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도 좋지만…‘난중일기’로 만나는 이순신

입력 2022.08.06 (09:02) 수정 2022.08.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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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음력)
정월 16일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제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병선은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2월 25일
'사도진의 여러 가지 전쟁 방비를 살펴보았더니 결함이 많았다. 군관과 책임을 맡은 서리들을 처벌하였다. …방비가 다섯 진포 가운데에서 제일 못한데도 순찰사가 잘 되었다고 장계를 올렸다니… 죄를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3월 27일
'아침을 일찍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에 갔다. 쇠사슬을 가로질러 걸어매는 것을 감독하며 하루 내내 기둥나무 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해 보았다.'

(난중일기 /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1592년 1월에서 3월 사이, 난중일기의 장면들입니다. 전쟁은 1592년 4월(음력)에 일어났습니다. 난중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전쟁 직전까지도 부대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장비가 제대로 관리·유지되고 있는지, 거북선의 대포가 정확하게 발사되는지를 점검해보고 확인해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기에는 사실과 감정이 모두 드러납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에 대한 기록이 뼈대를 이루면서도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쓴웃음이 나왔다' 등 군데군데 감정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난중일기는 장군 이순신은 물론 인간 이순신을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글로 꼽힙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장수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여러 전투에 참여하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해 놓은 글, 이는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귀한 글이기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도 지정돼 있습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는 난중일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사령관의 전장 기록이라는 면에서 세계사에서 필적할 만한 사례가 없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은 매 전투 상황은 물론 장군 자신의 관점과 감정, 기상 정보, 전장의 지형, 민초들의 삶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문체는 간결하고 우아하다.'

난중일기를 소개한 유네스코 홈페이지난중일기를 소개한 유네스코 홈페이지

인류의 유산이기도 한 난중일기는 조선 중기에 한자로 써졌고 어린이나 청소년용을 비롯해 여러 한글 번역본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검색에 의하면 난중일기 도서만 199권이 출간됐을 정도입니다.

난중일기의 매력은 이순신의 생생한 얘기를 다른 누군가를 통해 전달받는 게 아니라 이순신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을 겁니다. 생략되거나 첨가되지 않은, 다시 말해 각색되지 않은 이순신의 목소리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겁니다.

책 난중일기가 드라마나 영화와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를 들어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다른 영상 매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순신이 사천해전에서 탄환을 맞은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군관 나대용이 이순신 장군을 보호하려다 먼저 탄환을 맞고 쓰러집니다. '나 군관! 나 군관! 정신차려라! 나 군관!' 이순신이 나대용을 부축합니다. 이번에는 장군이 어깨에 탄환을 맞습니다. 부하 장수들은 깜짝 놀랍니다. 모두 얼어붙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창백해지기는 했어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속히 나 군관을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게. 내 상처는 대단치 않네', 지시를 내립니다. 부하 장수들은 사령관의 부상에 불안해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개의치 않습니다. 전투는 계속됩니다. 바다 한가운데 포성이 울립니다. 결국, 조선 수군의 환호성이 퍼져 나가는 가운데 드라마에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옵니다.

"이순신의 제2차 출전 중 첫 전투였던 사천해전은 조선 최대의 돌격선 귀선의 장쾌한 활약에 힘입어 13척을 분멸하고…장쾌한 대첩이었다."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나대용과 이순신이 탄환을 맞는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극적이면서도 압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영화의 특성상 제한된 시간 내 표현해야 하기에 드라마와는 구성에 있어 조금 차이가 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장수의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난중일기에는 어떻게 표현돼 있을까요?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軍官羅大用中丸。余亦左肩上中丸。貫于背。不至重傷'
(壬辰 五月 二十九日)

직역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을 맞았다. 나 또한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았다. 등을 뚫고 지나갔다. 중상은 아니었다.'

일기에는 '탄환에 맞아 고통이 심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치료를 어떻게 했다', 이런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난중일기 곳곳에 아픈 몸에 관한 얘기가 자주 언급되지만, 정작 탄환을 맞았을 때는 아무 얘기 없이 그저 사실만 말하고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는데, 유네스코에 나온 표현대로 '간결하고 우아하게' 전투 중에 있었던 일을 기록해 놓았을 뿐입니다.

사천해전에서 적의 탄환을 맞은 일, 스타북스와 여해에서 출간된 난중일기는 아래와 같이 옮겨 놓고 있습니다. 원문과 마찬가지로 한글 번역본도 모두 간결, 담백한 필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적의 무리는 두려워서 물러나다가 화살에 맞는 자들이 몇백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으며,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으로 뚫고 나갔으나 중상에는 이르지 않았다.'
(난중일기 /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적들은 무서워서 후퇴했다. 화살에 맞은 자가 몇백 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하였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난중일기 /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여해)

한국고전종합DB 이충무공전서한국고전종합DB 이충무공전서

전장의 글인 만큼, 난중일기는 매일같이 기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몇 달씩 일기가 빠진 부분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난중일기의 경우 '중요한 일이 있었던 기간에 대해서는 장계(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 또는 그런 문서)를 통해 보충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한산도 대첩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1592년, 임진년 7월의 경우에는 빠져 있는데, 대신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견내량파왜병장(견내량에서 왜병장을 물리쳤다는 의미)'이라는 장계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책은 아래와 같이 얘기합니다.

