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란 책'이 있습니다. 말기 환자들을 돌보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본 일본인 의사 오츠 슈이츠가 쓴 산문집입니다. 그는 책에서, 지나온 생을 돌아보기 마련인 말기 암 환자들이 의사인 자신에게 '후회'하는 일들을 털어놓고는 했다고 밝힙니다.
죽음 앞에서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며 후회가 되는 일이 있다고 말을 거는 환자들을 접하며, 그는 그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자 얘기를 들어줍니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그는 그렇게 삶이 '끝나가는' 여러 환자를 돌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발견합니다. 죽음 직전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는데도 비슷한 내용의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일종의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들의 말을 모아 글을 썼습니다. 글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 책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가 책에서 든 첫 번째 후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 이웃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왜 고맙다는 말에 인색했을까, 죽음을 앞에 두니까 그게 자꾸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두 번째 후회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을 때 흔히 하게 되는 세 번째 후회로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을 들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오만과 자만을 후회하는 여러 말기 환자들을 목격한 겁니다.
네 번째 후회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이었습니다. 오직 자신만 알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젊은 날에 대한 후회였습니다.
책을 쓴 오츠 슈이치에 의하면,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후회는 대부분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회한 가득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죽음을 앞두고 하는 얘기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얘기에는 다들 귀를 기울이고는 합니다. 지난달 말,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던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써 내려 간 글이 공개됐을 때도 그랬습니다. 무슨 얘기를 남겼을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고 이어령 교수 얘기입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과 새천년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비롯해 수많은 저작을 남긴 이어령 교수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 KBS 뉴스9 2019.12.17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수술받았던 이어령 교수는 항암치료 대신에 마지막 저작 시리즈인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병색이 짙어져 키보드 두드리기도 힘들게 되자, 2019년 10월부터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인 지난 1월까지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을 자필로 기록했습니다. 육필원고를 쓴 겁니다.
147편의 단상을 남겼고, 이 가운데 110편이 책 '눈물 한 방울'에 실렸습니다. 각각의 글은 짧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연결돼 있습니다. 결국은 다 세상사에 얽힌 얘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소재는 다채롭고, 주제는 자유롭습니다. 마치 명상록이나 수상록 같기도 합니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여운이 남습니다. 출판사도 급히 읽을 필요 없다고 알려주려는 듯이, 쪽마다 적지 않은 여백을 남겼습니다. 책의 디자인만 보면 시집 같기도 합니다. 이어령 교수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 ‘눈물 한 방울’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치는 죽음이 가까워지면 이런저런 후회를 하기 마련이라고 전했지만, 이어령 교수는 후회에 관한 얘기를 따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20대 나이에 일간지 논설위원을 맡아 활약하는 등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지성이었던 그는 후회되는 일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후회라는 단어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물론 이어령 교수라고 후회 없는 생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넉 달 전에 출간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는 이어령 교수가 후회스런 일에 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후회되는 일은 있으신지요?"
이 질문에 이어령 교수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한 시간 강연만 하고 나와도 밤에 자다가 악 소리를 내는 사람이 나야.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갔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했구나······"
어쩌면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던 이어령 교수도, 보통 사람들처럼 낮에 있었던 일을 쑥스럽고 민망하게 생각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데도) 잠자리에서 '이불킥'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후회를 자주 한다고도 말을 합니다.
"글 쓰고 후회하고 또 쓰고 후회하고, 책 나올 때마다 후회한다고, 내가."
160여 권의 책을 냈으니, 그가 생전에 후회를 얼마나 많이 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키보드 자판 두드리기도 힘들어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남긴 글에는 후회에 관한 얘기가 없습니다. 다만,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그의 아쉬움은 작지만, 구체적입니다. 책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고 하면서도 책을 주문한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힘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몇 구절 서평 속에 나와 있는 것이 궁금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다. ······ 배달된 책보다 먼저 떠난다면 내가 호기심으로 찾던 그 말들은 닫힌 책갈피 속에 남을 것이다. 열지 않은 책 속에 책갈피 속에, 읽지 않은 몇 마디 말, 몇 줄의 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 2019.12.14. |
문 앞에 와 있는 죽음이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데도 호기심을 잃지 않은 노교수, 몇 구절 서평에 나와 있는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다 읽기 힘든 줄 알면서도 책을 주문한 겁니다.
