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우영우는 우영우고’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입력 2022.08.07 (08:00) 수정 2022.1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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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2018)’의 한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2018)’의 한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

※매주 일요일,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최근 '대한항공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하기 사건'(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21585)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우영우 비교 만평'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우영우는 우영우고, 당신 아들(또는 전장연)처럼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한 언론사는 아예 "우영우도 지하철 막으면 욕먹는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기사 제목에 달았다.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영우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순간, 봐주는 것 없이 응징하겠다는 말에선 이 시대의 '공정'이 읽힌다. 완전히 무해한 존재에게만 시민의 자격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다.

세상에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해를 끼치지 않음'이란 말은 곱씹을수록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행동을 '해(害)'로 여길지, 그 기준을 누구의 편리대로 정하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남에게 들리지 않는 방식을 택할 것. 장애가 있어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행동할 것.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행동을 옥죄는 그물은 더 촘촘해진다. 폐를 끼칠 '가능성'만 있어도 출입을 막는 '노 키즈 존' 이 어느새 일상에 자리 잡은 게 그 예다. 발달 단계부터가 다른 아이들에게 다 큰 성인처럼 행동하길 요구한다. 장애인과 아이들, 그 다음엔 또 무엇을 사회에서 치워버리려 할 것인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바로 그런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다. 13살에 시설로 보내진 동생 혜정 씨를 둘째 언니 장 감독은 18년 만에 데리고 나온다. 자폐인 동생과 단둘이 살아갈 결심, 즉 감독의 표현대로 다시 '혜정이 언니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데에는 어렵게 얻은 깨우침이 있었다. '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나의 삶 역시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생각의 시작점을 내가 아닌 동생의 삶에 둬 보라는 조언을 들은 뒤, 장 감독은 '만약 내가 13살 때 평생 시설에서 살라는 통보를 받았으면 어땠을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은 당연히 시설에 살아야지.' '혜정인 흥이 많으니까 음악 수업도 좋아할 거야'. 비장애인의 편리와 편견에 맞춰온 시선의 영점을 옮긴 뒤에야 언니와 친구들은 혜정 씨의 본래 모습을 발견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란 걸. 시설에선 날마다 주는 대로 몇 주먹씩 약을 먹고 침 흘리며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던 혜정 씨는 영화 말미 언니와 한 소절씩 가사를 나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마치고 밝게 웃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2022)’의 한 장면(두물머리 픽쳐스 제공)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2022)’의 한 장면(두물머리 픽쳐스 제공)

다큐멘터리 '니얼굴' 역시 발달 장애인의 다양한 모습을 비춘다. 영화·드라마 배우이자 그림 작가인 정은혜 씨가 주인공이다. 정 씨도 시설에서 나온 뒤인 24살에야 그림 그리는 재능을 발견했다. 성인이 돼 갈 수 있는 시설이 없어진 딸이 방 안에 틀어박히자 화가인 엄마가 화실 겸 미술학원에 은혜 씨를 불러들인 게 시작이었다. 학원 청소를 하며 돈을 벌던 은혜 씨는 어느 날 아이들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9년 만에 4,000점 넘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가 됐다. 은혜 씨는 2년째 작업실에서 월급을 받는 예술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림에 참견하는 엄마와 티격태격 다툴 만큼 뚜렷한 화풍을 고집한다.

실제로 은혜 씨 그림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비뚜름한 구도,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함 등이 더해져 에곤 실레 못지 않은 '포스'를 풍긴다. 반면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도 있다. '때 묻지 않은 장애인의 눈으로 본 순수한 세계' 같은 식상한 묘사다. 서른두 살 은혜 씨는 아이가 아니다. 그림을 의뢰한 가족이 아이가 잘 웃지 않는다며 멋쩍어하자 '그 나이 땐 다 그렇다'며 의연하게 이해하는 어른이다. 빨리 여자 만나 장가가라고 동료 상인에게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능청스럽고, 엄마에게 성깔을 부릴 땐 딱 전형적인 대한민국 모녀의 초상이 보인다.

두 영화의 미덕은 주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기 힘든 발달 장애인의 일상을 풍부하게 담아냈다는 데 있다. 대단한 교훈이나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 카메라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혜정 씨와 은혜 씨를 비춘다. 두 사람의 삶에 무해와 유해, 유익과 손해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런 걸 검증받고 태어난 인간은 원래 없으니까. 영화가 궁금하다면, 두 편 모두 네이버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쓰면 대충 밑에 달릴 댓글이 예측된다. 9년째 기자 일을 하며 생긴 능력이다. '그렇게 장애인이 좋으면 네가 데리고 살아라'. 나는 지적 장애 1급인 할아버지와 15년을 살았다. 우리는 이렇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자는 말을 욕설로 여기는 사람들과 살고 있다. 우영우를 판타지로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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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우영우는 우영우고’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 입력 2022-08-07 08:00:37
    • 수정2022-12-26 09:39:20
    씨네마진국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2018)’의 한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
※매주 일요일,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최근 '대한항공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하기 사건'(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21585)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우영우 비교 만평'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우영우는 우영우고, 당신 아들(또는 전장연)처럼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한 언론사는 아예 "우영우도 지하철 막으면 욕먹는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기사 제목에 달았다.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영우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순간, 봐주는 것 없이 응징하겠다는 말에선 이 시대의 '공정'이 읽힌다. 완전히 무해한 존재에게만 시민의 자격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다.

