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늘고 꿀벌 사라지고…기후 변화의 역습

입력 2022.07.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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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해는 해파리떼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해파리 출몰 빈도 조사에서 '강(强) 독성'인 노무라입깃해파리와 커튼원양해파리가 각각 통영시 두미도 연안과 사량도 연안에서 올여름 처음 발견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에는 전북과 전남, 경남 해역에 '약(弱) 독성'인 보름달물해파리 주의보가 발령됐다. 특히, 전남 득량만에서는 보름달물해파리의 부유 유생(성체가 되기 전 어린 개체)이 100㎡당 많게는 162개체가 발견되고 있다.


■ 늘어나는 독성 해파리

우리나라에 출몰하는 해파리는 크게 두 종류다. 보름달물해파리와 노무라입깃해파리. 보름달물해파리는 국내 자생종으로, 6월에서 10월까지 자주 보인다. 반면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유입된다. 원래 7월 중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그 시기가 조금 빨라졌다. 최대 갓길이 30㎝인 보름달물해파리에 비해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최대 길이가 1m에 달하는 대형종이고, 독성이 강해 매우 위험하다.

우리나라 자생종인 보름달물해파리우리나라 자생종인 보름달물해파리

문제는 노무라입깃해파리 같은 '독성 해파리' 출현종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통영시 사량도 연안에서 발견됐다고 언급한 '커튼원양해파리'는 이름에 원양(遠洋)이 들어간다. 원래대로라면 먼 바다에서 발견되어야 할 개체가 우리 연안해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커튼원양해파리는 지난해와 올해 영산강 하구에서 집중적으로 출몰하고 있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서 유입된 노무라입깃해파리중국에서 유입된 노무라입깃해파리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윤석현 연구관은 " 독성해파리와 관해파리류는 아열대성 해파리인데, 지속적으로 우리 해역에 출현하는 건 기후 변화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가을의 남해안 수온은 예년보다 1∼2도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 해파리, 원전도 멈춘다

해파리 피해, 우습게 볼 것 아니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는 취수구에 해파리가 유입돼 발전을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경북 울진의 한울원전도 2001년과 2006년, 해파리 유입으로 가동을 멈춘 적이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해파리와 유사한 대형 플랑크톤 '살파'가 유입돼 발전을 멈추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2013년, 영국에선 2011년 해파리로 인한 원전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전들은 해파리 유입을 막는 특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어민들 피해도 심각하다. 해파리가 그물에 들어오면,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그나마 잡힌 고기도 모두 그물 밖으로 빠져나간다. 몸에서 수분이 98%를 차지하는 해파리는 그물 속에서 점액질을 분비하며 죽어간다. 부패하면서 물고기 상품성을 떨어트리고, 막을 형성해 그물을 막는다.

■ 사라진 꿀벌 78억 마리

바다에서 해파리가 늘고 있다면, 땅에선 꿀벌이 사라진다. 지난 겨울과 올 봄 사이 전국에서 78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폐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양봉 농가 약 2만 3,000가구(약 227만 개 벌통) 중 4,173가구(약 39만 개 벌통)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벌통 하나에 사는 꿀벌 개체수를 2만 마리로 추산하면, 꿀벌 약 78억 마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농촌진흥청의 민관 합동 조사에 따르면 원인은 이상기후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9월~10월 발생한 저온 현상이 꿀벌 발육을 저해했고, 11월과 12월에는 고온 현상이 발생해 봉군(蜂群, 벌들의 떼)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꿀벌을 잡아먹는 아열대성 육식 곤충, 등검은말벌이 유입되면서 꿀벌 개체수를 크게 감소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 수박값 폭등…꿀벌 부족 탓?

최근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오른 수박도 꿀벌 실종이 원인이란 분석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박의 수분기(3월 중하순)에 꿀벌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수분이 제대로 안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국내 농작물 재배 현장에서 수분 매개자로 꿀벌 의존도는 2011년 48.4%에서 2020년 67.2%로 증가했다. 중국 쓰촨성에선 살충제 대량 살포로 꿀벌이 사라지자 '인간 벌'을 동원해 수분을 매개한 사례도 있다.

중국 쓰촨성의 ‘인간 벌’ (출처 = www.theguardian.com)중국 쓰촨성의 ‘인간 벌’ (출처 = www.theguardian.com)

다만, 5월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부터 꿀벌의 번식이 왕성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름 이후에는 꿀벌 감소에 따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촌진흥청은 '꿀벌 실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484억 원을 투입해 밀원(꽃과 꽃가루를 통해 꿀벌의 생산을 돕는 식물) 개발과 생태계 보전에 나서기로 했다.

