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수표 같은 우윳값 계산식, 바꿔야 할까요?

입력 2022.07.26 (08:01) 수정 2022.07.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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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1ℓ 우유 한 팩 많이 사시죠? 축산물품질평가원 유통정보에 따르면 평균 2,772원 정도(24일 기준) 합니다.

그런데 젖소 농장은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를 짜고 우유회사에 얼마에 공급할까요? 1ℓ당 평균 1,096원 정도입니다.(올해 6월 기준 원유 수취가격, 낙농진흥회)

이건 원유 기본가격(947원)과 인센티브(149원)가 합쳐진 가격입니다. 인센티브는 체세포수가 얼마냐, 유지방이 얼마냐를 측정해서 정하는 거라 농가마다 조금씩 다르고요.

'원유 기본가격'은 모든 농가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본 요금같은 개념입니다.

이걸 두고 낙농가와 정부·유업체 사이 갈등이 격화되면서 올해 원윳값은 얼마나, 어떻게 매겨질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경기 이천의 한 젖소농장에서 태어난 얼룩송아지들.  [촬영기자 조은경]경기 이천의 한 젖소농장에서 태어난 얼룩송아지들. [촬영기자 조은경]

■ 올해 원유 기본가격 최대 인상 폭은 58원

원유 기본가격은 1~2년마다 낙농협회와 유가공업체(한국유가공협회)가 6월쯤 협상을 시작해 8월 1일부터 적용합니다.

왜 1~2년마다라고 얘기했냐면, 원유 생산비 증감률이 ±4% 이상이면 해당 연도에, ±4% 미만이면 2년마다 가격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원유 생산비는 매년 5월 말 통계청이 발표합니다. (그래서 6월에 협상을 시작합니다.)

올해 발표된 지난해 평균 생산비(ℓ당 843원)는 2020년에 비해 4.2% 올랐습니다.

지난해에는 증가율이 2.4%를 기록해서 협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4%)과 무관하게 어차피 올해는 협상을 해야만 합니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생산비 증가액의 ±10% 범위 안에서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합니다.

2년 만에 열린 협상이니, 지난해 ℓ당 생산비(843원)에서 2019년 ℓ당 생산비(791원)를 뺀 금액(52원)이 올해 협상 범위입니다.

52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올해 원유 기본가격 인상 범위는 47원에서 58원인 셈입니다.

■ 10년 전 도입된 원유가격연동제

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원유 기본가격을 정할까요.

원래 1999년까지 우윳값은 정부 고시가격에 근거해 정해왔습니다.

그 이후부터 낙농가와 유업체의 협상으로 가격을 정하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3~4년에 한 번 협상할 때마다 극심한 갈등이 반복됐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한 젖소농장의 착유 모습.  [촬영기자 조은경]경기도 이천의 한 젖소농장의 착유 모습. [촬영기자 조은경]

여기에 2011년 구제역 파동이 터집니다.

젖소 3만 7천 마리가 매몰돼 역사상 처음으로 40만 마리 선이 무너집니다.

낙농 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지금처럼 생산비에 연동하는 '원유가격연동제'가 도입됐습니다. (처음에는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반영했지만, 현재 계산식에는 제외됐습니다.)

■ 공급 요인만 반영…"가격 체계 바꾸자"

정부는 이 원유가격연동제를 손보려 합니다. 현재 가격 결정 체계는 수요-공급 원칙을 충실히 따르지 않고, 생산비만 반영해 공급자 위주의 구조라는 겁니다.


우유 소비 시장은 최근 20년간 많이 변했습니다.

음용유(흰우유)의 수요는 점점 줄고 있고, 가공유(치즈나 요거트 등)의 수요는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원유를 사용한 유제품은 수입가공 유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미국이나 유럽, 뉴질랜드의 ℓ당 원유 가격은 400~500원 수준으로, 우리 원유 가격(ℓ당 1,100원 수준)의 절반도 채 안 됩니다. 그래서 유제품 수입량은 20년간 4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 밀려드는 수입유…"체질 개선해야"

더구나 2026년부터는 미국과 EU에 치즈 무관세가 적용돼 수입 물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현행 쿼터제(유업체 의무 할당 구매, 2021년 기준 222만 톤)때문에 우유업계가 실제 음용유 수요량(175만 톤)을 초과하는 원유를 고정 가격(ℓ당 1,100원)에 억지로 지불한다고 정부는 판단합니다.

밀려드는 수입 유제품에 맞서려면, 낙농산업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용도별 차등가격제' 입니다.

원유 195만 톤은 현행대로 ℓ당 1,100원, 원유 10만 톤은 가공유 물량으로 정해 ℓ당 800원에 유업체가 구매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공유 물량에 한해선 정부가 ℓ당 200원의 보조금을 유업체에 지원합니다.(유업체는 가공유를 ℓ당 600원에 구매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205만 톤(195만톤+10만톤)을 초과하는 원유에 대해선 ℓ당 100원에 유업체가 사도록 하는 겁니다.

