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백신 인과성이 없나, 따질 의지가 없나”…분향소는 철거 명령

입력 2022.07.05 (10:40) 수정 2022.07.2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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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광장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숨진 사람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들은 백신과 부작용에 대한 인과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입증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달 중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곳, 지금은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회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백신 접종 두 달여 만에 고3 아들을 잃은 장성철 씨는 "분향소라도 있어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한 번씩 나와서 크게 울기도 하고, 회원들과 슬픔을 나눈다"며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코백회 회원들의 요구는 백신과 부작용과의 인과성을 무조건 인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들이 겪는 부작용이 백신으로 인한 게 아니라면 그걸 정부가 입증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백신 접종을 독려한 만큼, 인과성을 지금보다 넓게 인정하고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료비를 우선 지원해달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 너도나도 '백신 국가책임제' 약속

한때는 이곳 분향소도 북적였습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는 정치인들이 들러 너도나도 '백신 국가책임제'를 약속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들은 인과성이 없는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백신 접종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해야 한다(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거나, 피해자에게 인과관계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관료주의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조치(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지금까지 이곳을 찾은 정치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때 법안이 활발히 발의됐지만, 지금은 논의조차 멈춰 있습니다. 국회에는 예방 접종 후 질병·장애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인과성 여부와 관계없이 진료비 등을 지원할 수 있게 하거나, 인과성 입증 책임을 질병관리청장이 부담하도록 규정해 피해보상 요건을 완화하도록 하는 법안들이 여러 건 올라와 있지만, 모두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 도덕적 해이·현실적인 어려움?

국회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에서 지난해 11월에 낸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입법기관이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검토보고서에는 "진료비를 우선 지원하였으나 이후 예방접종이나 의약품 투여와 발생한 피해 간에 인과성이 불인정돼 지급된 금액을 환수하려는 경우…보상 청구인의 혼란과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보상금 우선 지원 제도를 악용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돼 있습니다.


또 입증 책임을 정부에 두는 것에 대해서는 "예방접종 등과 피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 입증은 접종자 개인의 건강상태와 질병 유무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는데, 접종자 개인의 사정을 국가가 파악하기는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냈습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와 '현실적인 어려움', 이는 백신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정부 기관, 전문가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인과성이 없나, 인과성 따질 의지가 없나

이 같은 인식은 코백회 회원들이 겪는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회원들은 공통적으로 인과성 입증의 첫 발조차 떼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이상 반응을 신고하고 답변을 받는 데까지 수 개월이 걸립니다. 신고 결과가 나와야 그걸 갖고 이의 신청을 하든 피해보상 신청을 하든 할 텐데 이것부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해 1차 백신 접종 후 닷새 만에 뇌경색 진단을 받은 김창호 씨는 "지난해 9월에 신고했는데 여태 답을 못 받았다"며, "논문 심사하는 것도 아니고 1년이 다 돼가는데 답변조차 없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장성철 씨 역시 아들의 부검을 마치고도 백신이나 코로나와 관련된 내용은 한 줄도 없는 부검 소견서를 받아들어야 했습니다.

■ 3분 만에 '인과관계 없음'… 역학조사관 의견도 반려

가까스로 피해보상전문위 단계까지 가면 더 큰 장벽이 서 있습니다. 질병청 산하 피해보상전문위는 백신 접종 이후 이상 반응의 인과성과 피해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곳으로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질병청 산하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및 피해보상전문위 회의' 녹취록을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녹취록에선 역학조사관과 전문위원이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며 백신 접종과 사망의 인과성을 인정하라 촉구하고 다양한 근거도 제시하는데도 불구하고, '질병청 지침에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그조차도 한 건당 논의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인과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가 정말 인과성이 없어서인지, 방역 당국이 인과성을 판단할 의지조차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이상 반응이 신고된 사망자 2천236명 중 단 6명만이 인과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보상금을 악용할 거라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것은 허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들을 잃은 장성철 씨는 "저 역시도 애들이나 주위 사람들한테 백신을 맞으라고 장려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정부만 믿고 아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유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뇌경색 진단 후 직장을 잃은 김창호 씨는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잊혀질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집권 100일 이내에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코로나19 백신 피해 회복을 위한 국가 책임제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연구용역을 시작한 단계이고 피해보상이 소급 적용될 지도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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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백신 인과성이 없나, 따질 의지가 없나”…분향소는 철거 명령
    • 입력 2022-07-05 10:40:16
    • 수정2022-07-25 08:16:21
    취재후·사건후