도시 양봉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이들도 있다. 올해 4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옥상에는 꿀벌 12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케이비(K-Bee)' 양봉장이 조성됐다. 도시양봉가인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는 "벌의 다양성을 지키지 못하면 작물의 다양성도 지키기 어렵다"라면서 "옥상에 간이 서식지를 만들거나 꽃 한 송이를 심는 것만으로도 벌을 도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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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파리 늘고 꿀벌 사라지고…기후 변화의 역습
    • 입력 2022-07-05 07:00:16
    취재K

지금 남해는 해파리떼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해파리 출몰 빈도 조사에서 '강(强) 독성'인 노무라입깃해파리와 커튼원양해파리가 각각 통영시 두미도 연안과 사량도 연안에서 올여름 처음 발견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에는 전북과 전남, 경남 해역에 '약(弱) 독성'인 보름달물해파리 주의보가 발령됐다. 특히, 전남 득량만에서는 보름달물해파리의 부유 유생(성체가 되기 전 어린 개체)이 100㎡당 많게는 162개체가 발견되고 있다.


■ 늘어나는 독성 해파리

우리나라에 출몰하는 해파리는 크게 두 종류다. 보름달물해파리와 노무라입깃해파리. 보름달물해파리는 국내 자생종으로, 6월에서 10월까지 자주 보인다. 반면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유입된다. 원래 7월 중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그 시기가 조금 빨라졌다. 최대 갓길이 30㎝인 보름달물해파리에 비해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최대 길이가 1m에 달하는 대형종이고, 독성이 강해 매우 위험하다.

우리나라 자생종인 보름달물해파리
문제는 노무라입깃해파리 같은 '독성 해파리' 출현종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통영시 사량도 연안에서 발견됐다고 언급한 '커튼원양해파리'는 이름에 원양(遠洋)이 들어간다. 원래대로라면 먼 바다에서 발견되어야 할 개체가 우리 연안해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커튼원양해파리는 지난해와 올해 영산강 하구에서 집중적으로 출몰하고 있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서 유입된 노무라입깃해파리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윤석현 연구관은 " 독성해파리와 관해파리류는 아열대성 해파리인데, 지속적으로 우리 해역에 출현하는 건 기후 변화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가을의 남해안 수온은 예년보다 1∼2도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 해파리, 원전도 멈춘다

해파리 피해, 우습게 볼 것 아니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는 취수구에 해파리가 유입돼 발전을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경북 울진의 한울원전도 2001년과 2006년, 해파리 유입으로 가동을 멈춘 적이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해파리와 유사한 대형 플랑크톤 '살파'가 유입돼 발전을 멈추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2013년, 영국에선 2011년 해파리로 인한 원전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전들은 해파리 유입을 막는 특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어민들 피해도 심각하다. 해파리가 그물에 들어오면,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그나마 잡힌 고기도 모두 그물 밖으로 빠져나간다. 몸에서 수분이 98%를 차지하는 해파리는 그물 속에서 점액질을 분비하며 죽어간다. 부패하면서 물고기 상품성을 떨어트리고, 막을 형성해 그물을 막는다.

■ 사라진 꿀벌 78억 마리

바다에서 해파리가 늘고 있다면, 땅에선 꿀벌이 사라진다. 지난 겨울과 올 봄 사이 전국에서 78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폐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양봉 농가 약 2만 3,000가구(약 227만 개 벌통) 중 4,173가구(약 39만 개 벌통)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벌통 하나에 사는 꿀벌 개체수를 2만 마리로 추산하면, 꿀벌 약 78억 마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농촌진흥청의 민관 합동 조사에 따르면 원인은 이상기후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9월~10월 발생한 저온 현상이 꿀벌 발육을 저해했고, 11월과 12월에는 고온 현상이 발생해 봉군(蜂群, 벌들의 떼)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꿀벌을 잡아먹는 아열대성 육식 곤충, 등검은말벌이 유입되면서 꿀벌 개체수를 크게 감소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 수박값 폭등…꿀벌 부족 탓?

최근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오른 수박도 꿀벌 실종이 원인이란 분석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박의 수분기(3월 중하순)에 꿀벌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수분이 제대로 안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국내 농작물 재배 현장에서 수분 매개자로 꿀벌 의존도는 2011년 48.4%에서 2020년 67.2%로 증가했다. 중국 쓰촨성에선 살충제 대량 살포로 꿀벌이 사라지자 '인간 벌'을 동원해 수분을 매개한 사례도 있다.

중국 쓰촨성의 ‘인간 벌’ (출처 = www.theguardian.com)
다만, 5월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부터 꿀벌의 번식이 왕성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름 이후에는 꿀벌 감소에 따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촌진흥청은 '꿀벌 실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484억 원을 투입해 밀원(꽃과 꽃가루를 통해 꿀벌의 생산을 돕는 식물) 개발과 생태계 보전에 나서기로 했다.

도시 양봉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이들도 있다. 올해 4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옥상에는 꿀벌 12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케이비(K-Bee)' 양봉장이 조성됐다. 도시양봉가인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는 "벌의 다양성을 지키지 못하면 작물의 다양성도 지키기 어렵다"라면서 "옥상에 간이 서식지를 만들거나 꽃 한 송이를 심는 것만으로도 벌을 도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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