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날아온 ‘카톡 구속영장’…41억 뜯긴 의사

입력 2022.08.23 (12:00) 수정 2022.08.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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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전화...그리고 구속영장이 전송됐다

"A 씨, 지난 7일 ○○역에 가셨죠? B 씨와 아는 사이인가요?"

의사 A 씨는 어느 날 검사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강압적인 목소리였습니다. A 씨는 해당 역에 간 적도, B 씨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하라고 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검사의 사진과 소속 등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검사는 자신의 공무원증을 보내줬습니다. 그리곤 "B씨가 보이스피싱 범인인데, 당신 계좌가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사용됐다. 당신 앞으로 70건 정도 고소장이 들어와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구속영장 파일이 카톡으로 전송됐습니다. "당신 자산이 정상자금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 수사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속을 당한다니 무서웠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상황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검사에게 잘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검사는 수사관이 조사를 진행할 거라고 알려줬습니다"
- A 씨

■실제 금융위 직원과 통화...'의심할 여지 없었다'

A 씨는 검사가 카톡으로 보내준 링크를 눌렀습니다. 어플을 설치하라고 뜨자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많은 분이 '보이스피싱 아닐까?'라고 눈치를 채실 겁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 어플을 깔고 나면 의심조차 더는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이 어플은 악성어플로, 설치하면 휴대전화의 주소록, 문자메시지, 통화목록 등이 모두 범죄조직에 넘어가게 됩니다.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 은행 등 실제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범죄조직이 받도록 합니다. 또 범죄조직이 걸어오는 전화도 경찰이나 검찰이 걸어온 정상 번호로 표시됩니다. 이것을 '강수강발' 기능이라고 합니다.

A 씨는 이후 금융감독원 실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금융감독원 직원은 "당신의 계좌가 자금 세탁에 활용됐다"고 알려줬습니다. 검사 말이 맞았던 겁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있는 진짜 번호로 걸었는데 이런 답을 들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무조건 범죄조직에 전화가 연결되는 어플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현금이 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직접 대출을 해보면, 당신 명의가 범행에 연루됐는지 알 수 있다"는 설명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검사가 "예금, 적금, 보험, 주식도 모두 확인해야 하고, 범죄 연관성이 없으면 모두 돌려주겠다. 수수료도 다 돌려준다"고 해 믿었습니다.

A 씨는 예금과 적금, 보험, 주식을 모두 해약해 현금을 마련했습니다. 현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은행직원이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찾아가느냐"고 물었습니다. A 씨는 검사가 알려준 대로 "직원 월급"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아파트 담보 대출과 개인 대출까지 받아, 이 현금을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직접 줬습니다. 일부는 계좌로 이체했고, 일부는 가상자산으로 전송하기도 했습니다. 현금, 계좌 세탁, 가상자산, 모두 추적하기 어려운 수법이었습니다.

이렇게 A 씨가 넘긴 현금, 모두 41억 원입니다. 갖고 있던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내서 빼앗긴 돈입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A 씨는 평생 이 돈을 갚아야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보이스피싱 피해 액수(피해자 1명 기준) 가운데 가장 큰 금액입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검찰이나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전화금융사기 범죄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월부터 7월까지 전화금융사기 중 기관 사칭형의 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21%보다 증가한 37%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앞선 사례처럼 사회생활을 오래 해 자산이 쌓인 40대 이상을 상대로 한 범죄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직업도, 나이도 상관없이 '당한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구속영장을 주거나 약식조사를 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으며,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현금도 계좌이체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포그래픽 :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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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날 날아온 ‘카톡 구속영장’…41억 뜯긴 의사
    • 입력 2022-08-23 12:00:34
    • 수정2022-08-23 14:45:21
    취재K

■검사의 전화...그리고 구속영장이 전송됐다

"A 씨, 지난 7일 ○○역에 가셨죠? B 씨와 아는 사이인가요?"

의사 A 씨는 어느 날 검사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강압적인 목소리였습니다. A 씨는 해당 역에 간 적도, B 씨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하라고 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검사의 사진과 소속 등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검사는 자신의 공무원증을 보내줬습니다. 그리곤 "B씨가 보이스피싱 범인인데, 당신 계좌가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사용됐다. 당신 앞으로 70건 정도 고소장이 들어와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구속영장 파일이 카톡으로 전송됐습니다. "당신 자산이 정상자금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 수사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속을 당한다니 무서웠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상황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검사에게 잘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검사는 수사관이 조사를 진행할 거라고 알려줬습니다"
- A 씨

■실제 금융위 직원과 통화...'의심할 여지 없었다'

A 씨는 검사가 카톡으로 보내준 링크를 눌렀습니다. 어플을 설치하라고 뜨자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많은 분이 '보이스피싱 아닐까?'라고 눈치를 채실 겁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 어플을 깔고 나면 의심조차 더는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이 어플은 악성어플로, 설치하면 휴대전화의 주소록, 문자메시지, 통화목록 등이 모두 범죄조직에 넘어가게 됩니다.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 은행 등 실제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범죄조직이 받도록 합니다. 또 범죄조직이 걸어오는 전화도 경찰이나 검찰이 걸어온 정상 번호로 표시됩니다. 이것을 '강수강발' 기능이라고 합니다.

A 씨는 이후 금융감독원 실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금융감독원 직원은 "당신의 계좌가 자금 세탁에 활용됐다"고 알려줬습니다. 검사 말이 맞았던 겁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있는 진짜 번호로 걸었는데 이런 답을 들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무조건 범죄조직에 전화가 연결되는 어플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현금이 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직접 대출을 해보면, 당신 명의가 범행에 연루됐는지 알 수 있다"는 설명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검사가 "예금, 적금, 보험, 주식도 모두 확인해야 하고, 범죄 연관성이 없으면 모두 돌려주겠다. 수수료도 다 돌려준다"고 해 믿었습니다.

A 씨는 예금과 적금, 보험, 주식을 모두 해약해 현금을 마련했습니다. 현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은행직원이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찾아가느냐"고 물었습니다. A 씨는 검사가 알려준 대로 "직원 월급"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아파트 담보 대출과 개인 대출까지 받아, 이 현금을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직접 줬습니다. 일부는 계좌로 이체했고, 일부는 가상자산으로 전송하기도 했습니다. 현금, 계좌 세탁, 가상자산, 모두 추적하기 어려운 수법이었습니다.

이렇게 A 씨가 넘긴 현금, 모두 41억 원입니다. 갖고 있던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내서 빼앗긴 돈입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A 씨는 평생 이 돈을 갚아야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보이스피싱 피해 액수(피해자 1명 기준) 가운데 가장 큰 금액입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검찰이나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전화금융사기 범죄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월부터 7월까지 전화금융사기 중 기관 사칭형의 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21%보다 증가한 37%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앞선 사례처럼 사회생활을 오래 해 자산이 쌓인 40대 이상을 상대로 한 범죄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직업도, 나이도 상관없이 '당한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구속영장을 주거나 약식조사를 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으며,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현금도 계좌이체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포그래픽 :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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