죽음 앞에서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생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삶을 살다 간 그가 되뇐 단어가 있습니다.
눈물입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이성과 지성에 관해 얘기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힘들게 손으로 써 내려간 마지막 메모에는 눈물을 얘기했습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이제 인간은 박쥐가 걸리던 코로나도, 닭이 걸리던 조류인플루엔자도 걸린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눈물이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
단순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맺힌 눈물은 아닐 겁니다. 그가 말하는 눈물은, 나만 알고, 나만 생각해서는 나올 수 없는 눈물이었습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
이어령 교수는,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고 부를 많이 쌓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위해 또 남을 위해 흘릴 눈물이 없다면, 눈물 한 방울 없는 삶이라면, 그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음을 던집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도 눈물에 관한 얘기가 거듭 나옵니다.)
'큰 욕심, 엄청난 것 탐하지 않고 그저 새벽 바람에도 심호흡하고 감사해하는 저 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거기에 제 눈물도요. 그들은 눈물이라도 솔직히 흘릴 줄 알지만, 저는 눈물이 부끄러워 울지도 못해요.' |
죽음을 앞에 두고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삶을 반추한 이어령 교수, 그가 죽기 직전까지 직접 손으로 쓴 글씨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예쁜 글자체로 바뀌어서 책에 인쇄돼 있지만, 책에는 그의 시도, 산문도, 그림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육필원고를 그대로 실은 듯한 분위기도 피어납니다.
이어령 교수의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던 독자라면, 그가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눈물 한 방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책을 통해 시대의 지성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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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한 방울’…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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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7-09 10:00:11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란 책'이 있습니다. 말기 환자들을 돌보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본 일본인 의사 오츠 슈이츠가 쓴 산문집입니다. 그는 책에서, 지나온 생을 돌아보기 마련인 말기 암 환자들이 의사인 자신에게 '후회'하는 일들을 털어놓고는 했다고 밝힙니다.
죽음 앞에서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며 후회가 되는 일이 있다고 말을 거는 환자들을 접하며, 그는 그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자 얘기를 들어줍니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그는 그렇게 삶이 '끝나가는' 여러 환자를 돌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발견합니다. 죽음 직전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는데도 비슷한 내용의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일종의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들의 말을 모아 글을 썼습니다. 글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 책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가 책에서 든 첫 번째 후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 이웃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왜 고맙다는 말에 인색했을까, 죽음을 앞에 두니까 그게 자꾸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두 번째 후회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을 때 흔히 하게 되는 세 번째 후회로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을 들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오만과 자만을 후회하는 여러 말기 환자들을 목격한 겁니다.
네 번째 후회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이었습니다. 오직 자신만 알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젊은 날에 대한 후회였습니다.
책을 쓴 오츠 슈이치에 의하면,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후회는 대부분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회한 가득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죽음을 앞두고 하는 얘기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얘기에는 다들 귀를 기울이고는 합니다. 지난달 말,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던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써 내려 간 글이 공개됐을 때도 그랬습니다. 무슨 얘기를 남겼을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고 이어령 교수 얘기입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과 새천년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비롯해 수많은 저작을 남긴 이어령 교수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수술받았던 이어령 교수는 항암치료 대신에 마지막 저작 시리즈인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병색이 짙어져 키보드 두드리기도 힘들게 되자, 2019년 10월부터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인 지난 1월까지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을 자필로 기록했습니다. 육필원고를 쓴 겁니다.
