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를 만나다

입력 2022.07.11 (21:29) 수정 2022.07.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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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사람 덕분에 어렵고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던 ‘수학'을 다시 보게 됐다는 분들 많습니다.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큰 영예죠.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 주말 시상식을 마치고 귀국했고, 오늘(11일) KBS에 직접 나왔습니다.

빨리 만나보죠.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필즈상 받는다는 걸 올해 초, 미리 들으셨다고 제가 얘기를 들었는데 정확히 언제일까요?

[답변]

정확히 언제인지는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러시아 대통령에게 메달을 전달받기로 돼 있었으니까 전쟁이 나기 직전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럼 한동안 비밀을 품은 수학자로 사신 겁니다.

어떤 마음이셨는지요?

[답변]

연락을 듣고 다른 소속 기관장님들 그리고 홍보를 담당해 주시는 분들 이외에는 아내에게는 적어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아내를 찾아봤는데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고민하다가 깨워서 슬쩍 얘기를 해주니까 잠결에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다시 자더라고요.

오히려 환호성 지르고 껴안아주고 그러는 것보다도 그렇게 차분하게 대응해 주니까 제 마음도 좀 더 좋고 든든하더라고요.

[앵커]

국내 반응들, 많이 언론 보도 보셨겠지만 성장과정이 화제가 많이 됐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 한국에서 다녔지만 “한국 교육이 이룬 성취”가 아니라 “한국 교육이 이룬 예외적 성취” 라는 평가도 나오거든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제 스스로 어린 시절을 어렴풋이 기억해 보면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특별히 떨어지는 것도 없지만 특징적이거나 특출난 면도 없는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은데요.

그 이후로 초중고 대학교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특별하고 특출한 친구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께 영향을 받고 배우면서 지금의 제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제 항상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지금 제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인생의 전반기에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면서 배웠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 자신한테는 굉장히 가치 있는,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는 시절이었다고 생각해요.

[앵커]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이 내게는 최적의 경로였다."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중에 하나로 이제 시인을 한 때 꿈꿨다고 하셨는데, 가장 좋아하는 싯구라고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입니다.

왜 이 시가 좋으시는지?

[답변]

그때 제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았고 제 안에 깊은 곳에 있던 어떤 것을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제 중학생 자신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중2병' 걸렸던 게 제 때 치료되지 않아서 있었던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뒤돌아 생각해서 보면 저는 이제 멋진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멋진 시를 쓰는 사람이 빨리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서 아무래도 좀 진정성이 부족해서 시의 길로는 멀리 가지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앵커]

'시인이 안 되면 과학 기자가 되자' 이런 생각도 잠시 하셨다던데, KBS에도 과학기자가 있습니다만, 그 이유는 뭘까요?

[답변]

제가 글 쓰는 사람 치고는 과학에 취미도 있고 적성도 있어서 시 쓰기로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라는 자각을 한 이후에, 말하자면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생각해봤던 진로인데요.

아무래도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거라, 물론 과학 저널리스트가 굉장히 멋진 직업이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은 없어요.

근데 현실적인 이유로 선택한 차선이 제가 그때 생각했던 최선의 길보다도 더 나은 길로 이끌어줬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 감사하게 느끼고 있어요.

[앵커]

지난주 공항에 들어오실 때 8살 아들이 이제 마중을 나갔죠.

사진이 보이는데, 학교에 들어갔을텐데 아빠 허준이의‘수학교육법', 따로 있을까요?

[답변]

하루에 수학 한 문제를 같이 하는데요.

단이가 수학 문제를 만들어 오면 제가 풀고 단이가 채점을 해서 돌려주는 식으로 진행을 해요.

대단한 문제를 하는 거는 아니고요.

보통 동그라미를 몇 개 그려놓고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맞춰봐라' 이런 식의 문제들인데 제가 하도 제까닥 재까닥 잘 맞추니까 단이가 약이 올라서 그런지 이제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동그라미를 많이 그려서 몇 개인지 맞춰보라 이렇게 하더라고요.

