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자축하는 탈레반 vs 꽁꽁 숨은 여성들

입력 2022.08.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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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은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탈레반은 대통령궁으로 들어가 탈레반 깃발을 꽂았고 그렇게 다시 탈레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딱 1년이 지난 올해 8월 15일, 탈레반은 무장한 채 지지자들과 미국 대사관 앞에 모였습니다. 하루종일 카불 시내를 돌며 자축했습니다. 탈레반의 국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의 깃발을 휘날리며 차량 행진을 하고 하늘을 향해 축하의 총을 쏘기도 했습니다.

탈레반 정부는 미군에 맞서 승리한 날이라며 15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대변인은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이자 아프간의 구원과 자유의 날"이라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학생 비밀학교의 모습 [AFP ‘탈레반 재집권 1년, 여성교육 특별 리포트’]여학생 비밀학교의 모습 [AFP ‘탈레반 재집권 1년, 여성교육 특별 리포트’]

■ 비밀학교에서 공부하는 여학생들…"나처럼 되지 않기를"

자신감에 찬 탈레반이 자축하는 1년 동안, 여성들은 점점 모습을 감췄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고 눈 부분만 망사로 겨우 보이는 부르카 착용이 의무화됐고, 남성 가족 없이는 외출도 자유롭지 않게 됐습니다.

여학생들의 중고등 교육은 사실상 금지됐습니다. 많은 여학교가 문을 닫았는데 국제아동구호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밝힌 여자 어린이는 4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학교 폐쇄'였습니다.

여학생들은 이제 몰래 숨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AFP가 인터뷰한 한 여성은 교육부에서 일했지만, 탈레반 재집권 이후 쫓겨났습니다. 고민 끝에 집에 비밀 학교를 열었는데,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의 미래가 나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딸을 위해 집에 학교를 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꿈을 갖고 탈레반 몰래, 남자 형제 몰래 학교로 향합니다.

"내 딸이 학교를 못 가 울고 있다면, 다른 부모의 딸들도 울고 있을 겁니다" - 비밀학교 교사
"저는 12살에 약혼했습니다. 많은 미성년자들이 결혼을 강요당합니다. 아이들이 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밀학교 교사
"오빠는 내가 학교에 가는 사실을 모릅니다. 엄마만 응원해 줍니다" - 10학년 여학생
"집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12학년 여학생
"내 딸이 교육을 받는다면 본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알게 될 겁니다" -여학생 어머니

압둘 카하르 발키 탈레반 외교부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여학교 폐쇄는 '임시 휴교(temporary suspension)'라며 여러가지 문제들이 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정책은 명확하며, 모든 시민들을 위한 교육"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일부 국제 활동가들이 교육 문제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들의 시위에 총으로 대응한 탈레반 [카불, AFP]여성들의 시위에 총으로 대응한 탈레반 [카불, AFP]

■ 일부 여성들 시위 이어가…탈레반, 총으로 대응

일부 여성들은 탈레반 재집권 1년을 맞아 얼굴을 가리지 않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교육부 건물 앞에서 '빵과 일, 자유"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허공에 총을 쏘며 해산시켰고, 일부는 구타당하거나 감금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 경제는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공공부문의 75%를 차지하던 해외 원조가 대부분 끊겼고, 국제 제재로 80억 달러의 자금이 동결됐습니다. 여기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280만 명이 극심한 기아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해외 아프간 난민 수는 260만 명, 아프간 국내 난민도 3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유엔난민기구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도 계속돼 지난 6월 발생한 지진으로 1,100명 이상이 숨지고 만 채 이상의 주택이 붕괴됐지만 장비 등의 부족으로 복구 작업은 더디기만 합니다.