147편의 단상을 남겼고, 이 가운데 110편이 책 '눈물 한 방울'에 실렸습니다. 각각의 글은 짧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연결돼 있습니다. 결국은 다 세상사에 얽힌 얘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소재는 다채롭고, 주제는 자유롭습니다. 마치 명상록이나 수상록 같기도 합니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여운이 남습니다. 출판사도 급히 읽을 필요 없다고 알려주려는 듯이, 쪽마다 적지 않은 여백을 남겼습니다. 책의 디자인만 보면 시집 같기도 합니다. 이어령 교수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치는 죽음이 가까워지면 이런저런 후회를 하기 마련이라고 전했지만, 이어령 교수는 후회에 관한 얘기를 따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20대 나이에 일간지 논설위원을 맡아 활약하는 등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지성이었던 그는 후회되는 일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후회라는 단어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물론 이어령 교수라고 후회 없는 생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넉 달 전에 출간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는 이어령 교수가 후회스런 일에 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후회되는 일은 있으신지요?"
이 질문에 이어령 교수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한 시간 강연만 하고 나와도 밤에 자다가 악 소리를 내는 사람이 나야.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갔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했구나······"
어쩌면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던 이어령 교수도, 보통 사람들처럼 낮에 있었던 일을 쑥스럽고 민망하게 생각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데도) 잠자리에서 '이불킥'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후회를 자주 한다고도 말을 합니다.
"글 쓰고 후회하고 또 쓰고 후회하고, 책 나올 때마다 후회한다고, 내가."
160여 권의 책을 냈으니, 그가 생전에 후회를 얼마나 많이 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키보드 자판 두드리기도 힘들어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남긴 글에는 후회에 관한 얘기가 없습니다. 다만,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그의 아쉬움은 작지만, 구체적입니다. 책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고 하면서도 책을 주문한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힘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몇 구절 서평 속에 나와 있는 것이 궁금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다. ······ 배달된 책보다 먼저 떠난다면 내가 호기심으로 찾던 그 말들은 닫힌 책갈피 속에 남을 것이다. 열지 않은 책 속에 책갈피 속에, 읽지 않은 몇 마디 말, 몇 줄의 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 2019.12.14. |
문 앞에 와 있는 죽음이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데도 호기심을 잃지 않은 노교수, 몇 구절 서평에 나와 있는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다 읽기 힘든 줄 알면서도 책을 주문한 겁니다.
죽음 앞에서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생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삶을 살다 간 그가 되뇐 단어가 있습니다.
눈물입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이성과 지성에 관해 얘기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힘들게 손으로 써 내려간 마지막 메모에는 눈물을 얘기했습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이제 인간은 박쥐가 걸리던 코로나도, 닭이 걸리던 조류인플루엔자도 걸린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눈물이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
단순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맺힌 눈물은 아닐 겁니다. 그가 말하는 눈물은, 나만 알고, 나만 생각해서는 나올 수 없는 눈물이었습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
이어령 교수는,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고 부를 많이 쌓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위해 또 남을 위해 흘릴 눈물이 없다면, 눈물 한 방울 없는 삶이라면, 그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음을 던집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도 눈물에 관한 얘기가 거듭 나옵니다.)
'큰 욕심, 엄청난 것 탐하지 않고 그저 새벽 바람에도 심호흡하고 감사해하는 저 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거기에 제 눈물도요. 그들은 눈물이라도 솔직히 흘릴 줄 알지만, 저는 눈물이 부끄러워 울지도 못해요.' |
죽음을 앞에 두고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삶을 반추한 이어령 교수, 그가 죽기 직전까지 직접 손으로 쓴 글씨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예쁜 글자체로 바뀌어서 책에 인쇄돼 있지만, 책에는 그의 시도, 산문도, 그림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육필원고를 그대로 실은 듯한 분위기도 피어납니다.
이어령 교수의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던 독자라면, 그가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눈물 한 방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책을 통해 시대의 지성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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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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