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호소’ 그 후 5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입력 2022.08.0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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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 사회에 장애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들어설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지적장애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를 설립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지역주민들은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이라면서 거세게 반대했다. 하지만 갈등은 좁혀지지 않았다. 2차례에 걸쳐 열린 공청회에서 장애 학생의 학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면 호소했다. 무릎 꿇은 장면이 SNS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논란은 커졌다. 국무총리와 국가인권위원회 여야 정치권까지 관심을 보였다. 특수학교 터에 한방병원을 설립해 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장애인특수학교 설립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했다. 여론이 장애인 학생 학부모의 손을 들어줬고 어렵사리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장애인학교, 장애인 시설이 혐오시설로 취급받고 있다는 씁쓸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로부터 5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문제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은 과연 나아졌을까? 드라마에서 발달장애인이 직접 배우로 등장하고 자폐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유능한 변호사로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인기만큼 장애인시설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사라진 것일까? 5년전 그때 무릎 꿇고 호소했던 부모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당시 장애학생 학부모들을 대표해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이은자씨를 만나봤다.

@ 이은자 (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씨는 2017년 당시 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학부모들의 대표역할을 맡았다.@ 이은자 (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씨는 2017년 당시 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학부모들의 대표역할을 맡았다.

Q 2017년 당시 상황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심정이신지요?

제일 많이 느꼈던 거는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정말 많이 모르시는구나. 너무 많이 모르시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반대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주민분들을 만나보면 “발달장애 너무 위험하지 않냐?” “위험한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학교면 정말 여기 더 위험해지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셔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참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또 한 가지는 너무나 많이 집값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본인들은 집값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고는 하셨는데 어쨌든 집값이 내려갈 수도 있다. 이런 염려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학교가 막상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등하교하게 되면 어떤 막연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불안감은 그냥 자연스럽게 없어지실 거고, 어느 곳도 특수학교가 들어와서 집값이 내려갔다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학교가 설립되고 운영이 되면 주민분들의 그런 걱정은 정말 다 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Q 당시 과정이 영화 <학교 가는 길>로도 제작되었고 그 안에 주민들이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다뤄졌는데 주민들의 심정도 이해되는 면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주민들과 극한으로 대립할 때는 사실 잘 몰랐어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서운한 마음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분들이 정말로 반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사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하셨던 이유는 발달장애인들 때문이라기보다는 학교가 폐교되는 과정이나 왜 폐교될 수밖에 없었는지 교육청에서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같은 부모 입장에서 같은 주민 입장에 생각해보면 참 분노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 일반 학교를 폐교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교육 당국이 그렇게 한 것이거든요.

☞ 1990년 정부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1992년 임대아파트 단지에 공진초등학교가 개교했지만, 임대아파트 주변 주민들이 학군을 분리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교육청이 수용했다. 이후 공진초등학교에는 임대아파트 거주 학생들만 다니게 됐고 학생 수가 계속 줄었다. 2015년 2월 공진초등학교는 결국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됐다. 당시 전교생은 106명이었다.

☞ 2017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꿇고 호소했던 학부모들과 설립을 반대했던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은 영화 <학교 가는 길>로 만들어져 2021년 5월에 개봉했다.

