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태국의 저출산과 한국의 저출산을 비교해 보니

입력 2022.07.13 (07:00) 수정 2022.07.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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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태국의 저출산

놀랍게도 태국의 합계출산율은 1.09명(2021년)이다. 주변 베트남의 2.53명의 절반도 안된다. 1인당 소득이 8천달러 수준인 이 나라는 1인당 소득이 8만 달러 정도인 스위스만큼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나라는 늙어간다. 태국인들을 한 줄로 세워 제일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중위연령)는 40.1세다. 소득 5만 달러인 싱가포르 수준(42.2세)이다. 그러니 어느 외국 기업이 태국에 투자를 하겠는가(베트남의 중위연령은 32.5세, 라오스는 20.8세다).

이미 20%가 넘는 태국의 ‘노인 인구’는 곧 30%를 넘어간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노인이 된다. 태국의 노동인구 3,790만 명 중에서 2,050만 명은 사회보장법에 따른 연금이나 적립금 사회보장보험이 단 하나도 없다 (국가경제사회개발협의회/NESD).

짐작했겠지만 서민들이 저축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미국인이 평균 30세에 저축을 시작하지만, 태국인은 평균 42세에 저축을 시작해 50세쯤 은퇴한다. 사실 도시 서민들에겐 삶 자체가 투쟁이다. 공교육의 질은 형편없고, 병이 들어도 병원가기 쉽지않다. '생존도 힘든데 무슨 번식인가'.

하루하루가 힘든데, 엄청난 부의 격차는 눈앞에서 펼쳐진다. 도심 오염된 천변위에는 수십만 가구의 도시 서민들이 살고, 그 지천을 벗어나 짜오프라야강으로 가면 부자들이 고급 요트를 빌려 매일밤 파티를 연다. 부자에 대한 세율은 낮고, 서민들을 위한 복지혜택은 짜다.

자산 10억달러(1조 3천억원) 이상 부자가 한국보다 많다(급여가 한달 100만원 정도인 태국의 대졸 10년차 직장인이 1조 원을 모으려면 8만 3천년이 걸린다). 사회시스템은 대부분 부자나 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도록 설계 돼 있다(제비뽑기로 군대에 가는데 이상하게 부잣집 아들은 잘 안뽑힌다).

그런데도 개혁 의지가 약하다. 착하게 살면 다음 생(生)에는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라고 믿는 이 순한 불교의 나라 청년들은 이렇게 저출산이라는 카드로 사회에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고 있다.

태국 노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소득이 높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게 의료와 교육 복지는 멀리만 있다. 여기에 지나친 빈부격차가 더해져 출산율은 동남아 최저가 됐다.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희미한 사회일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어려워진다. 사진 THE BORGEN PROJECT태국 노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소득이 높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게 의료와 교육 복지는 멀리만 있다. 여기에 지나친 빈부격차가 더해져 출산율은 동남아 최저가 됐다.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희미한 사회일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어려워진다. 사진 THE BORGEN PROJECT

태국보다 소득이 훨씬 낮은 주변 캄보디아나 라오스는 여전히 출산율이 높다. 아직 산업화 초기인 이들 나라에서 자식은 노동력의 원천이다. 하지만 태국처럼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된 나라에서 자식은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원천이다. 이를 깨달은 젊은이들이 갑자기 애를 안낳는다.

그 돈으로 차라리 여행을 가고 72개월 할부로 차를 구입한다. 한국과 많이 닮았다. 출산하면 돈 몇푼 쥐어주려는 저출산 대책마저 똑같다. 무엇보다 다들 저출산이 제일 큰 사회문제라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외면하는 것도 한국과 닮았다. 이제 한국 이야기다.

2.한국의 저출산

가임 여성 1명이 2.3명을 낳아야 겨우 지금 인구가 유지된다. 고령사회 일본이 1.3명이다. 한국은 0.8명이다. 단연 비교불가, 압도적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 보통 1.3~1.8명, 우리가 경제 망해서 사람 살겠냐고 비판하던 그리스의 출산율이 1.3명이다(이런 통계가 믿기지 않으면 네이버에서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검색해보자. 지금 재학생 수가 나온다).

왜 결혼안하고 애를 낳지 않는지는 우리 모두가 너무 잘안다(다들 집에 그런 가족이 있지 않는가 또는 당사자거나). ‘사는 게 빡세서 그렇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의 생각은 거꾸로 간다.

일하는 시간 줄이는 거 반대한다. 주 52시간제도 풀어줄 분위기다. 벨기에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선진국은 주 4일제를 하나둘 공식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일하자는 분위기다.

