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흐뭇했던 밤…김선욱과 임윤찬의 ‘포 핸즈(four hands)’

입력 2022.08.22 (09:11) 수정 2022.08.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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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2022-KBS교향악단의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공연에서 함께 앙코르를 연주하고 있는 임윤찬과 김선욱 [롯데문화재단 제공]

지난 20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2022-KBS교향악단의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공연에서 함께 앙코르를 연주하고 있는 임윤찬과 김선욱 [롯데문화재단 제공]

성공한 선배 연주자가 이제 막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후배 연주자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지난 2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이날 김선욱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로 임윤찬은 협연자로 함께 무대에 섰지만 사실 이들은 공통점이 참 많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스타 피아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34살과 18살. 16살 차이가 나는 이들은 모두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세계 최고 권위의 리즈 콩쿠르(김선욱, 2006년)와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임윤찬, 2022년)에서 각각 18살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 연주자 반열에 들어섰다.

이번 공연이 막상 만남으로는 처음이었다는 이 둘은, 그러나 첫 만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합이 든 연주를 보여줬다. 특히 협연 내내 이어진 서로에 대한 배려는 귀는 물론이고, 눈에도 흐뭇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펄떡이는 숭어와도 같은 임윤찬의 패기 넘치는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제1번 g단조, Op. 25> 3악장이 모두 마무리되자 임윤찬은 포디움에 서있던 김선욱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그런 임윤찬을 김선욱은 꼭 끌어 안아주었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2022-KBS교향악단의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공연에서 1부 협연이 끝나고 포옹하고 있는 임윤찬과 김선욱 [롯데문화재단 제공] 지난 20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2022-KBS교향악단의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공연에서 1부 협연이 끝나고 포옹하고 있는 임윤찬과 김선욱 [롯데문화재단 제공]

그리고 이어진 앙코르 무대. 여러 차례 커튼콜이 이어진 후 임윤찬의 앙코르 독주를 기대하던 찰나 무대 오른쪽에서 나온 진행요원의 손에는 또 하나의 피아노 의자가 들려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관객들이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객석에서는 이미 탄성과 환호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은 국보급 피아니스트 두 명은 <모차르트: 연탄을 위한 소나타 다장조 K. 521 2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저음부를 맡은 김선욱과 고음부 멜로디를 맡은 임윤찬은 서로의 악보까지 넘겨줘가며 사이좋게 '포 핸즈(four hands)' 명연을 펼쳤다. 전석 매진 사태 속에 어렵게 표를 구해서 발걸음한 관객들에 대한 최고의 팬 서비스였다.

첫 앙코르 연탄곡을 마치고 나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로 물러서고 앞 자리를 양보하면서 관객에게 박수를 받으라고 손짓으로 챙겨주며 서로 스포트라이트를 권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김선욱은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치워주며 임윤찬에게 솔로 앙코르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임윤찬은 그런 선배의 지원과 기대를 받으며 <멘델스존: '판타지(환상곡)' 1악장>을 유려하게 연주해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선욱은 임윤찬의 솔로 앙코르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2부 오케스트라 공연 후 앙코르를 생략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뒷 편에서 자리를 지키며 임윤찬이 앙코르 연주를 마칠 때까지 들어준 김선욱. 몇 차례의 커튼콜과 2천여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는 임윤찬을 뒤따라가며, 가끔 KBS교향악단 연습실 한 켠에서 역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지휘 리허설을 참관하곤 하던 김선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즘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예술가만이 느낄 수 있는 몰입과 환상적인 희열감, 그런 ‘4차원’을 비록 직접 경험하진 못해도 후대에 전수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후배들이 그 맛을 봤다고 할 때예요. 그럼 그 희열감, 행복이 계속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런 후배들에게는 오히려 제가 감사해요. 왜냐면 ‘저 혼자 예술가로서의 희열을 맛보고 끝!’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예술이라는 것은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발레리나로 명예롭게 은퇴 후 현재는 국립발레단에서 후배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강수진 단장과 몇 해 전 인터뷰 때 나눴던 이 대화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새로운 천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처음 봤다는 기쁨보다 선후배 아티스트의 서로를 향한 배려와 치켜세움이 더욱 흐뭇하게 느껴진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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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려’가 흐뭇했던 밤…김선욱과 임윤찬의 ‘포 핸즈(four hands)’
    • 입력 2022-08-22 09:11:36
    • 수정2022-08-22 10:54:43
    취재K