이대로라면 인구의 90%가 빈곤선 아래 생활을 하게 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적 지원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면 더욱 극단적인 테러조직들이 자생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지원과 동시에 탈레반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있는데, 인권 문제 등을 보면 이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프간 국민들, 특히 여성들은 시리아나 예멘처럼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사회의 관심이 사라지게 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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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자축하는 탈레반 vs 꽁꽁 숨은 여성들
    • 입력 2022-08-17 09:40:09
    특파원 리포트

1년 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은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탈레반은 대통령궁으로 들어가 탈레반 깃발을 꽂았고 그렇게 다시 탈레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딱 1년이 지난 올해 8월 15일, 탈레반은 무장한 채 지지자들과 미국 대사관 앞에 모였습니다. 하루종일 카불 시내를 돌며 자축했습니다. 탈레반의 국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의 깃발을 휘날리며 차량 행진을 하고 하늘을 향해 축하의 총을 쏘기도 했습니다.

탈레반 정부는 미군에 맞서 승리한 날이라며 15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대변인은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이자 아프간의 구원과 자유의 날"이라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학생 비밀학교의 모습 [AFP ‘탈레반 재집권 1년, 여성교육 특별 리포트’]
■ 비밀학교에서 공부하는 여학생들…"나처럼 되지 않기를"

자신감에 찬 탈레반이 자축하는 1년 동안, 여성들은 점점 모습을 감췄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고 눈 부분만 망사로 겨우 보이는 부르카 착용이 의무화됐고, 남성 가족 없이는 외출도 자유롭지 않게 됐습니다.

여학생들의 중고등 교육은 사실상 금지됐습니다. 많은 여학교가 문을 닫았는데 국제아동구호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밝힌 여자 어린이는 4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학교 폐쇄'였습니다.

여학생들은 이제 몰래 숨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AFP가 인터뷰한 한 여성은 교육부에서 일했지만, 탈레반 재집권 이후 쫓겨났습니다. 고민 끝에 집에 비밀 학교를 열었는데,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의 미래가 나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딸을 위해 집에 학교를 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꿈을 갖고 탈레반 몰래, 남자 형제 몰래 학교로 향합니다.

"내 딸이 학교를 못 가 울고 있다면, 다른 부모의 딸들도 울고 있을 겁니다" - 비밀학교 교사
"저는 12살에 약혼했습니다. 많은 미성년자들이 결혼을 강요당합니다. 아이들이 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밀학교 교사
"오빠는 내가 학교에 가는 사실을 모릅니다. 엄마만 응원해 줍니다" - 10학년 여학생
"집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12학년 여학생
"내 딸이 교육을 받는다면 본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알게 될 겁니다" -여학생 어머니

압둘 카하르 발키 탈레반 외교부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여학교 폐쇄는 '임시 휴교(temporary suspension)'라며 여러가지 문제들이 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정책은 명확하며, 모든 시민들을 위한 교육"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일부 국제 활동가들이 교육 문제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들의 시위에 총으로 대응한 탈레반 [카불, AFP]
■ 일부 여성들 시위 이어가…탈레반, 총으로 대응

일부 여성들은 탈레반 재집권 1년을 맞아 얼굴을 가리지 않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교육부 건물 앞에서 '빵과 일, 자유"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허공에 총을 쏘며 해산시켰고, 일부는 구타당하거나 감금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 경제는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공공부문의 75%를 차지하던 해외 원조가 대부분 끊겼고, 국제 제재로 80억 달러의 자금이 동결됐습니다. 여기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280만 명이 극심한 기아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해외 아프간 난민 수는 260만 명, 아프간 국내 난민도 3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유엔난민기구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도 계속돼 지난 6월 발생한 지진으로 1,100명 이상이 숨지고 만 채 이상의 주택이 붕괴됐지만 장비 등의 부족으로 복구 작업은 더디기만 합니다.

이대로라면 인구의 90%가 빈곤선 아래 생활을 하게 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적 지원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면 더욱 극단적인 테러조직들이 자생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지원과 동시에 탈레반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있는데, 인권 문제 등을 보면 이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프간 국민들, 특히 여성들은 시리아나 예멘처럼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사회의 관심이 사라지게 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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