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분기점도 못 넘어”…올여름 한국영화, ‘대박’ 왜 없었을까?

입력 2022.08.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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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계+인(1부)’의 주연 배우 김태리(왼쪽)와 ‘비상선언’ 주연 배우 이병헌(오른쪽). (사진 출처=영화 스틸컷 캡처)영화 ‘외계+인(1부)’의 주연 배우 김태리(왼쪽)와 ‘비상선언’ 주연 배우 이병헌(오른쪽). (사진 출처=영화 스틸컷 캡처)

■ "제작비 수백 억 투입했지만"…'서늘한 계절' 된 한국영화 '여름 대목'

극장가 대목의 계절인 여름 시즌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35년 만에 돌아온 명배우 톰 크루즈의 '탑건: 매버릭', 칸의 호평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 인상 깊은 영화들이 많았던 시기였는데요. 지난 3년간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던 영화계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 후 처음 맞는 '여름 대목'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제작비 수백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한국영화 '빅4'(외계+인(1부),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헌트)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 지난 5월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범죄도시2'의 흥행 가도를 이어갈지도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위 '대박을 친' 작품은 없었습니다. '외계+인(1부)'과 '비상선언'은 손익분기점 관객 수를 넘지 못했고, 비교적 '선방'한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 역시 흥행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명량' '베테랑' '신과 함께 - 인과 연' 등 지난 수년간 여름 시즌에 천만 영화가 탄생해온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지요.

이번 여름이 한국영화계에 '서늘한 계절'이었던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 "여러 장르 혼합했지만 플러스 아닌 0이 돼버린 요술" (외계+인)

'타짜' '도둑들' 등 히트작을 만들어온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 고려시대와 현재, 먼 미래의 외계 이야기까지 시공간을 화려하게 넘나드는 서사 구성으로 예고편에서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류준열·김우빈·김태리 등 스타 배우들의 출연도 돋보였는데요.

개봉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외계+인’의 관객 동원은 150만 명에 그쳤다. 제작비 330억 원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730만 관객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개봉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외계+인’의 관객 동원은 150만 명에 그쳤다. 제작비 330억 원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730만 관객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개봉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관객 동원은 150만 명에 그쳤습니다. 제작비 330억 원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730만 관객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입니다.

개봉 전 한국판 '어벤저스'로 기대를 모았던 이 영화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복잡한 스토리에 장르의 특색과 캐릭터들의 개성이 묻혀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 장르를 혼합했는데 플러스가 아닌 0이 돼버린 요술."
"핫한 배우들의 매력까지 묻어버린 평범하고 애매한 디테일."
"야심은 거대한데, 찾아보기 힘든 개성. 그게 최동훈 영화라서 더욱 놀라운."
"한국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던 영화지만 애매하다. 2부가 정말 중요하다."
-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피디아'에 올라온 감상평들

개봉 전 한국판 ‘어벤저스’로 기대를 모았던 ‘외계+인’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복잡한 스토리에 장르의 특색과 캐릭터들의 개성이 묻혀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개봉 전 한국판 ‘어벤저스’로 기대를 모았던 ‘외계+인’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복잡한 스토리에 장르의 특색과 캐릭터들의 개성이 묻혀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20대 관객 A씨는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 가서 봤는데 실망스러웠다. 재미있을 만한 요소는 워낙 많았는데 잘 안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며 "할리우드 영화, 마블 히어로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을 가져와서 한국식으로 구현한 건 신선했다. 다만 '우리도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네' 하는 정도의 감상만 들었을 뿐, 그 이상의 여운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도 "서사 구성이 복잡하고 캐릭터 개성도 혼란스럽다. 그러한 복잡한 요소들을 관객이 퍼즐처럼 끼워 맞춰서 보기에는, 기본적으로 영화의 재미가 모호하고 부족하다"며 "같은 장르영화이자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2'에서는 손석구-마동석 캐릭터의 성격과 대립 구도가 확실하고 선명하지 않나. 외계+인도 흥행을 하려면 분명한 색깔을 갖춰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 "진부한 각본, 신파적 장면…'뻔한 재난 영화 식' 전개였다" (비상선언)

초호화 캐스팅을 내세운 ‘비상선언’은 기존 재난 영화에서 자주 봐왔던, 이른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다소 진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초호화 캐스팅을 내세운 ‘비상선언’은 기존 재난 영화에서 자주 봐왔던, 이른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다소 진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의 항로에도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배우 송강호·이병헌·전도연 등 초호화 캐스팅과,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한재림 감독의 야심작이었는데요. 개봉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관객 2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역시 손익분기점인 500만 명대를 넘어서기는 힘겨워 보입니다.