지난 20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2022-KBS교향악단의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공연에서 함께 앙코르를 연주하고 있는 임윤찬과 김선욱 [롯데문화재단 제공]

성공한 선배 연주자가 이제 막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후배 연주자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지난 2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이날 김선욱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로 임윤찬은 협연자로 함께 무대에 섰지만 사실 이들은 공통점이 참 많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스타 피아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34살과 18살. 16살 차이가 나는 이들은 모두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세계 최고 권위의 리즈 콩쿠르(김선욱, 2006년)와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임윤찬, 2022년)에서 각각 18살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 연주자 반열에 들어섰다.

이번 공연이 막상 만남으로는 처음이었다는 이 둘은, 그러나 첫 만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합이 든 연주를 보여줬다. 특히 협연 내내 이어진 서로에 대한 배려는 귀는 물론이고, 눈에도 흐뭇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펄떡이는 숭어와도 같은 임윤찬의 패기 넘치는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제1번 g단조, Op. 25> 3악장이 모두 마무리되자 임윤찬은 포디움에 서있던 김선욱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그런 임윤찬을 김선욱은 꼭 끌어 안아주었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2022-KBS교향악단의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공연에서 1부 협연이 끝나고 포옹하고 있는 임윤찬과 김선욱 [롯데문화재단 제공]
그리고 이어진 앙코르 무대. 여러 차례 커튼콜이 이어진 후 임윤찬의 앙코르 독주를 기대하던 찰나 무대 오른쪽에서 나온 진행요원의 손에는 또 하나의 피아노 의자가 들려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관객들이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객석에서는 이미 탄성과 환호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은 국보급 피아니스트 두 명은 <모차르트: 연탄을 위한 소나타 다장조 K. 521 2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저음부를 맡은 김선욱과 고음부 멜로디를 맡은 임윤찬은 서로의 악보까지 넘겨줘가며 사이좋게 '포 핸즈(four hands)' 명연을 펼쳤다. 전석 매진 사태 속에 어렵게 표를 구해서 발걸음한 관객들에 대한 최고의 팬 서비스였다.

첫 앙코르 연탄곡을 마치고 나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로 물러서고 앞 자리를 양보하면서 관객에게 박수를 받으라고 손짓으로 챙겨주며 서로 스포트라이트를 권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김선욱은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치워주며 임윤찬에게 솔로 앙코르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임윤찬은 그런 선배의 지원과 기대를 받으며 <멘델스존: '판타지(환상곡)' 1악장>을 유려하게 연주해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선욱은 임윤찬의 솔로 앙코르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2부 오케스트라 공연 후 앙코르를 생략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뒷 편에서 자리를 지키며 임윤찬이 앙코르 연주를 마칠 때까지 들어준 김선욱. 몇 차례의 커튼콜과 2천여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는 임윤찬을 뒤따라가며, 가끔 KBS교향악단 연습실 한 켠에서 역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지휘 리허설을 참관하곤 하던 김선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즘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예술가만이 느낄 수 있는 몰입과 환상적인 희열감, 그런 ‘4차원’을 비록 직접 경험하진 못해도 후대에 전수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후배들이 그 맛을 봤다고 할 때예요. 그럼 그 희열감, 행복이 계속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런 후배들에게는 오히려 제가 감사해요. 왜냐면 ‘저 혼자 예술가로서의 희열을 맛보고 끝!’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예술이라는 것은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발레리나로 명예롭게 은퇴 후 현재는 국립발레단에서 후배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강수진 단장과 몇 해 전 인터뷰 때 나눴던 이 대화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새로운 천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처음 봤다는 기쁨보다 선후배 아티스트의 서로를 향한 배려와 치켜세움이 더욱 흐뭇하게 느껴진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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