서울 청계광장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숨진 사람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들은 백신과 부작용에 대한 인과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입증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달 중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곳, 지금은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회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백신 접종 두 달여 만에 고3 아들을 잃은 장성철 씨는 "분향소라도 있어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한 번씩 나와서 크게 울기도 하고, 회원들과 슬픔을 나눈다"며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코백회 회원들의 요구는 백신과 부작용과의 인과성을 무조건 인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들이 겪는 부작용이 백신으로 인한 게 아니라면 그걸 정부가 입증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백신 접종을 독려한 만큼, 인과성을 지금보다 넓게 인정하고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료비를 우선 지원해달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 너도나도 '백신 국가책임제' 약속

한때는 이곳 분향소도 북적였습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는 정치인들이 들러 너도나도 '백신 국가책임제'를 약속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들은 인과성이 없는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백신 접종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해야 한다(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거나, 피해자에게 인과관계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관료주의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조치(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지금까지 이곳을 찾은 정치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때 법안이 활발히 발의됐지만, 지금은 논의조차 멈춰 있습니다. 국회에는 예방 접종 후 질병·장애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인과성 여부와 관계없이 진료비 등을 지원할 수 있게 하거나, 인과성 입증 책임을 질병관리청장이 부담하도록 규정해 피해보상 요건을 완화하도록 하는 법안들이 여러 건 올라와 있지만, 모두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 도덕적 해이·현실적인 어려움?

국회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에서 지난해 11월에 낸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입법기관이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검토보고서에는 "진료비를 우선 지원하였으나 이후 예방접종이나 의약품 투여와 발생한 피해 간에 인과성이 불인정돼 지급된 금액을 환수하려는 경우…보상 청구인의 혼란과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보상금 우선 지원 제도를 악용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돼 있습니다.


또 입증 책임을 정부에 두는 것에 대해서는 "예방접종 등과 피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 입증은 접종자 개인의 건강상태와 질병 유무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는데, 접종자 개인의 사정을 국가가 파악하기는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냈습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와 '현실적인 어려움', 이는 백신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정부 기관, 전문가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인과성이 없나, 인과성 따질 의지가 없나

이 같은 인식은 코백회 회원들이 겪는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회원들은 공통적으로 인과성 입증의 첫 발조차 떼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이상 반응을 신고하고 답변을 받는 데까지 수 개월이 걸립니다. 신고 결과가 나와야 그걸 갖고 이의 신청을 하든 피해보상 신청을 하든 할 텐데 이것부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해 1차 백신 접종 후 닷새 만에 뇌경색 진단을 받은 김창호 씨는 "지난해 9월에 신고했는데 여태 답을 못 받았다"며, "논문 심사하는 것도 아니고 1년이 다 돼가는데 답변조차 없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장성철 씨 역시 아들의 부검을 마치고도 백신이나 코로나와 관련된 내용은 한 줄도 없는 부검 소견서를 받아들어야 했습니다.

■ 3분 만에 '인과관계 없음'… 역학조사관 의견도 반려

가까스로 피해보상전문위 단계까지 가면 더 큰 장벽이 서 있습니다. 질병청 산하 피해보상전문위는 백신 접종 이후 이상 반응의 인과성과 피해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곳으로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질병청 산하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및 피해보상전문위 회의' 녹취록을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녹취록에선 역학조사관과 전문위원이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며 백신 접종과 사망의 인과성을 인정하라 촉구하고 다양한 근거도 제시하는데도 불구하고, '질병청 지침에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그조차도 한 건당 논의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인과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가 정말 인과성이 없어서인지, 방역 당국이 인과성을 판단할 의지조차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이상 반응이 신고된 사망자 2천236명 중 단 6명만이 인과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보상금을 악용할 거라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것은 허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들을 잃은 장성철 씨는 "저 역시도 애들이나 주위 사람들한테 백신을 맞으라고 장려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정부만 믿고 아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유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뇌경색 진단 후 직장을 잃은 김창호 씨는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잊혀질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집권 100일 이내에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코로나19 백신 피해 회복을 위한 국가 책임제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연구용역을 시작한 단계이고 피해보상이 소급 적용될 지도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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