Q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설립됐지만,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주민의 반대 때문에 특수학교 추가 설립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서진학교 문제가 해결됐을 때 저희들이 바랐던 것은 다른 곳에 특수학교나 장애인 관련 시설을 지을 때 주민들이 반대를 덜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서 5분 거리에 서울시 어울림플라자(장애, 비장애인 복합시설) 건설이 계획 중에 있는데 주민들이 반대해서 지금 못 짓고 있어요. 중랑구에서도 동진학교라는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부지 선정도 못 했어요. 국민 여러분들이 성원을 해주셔서 서진학교를 예쁘게 만들어서 아이들이 다니고 있지만, 지금 또 다른 곳에서는 또 똑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되고 있는 게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Q 서진학교가 설립되긴 했지만, 자녀가 성인이 돼서 실제로 다니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아쉬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당신 아이가 갈 학교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머님들이 애를 쓰냐고 하시는데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사실 이게 내 일 네 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저희 아이는 성인이지만 학년기에 학교 갈 친구들의 학교가 없으면 다 같이 애를 써야 하는 거고, 또 성인 아이들한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학년기 엄마들도 다 같이 애를 쓰죠. 그런데 학교가 다 만들어지고 교장 선생님이 학교견학을 해주셨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현이(딸)가 서진학교에 다녔으면 참 좋아했겠다. 여기 다니는 친구들은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서울서진학교는 2018년 8월 공사를 시작해 2020년 3월 정식 개교하고 신입생을 받았다.@ 서울서진학교는 2018년 8월 공사를 시작해 2020년 3월 정식 개교하고 신입생을 받았다.

@ 서울서진학교는 서울시에서 17년 만에 설립된 특수학교다. 현재 초중고 과정 학생 190여 명이 다니고 있다.@ 서울서진학교는 서울시에서 17년 만에 설립된 특수학교다. 현재 초중고 과정 학생 190여 명이 다니고 있다.

Q 서진학교 말고도 다른 지역에도 특수학교가 계속 필요한건가요?

필요하죠. 지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일반 학교에 장애 학생이 입학해서 통합교육환경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요. 일반 학교 학생들은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서 달리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발달장애 학생이 들어가서 어떤 특이한 행동을 한다거나 했을 때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거든요. 궁극적으로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비장애학생 학부모님들도 원하는 통합 교육을 하기에는 아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Q 그러면 서진학교 같은 특수학교에 올 수 없는 경우에 학생들은 어느 학교로 가나요?

그냥 일반 학교에 배정을 받는 거죠. 저는 그걸 강제 배정이라고 얘기를 해요. 내가 특수학교에 가고 싶으면 특수학교에 가야 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일반 학교에 가게 될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학부모들이 특수학교에 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냐면 아이가 얼마나 중증인지를 설명하는 거예요. 심사를 받아요. 중증 우선으로 특수학교에서 받으니까요. 우리 아이가 이만큼 중증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거죠. 굉장히 비정상적인 거잖아요. 그래서 어렵게 특수학교에 배정받으면 “우리 아이가 특수학교에 붙었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특수학교가 서울대도 아닌데요.

Q 비장애 학생들은 그 지역 내에서 가까운 근거리 원칙으로 학교 배정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장애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 네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어요. 서진학교도 작년에 20명 정도 1학년에 못 들어온 거로 알고 있어요.

Q 최근 드라마에서 장애인이 주인공이 되거나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서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아주 드문 특수한 사례잖아요. 많은 장애인 부모들에게는 희망 고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 딸 이름이 안지현이거든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삶과 진짜 우리 딸의 삶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우영우가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우영우 혼자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에요. 주위 사람들이 우영우랑 호흡을 맞춰주고 같이 살아가는 거잖아요. 저희 딸 안지현은 우영우에 비하면 정말 인지연령이 한 2살 정도밖에 안 돼요. “네. 아니요.” 아니면 “엄마, 밥 주세요.” 이 정도밖에 안 하거든요. 하지만 저희 딸도 똑같이 직장에 다니고 똑같이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고 친구들이 있고 딸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영우는 어떤 한 면이 특출나서 변호사를 하는 거고, 저희 딸은 특출한 면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랑 같이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Q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분, 특히 이동권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이 있잖아요.

맞아요.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 사실 국가에서 해야 됐는 거잖아요. 이동권 문제만 보면 지하철 승강기 설치나 전동차하고 차간 거리나 이런 것들을 잘 만들어줘야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을 하지 않아서 휠체어가 못 지나가서 사람들이 멈춰서 있는 거잖아요. 국가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장애인들이 시위해서 비장애인들이 출근을 못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는 휠체어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아서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열차가 지연되고 있는 거잖아요. 같은 말이지만 굉장히 다르거든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아직 안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시설 설치를 해야 하는데 아직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서 불편을 겪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고 해야 하는 것을 "장애인 단체가 시위해서 그렇다"고 하는 거잖아요. 왜 쓸데없는 예산을 쓰느냐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냥 국가의 의무란 말이에요.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잘 다닐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건 국가의 의무죠.