1592년 7월 8일 (견내량파왜병장 일부 발췌)
'먼저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적의 선봉을 쫓아가서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이 일제히 돛을 달고 쫓아왔다. 우리 배가 거짓으로 물러나며 돌아 나오니 적들도 줄곧 쫓아왔다. 바다 한가운데 와서는 다시 여러 장수에게 명령하여 학의 날개처럼 진을 치고 일제히 진격하였다. 각각 지자·현자·승자총통 등을 쏘아서 먼저 두세 척을 박살 내니, 여러 배의 왜적들이 기가 꺾여 도망갔다. …적의 배를 불사르고 적군을 한꺼번에 거의 다 쳐부수었다.'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우리 배가 거짓으로 물러나며…학의 날개처럼 진을 치고…한꺼번에 거의 다 쳐부수었다…이를 드라마나 영화로 표현하는 방법은 여럿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전의 감동은 원전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KBS ‘역사저널 그날’

난중일기는 인간 이순신의 삶을 다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훈 작가는 지난 3일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시절 안중근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자신에게 말 못할 충격을 줬다며 결국 그 두 개의 글이 자신의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이라는 게 결국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난중일기는 여러 사람이 번역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됐습니다. 난중일기 자체를 한글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춘 책도 있고,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부분에 대해서는 장계 등의 내용까지 함께 실은 책도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풀이나 옛 어휘와 관련된 주석 등을 꼼꼼하게 해 놓은 책도 있습니다. 동네서점이나 대형서점 또는 인터넷서점 등에서 책들을 비교해보고 손길이 가는 난중일기를 고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KBS ‘역사저널 그날’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보는 일은 즐겁기 마련입니다. 영화는 책이 전해주지 못하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또한 영화가 전해주지 못하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전투 장면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난중일기는 그 전투를 준비하기까지 어떤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고, 그 과정에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7년 전쟁의 기록인 난중일기, 이순신을 만나는 또 다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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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나 드라마도 좋지만…‘난중일기’로 만나는 이순신
    • 입력 2022-08-06 09:02:37
    • 수정2022-08-06 09:30:24
    취재K

임진년 (음력)
정월 16일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제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병선은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2월 25일
'사도진의 여러 가지 전쟁 방비를 살펴보았더니 결함이 많았다. 군관과 책임을 맡은 서리들을 처벌하였다. …방비가 다섯 진포 가운데에서 제일 못한데도 순찰사가 잘 되었다고 장계를 올렸다니… 죄를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3월 27일
'아침을 일찍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에 갔다. 쇠사슬을 가로질러 걸어매는 것을 감독하며 하루 내내 기둥나무 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해 보았다.'

(난중일기 /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1592년 1월에서 3월 사이, 난중일기의 장면들입니다. 전쟁은 1592년 4월(음력)에 일어났습니다. 난중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전쟁 직전까지도 부대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장비가 제대로 관리·유지되고 있는지, 거북선의 대포가 정확하게 발사되는지를 점검해보고 확인해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기에는 사실과 감정이 모두 드러납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에 대한 기록이 뼈대를 이루면서도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쓴웃음이 나왔다' 등 군데군데 감정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난중일기는 장군 이순신은 물론 인간 이순신을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글로 꼽힙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장수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여러 전투에 참여하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해 놓은 글, 이는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귀한 글이기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도 지정돼 있습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는 난중일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사령관의 전장 기록이라는 면에서 세계사에서 필적할 만한 사례가 없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은 매 전투 상황은 물론 장군 자신의 관점과 감정, 기상 정보, 전장의 지형, 민초들의 삶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문체는 간결하고 우아하다.'

난중일기를 소개한 유네스코 홈페이지
인류의 유산이기도 한 난중일기는 조선 중기에 한자로 써졌고 어린이나 청소년용을 비롯해 여러 한글 번역본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검색에 의하면 난중일기 도서만 199권이 출간됐을 정도입니다.

난중일기의 매력은 이순신의 생생한 얘기를 다른 누군가를 통해 전달받는 게 아니라 이순신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을 겁니다. 생략되거나 첨가되지 않은, 다시 말해 각색되지 않은 이순신의 목소리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겁니다.

