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매기” 울려 퍼진, 어느 야구팬의 장례식

입력 2022.08.18 (10:18) 수정 2022.08.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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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조금은 특별한 빈소입니다. 불경이나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게 익숙한 장례식장을 봤다면 말이죠. 하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고인에게는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가 마치 종교와도 같았거든요.

특별한 빈소만큼이나 고인은 특별한 팬이었습니다. 흰 수염을 휘날리며 한국 프로야구 응원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외국인이었죠. 정확히는 미국인이었고, 이름은 케리 마허입니다. 원어민 교사 생활을 하며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마허 씨의 아버지 역시 한국전쟁 참전 용사셨다고 하니, 집안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간 셈입니다.

2008년 마허 씨는 우연히 찾은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의 팬이 됐습니다. 나중에 지역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을 때도 롯데의 사직 홈경기만큼은 '직관'을 빼놓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인 응원을 펼쳤습니다. 롯데 구단은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마허 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야구팬들은 그런 마허 씨를 '사직 할아버지' 나 '롯데 할아버지' 등의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마허 씨는 교수로 정년을 마친 뒤에도 한국에 남았습니다. 롯데 야구를 보기 위해서였죠. 비자 문제가 있었지만, 롯데 구단은 이 열성적인 야구팬을 홍보위원으로 채용하며 체류를 도왔죠.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편안한 은퇴 후 삶을 기대했던 그에게 2020년 혈액암 판정이란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암 투병도, 그의 야구 사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5일까지 그는 사직구장을 찾아 ‘부산갈매기’를 외쳤습니다.

그런 야구 사랑이 꺾인 건 이튿날입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마허 씨는 합병증으로 급속히 몸이 나빠졌고, 부산의 한 대학 중환자실에서 지난 16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68세입니다.

그의 지인들은 부산에 빈소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의 장례식에서는 롯데자이언츠의 응원가를 틀어달라는 고인의 당부를 잊지 않고 빈소에 응원가를 틀었죠.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는 18일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서 케리 마허씨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는 18일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서 케리 마허씨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한국에 가족이 없는 고인이지만 함께 야구를 봤던 친구들, 치어리더, 야구장 앞 라면집 사장님처럼 야구로 엮인 인연들이 빈소를 채웠습니다. 롯데 구단은 지난 17일, 홈경기 전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죠.

지인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한국 생활 중 남긴 재산과 부의금을 정리해 부산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내놓기로 한 거죠. 상주 역할을 하는 조현호 씨는 "미국에 있는 가족들도 고인의 뜻에 공감하며 그렇게 처리해달라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영원한 롯데 팬이 되기를 원했던 고인의 장지 역시 그의 뜻대로 한국으로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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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갈~매기” 울려 퍼진, 어느 야구팬의 장례식
    • 입력 2022-08-18 10:18:47
    • 수정2022-08-18 10:23:24
    취재K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조금은 특별한 빈소입니다. 불경이나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게 익숙한 장례식장을 봤다면 말이죠. 하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고인에게는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가 마치 종교와도 같았거든요.

특별한 빈소만큼이나 고인은 특별한 팬이었습니다. 흰 수염을 휘날리며 한국 프로야구 응원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외국인이었죠. 정확히는 미국인이었고, 이름은 케리 마허입니다. 원어민 교사 생활을 하며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마허 씨의 아버지 역시 한국전쟁 참전 용사셨다고 하니, 집안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간 셈입니다.

2008년 마허 씨는 우연히 찾은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의 팬이 됐습니다. 나중에 지역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을 때도 롯데의 사직 홈경기만큼은 '직관'을 빼놓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인 응원을 펼쳤습니다. 롯데 구단은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마허 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야구팬들은 그런 마허 씨를 '사직 할아버지' 나 '롯데 할아버지' 등의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마허 씨는 교수로 정년을 마친 뒤에도 한국에 남았습니다. 롯데 야구를 보기 위해서였죠. 비자 문제가 있었지만, 롯데 구단은 이 열성적인 야구팬을 홍보위원으로 채용하며 체류를 도왔죠.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편안한 은퇴 후 삶을 기대했던 그에게 2020년 혈액암 판정이란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암 투병도, 그의 야구 사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5일까지 그는 사직구장을 찾아 ‘부산갈매기’를 외쳤습니다.

그런 야구 사랑이 꺾인 건 이튿날입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마허 씨는 합병증으로 급속히 몸이 나빠졌고, 부산의 한 대학 중환자실에서 지난 16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68세입니다.

그의 지인들은 부산에 빈소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의 장례식에서는 롯데자이언츠의 응원가를 틀어달라는 고인의 당부를 잊지 않고 빈소에 응원가를 틀었죠.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는 18일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서 케리 마허씨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한국에 가족이 없는 고인이지만 함께 야구를 봤던 친구들, 치어리더, 야구장 앞 라면집 사장님처럼 야구로 엮인 인연들이 빈소를 채웠습니다. 롯데 구단은 지난 17일, 홈경기 전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죠.

지인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한국 생활 중 남긴 재산과 부의금을 정리해 부산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내놓기로 한 거죠. 상주 역할을 하는 조현호 씨는 "미국에 있는 가족들도 고인의 뜻에 공감하며 그렇게 처리해달라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영원한 롯데 팬이 되기를 원했던 고인의 장지 역시 그의 뜻대로 한국으로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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