■ 사룟값 비싸지면서 낙농가 '줄도산'

낙농가는 반발합니다. 정부안이 도입된다면 195만 톤을 넘는 물량은 생산비(ℓ당 843원)보다 싼 가격에 팔아야 합니다.

또 농가들이 젖소 사육을 잘해서 205만 톤을 초과 생산할 경우, 낙농가 입장에선 헐값( ℓ당 100원)에 초과분을 유업체에 넘겨야 합니다.

경기도 이천의 젖소농장에서 기자(왼쪽)가 주인으로부터 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조은경]경기도 이천의 젖소농장에서 기자(왼쪽)가 주인으로부터 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조은경]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해 사룟값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올랐습니다.

일찍 시작된 폭염과 전기요금 상승에 축사 냉방비도 많이 듭니다.

낙농협회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낙농 농가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39.5% 올라 5억 1,200만 원 수준입니다.

올해 3월까지 15개월 동안 228개 농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습니다. 젖소 사육 마릿수는 39만 7천 마리로 구제역 파동 당시와 비슷하게 줄어들었습니다.

■ "우윳값 비싸진 건 유업체 때문"

낙농가들은 원유 기본가격 자체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원유가격연동제' 도입 후 낙농가와 유업체 첫 협상(2013년 8월) 결과 원유 기본가격은 ℓ당 940원이었습니다. 현재 원유 기본가격( ℓ당 947원)과 7원 차이입니다.


원유 기본가격에 인센티브를 더한 원유 수취가격(낙농가가 유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은 2013년 9월 ℓ당 1,071원에서 현재 ℓ당 1,096원으로, 9년간 25원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우유 소매가격은 ℓ당 2,512원에서 ℓ당 2,772원으로 260원 올랐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정보) 우윳값이 비싸진 건 유업체의 과도한 유통마진 때문이라는 게 낙농가 주장입니다.

■ 납유 거부까지 예고…벼랑 끝 갈등

원유 기본가격의 새 가격 적용 시점은 엿새(26일 기준) 남았습니다.

협상을 위한 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열릴 수가 없습니다.

유업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위원들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업계는 "'용도제 차등가격제' 도입이 가격 협상보다 먼저다"라는 입장입니다.

낙농가는 일단 룰부터 지키라고 합니다.

도청 앞에서 우유를 쏟아 버리는 전국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납유 거부'입니다.

이달 15일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낙농협회의 ‘우유 반납’ 시위.      [촬영기자 한문현]이달 15일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낙농협회의 ‘우유 반납’ 시위. [촬영기자 한문현]

낙농가와 유업체 갈등 속에 '8월 우유 위기설'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의례적인 간담회만 열고, 뚜렷한 성과는 없습니다.

고물가에 답답한 여름, 우윳값 갈등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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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수표 같은 우윳값 계산식, 바꿔야 할까요?
    • 입력 2022-07-26 08:01:51
    • 수정2022-07-28 08:58:25
    취재K

마트에 가면 1ℓ 우유 한 팩 많이 사시죠? 축산물품질평가원 유통정보에 따르면 평균 2,772원 정도(24일 기준) 합니다.

그런데 젖소 농장은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를 짜고 우유회사에 얼마에 공급할까요? 1ℓ당 평균 1,096원 정도입니다.(올해 6월 기준 원유 수취가격, 낙농진흥회)

이건 원유 기본가격(947원)과 인센티브(149원)가 합쳐진 가격입니다. 인센티브는 체세포수가 얼마냐, 유지방이 얼마냐를 측정해서 정하는 거라 농가마다 조금씩 다르고요.

'원유 기본가격'은 모든 농가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본 요금같은 개념입니다.

이걸 두고 낙농가와 정부·유업체 사이 갈등이 격화되면서 올해 원윳값은 얼마나, 어떻게 매겨질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경기 이천의 한 젖소농장에서 태어난 얼룩송아지들.  [촬영기자 조은경]
■ 올해 원유 기본가격 최대 인상 폭은 58원

원유 기본가격은 1~2년마다 낙농협회와 유가공업체(한국유가공협회)가 6월쯤 협상을 시작해 8월 1일부터 적용합니다.

왜 1~2년마다라고 얘기했냐면, 원유 생산비 증감률이 ±4% 이상이면 해당 연도에, ±4% 미만이면 2년마다 가격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원유 생산비는 매년 5월 말 통계청이 발표합니다. (그래서 6월에 협상을 시작합니다.)

올해 발표된 지난해 평균 생산비(ℓ당 843원)는 2020년에 비해 4.2% 올랐습니다.

지난해에는 증가율이 2.4%를 기록해서 협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4%)과 무관하게 어차피 올해는 협상을 해야만 합니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생산비 증가액의 ±10% 범위 안에서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합니다.

2년 만에 열린 협상이니, 지난해 ℓ당 생산비(843원)에서 2019년 ℓ당 생산비(791원)를 뺀 금액(52원)이 올해 협상 범위입니다.

52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올해 원유 기본가격 인상 범위는 47원에서 58원인 셈입니다.

■ 10년 전 도입된 원유가격연동제

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원유 기본가격을 정할까요.

