩 스타 장학우 (출처: 바이두)홍콩 스타 장학우 (출처: 바이두)

장학우는 홍콩은 25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면서 홍콩이 이전보다 더 나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21초 동안 홍콩어로 녹화된 축하 영상은 "홍콩 힘내요!"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안녕하세요. 장학우입니다. 홍콩은 25년 동안 많은 걸 겪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도시와 함께 성장했고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도시를 믿습니다. 여전히 이 도시가 이전보다 더 나은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홍콩 힘내요!" -장학우의 홍콩 반환 25주년 축하 메시지

■무엇이 중국 네티즌을 화나게 했나?

축하 메시지가 중국 본토에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순식간에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네티즌 대부분은 장학우의 축하 메시지에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화가 난다."거나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중국 SNS 웨이보 댓글들중국 SNS 웨이보 댓글들

'조국(중국)'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네티즌들은 "다른 몇 명의 천왕보다 나라를 덜 사랑하는 것 같다."거나 "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일부는 홍콩의 '반환'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홍콩 화이팅!(香港加油)"이라는 말도 논란이 됐습니다. 지난 2019년 범죄인 소환법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의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진 뒤 "홍콩 화이팅!"은 '중국 정부에 지지말라'는 의미이자 더 나아가서는 홍콩의 분리 독립을 지지한다는 말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학우는 축하 메시지를 발표한지 이틀이 지난 3일, 한 홍콩 매체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먼저 "홍콩 화이팅!"을 외치지 못하게 된 배경을 알고 있다면서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은색, 노란색 옷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2019년 6월 9일 벌어진 홍콩 대규모 반정부 시위 (출처: 연합뉴스)2019년 6월 9일 벌어진 홍콩 대규모 반정부 시위 (출처: 연합뉴스)

노란색은 2014년 홍콩 시위대가 들고 나온 '노란 우산'을 말합니다. 당시 홍콩 대학생들은 노란 우산을 쓰고 중국 당국이 홍콩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친중국파로 제한한 데 반발해 70일 넘게 시위를 벌였습니다. 검은색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때 시위대가 검은 옷을 입고 나온 뒤부터 '홍콩의 투쟁'을 상징하는 색이 됐는데요. 두 색 모두 "홍콩 힘내라!"와 마찬가지도 '홍콩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색이 된 뒤 홍콩인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겁니다.

하지만 장학우는 이내 네티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은 "나라를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는 중국인"이라며 중국의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함을 누리는 것)이 이번 세기 최대 기적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끝으로 "나는 중국인으로서 여러분의 감독 아래 좋은 사람, 좋은 가수가 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연예계도 애국심 강조 분위기

중국 본토 출신이 아닌 사람일수록 애국심을 스스로 드러낼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중국 연예계에 점점 확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 오래전 일까지 들춰냅니다.

지난해(2021년)에는 장쥔닝(张钧甯)이라는 타이완 출신 배우가 2010년에 쓴 석사 논문이 논란이 됐습니다. 중국 네티즌은 논문에서 타이완을 '국가'로 표현한 것을 지적했는데요. 결국, 장쥔닝 역시 타이완 독립을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는 해명 글을 올려야 했습니다.

셰팅펑은 2021년 9월 중국 관영  CCTV에 출연해 캐나다 국적 이탈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출처: CCTV 캡처)셰팅펑은 2021년 9월 중국 관영 CCTV에 출연해 캐나다 국적 이탈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출처: CCTV 캡처)

앞서 또 다른 홍콩 출신 연예인 셰팅펑(사정봉·謝霆鋒)은 중국 당국에서 외국 국적 연예인을 퇴출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자 중국 관영 CCTV에 출연해 캐나다 국적을 포기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중국에서 스타로 살아간다는 건, 해서는 안 될 말만 가릴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할 말'도 챙겨야 하는 '극한 직업'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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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4 17:58:54
    • 수정2022-07-04 23:38:27
    특파원 리포트

80년대 중·후반, 홍콩 느와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하면서 홍콩 영화배우들은 한국의 안방 스타보다 더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해 광고에도 출연했을 정도니 한국 내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겠죠?