기존 재난 영화에서 자주 봐왔던, 이른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다소 진부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전반부까지는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더라고요.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되게 신파적인, 너무 관객들의 울음을 유도하려는 듯한 장면들이 나오거든요.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는 재난 상황에서 누구나 가족들에게 할 법한 그런 고백들 있잖아요. 대배우 주연들의 연기는 좋았는데, 너무 뻔한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아쉬웠습니다." - 영화 전공 관객 B씨

‘비상선언’을 관람한 한 네티즌은 “흥미로운 설정, 인상적인 초반부 연출, 호화 출연진의 연기력이 너무도 아까워서 극장을 나서면 저마다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고쳐보게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비상선언’을 관람한 한 네티즌은 “흥미로운 설정, 인상적인 초반부 연출, 호화 출연진의 연기력이 너무도 아까워서 극장을 나서면 저마다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고쳐보게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실제 영화를 관람한 네티즌들은 "1절부터 4절까지, 재난 영화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넣었는데 적당히 해야 했다" "처음 90분 동안은 한국 장르 영화의 미래를, 마지막 50분은 과거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설정, 인상적인 초반부 연출, 호화 출연진의 연기력이 너무도 아까워서 극장을 나서면 저마다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고쳐보게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 충무로 흥행 감독들의 작품들이 경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기대와는 좀 달랐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며 "외계+인의 경우에는 2부까지 이어지는 내용이라서 완결성이 좀 떨어졌고, 비상선언은 진부하고 비상식적인 각본이 문제였다"고 평가했습니다.

■ 티켓 값 인상, OTT 약진…"콘텐츠 시장 구조 자체가 변했다"

두 작품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은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600만을 넘겼지만, 전작 '명량'의 1,700만 돌파 기록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액션물 '헌트'의 경우 8월 말 현재 관객 수가 330만 명대로, 역시 손익분기점 420만 명에 도달하기까지 뒷심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은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600만을 넘겼지만, 전작 ‘명량’의 1,700만 돌파 기록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은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600만을 넘겼지만, 전작 ‘명량’의 1,700만 돌파 기록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액션물 ‘헌트’의 경우 8월 말 현재 관객 수가 330만 명대로, 역시 손익분기점 420만 명에 도달하기까지 뒷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액션물 ‘헌트’의 경우 8월 말 현재 관객 수가 330만 명대로, 역시 손익분기점 420만 명에 도달하기까지 뒷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영화 전문가들은 한국영화가 대목인 여름 시즌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 '외적 요인'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의 긴 터널을 지나 간신히 막을 올렸지만, 이제는 '고물가 시대'라는 또 다른 벽을 마주한 것입니다. 게다가 극장가가 숨죽일 동안 영상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 등 새로운 경쟁 플랫폼의 등장으로 '구조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티켓 값 인상,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약진 등 시장 구조 차원의 악재가 겹치면서 영화계는 안팎으로 이중고를 겪게 됐습니다.

실제 영화 티켓 한 장 가격은 지난 코로나 기간 2년 동안 25% 가까이 인상돼, 현재 주말 일반관 기준 1만 5천 원 정돕니다. 여기에 실감 나는 화질과 대형 스크린 등 추가 조건을 걸어 관람할 경우, 티켓 값은 더 올라갑니다.

그 사이 OTT 플랫폼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한류백서'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은 2020년 약 9,935억 원 규모에서 2025년 1조 9,104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이제는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넷플릭스 등으로 집에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관객의 니즈가 변한 것"이라며 "OTT들도 단순히 공중파 프로그램을 조금 받아다 영화 몇 개 끼워서 파는 식이 아니라, '자체 제작'까지 하는 등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 않나. 사실 이렇게 변화된 시장 상황에서 이번 영화들의 실적이 그렇게 미진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등 영화 시간표. (사진 출처=연합뉴스)지난 1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등 영화 시간표. (사진 출처=연합뉴스)

"코로나 블랙홀을 빠져나온 시간이 얼마 안 됐고, 콘텐츠 산업 자체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서 '극장 관객의 파이'가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빅4'처럼 큰 영화들도 예전에는 한 영화가 성공하면 다른 영화도 성공하는, '쌍끌이'를 하기도 했는데 파이 자체가 줄었으니까 이제는 '혼자 먹어야' 하는 구조가 된 거죠.