단이는 아직 곱셈을 모르는데 예컨대 동그라미 130개를 정확하게 세야 하는 문제를 낼 때 130개를 13개씩 10줄로 또박또박 그려서 주면 제가 제까닥 130개라는 걸 맞추고, 아무런 규칙 없이 무작위로 130개를 찍어 놓으면 제가 한동안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실수를 하는 거를 알아채더라고요.

부모로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앵커]

아시다시피 한국은 입시 때문에 수학에 그야말로 목숨 거는 나랍니다.

그런데 입시 문제 잘 푸는 학생은 많아도 진짜 수학 잘하는 학생은 없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답변]

이거 어려운 주제인데요.

아무래도 소중한 학창시절을 공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 받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참 적성이 있는 학생들이 실수 없이 빠르게 풀어내야 된다 그런 걱정 없이 자기 마음이 가고 흥미가 가는 대로 거침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또 특히 20대 학생들은 추후에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 과목을 배우기 시작할 때 탄탄한 준비가 이미 돼 있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잘 준비가 돼 있었으면 해요.

학생분들의 경우 아무래도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입시라는 부담감이 크겠지만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실수 안 하는 공부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거침없이 과감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또 사회 어른들은 이제 그러한 학생들의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도록 좋은 제도를 잘 마련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관련 있는 얘기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9시 뉴스 시청자들을 위해서 이제 미리 저희가 부탁을 드렸습니다.

칠판과 교수님이 즐겨 쓰신다는 분필을 준비해서 간단한 인사말을 청했는데, "건강한 마음으로 꾸준히 즐겁게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뭘 강조하고 싶으셨는지?

[답변]

가장 이제 중요한 과학과 수학에서의 진보는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달성하려고 하는 그러한 작은 것보다 순전히 흥미에서 호기심이 동안 놀이에서 비롯한 탐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런 즐거워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으려면 마음이 건강해야 되고 또 그런 생각하는 행위 자체를 즐겨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앵커]

허준이 교수님이 인생의 롤 모델을 적어둔 수첩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허준이를 목표로 즐겁게 수학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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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를 만나다
    • 입력 2022-07-11 21:29:59
    • 수정2022-07-12 14: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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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사람 덕분에 어렵고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던 ‘수학'을 다시 보게 됐다는 분들 많습니다.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큰 영예죠.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 주말 시상식을 마치고 귀국했고, 오늘(11일) KBS에 직접 나왔습니다.

빨리 만나보죠.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필즈상 받는다는 걸 올해 초, 미리 들으셨다고 제가 얘기를 들었는데 정확히 언제일까요?

[답변]

정확히 언제인지는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러시아 대통령에게 메달을 전달받기로 돼 있었으니까 전쟁이 나기 직전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럼 한동안 비밀을 품은 수학자로 사신 겁니다.

어떤 마음이셨는지요?

[답변]

연락을 듣고 다른 소속 기관장님들 그리고 홍보를 담당해 주시는 분들 이외에는 아내에게는 적어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아내를 찾아봤는데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고민하다가 깨워서 슬쩍 얘기를 해주니까 잠결에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다시 자더라고요.

오히려 환호성 지르고 껴안아주고 그러는 것보다도 그렇게 차분하게 대응해 주니까 제 마음도 좀 더 좋고 든든하더라고요.

[앵커]

국내 반응들, 많이 언론 보도 보셨겠지만 성장과정이 화제가 많이 됐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 한국에서 다녔지만 “한국 교육이 이룬 성취”가 아니라 “한국 교육이 이룬 예외적 성취” 라는 평가도 나오거든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제 스스로 어린 시절을 어렴풋이 기억해 보면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특별히 떨어지는 것도 없지만 특징적이거나 특출난 면도 없는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은데요.

그 이후로 초중고 대학교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특별하고 특출한 친구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께 영향을 받고 배우면서 지금의 제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제 항상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지금 제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인생의 전반기에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면서 배웠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 자신한테는 굉장히 가치 있는,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는 시절이었다고 생각해요.

[앵커]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이 내게는 최적의 경로였다."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중에 하나로 이제 시인을 한 때 꿈꿨다고 하셨는데, 가장 좋아하는 싯구라고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입니다.

