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동맹’ 대신 ‘반도체 대화’…박진 “예비회담 제의 받았다”

입력 2022.08.01 (19:3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반도체 강국 4개국이 협의체를 만들어 협력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그동안 언론에서는 '칩4' 또는 '팹4'로 불렀습니다. 반도체를 뜻하는 '칩', 또는 반도체 생산 공장을 의미하는 '팹'과 숫자 4를 붙인 용어입니다.

여기에 대해 외교부는 그동안 "실체가 없다", "'가입 제안'이라고 볼 수 없다", "현 단계에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참여 국가가 4개가 아닐 수도 있기에 '4'라는 숫자를 쓰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마저 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1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미국이 한국과 타이완·일본에 반도체 관련 협력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예비 회담을 제의한 상태라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2022.08.01.)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2022.08.01.)

■박진 "美, 4자 간 대화 추진…예비회담 제의 받아"

박진 장관은 오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협력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공급망 대화를 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제안은, 첨단 반도체 생태계에서 분야별 강점을 갖춘 한국·미국·일본·타이완 4자 간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박 장관은 미국의 제안이 한국, 일본, 타이완 3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4자 대화'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협력 분야는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분야, 그리고 공급망 다변화입니다.

박 장관은 "데드라인은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이달로 시한을 정해 놓고 한국에 답을 요구했단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겁니다. 다만 미국이 '예비회담'을 제안했다면서 "아직 결론 내린 것은 없지만, 미국 측에 한국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25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위 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모습. 싱 대사는 당시 “공평하고 공정한 시장의 원칙을 견지하고 외부 간섭을 배제하며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며 한국의 이른바 ‘칩4’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사진출처 : 중국 외교부]지난달 25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위 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모습. 싱 대사는 당시 “공평하고 공정한 시장의 원칙을 견지하고 외부 간섭을 배제하며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며 한국의 이른바 ‘칩4’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사진출처 : 중국 외교부]

■"미국도 중국 시장 중요하다고 해…오해 없게 노력할 것"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이같은 질의와 답변도 오갔습니다.
이원욱 외통위원(더불어민주당)
"칩4와 관련해서 특정국을 배제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됐든 중국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중략) 중국의 반응이 저런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을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
"동의합니다.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에 설명할 필요가 있고, 이걸 함으로서 중국을 배제하고 한중관계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할 생각 전혀 없습니다. 이걸 통해 공급망이 안정화되고 다변화할 수 있으면 관련국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 장관은 "미국의 제안은 산업 증진에 방점을 둔 협력이지, 중국을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이 "한-중이 긴밀한 경제 관계임을 이해하고 있고, 미국에도 3위 교역국인 중국 시장이 중요하다"고 우리 측에 설명했다고 박 장관은 전했습니다.

외교부는 "중국이 오해할 가능성을 사전에 해소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겠다고도 보고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중국과도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소통을 추진한다"고 외교부가 밝혔다는 점입니다. 중국과 별개의 '반도체 대화'를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이 중국 주도의 RCEP(역내 포괄적 동반자협정)에 2020년 11월 가입한 것처럼, 중국과도 경제 협력을 지속하고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됩니다.

지난달 28일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A 국가가 주도한 것도, B 국가가 주도한 것도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중국 주도 협의체에도 한국이 가입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한민국은 들어갈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일변도의 협력이 과연 '안전'하느냐는 질의도 나왔습니다.

박정 외통위원(더불어민주당)
"미일 반도체협정을 통해서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제한하고, 한국과 타이완으로 (기술이) 넘어오게 한 것 알지요? 현재 미국이 천문학적 보조금으로 한국과 타이완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나중에 어떤 협의나 법을 통해 기술을 가져가 버리면 어떡합니까?"

박진 외교부 장관
"저희가 기술을 확보해서 계속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1986년부터 시작된 미·일 반도체협정으로 미국에 저가 반도체를 공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자국 내 미국 반도체 점유율도 20%로 올려야 했는데,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느냐는 질의입니다.

박 장관은 "우려하는 내용을 알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경제는 세계에 열려 있으며 반도체는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이므로, 특정 국가를 배제한다고 해서 한국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또 미국이 "한국의 대외관계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의하는 게 바람직하단 입장"이라며 "결론 내린 건 없지만, 이런 입장을 미국에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 용어 정리한 외교부… '칩4' → '반도체 공급망 대화'

한편 외교부는 오늘 업무보고에서 정식으로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외교부 업무보고 자료 중 발췌외교부 업무보고 자료 중 발췌

기존 '칩4'나 '팹4'는 공식 용어가 아니고, 마치 4개국이 반도체 관련 장벽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는 게 외교부 반응입니다. '반도체 동맹'이라는 표현 역시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타이완을 실질적인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경제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중국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말 외교부 내부에선 '반도체 대화'라는 표현을 쓰자는 제안이 나왔고, 공식 문서에도 해당 건의사항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칩4동맹’ 대신 ‘반도체 대화’…박진 “예비회담 제의 받았다”
    • 입력 2022-08-01 19:38:36
    취재K

반도체 강국 4개국이 협의체를 만들어 협력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그동안 언론에서는 '칩4' 또는 '팹4'로 불렀습니다. 반도체를 뜻하는 '칩', 또는 반도체 생산 공장을 의미하는 '팹'과 숫자 4를 붙인 용어입니다.

