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의심’ 고양이 사체 잇따라 발견…수사는 ‘제자리’

입력 2022.08.22 (14:34) 수정 2022.08.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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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길고양이 사체.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길고양이 사체.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된 이름 없는 길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한쪽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뼈대만 남기고 벗겨진 상태였습니다. 지난 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길고양이를 발견한 주민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으로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CCTV도 없고, 고양이 학대를 직접 본 목격자도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다른 주민이 직접 경찰서로 가 다시 사건을 접수했는데 그제서야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CCTV와 목격자 등 결정적 단서가 없어 초기 대응에 미흡했다"면서 "최선을 다해 수사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광산구 캣맘 김운미 씨.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광산구 캣맘 김운미 씨.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캣맘 김운미 씨는 "학대당한 흔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동물과 다퉈 생긴 상처라기엔 상처 부위가 너무 말끔하다는 겁니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서 발견된 점으로 봤을 때 자동차 사고일 가능성이 적고, 한쪽 다리를 제외하곤 사체 훼손 흔적이 없다는 점 역시 사람이 의도적으로 학대한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지난 4월 광산구에서 담벼락 노끈에 매달린 채 발견된 또 다른 길고양이.지난 4월 광산구에서 담벼락 노끈에 매달린 채 발견된 또 다른 길고양이.

■ 목 매달리고, 훼손되고…길고양이 학대 잇따라

최근 광주광역시 광산구 일대에서 학대 흔적이 있는 고양이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담벼락 노끈에 매달려 죽은 채 고양이가 발견돼 넉 달째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부검도 캣맘들이 직접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검역본부의 부검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약물로 인한 사망이 아니고서는 학대 여부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도 광산구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사체가 토막 난 채 발견됐지만, 수사는 사건 경위를 밝히지 못한 채 곧 종결됐습니다.

지난해 광산구 길고양이 급식소 인근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지난해 광산구 길고양이 급식소 인근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

■ 학대 사건 잇따르고 있지만 수사 '난항'

동물 학대 사건을 수사하려는 경찰의 노력에도 한계는 여전합니다. 경찰청은 지난해 전면 개정한 '동물대상범죄 벌칙해설'을 제작해 전국 시·도경찰청에 배포했습니다. 또 112신고에 동물 학대 식별코드도 신설했습니다. 112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경찰관이 범죄 내용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주광역시에서 동물 학대 식별코드가 시행된 이후 접수된 동물 학대 신고는 광산구 17건, 서구 18건 등 모두 68건입니다. 최근 3년간 경찰에 적발된 동물보호법 위반 사례도 2019년 13건에서 2020년 20건, 2021년 19건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검찰에 기소된 피의자는 25명에 불과합니다.


■ "증거확보 어려워"…특사경 도입해야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무엇보다 '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보통 CCTV가 없는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은데다 학대 당시나 유기 장면을 목격한 이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경찰도 드문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김정규 교수는 "경찰이 다른 업무와 같은 수사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서 "동물보호법상 지자체가 위촉할 수 있도록 한 '동물감시원'들에게 특별사법경찰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사경은 행정공무원 중에서 지방경찰청장이 고발권과 수사권을 부여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반 경찰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 학대 사건을 전담해 전문적으로 수사할 길을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실제 경기도는 지난 2018년부터 국내 최초로 동물 특사경을 도입했습니다. 민생사법경찰단 내에 '동물 학대 전담팀'을 꾸려 운영 중입니다. 특사경 가운데엔 수의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000만 시대'라고 말합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역설적이게도 동물 학대 사건도 더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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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대 의심’ 고양이 사체 잇따라 발견…수사는 ‘제자리’
    • 입력 2022-08-22 14:34:44
    • 수정2022-08-22 15:03:24
    취재K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길고양이 사체.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된 이름 없는 길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한쪽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뼈대만 남기고 벗겨진 상태였습니다. 지난 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길고양이를 발견한 주민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으로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CCTV도 없고, 고양이 학대를 직접 본 목격자도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다른 주민이 직접 경찰서로 가 다시 사건을 접수했는데 그제서야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CCTV와 목격자 등 결정적 단서가 없어 초기 대응에 미흡했다"면서 "최선을 다해 수사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광산구 캣맘 김운미 씨.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캣맘 김운미 씨는 "학대당한 흔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동물과 다퉈 생긴 상처라기엔 상처 부위가 너무 말끔하다는 겁니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서 발견된 점으로 봤을 때 자동차 사고일 가능성이 적고, 한쪽 다리를 제외하곤 사체 훼손 흔적이 없다는 점 역시 사람이 의도적으로 학대한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지난 4월 광산구에서 담벼락 노끈에 매달린 채 발견된 또 다른 길고양이.
■ 목 매달리고, 훼손되고…길고양이 학대 잇따라

최근 광주광역시 광산구 일대에서 학대 흔적이 있는 고양이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담벼락 노끈에 매달려 죽은 채 고양이가 발견돼 넉 달째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부검도 캣맘들이 직접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검역본부의 부검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약물로 인한 사망이 아니고서는 학대 여부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도 광산구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사체가 토막 난 채 발견됐지만, 수사는 사건 경위를 밝히지 못한 채 곧 종결됐습니다.

지난해 광산구 길고양이 급식소 인근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
■ 학대 사건 잇따르고 있지만 수사 '난항'

동물 학대 사건을 수사하려는 경찰의 노력에도 한계는 여전합니다. 경찰청은 지난해 전면 개정한 '동물대상범죄 벌칙해설'을 제작해 전국 시·도경찰청에 배포했습니다. 또 112신고에 동물 학대 식별코드도 신설했습니다. 112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경찰관이 범죄 내용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주광역시에서 동물 학대 식별코드가 시행된 이후 접수된 동물 학대 신고는 광산구 17건, 서구 18건 등 모두 68건입니다. 최근 3년간 경찰에 적발된 동물보호법 위반 사례도 2019년 13건에서 2020년 20건, 2021년 19건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검찰에 기소된 피의자는 25명에 불과합니다.


■ "증거확보 어려워"…특사경 도입해야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무엇보다 '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보통 CCTV가 없는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은데다 학대 당시나 유기 장면을 목격한 이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경찰도 드문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김정규 교수는 "경찰이 다른 업무와 같은 수사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서 "동물보호법상 지자체가 위촉할 수 있도록 한 '동물감시원'들에게 특별사법경찰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사경은 행정공무원 중에서 지방경찰청장이 고발권과 수사권을 부여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반 경찰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 학대 사건을 전담해 전문적으로 수사할 길을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실제 경기도는 지난 2018년부터 국내 최초로 동물 특사경을 도입했습니다. 민생사법경찰단 내에 '동물 학대 전담팀'을 꾸려 운영 중입니다. 특사경 가운데엔 수의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000만 시대'라고 말합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역설적이게도 동물 학대 사건도 더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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