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튀르키예는 누구 편? “러시아 가스 루블 결제”…서방은 “경계”

입력 2022.08.08 (10:5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5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좌)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이 만나고 있다.5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좌)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이 만나고 있다.

■튀르키예는 누구 편일까?

유럽연합(EU)가입 후보국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러시아와는 어떤 관계일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서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이후 처음으로 튀르키예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외교장관회담이 개최됐습니다.

튀르키예는 흑해 곡물 수출협상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엔 튀르키예가 이스탄불 협정을 체결했고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열렸습니다.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이후 핀란드와 스웨덴이 군사적 중립을 버리고 나토 가입을 신청했을 때 튀르키예는 반대하던 입장을 막판에 바꿨습니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절차가 시작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분쟁지역 시리아, 아제르바이잔에서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시리아 문제를 두고 튀르키예는 반아사드 반군을,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각각 지원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자국 내 쿠르드족 분리 독립 세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시리아 내 쿠르드민병대(YPG)를 겨냥한 군사활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는 이를 반대해왔습니다.

2년 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튀르키예는 같은 튀르크족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러시아는 튀르키예가 이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5일 러시아 소치에서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5일 러시아 소치에서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 소치 찾은 에르도안 …"가스대금 루블 결제"

두 나라 관계를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밀착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한 달 새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지난달 19일 이란 테헤란에서 만나 '반미(反美)'에 한목소리를 낸 데 이어, 이달 5일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 소치를 방문했습니다. 4시간여의 회담 후 두 나라는 깜짝 발표를 내놨습니다.

회담 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자리가 양국 관계의 완전히 다른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는데 공동성명에서 두 나라는 경제 및 통상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기로 선언했습니다.

양국 간 무역을 1,000억 달러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에너지, 무역, 관광,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교역 규모는 약 350억 달러, 올해는 500~6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에너지 결제 방식의 전환입니다. 튀르키예가 러시아산 가스 대금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로 내기로 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에 한 해 약 26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금융 블록'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금융 블록을 논의했고 큰 틀의 합의도 이뤄졌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은 점차 국가 통화 결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는 통화 및 재정 관계 발전을 포함해 새로운 기회를 여는 새로운 단계"라고 강조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르(MIR) 결제 시스템 사용에 대한 진전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경제 관계에서도 탈달러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있고 인도도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면서 루블-루피화 결제를 시작했습니다. 지난달부터 이란 테헤란 거래소에서는 루블-리알 직거래가 시작됐습니다.

2020년 개통된 튀르크스트림. 흑해 해저를 거쳐 러시아로부터 튀르키예, 그리스까지 이어지는 가스관이다2020년 개통된 튀르크스트림. 흑해 해저를 거쳐 러시아로부터 튀르키예, 그리스까지 이어지는 가스관이다

■ 서방은 경계…"기업에 튀르키예와 관계 축소 요구할 수도"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밀착 행보를 서방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또한 이런 반응을 모를 리 없습니다. 타스와 인테르팍스 등 러시아 매체들은 정상회담 소식에 이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보도를 일제히 전했는데요.

6일 FT는 서방의 익명 소식통들을 인용한 보도에서 "EU는 '튀르키예가 러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소식통은 FT에 "러시아에 대한 튀르키예의 행동이 매우 기회주의적"이라고 묘사하면서 "우리는 튀르키예인들이 우리의 우려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EU 관계자는 “회원국들이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관계를 더 면밀하게 감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방의 한 고위 관계자는 “EU가 서방 기업에 튀르키예와의 관계를 철회하거나 축소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튀르키예는 누구 편? “러시아 가스 루블 결제”…서방은 “경계”
    • 입력 2022-08-08 10:55:31
    특파원 리포트
5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좌)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이 만나고 있다.
■튀르키예는 누구 편일까?

유럽연합(EU)가입 후보국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러시아와는 어떤 관계일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서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이후 처음으로 튀르키예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외교장관회담이 개최됐습니다.

튀르키예는 흑해 곡물 수출협상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엔 튀르키예가 이스탄불 협정을 체결했고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열렸습니다.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이후 핀란드와 스웨덴이 군사적 중립을 버리고 나토 가입을 신청했을 때 튀르키예는 반대하던 입장을 막판에 바꿨습니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절차가 시작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분쟁지역 시리아, 아제르바이잔에서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시리아 문제를 두고 튀르키예는 반아사드 반군을,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각각 지원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자국 내 쿠르드족 분리 독립 세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시리아 내 쿠르드민병대(YPG)를 겨냥한 군사활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는 이를 반대해왔습니다.

2년 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튀르키예는 같은 튀르크족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러시아는 튀르키예가 이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5일 러시아 소치에서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 소치 찾은 에르도안 …"가스대금 루블 결제"

두 나라 관계를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밀착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한 달 새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지난달 19일 이란 테헤란에서 만나 '반미(反美)'에 한목소리를 낸 데 이어, 이달 5일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 소치를 방문했습니다. 4시간여의 회담 후 두 나라는 깜짝 발표를 내놨습니다.

회담 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자리가 양국 관계의 완전히 다른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는데 공동성명에서 두 나라는 경제 및 통상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기로 선언했습니다.

양국 간 무역을 1,000억 달러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에너지, 무역, 관광,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교역 규모는 약 350억 달러, 올해는 500~6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에너지 결제 방식의 전환입니다. 튀르키예가 러시아산 가스 대금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로 내기로 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에 한 해 약 26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금융 블록'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금융 블록을 논의했고 큰 틀의 합의도 이뤄졌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은 점차 국가 통화 결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는 통화 및 재정 관계 발전을 포함해 새로운 기회를 여는 새로운 단계"라고 강조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르(MIR) 결제 시스템 사용에 대한 진전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경제 관계에서도 탈달러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있고 인도도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면서 루블-루피화 결제를 시작했습니다. 지난달부터 이란 테헤란 거래소에서는 루블-리알 직거래가 시작됐습니다.

2020년 개통된 튀르크스트림. 흑해 해저를 거쳐 러시아로부터 튀르키예, 그리스까지 이어지는 가스관이다
■ 서방은 경계…"기업에 튀르키예와 관계 축소 요구할 수도"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밀착 행보를 서방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또한 이런 반응을 모를 리 없습니다. 타스와 인테르팍스 등 러시아 매체들은 정상회담 소식에 이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보도를 일제히 전했는데요.

6일 FT는 서방의 익명 소식통들을 인용한 보도에서 "EU는 '튀르키예가 러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소식통은 FT에 "러시아에 대한 튀르키예의 행동이 매우 기회주의적"이라고 묘사하면서 "우리는 튀르키예인들이 우리의 우려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EU 관계자는 “회원국들이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관계를 더 면밀하게 감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방의 한 고위 관계자는 “EU가 서방 기업에 튀르키예와의 관계를 철회하거나 축소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