그렇게 영화끼리 경쟁력 싸움을 하는 와중에, 관객들은 '사람들 간의 입소문'을 믿는 거예요. 이제 관객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겁니다. 대체로 티켓 한 장 값이 1만 5천 원인데, 친구나 여자친구랑 가면 3만 원인데다가 팝콘 사 먹고 끝나고 밥까지 먹으면 10만 원 쓰는 건 금방이에요.

그래서 작품 선정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장 파이는 줄고, 관객 선택은 예민해지니까 사전에 예상했던 흥행 전망이나 수치가 현실과 전혀 안 맞을 수밖에요." - 오동진 영화평론가

■ "돈 주고 볼 만한" 작품성 갖춰야…' 미학적 수준'과 '대중의 감각' 조화 필요

물론 어떤 한 영화의 손익분기점 돌파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티켓 수입 말고도 '2차 시장', 즉 판권 수출 및 OTT 진출 등으로 벌어들이는 추가 수입까지 함께 산정해봐야 합니다. 누적 관객 수만으로 영화의 손해 여부를 단정 짓는 건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역으로 영화 제작사가 2차 시장에서의 성공까지 고려한다면, 질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더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미학적 수준을 지키면서도 대중의 감각에 맞는 작품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지난 5월 ‘천만 관객 돌파’ 신화를 쓴 영화 ‘범죄도시2’.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지난 5월 ‘천만 관객 돌파’ 신화를 쓴 영화 ‘범죄도시2’.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내달 개봉을 앞둔 전작의 속편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내달 개봉을 앞둔 전작의 속편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올여름 한국영화가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 건 맞아요. 대중영화가 성공하려면 철저하게 '선악 구도'와 '영웅 서사'로 가야 하는데, 그걸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간 거죠. 대표적인 작품이 '한산'과 '비상선언'이에요. 대중들이 열광하지 않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고 그래서 미학적 수준은 올라가는데, 중요한 건 '감독과 배우가 구현하고 싶은 목표에 도달하면서 어떻게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 관객들이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가볍게, 치기로만 가면 안 돼요. 고급스러운 진지함에 코믹을 섞어야 하는 거죠. 안 그러면 '톤 앤 매너' 면에서 실패한 작품이 됩니다. 수준을 지키면서 어떻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거냐. 마블 시리즈를 보세요. 상업 장르임에도 어떤 영화는 작품성이 괜찮다는 평을 받기도 하잖아요." - 전찬일 영화평론가

하반기에도 한국영화 기대작들은 속속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조2: 인터내셔날' 등 기존 흥행작의 속편 시리즈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같은 속편물인 '한산: 용의 출현'의 선방, '탑건: 매버릭'의 열광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올 가을에는 한국영화가 여름의 부진을 딛고 지난 봄 '천만 신화'를 쓴 '범죄도시2'처럼 흥행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자료조사: 최민주,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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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익분기점도 못 넘어”…올여름 한국영화, ‘대박’ 왜 없었을까?
    • 입력 2022-08-27 10:02:07
    취재K
영화 ‘외계+인(1부)’의 주연 배우 김태리(왼쪽)와 ‘비상선언’ 주연 배우 이병헌(오른쪽). (사진 출처=영화 스틸컷 캡처)
■ "제작비 수백 억 투입했지만"…'서늘한 계절' 된 한국영화 '여름 대목'

극장가 대목의 계절인 여름 시즌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35년 만에 돌아온 명배우 톰 크루즈의 '탑건: 매버릭', 칸의 호평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 인상 깊은 영화들이 많았던 시기였는데요. 지난 3년간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던 영화계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 후 처음 맞는 '여름 대목'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제작비 수백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한국영화 '빅4'(외계+인(1부),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헌트)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 지난 5월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범죄도시2'의 흥행 가도를 이어갈지도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위 '대박을 친' 작품은 없었습니다. '외계+인(1부)'과 '비상선언'은 손익분기점 관객 수를 넘지 못했고, 비교적 '선방'한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 역시 흥행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명량' '베테랑' '신과 함께 - 인과 연' 등 지난 수년간 여름 시즌에 천만 영화가 탄생해온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지요.

이번 여름이 한국영화계에 '서늘한 계절'이었던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 "여러 장르 혼합했지만 플러스 아닌 0이 돼버린 요술" (외계+인)

'타짜' '도둑들' 등 히트작을 만들어온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 고려시대와 현재, 먼 미래의 외계 이야기까지 시공간을 화려하게 넘나드는 서사 구성으로 예고편에서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류준열·김우빈·김태리 등 스타 배우들의 출연도 돋보였는데요.

