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추적단’까지 사칭…“범인 잡아줄테니 대화방으로”

입력 2022.08.30 (21:05) 수정 2022.08.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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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범죄자 '엘'을 잡아달라.

오늘(30일)도 9시 뉴스는 3년 전 이른바 n번방 사건 뒤 보다 은밀하고, 더 악랄해진 제2, 제3의 n번방에 대한 고발을 이어갑니다.

성착취범죄자 '엘'은 KBS 취재진이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임의로 붙인 이름이라는 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표적이 됐고, 범죄의 정점에는 '엘'이란 인물이 있다고 어제(29일)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한 발 더 들어갑니다.

과거 n번방을 취재했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덫을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KBS는 같은 수법에 당하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없도록 범죄 예방 차원에서 이 내용을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황현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당신의 개인정보와 사진들이 유포되고 있다."

올해 초 피해자 A 씨에게 날아든 SNS 메시지입니다.

보낸 사람은, n번방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 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너 같은 동생이 있다, 더 큰 피해가 없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안했습니다.

"유포범을 알고 있고 주소를 해킹하려 하니, 그와 10시간 이상 대화해달라." 텔레그램 대화방 주소를 찍어줬습니다.

유출된 사진도 보여줬는데, 피해자가 SNS에 사적으로 올렸던 사진이었습니다.

사생활 자료가 더 퍼져나갈 거란 두려움에, A 씨는 '유포범'과의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덫'이었습니다.

유포범, 즉 '엘'은, 이미 가지고 있던 사진을 미끼로 추가적인 영상들을 요구했습니다.

"부모님 없는 시간이 언제냐" "반항 안 하면 영상 200개만 만들고 끝내겠다" 답장이 조금만 늦으면 1분에 80개 넘는 메시지를 보내며 닦달했습니다.

그렇게 휘말린 대화는, 밤 9시에 시작한 게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8시간 동안 찍어 보낸 사진과 영상만 50개가 넘습니다.

A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엘이 짧은 간격으로 쉴새없이 메시지를 보냈고,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복잡해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 보낸 영상은 또 다음 협박의 빌미가 됐고, 그렇게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 그야말로 '개미지옥'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공정식/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 : "자신이 당한 피해보다는 자신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 드러나서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걸 더 두려워해요. 그 약점을 잡히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죠."]

'유포범을 추적할 수 있도록 대화를 계속해달라' '영상을 계속 찍어 보내라' 이 둘의 요구는 사실 한 사람의 요구, 혹은, 한 패거리의 작전이었습니다.

피해자가 그걸 깨달은 건, '진짜 <추적단 불꽃>'에게 문의를 해본 뒤였습니다.

[원은지/얼룩소 에디터/추적단불꽃의 단 활동 : "'그 사람들이 불꽃이라고 말한다. 이게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좀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똑같은 수법은 다른 미성년자에게도 시도됐습니다.

동일한 메시지에 낚인 피해자 B 씨.

대화방에서 요구를 따르지 않자, '엘'은 20~30명을 더 채팅창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들은 B 씨의 이름, 전화번호까지 들먹이며 입에 담기조차 힘든 모욕과 협박을 쏟아냈습니다.

그 이후의 B 씨 상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성착취범을 잡자는, 생각지도 못한 미끼를 던졌던 '엘'.

그의 이 허를 찌르는 범죄는 '1인 다역'으로 이뤄진 단독 범행이었을까요?

경찰은 '조직 범죄'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김재현/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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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30 21:05:56
    • 수정2022-08-30 22: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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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범죄자 '엘'을 잡아달라.

오늘(30일)도 9시 뉴스는 3년 전 이른바 n번방 사건 뒤 보다 은밀하고, 더 악랄해진 제2, 제3의 n번방에 대한 고발을 이어갑니다.

성착취범죄자 '엘'은 KBS 취재진이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임의로 붙인 이름이라는 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표적이 됐고, 범죄의 정점에는 '엘'이란 인물이 있다고 어제(29일)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한 발 더 들어갑니다.

과거 n번방을 취재했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덫을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KBS는 같은 수법에 당하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없도록 범죄 예방 차원에서 이 내용을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황현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당신의 개인정보와 사진들이 유포되고 있다."

올해 초 피해자 A 씨에게 날아든 SNS 메시지입니다.

보낸 사람은, n번방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 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너 같은 동생이 있다, 더 큰 피해가 없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안했습니다.

"유포범을 알고 있고 주소를 해킹하려 하니, 그와 10시간 이상 대화해달라." 텔레그램 대화방 주소를 찍어줬습니다.

유출된 사진도 보여줬는데, 피해자가 SNS에 사적으로 올렸던 사진이었습니다.

사생활 자료가 더 퍼져나갈 거란 두려움에, A 씨는 '유포범'과의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덫'이었습니다.

유포범, 즉 '엘'은, 이미 가지고 있던 사진을 미끼로 추가적인 영상들을 요구했습니다.

"부모님 없는 시간이 언제냐" "반항 안 하면 영상 200개만 만들고 끝내겠다" 답장이 조금만 늦으면 1분에 80개 넘는 메시지를 보내며 닦달했습니다.

그렇게 휘말린 대화는, 밤 9시에 시작한 게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8시간 동안 찍어 보낸 사진과 영상만 50개가 넘습니다.

A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엘이 짧은 간격으로 쉴새없이 메시지를 보냈고,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복잡해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 보낸 영상은 또 다음 협박의 빌미가 됐고, 그렇게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 그야말로 '개미지옥'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공정식/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 : "자신이 당한 피해보다는 자신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 드러나서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걸 더 두려워해요. 그 약점을 잡히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죠."]

'유포범을 추적할 수 있도록 대화를 계속해달라' '영상을 계속 찍어 보내라' 이 둘의 요구는 사실 한 사람의 요구, 혹은, 한 패거리의 작전이었습니다.

피해자가 그걸 깨달은 건, '진짜 <추적단 불꽃>'에게 문의를 해본 뒤였습니다.

[원은지/얼룩소 에디터/추적단불꽃의 단 활동 : "'그 사람들이 불꽃이라고 말한다. 이게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좀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똑같은 수법은 다른 미성년자에게도 시도됐습니다.

동일한 메시지에 낚인 피해자 B 씨.

대화방에서 요구를 따르지 않자, '엘'은 20~30명을 더 채팅창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들은 B 씨의 이름, 전화번호까지 들먹이며 입에 담기조차 힘든 모욕과 협박을 쏟아냈습니다.

그 이후의 B 씨 상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성착취범을 잡자는, 생각지도 못한 미끼를 던졌던 '엘'.

그의 이 허를 찌르는 범죄는 '1인 다역'으로 이뤄진 단독 범행이었을까요?

경찰은 '조직 범죄'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김재현/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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