세상에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해를 끼치지 않음'이란 말은 곱씹을수록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행동을 '해(害)'로 여길지, 그 기준을 누구의 편리대로 정하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남에게 들리지 않는 방식을 택할 것. 장애가 있어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행동할 것.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행동을 옥죄는 그물은 더 촘촘해진다. 폐를 끼칠 '가능성'만 있어도 출입을 막는 '노 키즈 존' 이 어느새 일상에 자리 잡은 게 그 예다. 발달 단계부터가 다른 아이들에게 다 큰 성인처럼 행동하길 요구한다. 장애인과 아이들, 그 다음엔 또 무엇을 사회에서 치워버리려 할 것인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바로 그런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다. 13살에 시설로 보내진 동생 혜정 씨를 둘째 언니 장 감독은 18년 만에 데리고 나온다. 자폐인 동생과 단둘이 살아갈 결심, 즉 감독의 표현대로 다시 '혜정이 언니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데에는 어렵게 얻은 깨우침이 있었다. '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나의 삶 역시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생각의 시작점을 내가 아닌 동생의 삶에 둬 보라는 조언을 들은 뒤, 장 감독은 '만약 내가 13살 때 평생 시설에서 살라는 통보를 받았으면 어땠을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은 당연히 시설에 살아야지.' '혜정인 흥이 많으니까 음악 수업도 좋아할 거야'. 비장애인의 편리와 편견에 맞춰온 시선의 영점을 옮긴 뒤에야 언니와 친구들은 혜정 씨의 본래 모습을 발견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란 걸. 시설에선 날마다 주는 대로 몇 주먹씩 약을 먹고 침 흘리며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던 혜정 씨는 영화 말미 언니와 한 소절씩 가사를 나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마치고 밝게 웃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2022)’의 한 장면(두물머리 픽쳐스 제공)
다큐멘터리 '니얼굴' 역시 발달 장애인의 다양한 모습을 비춘다. 영화·드라마 배우이자 그림 작가인 정은혜 씨가 주인공이다. 정 씨도 시설에서 나온 뒤인 24살에야 그림 그리는 재능을 발견했다. 성인이 돼 갈 수 있는 시설이 없어진 딸이 방 안에 틀어박히자 화가인 엄마가 화실 겸 미술학원에 은혜 씨를 불러들인 게 시작이었다. 학원 청소를 하며 돈을 벌던 은혜 씨는 어느 날 아이들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9년 만에 4,000점 넘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가 됐다. 은혜 씨는 2년째 작업실에서 월급을 받는 예술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림에 참견하는 엄마와 티격태격 다툴 만큼 뚜렷한 화풍을 고집한다.

실제로 은혜 씨 그림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비뚜름한 구도,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함 등이 더해져 에곤 실레 못지 않은 '포스'를 풍긴다. 반면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도 있다. '때 묻지 않은 장애인의 눈으로 본 순수한 세계' 같은 식상한 묘사다. 서른두 살 은혜 씨는 아이가 아니다. 그림을 의뢰한 가족이 아이가 잘 웃지 않는다며 멋쩍어하자 '그 나이 땐 다 그렇다'며 의연하게 이해하는 어른이다. 빨리 여자 만나 장가가라고 동료 상인에게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능청스럽고, 엄마에게 성깔을 부릴 땐 딱 전형적인 대한민국 모녀의 초상이 보인다.

두 영화의 미덕은 주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기 힘든 발달 장애인의 일상을 풍부하게 담아냈다는 데 있다. 대단한 교훈이나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 카메라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혜정 씨와 은혜 씨를 비춘다. 두 사람의 삶에 무해와 유해, 유익과 손해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런 걸 검증받고 태어난 인간은 원래 없으니까. 영화가 궁금하다면, 두 편 모두 네이버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쓰면 대충 밑에 달릴 댓글이 예측된다. 9년째 기자 일을 하며 생긴 능력이다. '그렇게 장애인이 좋으면 네가 데리고 살아라'. 나는 지적 장애 1급인 할아버지와 15년을 살았다. 우리는 이렇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자는 말을 욕설로 여기는 사람들과 살고 있다. 우영우를 판타지로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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