임금 인상도 은근히 반대한다. 퇴임후 로펌에서 연 4억원 이상 자문료를 받았던 부총리는 최저임금이 9천원에서 더 오르는 게 걱정이다. 가장 저출산을 걱정해야 하는 경제부총리는 기업에 직원들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한다(우리 근로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58만원이다.2022년 4월/고용노동부). 지금 부총리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고시출신 사무관들의 급여명세서를 들고 이마트를 가보라. 월급 조금만 올리자는 말이 나오는가.

지난 2003년, 주 5일제를 도입할 때도 반대목소리가 높았다 (관련 뉴스 캡처). 이 저출산 시대에 다시 더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가 고개를 든다.  우리 경제는 캐나다 호주 스페인 수준인데, 주당 노동시간은 코스타리카와 칠레, 멕시코 수준이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인이  1년 1,400시간 정도 일하는 반면, 한국과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는 1,900시간 정도 일한다. (자료 OECD/2020년)지난 2003년, 주 5일제를 도입할 때도 반대목소리가 높았다 (관련 뉴스 캡처). 이 저출산 시대에 다시 더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가 고개를 든다. 우리 경제는 캐나다 호주 스페인 수준인데, 주당 노동시간은 코스타리카와 칠레, 멕시코 수준이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인이 1년 1,400시간 정도 일하는 반면, 한국과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는 1,900시간 정도 일한다. (자료 OECD/2020년)

집값이 비싸서, 또 전세값이 뛰어서 결혼을 안 한다. 하지만 획기적인 공공임대 공급은 없다. 그전에 나라빚을 먼저 걱정한다(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은 그럼 국가부채비율이 낮아서 임대아파트를 공급할까? 인구 5천만 명 이상,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7개 나라중에 한국의 GDP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제일 낮다. 이들 국가중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높다)

지방 균형발전도 대안이다. 살기 좋은 곳을 많이 만드는 게 저출산 대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서울이 더 중요하다. 솔직히 말해 기성세대는 지금 판을 깨는 게 싫다. 젊은이들이 널널하게 사는 것도 싫다. 육아휴직 가는 것도 못마땅하고 실업수당 올려주는 것도 싫고, 집에 며느리 있는데 학교에서 무상급식 해주는 것도 싫다.

결국 진짜 저출산 대책은 우리가 더 잘사는 나라로 가는 속도를 조절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70년동안 성장주의 깃발들고 달려온 우리는 '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듭시다”. 그럴수록 젊은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사회에 보복이라도 하듯이.

3.인생이 그런 것처럼 국가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는 미래의 성장을 위해서 오늘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1년 내내 휴가 안가고 일한 게 자랑이고,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상이 훈장이였다. 그렇게 만든 세계 9번째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 그 경제대국의 삶의 질은 30위다(Better life index 2020/자료 OECD).

그렇게 자살률 1위국가. 주당 노동시간 OECD 2위국가(멕시코 빼면 1위다), 상위 10개국 중 가장 가계부채가 높은 나라를 이룩했다. 덕분에 이 나라에선 결혼도 출산도 안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 됐다. 그렇게 언니가 동생에게 "너라도 결혼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 라고 조언하는 나라가 됐다.

"OECD국가중 멕시코와 한국의 주당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멕시코는 살인율이 가장 높고, 한국은 자살률이 가장 높다. 한 나라는 사는 게 힘들어 남을 죽이고, 또 한나라는 자신이 스스로 죽는다'

저출산만큼 경제에 해로운 것은 없다. GDP성장률은 사실 사람 한 명이 1년간 사고 먹고 즐긴 것의 합계다. 인구 1명이 줄면 그 GDP가 고스란히 마이너스다. 출산이 줄면 노령층이 증가하고 우리는 조만간 소수의 청년들이 다수의 노인을 부양해야한다. 청년 인구가 줄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지만, 그 일자리를 지탱할 소비(수요)도 같이 줄어든다. 우리는 앉아서 가난해진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도쿄 주변 위성도시를 가보라. 일자리가 늘어나는지...).

태국은 동남아에서 두 번째로 잘사는 나라다. 한국보다 더 화려한 호텔과 백화점이 있고, 더 멋진 골프장이 있고, 수억 원씩하는 슈퍼카도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렇게 0.1%를 위한 번쩍번쩍한 국가를 만들었더니 다수 젊은이들이 출산을 주저한다.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희미한 사회일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어려워진다. 태국 경제는 서서히 기울고 있다.

우리는 태국보다 훨씬 튼튼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출산을 거부한다. '라떼는 말이야'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대책도 안 나온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자고 한 게 언제인가.