왼쪽부터 곽부성, 유덕화, 장학우, 여명. 가수 겸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바이두)
홍콩 스타 4인방은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요. 곽부성, 유덕화, 장학우, 여명 이들 4대 천왕은 홍콩과 중국 본토를 넘나들며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그런데 이 중 한 명인 장학우, 중국 현지명으로는 장쉐여우(張學友)가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을 축하하며 촬영한 영상이 중국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특정 단어'가 빠졌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보통 안 할 말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해야 할 말을 빼먹었다고 비난받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요.

홍콩 스타 장학우의 메시지, 어떤 내용?

홍콩 스타 장학우 (출처: 바이두)
장학우는 홍콩은 25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면서 홍콩이 이전보다 더 나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21초 동안 홍콩어로 녹화된 축하 영상은 "홍콩 힘내요!"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안녕하세요. 장학우입니다. 홍콩은 25년 동안 많은 걸 겪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도시와 함께 성장했고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도시를 믿습니다. 여전히 이 도시가 이전보다 더 나은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홍콩 힘내요!" -장학우의 홍콩 반환 25주년 축하 메시지

■무엇이 중국 네티즌을 화나게 했나?

축하 메시지가 중국 본토에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순식간에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네티즌 대부분은 장학우의 축하 메시지에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화가 난다."거나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중국 SNS 웨이보 댓글들
'조국(중국)'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네티즌들은 "다른 몇 명의 천왕보다 나라를 덜 사랑하는 것 같다."거나 "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일부는 홍콩의 '반환'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홍콩 화이팅!(香港加油)"이라는 말도 논란이 됐습니다. 지난 2019년 범죄인 소환법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의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진 뒤 "홍콩 화이팅!"은 '중국 정부에 지지말라'는 의미이자 더 나아가서는 홍콩의 분리 독립을 지지한다는 말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학우는 축하 메시지를 발표한지 이틀이 지난 3일, 한 홍콩 매체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먼저 "홍콩 화이팅!"을 외치지 못하게 된 배경을 알고 있다면서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은색, 노란색 옷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2019년 6월 9일 벌어진 홍콩 대규모 반정부 시위 (출처: 연합뉴스)
노란색은 2014년 홍콩 시위대가 들고 나온 '노란 우산'을 말합니다. 당시 홍콩 대학생들은 노란 우산을 쓰고 중국 당국이 홍콩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친중국파로 제한한 데 반발해 70일 넘게 시위를 벌였습니다. 검은색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때 시위대가 검은 옷을 입고 나온 뒤부터 '홍콩의 투쟁'을 상징하는 색이 됐는데요. 두 색 모두 "홍콩 힘내라!"와 마찬가지도 '홍콩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색이 된 뒤 홍콩인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겁니다.

하지만 장학우는 이내 네티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은 "나라를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는 중국인"이라며 중국의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함을 누리는 것)이 이번 세기 최대 기적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끝으로 "나는 중국인으로서 여러분의 감독 아래 좋은 사람, 좋은 가수가 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연예계도 애국심 강조 분위기

중국 본토 출신이 아닌 사람일수록 애국심을 스스로 드러낼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중국 연예계에 점점 확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 오래전 일까지 들춰냅니다.

지난해(2021년)에는 장쥔닝(张钧甯)이라는 타이완 출신 배우가 2010년에 쓴 석사 논문이 논란이 됐습니다. 중국 네티즌은 논문에서 타이완을 '국가'로 표현한 것을 지적했는데요. 결국, 장쥔닝 역시 타이완 독립을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는 해명 글을 올려야 했습니다.

셰팅펑은 2021년 9월 중국 관영  CCTV에 출연해 캐나다 국적 이탈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출처: CCTV 캡처)
앞서 또 다른 홍콩 출신 연예인 셰팅펑(사정봉·謝霆鋒)은 중국 당국에서 외국 국적 연예인을 퇴출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자 중국 관영 CCTV에 출연해 캐나다 국적을 포기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중국에서 스타로 살아간다는 건, 해서는 안 될 말만 가릴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할 말'도 챙겨야 하는 '극한 직업'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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