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까지 손 벌린 북한…‘식량난 한계’ 봉착했나?

입력 2022.08.31 (15:42) 수정 2022.08.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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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봉쇄를 유지하며 국제사회 손길을 외면해온 북한이 제3국인 인도에 식량 원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올해 가뭄에 수해까지 겹쳐 식량 사정이 더 악화됐고,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누적된 식량난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 인도 경제단체장 "북한이 식량 원조 요청"

만프릿 싱 인도 국제사업회의소(ICIB) 소장은 미국의 소리(VOA)에 "쌀 기부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북한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다"며 "이는 홍수가 농작물 대부분을 파괴한 상황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ICIB는 홈페이지에도 "북한 관료들이 뉴델리 ICIB 사무실을 찾아 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하기 위한 인도주의적인 논의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측이 홍수 피해를 호소하며 원조를 요청했다는 겁니다. ICIB는 북한 관료의 방문 시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해당 사실을 최신 소식으로 소개했습니다.

실제 북한의 식량난은 최근 장마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곡창지대인) 청천강 유역 등의 피해가 상당하다. 중요한 건 지금 식량 가격이 높을 때가 아닌데도 높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식량 사정이 상당히 나쁘다"고 전했습니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주식인 쌀을 들여온다는 건 북한 내부에 식량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라고 봤습니다.

ICIB는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두 명의 방문 기념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 ICIB 홈페이지)ICIB는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두 명의 방문 기념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 ICIB 홈페이지)

■ "자력갱생" → '원조 요청' 급선회

북한-인도 식량 원조 보도에 통일부는 "확인해 줄 만한 사항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북한의 식량 부족량은 연평균 80만 톤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북한은 국경 봉쇄가 지속되고 있고, 외부 (식량) 도입량이 감소하는 데다 기상 상황 같은 변수도 있어 올해도 식량 사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제사회도 북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 안보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더 악화됐다"고 평가하면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재지정했습니다. 또, "FAO는 물론 다른 유엔 기구들이 북한에 복귀해 활동을 전면 재개할 의지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력 갱생"을 고수해온 북한이 대외 원조로 급선회한 것도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이번 장마 직후 김덕훈 내각 총리가 황해북도와 함경남도, 강원도 수해 현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달에만 4차례 농업 현장을 점검해 다급함을 드러냈다. (사진 출처 : 조선중앙통신)북한은 이번 장마 직후 김덕훈 내각 총리가 황해북도와 함경남도, 강원도 수해 현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달에만 4차례 농업 현장을 점검해 다급함을 드러냈다. (사진 출처 :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금까지 손을 벌린 쪽은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2019년 이후 처음 으로 중국에서 쌀 1만 톤을 공수해왔습니다. 또, 최근 러시아에서도 대량의 밀가루를 수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두 우방의 긴급 원조만으로는 3년 동안 누적된 식량 부족분을 상쇄하기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제3국인 인도에까지 손을 벌린 것도 이를 방증한다는 분석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러시아산 밀가루가 장마당에 풀려 치솟던 식량 가격이 잠시 진정됐지만, 주민들은 이런 공급이 과연 얼마나 지속 될지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 개방 대신 감시·통제 강화…北 선택은?

북한은 작금의 식량난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변합니다. 노동신문은 코로나 19 종식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하면서 '비상 방역 조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설파했습니다.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됩니다.

동시에 주민 감시·통제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부족한 재원을 전략 부문에 집중하기 위해 경제 전반에 대한 통제를 늘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식량과 자재 등 현물에 대한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게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것을 주문하는 등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에 대한 투쟁 강도도 부쩍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움켜쥐고 경제 국경을 닫아야 살 수 있다고 말할 때 상정하고 있는 수혜자는 북한 통치 엘리트이다. 버리고 열면 북한의 시민이 살아나지만 움켜쥐고 닫아야 북한의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민생 발전과 정권 생존이 서로 상치(相馳)하는 가치일 때,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의 선택은 예외 없이 후자일 수밖에 없다."

