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쫓겨 고립돼버린 세 모녀…마지막까지 외로웠다

입력 2022.08.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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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고, 정부도 부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잘 고친다면, 분명 의미는 있는 일입니다.

이런 제도적 접근과는 별개로, 세 모녀의 안타까운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생을 마감했던 경기도 수원과 오래 살았던 경기도 화성을 찾아 여러 지인과 이웃을 만났습니다.

■ 아버지의 사업 실패…빚 독촉의 시작

원래는 다섯 식구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삼 남매. 이들은 화성에 오랫동안 거주했습니다. 모두에게 고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을 했습니다. 가드레일 관련 사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한때는 꽤 번창했지만, 10여 년 전 결국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일가족과 오래 알고 지냈다는 화성의 이웃 A 씨는 "빚 독촉에 일가족이 모두 고향을 떠났다"고 기억했습니다.

■ "아버지는 빚에 쫓겨 유랑"

사업이 실패한 아버지는 큰 빚을 졌습니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던 금액으로 보입니다.

이웃 A 씨는 "아버지가 집을 떠난 이후 집시처럼 줄곧 차에서 생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빚 독촉을 피해 유랑 생활을 자처했던 겁니다.

아버지는 채무로 새 직장을 잡기 어려운 상황. 어머니와 두 딸은 건강이 안 좋았습니다. 생계를 책임졌던 건 큰아들이었습니다.

큰아들은 택배 일 등을 하며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 등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급성 루게릭병을 얻어 2019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개월 뒤엔 아버지마저 숨졌습니다.

등록 주소지와 실거주지에 온 체납 고지서들. 일가족은 지방세와 전기세 등 세금이 연체되고 있었다.등록 주소지와 실거주지에 온 체납 고지서들. 일가족은 지방세와 전기세 등 세금이 연체되고 있었다.

■ 이웃들 "도움 주려했지만 거절"

남은 어머니와 두 딸은 화성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이웃들과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힘든 사정을 뻔히 아는 이웃들은 병원비도 빌려줬고, 수원 집까지 쌀과 김치 등 음식을 가져다줬다고 합니다.

A 씨는 "수원으로 이사 가기 전 친척들이 아파트도 마련해 준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당시 지자체 도움을 받길 권유하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런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웃들과도 차츰 연락이 끊겼습니다.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려 최대한 흔적을 지우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독한 빚 독촉에 쫓긴 나머지 고립되고만 상황에 처한 겁니다.

그 결과, 주소지와 거주지가 장기간 불일치했고, 정부의 위기 가구 발굴에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일가족의 등록 주소지. 이웃 주민은 큰아들이 고향을 떠난 후에도 이곳에 와 쉬고 갔다고 설명했다.일가족의 등록 주소지. 이웃 주민은 큰아들이 고향을 떠난 후에도 이곳에 와 쉬고 갔다고 설명했다.

■ 시신 인도할 사람 없어 '무연고 장례'

세 모녀의 마지막 길도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시신을 인도할 이를 못 찾아 '무연고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관련 규정에 따라 실거주지인 수원시가 장례 절차를 주관합니다.

빈소는 어제(24일) 수원 권선구 수원중앙병원에 마련됐습니다. 수원시는 "통상 무연고자는 1일장을 치르지만, 이번엔 세 명이 사망해 3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습니다.

불교 등 종교단체와 함께하는 추모식은 오늘(25일) 오후 2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됩니다. 발인은 내일(26일)로, 발인 뒤 화장될 예정입니다.

유골이 어디에 안치될지는 미정입니다. 아직 이들을 기억하는 화성의 이웃들은 세 모녀가 먼저 숨진 큰아들의 곁으로 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비용 등이 문제가 된다면 이웃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라도 그렇게 해주기로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생을 마감한 이후에라도 가족들이 함께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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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빚에 쫓겨 고립돼버린 세 모녀…마지막까지 외로웠다
    • 입력 2022-08-25 07:00:19
    취재K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고, 정부도 부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잘 고친다면, 분명 의미는 있는 일입니다.

이런 제도적 접근과는 별개로, 세 모녀의 안타까운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생을 마감했던 경기도 수원과 오래 살았던 경기도 화성을 찾아 여러 지인과 이웃을 만났습니다.

■ 아버지의 사업 실패…빚 독촉의 시작

원래는 다섯 식구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삼 남매. 이들은 화성에 오랫동안 거주했습니다. 모두에게 고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을 했습니다. 가드레일 관련 사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한때는 꽤 번창했지만, 10여 년 전 결국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일가족과 오래 알고 지냈다는 화성의 이웃 A 씨는 "빚 독촉에 일가족이 모두 고향을 떠났다"고 기억했습니다.

■ "아버지는 빚에 쫓겨 유랑"

사업이 실패한 아버지는 큰 빚을 졌습니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던 금액으로 보입니다.

이웃 A 씨는 "아버지가 집을 떠난 이후 집시처럼 줄곧 차에서 생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빚 독촉을 피해 유랑 생활을 자처했던 겁니다.

아버지는 채무로 새 직장을 잡기 어려운 상황. 어머니와 두 딸은 건강이 안 좋았습니다. 생계를 책임졌던 건 큰아들이었습니다.

큰아들은 택배 일 등을 하며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 등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급성 루게릭병을 얻어 2019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개월 뒤엔 아버지마저 숨졌습니다.

등록 주소지와 실거주지에 온 체납 고지서들. 일가족은 지방세와 전기세 등 세금이 연체되고 있었다.
■ 이웃들 "도움 주려했지만 거절"

남은 어머니와 두 딸은 화성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이웃들과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힘든 사정을 뻔히 아는 이웃들은 병원비도 빌려줬고, 수원 집까지 쌀과 김치 등 음식을 가져다줬다고 합니다.

A 씨는 "수원으로 이사 가기 전 친척들이 아파트도 마련해 준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당시 지자체 도움을 받길 권유하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런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웃들과도 차츰 연락이 끊겼습니다.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려 최대한 흔적을 지우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독한 빚 독촉에 쫓긴 나머지 고립되고만 상황에 처한 겁니다.

그 결과, 주소지와 거주지가 장기간 불일치했고, 정부의 위기 가구 발굴에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일가족의 등록 주소지. 이웃 주민은 큰아들이 고향을 떠난 후에도 이곳에 와 쉬고 갔다고 설명했다.
■ 시신 인도할 사람 없어 '무연고 장례'

세 모녀의 마지막 길도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시신을 인도할 이를 못 찾아 '무연고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관련 규정에 따라 실거주지인 수원시가 장례 절차를 주관합니다.

빈소는 어제(24일) 수원 권선구 수원중앙병원에 마련됐습니다. 수원시는 "통상 무연고자는 1일장을 치르지만, 이번엔 세 명이 사망해 3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습니다.

불교 등 종교단체와 함께하는 추모식은 오늘(25일) 오후 2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됩니다. 발인은 내일(26일)로, 발인 뒤 화장될 예정입니다.

유골이 어디에 안치될지는 미정입니다. 아직 이들을 기억하는 화성의 이웃들은 세 모녀가 먼저 숨진 큰아들의 곁으로 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비용 등이 문제가 된다면 이웃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라도 그렇게 해주기로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생을 마감한 이후에라도 가족들이 함께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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