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은 곤두박질, 그런데 즉석밥값은 왜 올랐나?

입력 2022.08.03 (07:00) 수정 2022.08.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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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외환위기 이후 최고 물가…쌀값은 장기간 '저공행진'
주원료 값 내려갔는데도 햇반 가격 또 인상
"인상 근거 과장…인하 강력 촉구" 목소리
'기대' 인플레이션에 '기대'는 관행 살펴볼 필요성


■풍년의 저주?…계속되는 쌀값 내림세

냉면 16,000원, 소주 한 병 6,000원, 공깃밥을 2,000원에 파는 식당까지. 안 오르는 것을 찾기 힘들다는 무서운 물가 오름세입니다. 그런데 끝을 모르고 값이 떨어지는 먹거리도 있습니다. 쌀값 이야기입니다.


쌀값 급락은 지난해 생산량이 전년보다 10% 넘게 늘어난 '풍년 효과' 때문입니다. 여기에 쌀 소비량까지 줄었습니다. 정부가 세 차례의 '시장격리'(공급량을 줄이는 것)를 통해 가격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현장에서는 곧 햅쌀이 나오기 시작하면 재고 쌀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요즘 쌀 만큼은 대폭 내린 값에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원료의 99.9%가 쌀인데도 햇반값 또 인상

즉석밥은 쌀로 만들어집니다. '국민 즉석밥'이라 불리는 햇반에 인쇄된 원재료명을 보면 <멥쌀 99.9%, 그리고 쌀미강추출물>이라고 나옵니다. 그냥 쌀이라도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CJ제일제당은 3월에 햇반 가격을 오히려 7% 정도 올렸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봐도 주원료인 쌀값은 계속 내리는 추세였고, 1년 전과 비교해도 20kg 도매가가 5,000원 넘게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당시 CJ 측이 밝힌 인상 근거는 이랬습니다.

<햇반값 인상 이유(올해)>
*제조에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LNG)비용 인상
*포장 용기 등 가격 인상

다시 말해 99.9%를 쓰는 쌀값 이야기는 빼고, 제품을 만드는 부대 비용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을 내놓은 셈입니다. 다만 그때부터 먹거리 가격 인상이 이미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소비자 저항도 없었습니다.

■소비자단체 "가격 인상 근거 과장됐다"

햇반 가격이 오른 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이하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인상이 적절했는지를 따져봤습니다. 먼저 쌀값이 떨어져 제조원가 비율이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올해 인상 이유에서 CJ는 쌀값 폭락 이야기를 쏙 들어냈지만, 지난해 인상 설명 때는 달랐습니다. 쉽게 말해 즉석밥값은 쌀값이 올라도 인상되고, 쌀값이 떨어져도 그릇값이 오르면 또 인상된다는 그때 그때 편리한 가격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햇반값 인상 이유(지난해)>
"원재료인 쌀 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 제품값 인상 불가피"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올해 가격 인상 요인도 과장됐다고 지적합니다. 햇반 제조공장이 있는 부산과 충청 지역의 가스 소매요금을 분석한 결과 가격 상승률이 CJ가 설명한 것보다 낮았고, 포장재의 경우 2018년 기준 2021년까지 5% 정도 오히려 가격이 내려갔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 원재료인 쌀 가격 인하가 계속되자 소비자 상생 측면에서 즉석밥 가격을 내려달라고 시민단체들은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오른 가격이 내렸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가정간편식 시장이 확대되면서 즉석밥 매출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햇반은 전체 즉석밥 시장의 70%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소비자단체협의회 추산 66.9%)

■고물가 기대(?) 속에 검증과 상생 필요성

7월 소비자물가가 6.3% 오르면서 외환위기 이후 최고라는 소식이 또 들려왔습니다. 수치도 수치이지만 더 큰 변수는 바로 '기대심리'입니다.

소비자들의 7월 기대인플레이션율(앞으로 1년의 예상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7%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너도나도, 이것저것 물건값이 오르는 것을 어쩌면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햄버거 업체에서 1년 사이 가격을 두 번이나 올렸는데도 더 이상 큰 뉴스가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물가상승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밀가루, 라면, 달걀, 과자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52개 주요 생필품을 정부가 직접 관리했습니다. 이른바 'MB물가지수'였습니다

너도나도 눈치 보지 않고 물건값을 올리고 있는 요즘, 최소한의 '가격 검증'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상생' 움직임을 기대하게 합니다. 쌀값이 1년 넘게 많이 떨어졌으니, 이제 즉석밥값을 내리겠다는 뉴스를 조만간 볼 수 있을까요?