왜 이 시가 좋으시는지?

[답변]

그때 제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았고 제 안에 깊은 곳에 있던 어떤 것을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제 중학생 자신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중2병' 걸렸던 게 제 때 치료되지 않아서 있었던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뒤돌아 생각해서 보면 저는 이제 멋진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멋진 시를 쓰는 사람이 빨리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서 아무래도 좀 진정성이 부족해서 시의 길로는 멀리 가지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앵커]

'시인이 안 되면 과학 기자가 되자' 이런 생각도 잠시 하셨다던데, KBS에도 과학기자가 있습니다만, 그 이유는 뭘까요?

[답변]

제가 글 쓰는 사람 치고는 과학에 취미도 있고 적성도 있어서 시 쓰기로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라는 자각을 한 이후에, 말하자면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생각해봤던 진로인데요.

아무래도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거라, 물론 과학 저널리스트가 굉장히 멋진 직업이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은 없어요.

근데 현실적인 이유로 선택한 차선이 제가 그때 생각했던 최선의 길보다도 더 나은 길로 이끌어줬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 감사하게 느끼고 있어요.

[앵커]

지난주 공항에 들어오실 때 8살 아들이 이제 마중을 나갔죠.

사진이 보이는데, 학교에 들어갔을텐데 아빠 허준이의‘수학교육법', 따로 있을까요?

[답변]

하루에 수학 한 문제를 같이 하는데요.

단이가 수학 문제를 만들어 오면 제가 풀고 단이가 채점을 해서 돌려주는 식으로 진행을 해요.

대단한 문제를 하는 거는 아니고요.

보통 동그라미를 몇 개 그려놓고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맞춰봐라' 이런 식의 문제들인데 제가 하도 제까닥 재까닥 잘 맞추니까 단이가 약이 올라서 그런지 이제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동그라미를 많이 그려서 몇 개인지 맞춰보라 이렇게 하더라고요.

단이는 아직 곱셈을 모르는데 예컨대 동그라미 130개를 정확하게 세야 하는 문제를 낼 때 130개를 13개씩 10줄로 또박또박 그려서 주면 제가 제까닥 130개라는 걸 맞추고, 아무런 규칙 없이 무작위로 130개를 찍어 놓으면 제가 한동안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실수를 하는 거를 알아채더라고요.

부모로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앵커]

아시다시피 한국은 입시 때문에 수학에 그야말로 목숨 거는 나랍니다.

그런데 입시 문제 잘 푸는 학생은 많아도 진짜 수학 잘하는 학생은 없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답변]

이거 어려운 주제인데요.

아무래도 소중한 학창시절을 공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 받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참 적성이 있는 학생들이 실수 없이 빠르게 풀어내야 된다 그런 걱정 없이 자기 마음이 가고 흥미가 가는 대로 거침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또 특히 20대 학생들은 추후에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 과목을 배우기 시작할 때 탄탄한 준비가 이미 돼 있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잘 준비가 돼 있었으면 해요.

학생분들의 경우 아무래도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입시라는 부담감이 크겠지만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실수 안 하는 공부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거침없이 과감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또 사회 어른들은 이제 그러한 학생들의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도록 좋은 제도를 잘 마련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관련 있는 얘기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9시 뉴스 시청자들을 위해서 이제 미리 저희가 부탁을 드렸습니다.

칠판과 교수님이 즐겨 쓰신다는 분필을 준비해서 간단한 인사말을 청했는데, "건강한 마음으로 꾸준히 즐겁게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뭘 강조하고 싶으셨는지?

[답변]

가장 이제 중요한 과학과 수학에서의 진보는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달성하려고 하는 그러한 작은 것보다 순전히 흥미에서 호기심이 동안 놀이에서 비롯한 탐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런 즐거워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으려면 마음이 건강해야 되고 또 그런 생각하는 행위 자체를 즐겨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앵커]

허준이 교수님이 인생의 롤 모델을 적어둔 수첩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허준이를 목표로 즐겁게 수학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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