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소비 1위’ 베트남에서 한국 라면은 왜 인기 없을까

입력 2022.07.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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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라면 부심'에 베트남이 상처를 입혔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의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은 87개. 부동의 세계 1위였던 한국(73개)을 처음 뛰어넘었다. 베트남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매년 20~30% 증가세를 보일 만큼 성장세가 뚜렷하다. 전체 라면 시장은 86억 개(2021년) 수준이다.

베트남 라면 시장이 급성장하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해 9월 '베트남 라면 시장 동향'을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공사는 베트남이 전세계 라면 시장의 허브로 발돋움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면류 소비량이 높아 한국 라면의 진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 도시 봉쇄 탓에 라면 소비 늘었나?

베트남의 '라면 사랑'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세계라면협회의 한국 대표 파트너사, 농심의 설명은 이렇다. "최근 베트남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구매력이 높아진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식보다 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베트남 현지에서 10년 넘게 기업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왜 베트남 시장인가>를 쓴 시장 분석가 유영국 씨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로 베트남 정부는 6개월 간 도시를 봉쇄하고, 3개월 간 집 밖으로 못 나가도록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개 아침이나 점심에 바깥에서 쌀국수를 먹는데, 그러질 못하다 보니 저임금 노동자들 중심으로 비상식량인 '라면' 소비가 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의 도시 봉쇄가 풀리자마자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유영국 씨 제공]지난해 10월 베트남의 도시 봉쇄가 풀리자마자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유영국 씨 제공]

베트남를 비롯해 동남아에선 65~85g 중량의 '미니 사이즈' 라면을 주로 먹는다. 한국의 봉지 라면은 보통 120g이다. (실제로 그램 기준으로 먹은 라면양을 따져보면 한국인이 베트남인보다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우리처럼 라면을 냄비에 끓여 먹지 않고, 대접에 라면과 스프를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다. 컵라면과 유사한 방식이다. 수돗물에 석회질이 많아 국물은 잘 마시지 않는다. 스프에 향신료 '고수'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 시큼한 맛이 난다고 한다.


■ 라면, 식품 수출 1위…베트남은 전체 수출국가 중 15위

라면은 올해 상반기 농축산식품 수출 품목 중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차지했다. 상반기만 3억 8,370만 달러를 수출해 '전통의 강호' 김(3억 7,590만 달러)을 제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늘어난 수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베트남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제품(매운맛, 할랄라면 등)이 인기를 끌고 대형유통매장, 편의점 및 온라인몰 등 다양한 유통망을 통한 입점이 확대되면서 수출이 증가했다"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라면 수출 1·2위 국가는 중국과 미국이다. 상반기 국가별 수출액은 중국이 9,190만 달러, 미국이 4,790만 달러로 두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6.3%를 차지한다.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태국 등 '신남방' 국가들 상반기 수출액은 7,220만 달러를 기록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를 보면 베트남 수출액은 약 700만 달러 가량으로, 전체 수출 국가 중 15위 수준이다. 동남아에서 한국 라면은 필리핀과 태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더 많이 팔리고 있다.

■ K-라면의 설익은 베트남 공략

베트남의 라면 시장은 자국 회사 중심이다. 2020년 기준 에이스쿡(Acecook Vietnam)이 33.2%의 시장 점유율로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는 시장점유율 20.7%의 마산그룹(Masan), 3위 Uniben 10.8%, 4위 Asia Cook 7.6% 순이다. 에이스쿡은 1993년 일본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 베트남 업체와 합작 형태로 설립한 회사다. 마산 컨슈머는 SK그룹과 국민연금이 5,300억원을 투자해 널리 알려진, '마산 그룹'의 대표 식품 자회사라고 한다.

팔도가 베트남 푸터성에 지은 1만 2,000제곱미터 규모의 현지 라면 공장                                              [사진제공 = 팔도]팔도가 베트남 푸터성에 지은 1만 2,000제곱미터 규모의 현지 라면 공장 [사진제공 = 팔도]

우리 라면 회사 '빅4'(농심·팔도·삼양·오뚜기)는 아직까지 베트남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만, 팔도가 2019년 베트남에서 약 344억 원 가량 매출을 올리면서 '톱10'에 처음 진입하기도 했다. 팔도는 2006년 베트남 법인(팔도비나)를 설립하고 2012년 한국 회사 중 처음으로 푸터성 푸닌현에 현지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라면 판매량은 12만 3,611개로, 전년 대비 10.3% 성장했다고 한다.

오뚜기도 2018년 베트남 북부에 라면공장을 설립하고, 80g 중량의 ‘진라면 미니’를 출시하는 등 현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심의 경우 호치민에 신라면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등 베트남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추세다. 삼양식품은 2018년 베트남 유통업체 ‘사이공 쿱’과 손잡고 '불닭볶음면' 등 주력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팔도가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라면 ‘코레노’팔도가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라면 ‘코레노’

하지만, 한국 라면회사들은 베트남 내 한인 시장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현재 베트남에는 한국인이 20만 명 정도 살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팔도의 한국 라면 코레노(KORENO)도 냄비에 끓여 먹는 '한국식 라면'이다. 컵라면과 비슷하게 라면을 조리하고, 국물을 먹지 않는 베트남의 식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한 라면회사 관계자는 "라면 수출은 중국 시장이 가장 '큰 손'이기 때문에 동남아 시장에 맞춰 면과 스프, 건더기 레시피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라고 말했다. 유영국 씨는 "식품회사들이 한국식 얼큰한 맛만 고집하면서 한류 마케팅에 기대는 건 한계가 있다"라면서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기 보다는 베트남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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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 소비 1위’ 베트남에서 한국 라면은 왜 인기 없을까
    • 입력 2022-07-12 08:00:18
    취재K

한국의 '라면 부심'에 베트남이 상처를 입혔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의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은 87개. 부동의 세계 1위였던 한국(73개)을 처음 뛰어넘었다. 베트남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매년 20~30% 증가세를 보일 만큼 성장세가 뚜렷하다. 전체 라면 시장은 86억 개(2021년) 수준이다.