여기에 대해 외교부는 그동안 "실체가 없다", "'가입 제안'이라고 볼 수 없다", "현 단계에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참여 국가가 4개가 아닐 수도 있기에 '4'라는 숫자를 쓰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마저 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1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미국이 한국과 타이완·일본에 반도체 관련 협력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예비 회담을 제의한 상태라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2022.08.01.)
■박진 "美, 4자 간 대화 추진…예비회담 제의 받아"

박진 장관은 오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협력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공급망 대화를 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제안은, 첨단 반도체 생태계에서 분야별 강점을 갖춘 한국·미국·일본·타이완 4자 간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박 장관은 미국의 제안이 한국, 일본, 타이완 3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4자 대화'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협력 분야는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분야, 그리고 공급망 다변화입니다.

박 장관은 "데드라인은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이달로 시한을 정해 놓고 한국에 답을 요구했단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겁니다. 다만 미국이 '예비회담'을 제안했다면서 "아직 결론 내린 것은 없지만, 미국 측에 한국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25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위 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모습. 싱 대사는 당시 “공평하고 공정한 시장의 원칙을 견지하고 외부 간섭을 배제하며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며 한국의 이른바 ‘칩4’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사진출처 : 중국 외교부]
■"미국도 중국 시장 중요하다고 해…오해 없게 노력할 것"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이같은 질의와 답변도 오갔습니다.
이원욱 외통위원(더불어민주당)
"칩4와 관련해서 특정국을 배제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됐든 중국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중략) 중국의 반응이 저런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을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
"동의합니다.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에 설명할 필요가 있고, 이걸 함으로서 중국을 배제하고 한중관계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할 생각 전혀 없습니다. 이걸 통해 공급망이 안정화되고 다변화할 수 있으면 관련국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 장관은 "미국의 제안은 산업 증진에 방점을 둔 협력이지, 중국을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이 "한-중이 긴밀한 경제 관계임을 이해하고 있고, 미국에도 3위 교역국인 중국 시장이 중요하다"고 우리 측에 설명했다고 박 장관은 전했습니다.

외교부는 "중국이 오해할 가능성을 사전에 해소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겠다고도 보고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중국과도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소통을 추진한다"고 외교부가 밝혔다는 점입니다. 중국과 별개의 '반도체 대화'를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이 중국 주도의 RCEP(역내 포괄적 동반자협정)에 2020년 11월 가입한 것처럼, 중국과도 경제 협력을 지속하고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됩니다.

지난달 28일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A 국가가 주도한 것도, B 국가가 주도한 것도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중국 주도 협의체에도 한국이 가입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한민국은 들어갈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일변도의 협력이 과연 '안전'하느냐는 질의도 나왔습니다.

박정 외통위원(더불어민주당)
"미일 반도체협정을 통해서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제한하고, 한국과 타이완으로 (기술이) 넘어오게 한 것 알지요? 현재 미국이 천문학적 보조금으로 한국과 타이완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나중에 어떤 협의나 법을 통해 기술을 가져가 버리면 어떡합니까?"

박진 외교부 장관
"저희가 기술을 확보해서 계속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1986년부터 시작된 미·일 반도체협정으로 미국에 저가 반도체를 공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자국 내 미국 반도체 점유율도 20%로 올려야 했는데,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느냐는 질의입니다.

박 장관은 "우려하는 내용을 알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경제는 세계에 열려 있으며 반도체는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이므로, 특정 국가를 배제한다고 해서 한국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또 미국이 "한국의 대외관계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의하는 게 바람직하단 입장"이라며 "결론 내린 건 없지만, 이런 입장을 미국에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 용어 정리한 외교부… '칩4' → '반도체 공급망 대화'

한편 외교부는 오늘 업무보고에서 정식으로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외교부 업무보고 자료 중 발췌
기존 '칩4'나 '팹4'는 공식 용어가 아니고, 마치 4개국이 반도체 관련 장벽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는 게 외교부 반응입니다. '반도체 동맹'이라는 표현 역시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타이완을 실질적인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경제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중국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말 외교부 내부에선 '반도체 대화'라는 표현을 쓰자는 제안이 나왔고, 공식 문서에도 해당 건의사항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