Q 장애인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구성원으로서 생활하는 건데 부족한 점이 여전히 많다고 보시는지요?

12년 동안 교육을 잘 받아서 이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야 국가적인 비용이 줄어드는 거죠. 장애인들이 졸업하고 시설에 가면 그 비용을 다 국가가 부담해야 건데, 졸업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해주면 사실 국가부담이 줄어드는 거고, 국가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국민들의 세금이 그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질 좋은 교육을 할 수가 없어요. 국가가 교육을 잘 받을 수 있게 초등학교 때부터 지원하면 장애인들도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사회에 나올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안 돼 있는 거예요. 중증의 장애인들도 어느 정도 지원 인력지원을 해주고, 어느 정도 교육을 해주면 충분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요. 저희 딸도 굉장히 중증이고, 말도 잘 못 하는데도 직장생활 하고 있거든요. 하루 4시간 일해서 백 만 원 정도 벌어요. 그거 가지고 취미생활도 하고 친구도 만나요. 국가가 어느 정도 (보조) 인력지원을 해준다거나, 기업에서 중증장애인들을 채용했을 때 국가가 더 많은 혜택을 준다면 장애인들도 충분히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비슷한 삶이 가능할 거예요.

☞ 서울시는 4일 어울림플라자가 공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어울림플라자는 서울 강서구 등촌1동에 들어설 지상 5층·지하 4층의 장애인 비장애인 복합시설이다. 장애인을 위한 치과병원, 지역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공연장, 수영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일부 주민들은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어 공사가 진행될 경우 통학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고 있지만, 장애인단체에서는 어울림플라자에 일부 장애인시설이 들어가는 것도 반대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관련 영상은 < KBS1 #사사건건이만난사람 >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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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꿇은 호소’ 그 후 5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 입력 2022-08-06 08:02:29
    취재K

2017년 한국 사회에 장애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들어설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지적장애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를 설립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지역주민들은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이라면서 거세게 반대했다. 하지만 갈등은 좁혀지지 않았다. 2차례에 걸쳐 열린 공청회에서 장애 학생의 학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면 호소했다. 무릎 꿇은 장면이 SNS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논란은 커졌다. 국무총리와 국가인권위원회 여야 정치권까지 관심을 보였다. 특수학교 터에 한방병원을 설립해 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장애인특수학교 설립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했다. 여론이 장애인 학생 학부모의 손을 들어줬고 어렵사리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장애인학교, 장애인 시설이 혐오시설로 취급받고 있다는 씁쓸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로부터 5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문제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은 과연 나아졌을까? 드라마에서 발달장애인이 직접 배우로 등장하고 자폐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유능한 변호사로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인기만큼 장애인시설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사라진 것일까? 5년전 그때 무릎 꿇고 호소했던 부모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당시 장애학생 학부모들을 대표해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이은자씨를 만나봤다.

@ 이은자 (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씨는 2017년 당시 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학부모들의 대표역할을 맡았다.
Q 2017년 당시 상황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심정이신지요?