베트남 라면 시장이 급성장하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해 9월 '베트남 라면 시장 동향'을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공사는 베트남이 전세계 라면 시장의 허브로 발돋움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면류 소비량이 높아 한국 라면의 진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 도시 봉쇄 탓에 라면 소비 늘었나?

베트남의 '라면 사랑'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세계라면협회의 한국 대표 파트너사, 농심의 설명은 이렇다. "최근 베트남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구매력이 높아진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식보다 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베트남 현지에서 10년 넘게 기업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왜 베트남 시장인가>를 쓴 시장 분석가 유영국 씨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로 베트남 정부는 6개월 간 도시를 봉쇄하고, 3개월 간 집 밖으로 못 나가도록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개 아침이나 점심에 바깥에서 쌀국수를 먹는데, 그러질 못하다 보니 저임금 노동자들 중심으로 비상식량인 '라면' 소비가 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의 도시 봉쇄가 풀리자마자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유영국 씨 제공]
베트남를 비롯해 동남아에선 65~85g 중량의 '미니 사이즈' 라면을 주로 먹는다. 한국의 봉지 라면은 보통 120g이다. (실제로 그램 기준으로 먹은 라면양을 따져보면 한국인이 베트남인보다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우리처럼 라면을 냄비에 끓여 먹지 않고, 대접에 라면과 스프를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다. 컵라면과 유사한 방식이다. 수돗물에 석회질이 많아 국물은 잘 마시지 않는다. 스프에 향신료 '고수'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 시큼한 맛이 난다고 한다.


■ 라면, 식품 수출 1위…베트남은 전체 수출국가 중 15위

라면은 올해 상반기 농축산식품 수출 품목 중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차지했다. 상반기만 3억 8,370만 달러를 수출해 '전통의 강호' 김(3억 7,590만 달러)을 제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늘어난 수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베트남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제품(매운맛, 할랄라면 등)이 인기를 끌고 대형유통매장, 편의점 및 온라인몰 등 다양한 유통망을 통한 입점이 확대되면서 수출이 증가했다"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라면 수출 1·2위 국가는 중국과 미국이다. 상반기 국가별 수출액은 중국이 9,190만 달러, 미국이 4,790만 달러로 두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6.3%를 차지한다.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태국 등 '신남방' 국가들 상반기 수출액은 7,220만 달러를 기록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를 보면 베트남 수출액은 약 700만 달러 가량으로, 전체 수출 국가 중 15위 수준이다. 동남아에서 한국 라면은 필리핀과 태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더 많이 팔리고 있다.

■ K-라면의 설익은 베트남 공략

베트남의 라면 시장은 자국 회사 중심이다. 2020년 기준 에이스쿡(Acecook Vietnam)이 33.2%의 시장 점유율로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는 시장점유율 20.7%의 마산그룹(Masan), 3위 Uniben 10.8%, 4위 Asia Cook 7.6% 순이다. 에이스쿡은 1993년 일본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 베트남 업체와 합작 형태로 설립한 회사다. 마산 컨슈머는 SK그룹과 국민연금이 5,300억원을 투자해 널리 알려진, '마산 그룹'의 대표 식품 자회사라고 한다.

팔도가 베트남 푸터성에 지은 1만 2,000제곱미터 규모의 현지 라면 공장                                              [사진제공 = 팔도]
우리 라면 회사 '빅4'(농심·팔도·삼양·오뚜기)는 아직까지 베트남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만, 팔도가 2019년 베트남에서 약 344억 원 가량 매출을 올리면서 '톱10'에 처음 진입하기도 했다. 팔도는 2006년 베트남 법인(팔도비나)를 설립하고 2012년 한국 회사 중 처음으로 푸터성 푸닌현에 현지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라면 판매량은 12만 3,611개로, 전년 대비 10.3% 성장했다고 한다.

오뚜기도 2018년 베트남 북부에 라면공장을 설립하고, 80g 중량의 ‘진라면 미니’를 출시하는 등 현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심의 경우 호치민에 신라면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등 베트남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추세다. 삼양식품은 2018년 베트남 유통업체 ‘사이공 쿱’과 손잡고 '불닭볶음면' 등 주력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팔도가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라면 ‘코레노’
하지만, 한국 라면회사들은 베트남 내 한인 시장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현재 베트남에는 한국인이 20만 명 정도 살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팔도의 한국 라면 코레노(KORENO)도 냄비에 끓여 먹는 '한국식 라면'이다. 컵라면과 비슷하게 라면을 조리하고, 국물을 먹지 않는 베트남의 식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한 라면회사 관계자는 "라면 수출은 중국 시장이 가장 '큰 손'이기 때문에 동남아 시장에 맞춰 면과 스프, 건더기 레시피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라고 말했다. 유영국 씨는 "식품회사들이 한국식 얼큰한 맛만 고집하면서 한류 마케팅에 기대는 건 한계가 있다"라면서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기 보다는 베트남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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