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전 오늘 JSA서 벌어진 ‘도끼만행’ 추모 현장 가 보니

입력 2022.08.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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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의 습격으로 숨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입니다.

당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는 한국군 장교들과 함께 전방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북한군 수십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넘어와 가지치기 작업 중단을 요구했고, 작업이 중단되지 않자 흉기와 둔기를 동원해 두 미군 장교를 처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후 JSA 내에서 남북이 왕래하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됐고 JSA 내에도 낮은 높이의 군사분계선이 생겨 남북이 대치하게 됐습니다.

■ 46주기 추모식 캠프 보니파스에서 열려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를 기리는 추모식은 사건 이듬해인 1977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46주기 추모식이 캠프 보니파스에서 열렸습니다. 캠프 보니파스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한국군과 미군 주둔지로, 도끼만행사건 이후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따 개명한 곳입니다.

추모식에는 이두희 육군 1군단장과 레스퍼런스 미 2사단장, 해리슨 유엔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실제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이동해, 문제의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추모비에 헌화하고 고인을 기리며 묵념했습니다.

이제는 건널 수 없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우리 군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다리 위로 커다란 나무가 우거져 있어 건너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군 관계자는 "50m 남짓 너머에 북한군이 우리 군처럼 다리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건을 목격했던 한국군 장교 가운데 한 명인 김문환 예비역 소령도 추모식을 찾았습니다. 김 씨는 사건 현장에서 아직도 당시 사건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며 취재진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세 아름 정도 되는 커다란 나무를 매년 가지치기하는데, 갑자기 북한군 십수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와 가지를 자르지 말라고 했다"며, "보니파스 대위는 '그냥 자르라'고 지시했고, 그러자 북한군이 보니파스 대위 앞으로 가서 '죽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는데, 결국 유엔군이 트럭을 몰고 북한군을 몰아붙이자 북한군이 다리 너머로 도망가면서 상황이 종료됐다고 합니다.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에 맞은 채 잔디밭에 쓰러져 있었다. 그 흉측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김 씨는 전했습니다.

보니파스 대위의 딸 베스 보니파스 씨는 추모식에 보낸 추모사에서 "2015년 캠프 보니파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당시 사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0년이 지났지만, 하늘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고인을 기렸습니다.

배럿 중위의 누나 수잔 배럿 씨도 "한국에 배치받은 지 6주 만에 동생이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동생이 너무 심한 부상을 당해서 닫힌 관 속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레스퍼런스 주한 미군 제2보병사단장은 "1952년부터 JSA 장병들은 큰 대가를 치르며 묵묵히 대한민국을 지켜왔다"며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의 용맹함을 잊지 않고 우리 조국을 지키고, 두 나라를 위협하는 갈등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촬영기자 정민욱
영상편집 성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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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년 전 오늘 JSA서 벌어진 ‘도끼만행’ 추모 현장 가 보니
    • 입력 2022-08-18 20:27:53
    취재K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의 습격으로 숨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입니다.

당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는 한국군 장교들과 함께 전방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북한군 수십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넘어와 가지치기 작업 중단을 요구했고, 작업이 중단되지 않자 흉기와 둔기를 동원해 두 미군 장교를 처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후 JSA 내에서 남북이 왕래하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됐고 JSA 내에도 낮은 높이의 군사분계선이 생겨 남북이 대치하게 됐습니다.

■ 46주기 추모식 캠프 보니파스에서 열려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를 기리는 추모식은 사건 이듬해인 1977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46주기 추모식이 캠프 보니파스에서 열렸습니다. 캠프 보니파스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한국군과 미군 주둔지로, 도끼만행사건 이후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따 개명한 곳입니다.

추모식에는 이두희 육군 1군단장과 레스퍼런스 미 2사단장, 해리슨 유엔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실제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이동해, 문제의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추모비에 헌화하고 고인을 기리며 묵념했습니다.

이제는 건널 수 없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우리 군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다리 위로 커다란 나무가 우거져 있어 건너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군 관계자는 "50m 남짓 너머에 북한군이 우리 군처럼 다리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건을 목격했던 한국군 장교 가운데 한 명인 김문환 예비역 소령도 추모식을 찾았습니다. 김 씨는 사건 현장에서 아직도 당시 사건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며 취재진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세 아름 정도 되는 커다란 나무를 매년 가지치기하는데, 갑자기 북한군 십수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와 가지를 자르지 말라고 했다"며, "보니파스 대위는 '그냥 자르라'고 지시했고, 그러자 북한군이 보니파스 대위 앞으로 가서 '죽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는데, 결국 유엔군이 트럭을 몰고 북한군을 몰아붙이자 북한군이 다리 너머로 도망가면서 상황이 종료됐다고 합니다.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에 맞은 채 잔디밭에 쓰러져 있었다. 그 흉측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김 씨는 전했습니다.

보니파스 대위의 딸 베스 보니파스 씨는 추모식에 보낸 추모사에서 "2015년 캠프 보니파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당시 사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0년이 지났지만, 하늘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고인을 기렸습니다.

배럿 중위의 누나 수잔 배럿 씨도 "한국에 배치받은 지 6주 만에 동생이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동생이 너무 심한 부상을 당해서 닫힌 관 속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레스퍼런스 주한 미군 제2보병사단장은 "1952년부터 JSA 장병들은 큰 대가를 치르며 묵묵히 대한민국을 지켜왔다"며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의 용맹함을 잊지 않고 우리 조국을 지키고, 두 나라를 위협하는 갈등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촬영기자 정민욱
영상편집 성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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