제일 많이 느꼈던 거는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정말 많이 모르시는구나. 너무 많이 모르시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반대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주민분들을 만나보면 “발달장애 너무 위험하지 않냐?” “위험한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학교면 정말 여기 더 위험해지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셔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참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또 한 가지는 너무나 많이 집값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본인들은 집값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고는 하셨는데 어쨌든 집값이 내려갈 수도 있다. 이런 염려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학교가 막상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등하교하게 되면 어떤 막연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불안감은 그냥 자연스럽게 없어지실 거고, 어느 곳도 특수학교가 들어와서 집값이 내려갔다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학교가 설립되고 운영이 되면 주민분들의 그런 걱정은 정말 다 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Q 당시 과정이 영화 <학교 가는 길>로도 제작되었고 그 안에 주민들이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다뤄졌는데 주민들의 심정도 이해되는 면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주민들과 극한으로 대립할 때는 사실 잘 몰랐어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서운한 마음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분들이 정말로 반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사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하셨던 이유는 발달장애인들 때문이라기보다는 학교가 폐교되는 과정이나 왜 폐교될 수밖에 없었는지 교육청에서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아시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같은 부모 입장에서 같은 주민 입장에 생각해보면 참 분노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 일반 학교를 폐교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교육 당국이 그렇게 한 것이거든요.

☞ 1990년 정부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1992년 임대아파트 단지에 공진초등학교가 개교했지만, 임대아파트 주변 주민들이 학군을 분리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교육청이 수용했다. 이후 공진초등학교에는 임대아파트 거주 학생들만 다니게 됐고 학생 수가 계속 줄었다. 2015년 2월 공진초등학교는 결국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됐다. 당시 전교생은 106명이었다.

☞ 2017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꿇고 호소했던 학부모들과 설립을 반대했던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은 영화 <학교 가는 길>로 만들어져 2021년 5월에 개봉했다.

Q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설립됐지만,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주민의 반대 때문에 특수학교 추가 설립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서진학교 문제가 해결됐을 때 저희들이 바랐던 것은 다른 곳에 특수학교나 장애인 관련 시설을 지을 때 주민들이 반대를 덜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서 5분 거리에 서울시 어울림플라자(장애, 비장애인 복합시설) 건설이 계획 중에 있는데 주민들이 반대해서 지금 못 짓고 있어요. 중랑구에서도 동진학교라는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부지 선정도 못 했어요. 국민 여러분들이 성원을 해주셔서 서진학교를 예쁘게 만들어서 아이들이 다니고 있지만, 지금 또 다른 곳에서는 또 똑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되고 있는 게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Q 서진학교가 설립되긴 했지만, 자녀가 성인이 돼서 실제로 다니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아쉬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당신 아이가 갈 학교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머님들이 애를 쓰냐고 하시는데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사실 이게 내 일 네 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저희 아이는 성인이지만 학년기에 학교 갈 친구들의 학교가 없으면 다 같이 애를 써야 하는 거고, 또 성인 아이들한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학년기 엄마들도 다 같이 애를 쓰죠. 그런데 학교가 다 만들어지고 교장 선생님이 학교견학을 해주셨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현이(딸)가 서진학교에 다녔으면 참 좋아했겠다. 여기 다니는 친구들은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서울서진학교는 2018년 8월 공사를 시작해 2020년 3월 정식 개교하고 신입생을 받았다.
@ 서울서진학교는 서울시에서 17년 만에 설립된 특수학교다. 현재 초중고 과정 학생 190여 명이 다니고 있다.
Q 서진학교 말고도 다른 지역에도 특수학교가 계속 필요한건가요?

필요하죠. 지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일반 학교에 장애 학생이 입학해서 통합교육환경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요. 일반 학교 학생들은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서 달리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발달장애 학생이 들어가서 어떤 특이한 행동을 한다거나 했을 때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거든요. 궁극적으로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비장애학생 학부모님들도 원하는 통합 교육을 하기에는 아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Q 그러면 서진학교 같은 특수학교에 올 수 없는 경우에 학생들은 어느 학교로 가나요?

그냥 일반 학교에 배정을 받는 거죠. 저는 그걸 강제 배정이라고 얘기를 해요. 내가 특수학교에 가고 싶으면 특수학교에 가야 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일반 학교에 가게 될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학부모들이 특수학교에 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냐면 아이가 얼마나 중증인지를 설명하는 거예요. 심사를 받아요. 중증 우선으로 특수학교에서 받으니까요. 우리 아이가 이만큼 중증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거죠. 굉장히 비정상적인 거잖아요. 그래서 어렵게 특수학교에 배정받으면 “우리 아이가 특수학교에 붙었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특수학교가 서울대도 아닌데요.

