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기획K] ‘무너지고 사라지는’ 돌탑…마을 신앙 문화 가치 조명 ‘시급’

입력 2022.08.02 (19:24) 수정 2022.08.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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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농촌 마을이나 역사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돌을 정성스럽게 쌓은 '돌탑'을 이따금씩 볼 수 있는데요,

탑을 쌓으며,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흔적입니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던 마을 신앙이, 농촌 공동체 소멸과 사회적 변화 속에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보도기획K, 이만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수천 년을 굽이쳐 흐른 금강 줄기를 따라….

신새벽, 서광이 비춥니다.

제단에 올릴 음식 준비에 노파는 아침부터 손이 분주합니다.

마을 수호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음식이기에, 한 치의 허튼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환순/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 "산제 모시려면요, 어디 가지도 않았어요. 옛날에는 황토 흙이 있었어요. 깨끗한 곳에서 파다가 사람들 못 들어오게 (문에 발랐어요)."]

아버지께선, 산제를 지낼 금줄을 만들 때면, 부정 타지 않게 평소와 다르게 왼쪽으로 꼬아 만들라 하셨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제주는 이제, 홀로 산을 오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몇 세대를 거쳐 오르고 내렸을 그 길을, 묵묵히 따라 오릅니다.

정성스레 제를 올리고, 주민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올 한 해 건강과 안녕을 빕니다.

["노인회장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장씨네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김씨네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정월 초사흘, '산제'를 지내고 나면, 정월 대보름에는 '탑제'를 지냅니다.

귀한 음식을 준비하고 예를 다해 기원하니 부디 올 한 해 마을의 안정을 보살펴주길….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천지신명에게 간곡히 읊조립니다.

["만사형통, 무병장수하여 마을 발전과 번영을 기원, 삼가 주천과 포로 공신이 절을 올리오니..."]

나라에 역병이 창궐해 몇 년째, 민초들의 삶이 더욱 메말라 가는 상황,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두려운 악귀와도 같은 역병이 하루 빨리 사그라지길 빕니다.

["아휴~. 코로나19부터 없어지게 해줘요, 다른 것 보다."]

크고 작은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돌탑에 제단을 마련해 제를 지내는 탑제는, 마을 구성원이 주체가 돼 전승해온 공동 의례이자, 마을 신앙의 한 형태입니다.

[현제욱/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 "저 돌에 저 이끼가 저렇게 많이 꼈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오래돼야 저 정도가 돼요."]

무속 등과 함께 민간 신의 하나로 분류될 만큼, 오랜 시간 이어져 왔지만, 농촌 마을 공동화 현상과 종교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그 맥이 단절되거나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박희용/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 "풍물도 치고 우리도, 어렸을 때 막 따라다니고 막 그랬었어. 풍물치고 꽹과리 치고 하는데. 북도 한 번씩 쳐 보고."]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10년 진행한 연구에서는 옥천 지역 마을 50여 곳에서 탑제를 지내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10여 년이 지난 현재, 열 곳 남짓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박종선/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 "돌탑이 가지고 있는 것은 마을의 정체성 마을의 신앙, 마을의 모습들 우리들의 기억 이런 쪽으로 바라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화재청은 옥천의 돌탑과 마을 신앙을 미래 무형문화 유산 발굴 육성 사업으로 지정하고 기초 자료조사와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만영입니다.

촬영기자:김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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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기획K] ‘무너지고 사라지는’ 돌탑…마을 신앙 문화 가치 조명 ‘시급’
    • 입력 2022-08-02 19:24:53
    • 수정2022-08-03 11:08:13
    뉴스7(청주)
[앵커]

농촌 마을이나 역사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돌을 정성스럽게 쌓은 '돌탑'을 이따금씩 볼 수 있는데요,

탑을 쌓으며,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흔적입니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던 마을 신앙이, 농촌 공동체 소멸과 사회적 변화 속에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보도기획K, 이만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수천 년을 굽이쳐 흐른 금강 줄기를 따라….

신새벽, 서광이 비춥니다.

제단에 올릴 음식 준비에 노파는 아침부터 손이 분주합니다.

마을 수호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음식이기에, 한 치의 허튼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환순/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 "산제 모시려면요, 어디 가지도 않았어요. 옛날에는 황토 흙이 있었어요. 깨끗한 곳에서 파다가 사람들 못 들어오게 (문에 발랐어요)."]

아버지께선, 산제를 지낼 금줄을 만들 때면, 부정 타지 않게 평소와 다르게 왼쪽으로 꼬아 만들라 하셨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제주는 이제, 홀로 산을 오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몇 세대를 거쳐 오르고 내렸을 그 길을, 묵묵히 따라 오릅니다.

정성스레 제를 올리고, 주민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올 한 해 건강과 안녕을 빕니다.

["노인회장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장씨네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김씨네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정월 초사흘, '산제'를 지내고 나면, 정월 대보름에는 '탑제'를 지냅니다.

귀한 음식을 준비하고 예를 다해 기원하니 부디 올 한 해 마을의 안정을 보살펴주길….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천지신명에게 간곡히 읊조립니다.

["만사형통, 무병장수하여 마을 발전과 번영을 기원, 삼가 주천과 포로 공신이 절을 올리오니..."]

나라에 역병이 창궐해 몇 년째, 민초들의 삶이 더욱 메말라 가는 상황,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두려운 악귀와도 같은 역병이 하루 빨리 사그라지길 빕니다.

["아휴~. 코로나19부터 없어지게 해줘요, 다른 것 보다."]

크고 작은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돌탑에 제단을 마련해 제를 지내는 탑제는, 마을 구성원이 주체가 돼 전승해온 공동 의례이자, 마을 신앙의 한 형태입니다.

[현제욱/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 "저 돌에 저 이끼가 저렇게 많이 꼈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오래돼야 저 정도가 돼요."]

무속 등과 함께 민간 신의 하나로 분류될 만큼, 오랜 시간 이어져 왔지만, 농촌 마을 공동화 현상과 종교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그 맥이 단절되거나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박희용/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 "풍물도 치고 우리도, 어렸을 때 막 따라다니고 막 그랬었어. 풍물치고 꽹과리 치고 하는데. 북도 한 번씩 쳐 보고."]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10년 진행한 연구에서는 옥천 지역 마을 50여 곳에서 탑제를 지내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10여 년이 지난 현재, 열 곳 남짓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박종선/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 "돌탑이 가지고 있는 것은 마을의 정체성 마을의 신앙, 마을의 모습들 우리들의 기억 이런 쪽으로 바라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화재청은 옥천의 돌탑과 마을 신앙을 미래 무형문화 유산 발굴 육성 사업으로 지정하고 기초 자료조사와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만영입니다.

촬영기자:김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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