(인포그래픽: 권세라 / 대문 사진: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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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값은 곤두박질, 그런데 즉석밥값은 왜 올랐나?
    • 입력 2022-08-03 07:00:20
    • 수정2022-08-03 11:18:15
    취재K
외환위기 이후 최고 물가…쌀값은 장기간 '저공행진'<br />주원료 값 내려갔는데도 햇반 가격 또 인상<br />"인상 근거 과장…인하 강력 촉구" 목소리<br />'기대' 인플레이션에 '기대'는 관행 살펴볼 필요성<br />

■풍년의 저주?…계속되는 쌀값 내림세

냉면 16,000원, 소주 한 병 6,000원, 공깃밥을 2,000원에 파는 식당까지. 안 오르는 것을 찾기 힘들다는 무서운 물가 오름세입니다. 그런데 끝을 모르고 값이 떨어지는 먹거리도 있습니다. 쌀값 이야기입니다.


쌀값 급락은 지난해 생산량이 전년보다 10% 넘게 늘어난 '풍년 효과' 때문입니다. 여기에 쌀 소비량까지 줄었습니다. 정부가 세 차례의 '시장격리'(공급량을 줄이는 것)를 통해 가격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현장에서는 곧 햅쌀이 나오기 시작하면 재고 쌀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요즘 쌀 만큼은 대폭 내린 값에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원료의 99.9%가 쌀인데도 햇반값 또 인상

즉석밥은 쌀로 만들어집니다. '국민 즉석밥'이라 불리는 햇반에 인쇄된 원재료명을 보면 <멥쌀 99.9%, 그리고 쌀미강추출물>이라고 나옵니다. 그냥 쌀이라도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CJ제일제당은 3월에 햇반 가격을 오히려 7% 정도 올렸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봐도 주원료인 쌀값은 계속 내리는 추세였고, 1년 전과 비교해도 20kg 도매가가 5,000원 넘게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당시 CJ 측이 밝힌 인상 근거는 이랬습니다.

<햇반값 인상 이유(올해)>
*제조에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LNG)비용 인상
*포장 용기 등 가격 인상

다시 말해 99.9%를 쓰는 쌀값 이야기는 빼고, 제품을 만드는 부대 비용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을 내놓은 셈입니다. 다만 그때부터 먹거리 가격 인상이 이미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소비자 저항도 없었습니다.

■소비자단체 "가격 인상 근거 과장됐다"

햇반 가격이 오른 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이하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인상이 적절했는지를 따져봤습니다. 먼저 쌀값이 떨어져 제조원가 비율이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올해 인상 이유에서 CJ는 쌀값 폭락 이야기를 쏙 들어냈지만, 지난해 인상 설명 때는 달랐습니다. 쉽게 말해 즉석밥값은 쌀값이 올라도 인상되고, 쌀값이 떨어져도 그릇값이 오르면 또 인상된다는 그때 그때 편리한 가격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햇반값 인상 이유(지난해)>
"원재료인 쌀 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 제품값 인상 불가피"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올해 가격 인상 요인도 과장됐다고 지적합니다. 햇반 제조공장이 있는 부산과 충청 지역의 가스 소매요금을 분석한 결과 가격 상승률이 CJ가 설명한 것보다 낮았고, 포장재의 경우 2018년 기준 2021년까지 5% 정도 오히려 가격이 내려갔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 원재료인 쌀 가격 인하가 계속되자 소비자 상생 측면에서 즉석밥 가격을 내려달라고 시민단체들은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오른 가격이 내렸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가정간편식 시장이 확대되면서 즉석밥 매출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햇반은 전체 즉석밥 시장의 70%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소비자단체협의회 추산 66.9%)

■고물가 기대(?) 속에 검증과 상생 필요성

7월 소비자물가가 6.3% 오르면서 외환위기 이후 최고라는 소식이 또 들려왔습니다. 수치도 수치이지만 더 큰 변수는 바로 '기대심리'입니다.

소비자들의 7월 기대인플레이션율(앞으로 1년의 예상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7%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너도나도, 이것저것 물건값이 오르는 것을 어쩌면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햄버거 업체에서 1년 사이 가격을 두 번이나 올렸는데도 더 이상 큰 뉴스가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물가상승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밀가루, 라면, 달걀, 과자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52개 주요 생필품을 정부가 직접 관리했습니다. 이른바 'MB물가지수'였습니다

너도나도 눈치 보지 않고 물건값을 올리고 있는 요즘, 최소한의 '가격 검증'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상생' 움직임을 기대하게 합니다. 쌀값이 1년 넘게 많이 떨어졌으니, 이제 즉석밥값을 내리겠다는 뉴스를 조만간 볼 수 있을까요?

(인포그래픽: 권세라 / 대문 사진: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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