개봉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외계+인’의 관객 동원은 150만 명에 그쳤다. 제작비 330억 원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730만 관객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개봉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관객 동원은 150만 명에 그쳤습니다. 제작비 330억 원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730만 관객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입니다.

개봉 전 한국판 '어벤저스'로 기대를 모았던 이 영화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복잡한 스토리에 장르의 특색과 캐릭터들의 개성이 묻혀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 장르를 혼합했는데 플러스가 아닌 0이 돼버린 요술."
"핫한 배우들의 매력까지 묻어버린 평범하고 애매한 디테일."
"야심은 거대한데, 찾아보기 힘든 개성. 그게 최동훈 영화라서 더욱 놀라운."
"한국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던 영화지만 애매하다. 2부가 정말 중요하다."
-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피디아'에 올라온 감상평들

개봉 전 한국판 ‘어벤저스’로 기대를 모았던 ‘외계+인’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복잡한 스토리에 장르의 특색과 캐릭터들의 개성이 묻혀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20대 관객 A씨는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 가서 봤는데 실망스러웠다. 재미있을 만한 요소는 워낙 많았는데 잘 안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며 "할리우드 영화, 마블 히어로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을 가져와서 한국식으로 구현한 건 신선했다. 다만 '우리도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네' 하는 정도의 감상만 들었을 뿐, 그 이상의 여운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도 "서사 구성이 복잡하고 캐릭터 개성도 혼란스럽다. 그러한 복잡한 요소들을 관객이 퍼즐처럼 끼워 맞춰서 보기에는, 기본적으로 영화의 재미가 모호하고 부족하다"며 "같은 장르영화이자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2'에서는 손석구-마동석 캐릭터의 성격과 대립 구도가 확실하고 선명하지 않나. 외계+인도 흥행을 하려면 분명한 색깔을 갖춰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 "진부한 각본, 신파적 장면…'뻔한 재난 영화 식' 전개였다" (비상선언)

초호화 캐스팅을 내세운 ‘비상선언’은 기존 재난 영화에서 자주 봐왔던, 이른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다소 진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의 항로에도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배우 송강호·이병헌·전도연 등 초호화 캐스팅과,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한재림 감독의 야심작이었는데요. 개봉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관객 2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역시 손익분기점인 500만 명대를 넘어서기는 힘겨워 보입니다.

기존 재난 영화에서 자주 봐왔던, 이른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다소 진부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전반부까지는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더라고요.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되게 신파적인, 너무 관객들의 울음을 유도하려는 듯한 장면들이 나오거든요.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는 재난 상황에서 누구나 가족들에게 할 법한 그런 고백들 있잖아요. 대배우 주연들의 연기는 좋았는데, 너무 뻔한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아쉬웠습니다." - 영화 전공 관객 B씨

‘비상선언’을 관람한 한 네티즌은 “흥미로운 설정, 인상적인 초반부 연출, 호화 출연진의 연기력이 너무도 아까워서 극장을 나서면 저마다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고쳐보게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실제 영화를 관람한 네티즌들은 "1절부터 4절까지, 재난 영화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넣었는데 적당히 해야 했다" "처음 90분 동안은 한국 장르 영화의 미래를, 마지막 50분은 과거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설정, 인상적인 초반부 연출, 호화 출연진의 연기력이 너무도 아까워서 극장을 나서면 저마다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고쳐보게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 충무로 흥행 감독들의 작품들이 경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기대와는 좀 달랐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며 "외계+인의 경우에는 2부까지 이어지는 내용이라서 완결성이 좀 떨어졌고, 비상선언은 진부하고 비상식적인 각본이 문제였다"고 평가했습니다.

■ 티켓 값 인상, OTT 약진…"콘텐츠 시장 구조 자체가 변했다"

두 작품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은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600만을 넘겼지만, 전작 '명량'의 1,700만 돌파 기록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액션물 '헌트'의 경우 8월 말 현재 관객 수가 330만 명대로, 역시 손익분기점 420만 명에 도달하기까지 뒷심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은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600만을 넘겼지만, 전작 ‘명량’의 1,700만 돌파 기록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액션물 ‘헌트’의 경우 8월 말 현재 관객 수가 330만 명대로, 역시 손익분기점 420만 명에 도달하기까지 뒷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영화 전문가들은 한국영화가 대목인 여름 시즌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 '외적 요인'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의 긴 터널을 지나 간신히 막을 올렸지만, 이제는 '고물가 시대'라는 또 다른 벽을 마주한 것입니다. 게다가 극장가가 숨죽일 동안 영상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 등 새로운 경쟁 플랫폼의 등장으로 '구조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티켓 값 인상,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약진 등 시장 구조 차원의 악재가 겹치면서 영화계는 안팎으로 이중고를 겪게 됐습니다.