김정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북한이 코로나 19와 경제난,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에도 '반사회주의 척결'을 외치는 구조적 원인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폐쇄성에서 비롯된 식량난이 터지자 더 폐쇄적으로 대응하는 체제의 특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런 북한은 나라 밖 상황을 돌파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어제 통일부 주최 포럼에서 "북한은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경도돼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중러 등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과 제재와의 장기전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해 국제사회 제재를 우회할 기회를 잡았다는 외신 분석도 나왔습니다. 신냉전 구도 속에서 당장 북한이 남한에 손을 내밀 가능성도 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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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31 15:42:56
    • 수정2022-08-31 16:19:32
    취재K

국경 봉쇄를 유지하며 국제사회 손길을 외면해온 북한이 제3국인 인도에 식량 원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올해 가뭄에 수해까지 겹쳐 식량 사정이 더 악화됐고,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누적된 식량난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 인도 경제단체장 "북한이 식량 원조 요청"

만프릿 싱 인도 국제사업회의소(ICIB) 소장은 미국의 소리(VOA)에 "쌀 기부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북한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다"며 "이는 홍수가 농작물 대부분을 파괴한 상황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ICIB는 홈페이지에도 "북한 관료들이 뉴델리 ICIB 사무실을 찾아 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하기 위한 인도주의적인 논의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측이 홍수 피해를 호소하며 원조를 요청했다는 겁니다. ICIB는 북한 관료의 방문 시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해당 사실을 최신 소식으로 소개했습니다.

실제 북한의 식량난은 최근 장마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곡창지대인) 청천강 유역 등의 피해가 상당하다. 중요한 건 지금 식량 가격이 높을 때가 아닌데도 높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식량 사정이 상당히 나쁘다"고 전했습니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주식인 쌀을 들여온다는 건 북한 내부에 식량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라고 봤습니다.

ICIB는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두 명의 방문 기념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 ICIB 홈페이지)
■ "자력갱생" → '원조 요청' 급선회

북한-인도 식량 원조 보도에 통일부는 "확인해 줄 만한 사항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북한의 식량 부족량은 연평균 80만 톤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북한은 국경 봉쇄가 지속되고 있고, 외부 (식량) 도입량이 감소하는 데다 기상 상황 같은 변수도 있어 올해도 식량 사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제사회도 북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 안보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더 악화됐다"고 평가하면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재지정했습니다. 또, "FAO는 물론 다른 유엔 기구들이 북한에 복귀해 활동을 전면 재개할 의지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력 갱생"을 고수해온 북한이 대외 원조로 급선회한 것도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이번 장마 직후 김덕훈 내각 총리가 황해북도와 함경남도, 강원도 수해 현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달에만 4차례 농업 현장을 점검해 다급함을 드러냈다. (사진 출처 :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금까지 손을 벌린 쪽은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2019년 이후 처음 으로 중국에서 쌀 1만 톤을 공수해왔습니다. 또, 최근 러시아에서도 대량의 밀가루를 수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두 우방의 긴급 원조만으로는 3년 동안 누적된 식량 부족분을 상쇄하기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제3국인 인도에까지 손을 벌린 것도 이를 방증한다는 분석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러시아산 밀가루가 장마당에 풀려 치솟던 식량 가격이 잠시 진정됐지만, 주민들은 이런 공급이 과연 얼마나 지속 될지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 개방 대신 감시·통제 강화…北 선택은?

북한은 작금의 식량난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변합니다. 노동신문은 코로나 19 종식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하면서 '비상 방역 조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설파했습니다.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됩니다.

동시에 주민 감시·통제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부족한 재원을 전략 부문에 집중하기 위해 경제 전반에 대한 통제를 늘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식량과 자재 등 현물에 대한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게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것을 주문하는 등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에 대한 투쟁 강도도 부쩍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움켜쥐고 경제 국경을 닫아야 살 수 있다고 말할 때 상정하고 있는 수혜자는 북한 통치 엘리트이다. 버리고 열면 북한의 시민이 살아나지만 움켜쥐고 닫아야 북한의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민생 발전과 정권 생존이 서로 상치(相馳)하는 가치일 때,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의 선택은 예외 없이 후자일 수밖에 없다."

김정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북한이 코로나 19와 경제난,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에도 '반사회주의 척결'을 외치는 구조적 원인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폐쇄성에서 비롯된 식량난이 터지자 더 폐쇄적으로 대응하는 체제의 특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런 북한은 나라 밖 상황을 돌파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어제 통일부 주최 포럼에서 "북한은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경도돼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중러 등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과 제재와의 장기전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해 국제사회 제재를 우회할 기회를 잡았다는 외신 분석도 나왔습니다. 신냉전 구도 속에서 당장 북한이 남한에 손을 내밀 가능성도 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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