느슨한 여유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성장엔진의 가속페달을 더 느슨하게 밟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결혼파업, 출산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오직 성장에만 매달려 개인의 삶을 후순위로 놓은 이웃 나라 일본의 경제는 지금 안녕한가.

저출산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 하나.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 그 망할 세상을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저출산은 단순히 인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의 결과물이다”
-박경숙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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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태국의 저출산과 한국의 저출산을 비교해 보니
    • 입력 2022-07-13 07:00:18
    • 수정2022-07-13 07:01:18
    특파원 리포트

1.태국의 저출산

놀랍게도 태국의 합계출산율은 1.09명(2021년)이다. 주변 베트남의 2.53명의 절반도 안된다. 1인당 소득이 8천달러 수준인 이 나라는 1인당 소득이 8만 달러 정도인 스위스만큼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나라는 늙어간다. 태국인들을 한 줄로 세워 제일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중위연령)는 40.1세다. 소득 5만 달러인 싱가포르 수준(42.2세)이다. 그러니 어느 외국 기업이 태국에 투자를 하겠는가(베트남의 중위연령은 32.5세, 라오스는 20.8세다).

이미 20%가 넘는 태국의 ‘노인 인구’는 곧 30%를 넘어간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노인이 된다. 태국의 노동인구 3,790만 명 중에서 2,050만 명은 사회보장법에 따른 연금이나 적립금 사회보장보험이 단 하나도 없다 (국가경제사회개발협의회/NESD).

짐작했겠지만 서민들이 저축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미국인이 평균 30세에 저축을 시작하지만, 태국인은 평균 42세에 저축을 시작해 50세쯤 은퇴한다. 사실 도시 서민들에겐 삶 자체가 투쟁이다. 공교육의 질은 형편없고, 병이 들어도 병원가기 쉽지않다. '생존도 힘든데 무슨 번식인가'.

하루하루가 힘든데, 엄청난 부의 격차는 눈앞에서 펼쳐진다. 도심 오염된 천변위에는 수십만 가구의 도시 서민들이 살고, 그 지천을 벗어나 짜오프라야강으로 가면 부자들이 고급 요트를 빌려 매일밤 파티를 연다. 부자에 대한 세율은 낮고, 서민들을 위한 복지혜택은 짜다.

자산 10억달러(1조 3천억원) 이상 부자가 한국보다 많다(급여가 한달 100만원 정도인 태국의 대졸 10년차 직장인이 1조 원을 모으려면 8만 3천년이 걸린다). 사회시스템은 대부분 부자나 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도록 설계 돼 있다(제비뽑기로 군대에 가는데 이상하게 부잣집 아들은 잘 안뽑힌다).

그런데도 개혁 의지가 약하다. 착하게 살면 다음 생(生)에는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라고 믿는 이 순한 불교의 나라 청년들은 이렇게 저출산이라는 카드로 사회에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고 있다.

태국 노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소득이 높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게 의료와 교육 복지는 멀리만 있다. 여기에 지나친 빈부격차가 더해져 출산율은 동남아 최저가 됐다.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희미한 사회일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어려워진다. 사진 THE BORGEN PROJECT
태국보다 소득이 훨씬 낮은 주변 캄보디아나 라오스는 여전히 출산율이 높다. 아직 산업화 초기인 이들 나라에서 자식은 노동력의 원천이다. 하지만 태국처럼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된 나라에서 자식은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원천이다. 이를 깨달은 젊은이들이 갑자기 애를 안낳는다.

그 돈으로 차라리 여행을 가고 72개월 할부로 차를 구입한다. 한국과 많이 닮았다. 출산하면 돈 몇푼 쥐어주려는 저출산 대책마저 똑같다. 무엇보다 다들 저출산이 제일 큰 사회문제라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외면하는 것도 한국과 닮았다. 이제 한국 이야기다.

2.한국의 저출산

가임 여성 1명이 2.3명을 낳아야 겨우 지금 인구가 유지된다. 고령사회 일본이 1.3명이다. 한국은 0.8명이다. 단연 비교불가, 압도적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 보통 1.3~1.8명, 우리가 경제 망해서 사람 살겠냐고 비판하던 그리스의 출산율이 1.3명이다(이런 통계가 믿기지 않으면 네이버에서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검색해보자. 지금 재학생 수가 나온다).

왜 결혼안하고 애를 낳지 않는지는 우리 모두가 너무 잘안다(다들 집에 그런 가족이 있지 않는가 또는 당사자거나). ‘사는 게 빡세서 그렇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의 생각은 거꾸로 간다.