실제 영화 티켓 한 장 가격은 지난 코로나 기간 2년 동안 25% 가까이 인상돼, 현재 주말 일반관 기준 1만 5천 원 정돕니다. 여기에 실감 나는 화질과 대형 스크린 등 추가 조건을 걸어 관람할 경우, 티켓 값은 더 올라갑니다.

그 사이 OTT 플랫폼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한류백서'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은 2020년 약 9,935억 원 규모에서 2025년 1조 9,104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이제는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넷플릭스 등으로 집에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관객의 니즈가 변한 것"이라며 "OTT들도 단순히 공중파 프로그램을 조금 받아다 영화 몇 개 끼워서 파는 식이 아니라, '자체 제작'까지 하는 등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 않나. 사실 이렇게 변화된 시장 상황에서 이번 영화들의 실적이 그렇게 미진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등 영화 시간표. (사진 출처=연합뉴스)
"코로나 블랙홀을 빠져나온 시간이 얼마 안 됐고, 콘텐츠 산업 자체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서 '극장 관객의 파이'가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빅4'처럼 큰 영화들도 예전에는 한 영화가 성공하면 다른 영화도 성공하는, '쌍끌이'를 하기도 했는데 파이 자체가 줄었으니까 이제는 '혼자 먹어야' 하는 구조가 된 거죠.

그렇게 영화끼리 경쟁력 싸움을 하는 와중에, 관객들은 '사람들 간의 입소문'을 믿는 거예요. 이제 관객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겁니다. 대체로 티켓 한 장 값이 1만 5천 원인데, 친구나 여자친구랑 가면 3만 원인데다가 팝콘 사 먹고 끝나고 밥까지 먹으면 10만 원 쓰는 건 금방이에요.

그래서 작품 선정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장 파이는 줄고, 관객 선택은 예민해지니까 사전에 예상했던 흥행 전망이나 수치가 현실과 전혀 안 맞을 수밖에요." - 오동진 영화평론가

■ "돈 주고 볼 만한" 작품성 갖춰야…' 미학적 수준'과 '대중의 감각' 조화 필요

물론 어떤 한 영화의 손익분기점 돌파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티켓 수입 말고도 '2차 시장', 즉 판권 수출 및 OTT 진출 등으로 벌어들이는 추가 수입까지 함께 산정해봐야 합니다. 누적 관객 수만으로 영화의 손해 여부를 단정 짓는 건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역으로 영화 제작사가 2차 시장에서의 성공까지 고려한다면, 질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더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미학적 수준을 지키면서도 대중의 감각에 맞는 작품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지난 5월 ‘천만 관객 돌파’ 신화를 쓴 영화 ‘범죄도시2’.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내달 개봉을 앞둔 전작의 속편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 (사진 출처=영화 스틸 컷 캡처)
"올여름 한국영화가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 건 맞아요. 대중영화가 성공하려면 철저하게 '선악 구도'와 '영웅 서사'로 가야 하는데, 그걸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간 거죠. 대표적인 작품이 '한산'과 '비상선언'이에요. 대중들이 열광하지 않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고 그래서 미학적 수준은 올라가는데, 중요한 건 '감독과 배우가 구현하고 싶은 목표에 도달하면서 어떻게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 관객들이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가볍게, 치기로만 가면 안 돼요. 고급스러운 진지함에 코믹을 섞어야 하는 거죠. 안 그러면 '톤 앤 매너' 면에서 실패한 작품이 됩니다. 수준을 지키면서 어떻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거냐. 마블 시리즈를 보세요. 상업 장르임에도 어떤 영화는 작품성이 괜찮다는 평을 받기도 하잖아요." - 전찬일 영화평론가

하반기에도 한국영화 기대작들은 속속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조2: 인터내셔날' 등 기존 흥행작의 속편 시리즈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같은 속편물인 '한산: 용의 출현'의 선방, '탑건: 매버릭'의 열광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올 가을에는 한국영화가 여름의 부진을 딛고 지난 봄 '천만 신화'를 쓴 '범죄도시2'처럼 흥행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자료조사: 최민주,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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