책 난중일기가 드라마나 영화와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를 들어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다른 영상 매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순신이 사천해전에서 탄환을 맞은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군관 나대용이 이순신 장군을 보호하려다 먼저 탄환을 맞고 쓰러집니다. '나 군관! 나 군관! 정신차려라! 나 군관!' 이순신이 나대용을 부축합니다. 이번에는 장군이 어깨에 탄환을 맞습니다. 부하 장수들은 깜짝 놀랍니다. 모두 얼어붙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창백해지기는 했어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속히 나 군관을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게. 내 상처는 대단치 않네', 지시를 내립니다. 부하 장수들은 사령관의 부상에 불안해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개의치 않습니다. 전투는 계속됩니다. 바다 한가운데 포성이 울립니다. 결국, 조선 수군의 환호성이 퍼져 나가는 가운데 드라마에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옵니다.

"이순신의 제2차 출전 중 첫 전투였던 사천해전은 조선 최대의 돌격선 귀선의 장쾌한 활약에 힘입어 13척을 분멸하고…장쾌한 대첩이었다."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나대용과 이순신이 탄환을 맞는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극적이면서도 압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영화의 특성상 제한된 시간 내 표현해야 하기에 드라마와는 구성에 있어 조금 차이가 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장수의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난중일기에는 어떻게 표현돼 있을까요?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軍官羅大用中丸。余亦左肩上中丸。貫于背。不至重傷'
(壬辰 五月 二十九日)

직역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을 맞았다. 나 또한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았다. 등을 뚫고 지나갔다. 중상은 아니었다.'

일기에는 '탄환에 맞아 고통이 심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치료를 어떻게 했다', 이런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난중일기 곳곳에 아픈 몸에 관한 얘기가 자주 언급되지만, 정작 탄환을 맞았을 때는 아무 얘기 없이 그저 사실만 말하고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는데, 유네스코에 나온 표현대로 '간결하고 우아하게' 전투 중에 있었던 일을 기록해 놓았을 뿐입니다.

사천해전에서 적의 탄환을 맞은 일, 스타북스와 여해에서 출간된 난중일기는 아래와 같이 옮겨 놓고 있습니다. 원문과 마찬가지로 한글 번역본도 모두 간결, 담백한 필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적의 무리는 두려워서 물러나다가 화살에 맞는 자들이 몇백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으며,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으로 뚫고 나갔으나 중상에는 이르지 않았다.'
(난중일기 /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적들은 무서워서 후퇴했다. 화살에 맞은 자가 몇백 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하였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난중일기 /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여해)

한국고전종합DB 이충무공전서
전장의 글인 만큼, 난중일기는 매일같이 기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몇 달씩 일기가 빠진 부분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난중일기의 경우 '중요한 일이 있었던 기간에 대해서는 장계(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 또는 그런 문서)를 통해 보충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한산도 대첩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1592년, 임진년 7월의 경우에는 빠져 있는데, 대신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견내량파왜병장(견내량에서 왜병장을 물리쳤다는 의미)'이라는 장계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책은 아래와 같이 얘기합니다.

1592년 7월 8일 (견내량파왜병장 일부 발췌)
'먼저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적의 선봉을 쫓아가서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이 일제히 돛을 달고 쫓아왔다. 우리 배가 거짓으로 물러나며 돌아 나오니 적들도 줄곧 쫓아왔다. 바다 한가운데 와서는 다시 여러 장수에게 명령하여 학의 날개처럼 진을 치고 일제히 진격하였다. 각각 지자·현자·승자총통 등을 쏘아서 먼저 두세 척을 박살 내니, 여러 배의 왜적들이 기가 꺾여 도망갔다. …적의 배를 불사르고 적군을 한꺼번에 거의 다 쳐부수었다.'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우리 배가 거짓으로 물러나며…학의 날개처럼 진을 치고…한꺼번에 거의 다 쳐부수었다…이를 드라마나 영화로 표현하는 방법은 여럿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전의 감동은 원전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
난중일기는 인간 이순신의 삶을 다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훈 작가는 지난 3일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시절 안중근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자신에게 말 못할 충격을 줬다며 결국 그 두 개의 글이 자신의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이라는 게 결국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난중일기는 여러 사람이 번역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됐습니다. 난중일기 자체를 한글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춘 책도 있고,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부분에 대해서는 장계 등의 내용까지 함께 실은 책도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풀이나 옛 어휘와 관련된 주석 등을 꼼꼼하게 해 놓은 책도 있습니다. 동네서점이나 대형서점 또는 인터넷서점 등에서 책들을 비교해보고 손길이 가는 난중일기를 고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보는 일은 즐겁기 마련입니다. 영화는 책이 전해주지 못하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또한 영화가 전해주지 못하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전투 장면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난중일기는 그 전투를 준비하기까지 어떤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고, 그 과정에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7년 전쟁의 기록인 난중일기, 이순신을 만나는 또 다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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