원래 1999년까지 우윳값은 정부 고시가격에 근거해 정해왔습니다.

그 이후부터 낙농가와 유업체의 협상으로 가격을 정하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3~4년에 한 번 협상할 때마다 극심한 갈등이 반복됐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한 젖소농장의 착유 모습.  [촬영기자 조은경]
여기에 2011년 구제역 파동이 터집니다.

젖소 3만 7천 마리가 매몰돼 역사상 처음으로 40만 마리 선이 무너집니다.

낙농 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지금처럼 생산비에 연동하는 '원유가격연동제'가 도입됐습니다. (처음에는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반영했지만, 현재 계산식에는 제외됐습니다.)

■ 공급 요인만 반영…"가격 체계 바꾸자"

정부는 이 원유가격연동제를 손보려 합니다. 현재 가격 결정 체계는 수요-공급 원칙을 충실히 따르지 않고, 생산비만 반영해 공급자 위주의 구조라는 겁니다.


우유 소비 시장은 최근 20년간 많이 변했습니다.

음용유(흰우유)의 수요는 점점 줄고 있고, 가공유(치즈나 요거트 등)의 수요는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원유를 사용한 유제품은 수입가공 유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미국이나 유럽, 뉴질랜드의 ℓ당 원유 가격은 400~500원 수준으로, 우리 원유 가격(ℓ당 1,100원 수준)의 절반도 채 안 됩니다. 그래서 유제품 수입량은 20년간 4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 밀려드는 수입유…"체질 개선해야"

더구나 2026년부터는 미국과 EU에 치즈 무관세가 적용돼 수입 물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현행 쿼터제(유업체 의무 할당 구매, 2021년 기준 222만 톤)때문에 우유업계가 실제 음용유 수요량(175만 톤)을 초과하는 원유를 고정 가격(ℓ당 1,100원)에 억지로 지불한다고 정부는 판단합니다.

밀려드는 수입 유제품에 맞서려면, 낙농산업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용도별 차등가격제' 입니다.

원유 195만 톤은 현행대로 ℓ당 1,100원, 원유 10만 톤은 가공유 물량으로 정해 ℓ당 800원에 유업체가 구매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공유 물량에 한해선 정부가 ℓ당 200원의 보조금을 유업체에 지원합니다.(유업체는 가공유를 ℓ당 600원에 구매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205만 톤(195만톤+10만톤)을 초과하는 원유에 대해선 ℓ당 100원에 유업체가 사도록 하는 겁니다.

■ 사룟값 비싸지면서 낙농가 '줄도산'

낙농가는 반발합니다. 정부안이 도입된다면 195만 톤을 넘는 물량은 생산비(ℓ당 843원)보다 싼 가격에 팔아야 합니다.

또 농가들이 젖소 사육을 잘해서 205만 톤을 초과 생산할 경우, 낙농가 입장에선 헐값( ℓ당 100원)에 초과분을 유업체에 넘겨야 합니다.

경기도 이천의 젖소농장에서 기자(왼쪽)가 주인으로부터 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조은경]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해 사룟값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올랐습니다.

일찍 시작된 폭염과 전기요금 상승에 축사 냉방비도 많이 듭니다.

낙농협회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낙농 농가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39.5% 올라 5억 1,200만 원 수준입니다.

올해 3월까지 15개월 동안 228개 농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습니다. 젖소 사육 마릿수는 39만 7천 마리로 구제역 파동 당시와 비슷하게 줄어들었습니다.

■ "우윳값 비싸진 건 유업체 때문"

낙농가들은 원유 기본가격 자체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원유가격연동제' 도입 후 낙농가와 유업체 첫 협상(2013년 8월) 결과 원유 기본가격은 ℓ당 940원이었습니다. 현재 원유 기본가격( ℓ당 947원)과 7원 차이입니다.


원유 기본가격에 인센티브를 더한 원유 수취가격(낙농가가 유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은 2013년 9월 ℓ당 1,071원에서 현재 ℓ당 1,096원으로, 9년간 25원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우유 소매가격은 ℓ당 2,512원에서 ℓ당 2,772원으로 260원 올랐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정보) 우윳값이 비싸진 건 유업체의 과도한 유통마진 때문이라는 게 낙농가 주장입니다.

■ 납유 거부까지 예고…벼랑 끝 갈등

원유 기본가격의 새 가격 적용 시점은 엿새(26일 기준) 남았습니다.

협상을 위한 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열릴 수가 없습니다.

유업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위원들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업계는 "'용도제 차등가격제' 도입이 가격 협상보다 먼저다"라는 입장입니다.

낙농가는 일단 룰부터 지키라고 합니다.

도청 앞에서 우유를 쏟아 버리는 전국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납유 거부'입니다.

이달 15일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낙농협회의 ‘우유 반납’ 시위.      [촬영기자 한문현]
낙농가와 유업체 갈등 속에 '8월 우유 위기설'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의례적인 간담회만 열고, 뚜렷한 성과는 없습니다.

고물가에 답답한 여름, 우윳값 갈등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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