Q 비장애 학생들은 그 지역 내에서 가까운 근거리 원칙으로 학교 배정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장애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 네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어요. 서진학교도 작년에 20명 정도 1학년에 못 들어온 거로 알고 있어요.

Q 최근 드라마에서 장애인이 주인공이 되거나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서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아주 드문 특수한 사례잖아요. 많은 장애인 부모들에게는 희망 고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 딸 이름이 안지현이거든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삶과 진짜 우리 딸의 삶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우영우가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우영우 혼자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에요. 주위 사람들이 우영우랑 호흡을 맞춰주고 같이 살아가는 거잖아요. 저희 딸 안지현은 우영우에 비하면 정말 인지연령이 한 2살 정도밖에 안 돼요. “네. 아니요.” 아니면 “엄마, 밥 주세요.” 이 정도밖에 안 하거든요. 하지만 저희 딸도 똑같이 직장에 다니고 똑같이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고 친구들이 있고 딸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영우는 어떤 한 면이 특출나서 변호사를 하는 거고, 저희 딸은 특출한 면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랑 같이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Q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분, 특히 이동권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이 있잖아요.

맞아요.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 사실 국가에서 해야 됐는 거잖아요. 이동권 문제만 보면 지하철 승강기 설치나 전동차하고 차간 거리나 이런 것들을 잘 만들어줘야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을 하지 않아서 휠체어가 못 지나가서 사람들이 멈춰서 있는 거잖아요. 국가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장애인들이 시위해서 비장애인들이 출근을 못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는 휠체어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아서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열차가 지연되고 있는 거잖아요. 같은 말이지만 굉장히 다르거든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아직 안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시설 설치를 해야 하는데 아직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서 불편을 겪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고 해야 하는 것을 "장애인 단체가 시위해서 그렇다"고 하는 거잖아요. 왜 쓸데없는 예산을 쓰느냐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냥 국가의 의무란 말이에요.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잘 다닐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건 국가의 의무죠.

Q 장애인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구성원으로서 생활하는 건데 부족한 점이 여전히 많다고 보시는지요?

12년 동안 교육을 잘 받아서 이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야 국가적인 비용이 줄어드는 거죠. 장애인들이 졸업하고 시설에 가면 그 비용을 다 국가가 부담해야 건데, 졸업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해주면 사실 국가부담이 줄어드는 거고, 국가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국민들의 세금이 그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질 좋은 교육을 할 수가 없어요. 국가가 교육을 잘 받을 수 있게 초등학교 때부터 지원하면 장애인들도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사회에 나올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안 돼 있는 거예요. 중증의 장애인들도 어느 정도 지원 인력지원을 해주고, 어느 정도 교육을 해주면 충분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요. 저희 딸도 굉장히 중증이고, 말도 잘 못 하는데도 직장생활 하고 있거든요. 하루 4시간 일해서 백 만 원 정도 벌어요. 그거 가지고 취미생활도 하고 친구도 만나요. 국가가 어느 정도 (보조) 인력지원을 해준다거나, 기업에서 중증장애인들을 채용했을 때 국가가 더 많은 혜택을 준다면 장애인들도 충분히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비슷한 삶이 가능할 거예요.

☞ 서울시는 4일 어울림플라자가 공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어울림플라자는 서울 강서구 등촌1동에 들어설 지상 5층·지하 4층의 장애인 비장애인 복합시설이다. 장애인을 위한 치과병원, 지역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공연장, 수영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일부 주민들은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어 공사가 진행될 경우 통학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고 있지만, 장애인단체에서는 어울림플라자에 일부 장애인시설이 들어가는 것도 반대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관련 영상은 < KBS1 #사사건건이만난사람 >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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