일하는 시간 줄이는 거 반대한다. 주 52시간제도 풀어줄 분위기다. 벨기에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선진국은 주 4일제를 하나둘 공식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일하자는 분위기다.

임금 인상도 은근히 반대한다. 퇴임후 로펌에서 연 4억원 이상 자문료를 받았던 부총리는 최저임금이 9천원에서 더 오르는 게 걱정이다. 가장 저출산을 걱정해야 하는 경제부총리는 기업에 직원들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한다(우리 근로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58만원이다.2022년 4월/고용노동부). 지금 부총리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고시출신 사무관들의 급여명세서를 들고 이마트를 가보라. 월급 조금만 올리자는 말이 나오는가.

지난 2003년, 주 5일제를 도입할 때도 반대목소리가 높았다 (관련 뉴스 캡처). 이 저출산 시대에 다시 더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가 고개를 든다.  우리 경제는 캐나다 호주 스페인 수준인데, 주당 노동시간은 코스타리카와 칠레, 멕시코 수준이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인이  1년 1,400시간 정도 일하는 반면, 한국과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는 1,900시간 정도 일한다. (자료 OECD/2020년)
집값이 비싸서, 또 전세값이 뛰어서 결혼을 안 한다. 하지만 획기적인 공공임대 공급은 없다. 그전에 나라빚을 먼저 걱정한다(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은 그럼 국가부채비율이 낮아서 임대아파트를 공급할까? 인구 5천만 명 이상,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7개 나라중에 한국의 GDP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제일 낮다. 이들 국가중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높다)

지방 균형발전도 대안이다. 살기 좋은 곳을 많이 만드는 게 저출산 대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서울이 더 중요하다. 솔직히 말해 기성세대는 지금 판을 깨는 게 싫다. 젊은이들이 널널하게 사는 것도 싫다. 육아휴직 가는 것도 못마땅하고 실업수당 올려주는 것도 싫고, 집에 며느리 있는데 학교에서 무상급식 해주는 것도 싫다.

결국 진짜 저출산 대책은 우리가 더 잘사는 나라로 가는 속도를 조절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70년동안 성장주의 깃발들고 달려온 우리는 '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듭시다”. 그럴수록 젊은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사회에 보복이라도 하듯이.

3.인생이 그런 것처럼 국가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는 미래의 성장을 위해서 오늘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1년 내내 휴가 안가고 일한 게 자랑이고,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상이 훈장이였다. 그렇게 만든 세계 9번째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 그 경제대국의 삶의 질은 30위다(Better life index 2020/자료 OECD).

그렇게 자살률 1위국가. 주당 노동시간 OECD 2위국가(멕시코 빼면 1위다), 상위 10개국 중 가장 가계부채가 높은 나라를 이룩했다. 덕분에 이 나라에선 결혼도 출산도 안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 됐다. 그렇게 언니가 동생에게 "너라도 결혼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 라고 조언하는 나라가 됐다.

"OECD국가중 멕시코와 한국의 주당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멕시코는 살인율이 가장 높고, 한국은 자살률이 가장 높다. 한 나라는 사는 게 힘들어 남을 죽이고, 또 한나라는 자신이 스스로 죽는다'

저출산만큼 경제에 해로운 것은 없다. GDP성장률은 사실 사람 한 명이 1년간 사고 먹고 즐긴 것의 합계다. 인구 1명이 줄면 그 GDP가 고스란히 마이너스다. 출산이 줄면 노령층이 증가하고 우리는 조만간 소수의 청년들이 다수의 노인을 부양해야한다. 청년 인구가 줄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지만, 그 일자리를 지탱할 소비(수요)도 같이 줄어든다. 우리는 앉아서 가난해진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도쿄 주변 위성도시를 가보라. 일자리가 늘어나는지...).

태국은 동남아에서 두 번째로 잘사는 나라다. 한국보다 더 화려한 호텔과 백화점이 있고, 더 멋진 골프장이 있고, 수억 원씩하는 슈퍼카도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렇게 0.1%를 위한 번쩍번쩍한 국가를 만들었더니 다수 젊은이들이 출산을 주저한다.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희미한 사회일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어려워진다. 태국 경제는 서서히 기울고 있다.

우리는 태국보다 훨씬 튼튼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출산을 거부한다. '라떼는 말이야'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대책도 안 나온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자고 한 게 언제인가.

느슨한 여유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성장엔진의 가속페달을 더 느슨하게 밟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결혼파업, 출산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오직 성장에만 매달려 개인의 삶을 후순위로 놓은 이웃 나라 일본의 경제는 지금 안녕한가.

저출산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 하나.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 그 망할 세상을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저출산은 단순히 인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의 결과물이다”
-박경숙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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