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개조! 애국자로 키우자’…체제위기 北, MZ 세대와 전쟁 중?

입력 2022.09.0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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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대들의 사상 정신 상태에서 심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당세포들이 청년 교양에 보다 큰 힘을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략) "당 세포들은 우리 사회에서 계급적으로 변질되지 않은 이상 교양 개조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인간개조 사업'에 목적 의식적으로 달라붙어야 합니다. 한두 번 하다가 포기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열 번 백번 꾸준히 설득하고 현실적으로 타일러주면서 '인간개조 사업'을 착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2021년 4월 6차 노동당 세포 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이 당 세포(말단 간부)들에 한 발언입니다. 젊은 세대의 사상 이완에 대해 '인간 개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청년층 사상 무장에 끈질기게 매달릴 것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북한판 MZ'로 불리는 '새 세대들'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새 세대, 애국자로 키워야!"

노동신문은 오늘(1일) 1면 사설에서 '국가제일주의를 전면적으로 구현해나가자"며 애국심을 요구했습니다. 김정은 집권 10년간 '불패 강국'이 됐다며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도 강조했습니다. "국가는 곧 수령"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눈에 띈 것은 '새 세대들'만 콕 집어 당부한 대목입니다. 신문은 "자라나는 새세대들이 어려서부터 국기를 사랑하고 국가를 즐겨 부르도록 교양하여 그들 모두를 열렬한 애국자로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청년층·부모 세대 모두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청년 사상 무장'의 단골 구호는 "반미·반제", "자력갱생", "김정은 결사옹위"입니다. '전승절'로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에는 노병들의 충성심을 배울 것을 주문하는가 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같은 유교 이념까지 주입해 청년들의 대(代)를 이은 우상화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69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평양 중심가에서 행진하고 있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2022년 7월)정전협정 체결 69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평양 중심가에서 행진하고 있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2022년 7월)

■ 국가 도움 없이 자라 바깥 세상 눈떠


이른바 '북한판 MZ세대'인 '새 세대'는 북한에서는 '장마당 세대'로 불립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유년 시절을 보냈거나 그 이후 태어난 세대로,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2000년대 초와 현대식 매장까지 등장한 2010년대 이후 출생자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의존도가 낮다'는 점입니다. 국가 도움 없이 장마당을 통해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인데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배급 시스템 아래 국가 의존도와 충성도가 높았던 이전 세대와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세계관'으로 꼽힙니다. 2000년대부터는 북한에도 한국 드라마를 비롯해 외부 문물이 대량 유입됐습니다. 과거 세대가 철저한 통제 국가 범주 안에서 세상을 봤다면, 장마당 세대는 외부 문물도 거리낌 없이 수용해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트였고 또 동경하고 있다는 게 탈북민들의 전언입니다.

평양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한 남성이 태블릿으로 촬영하고 있다. (출처 : AFP, 2019년 6월)평양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한 남성이 태블릿으로 촬영하고 있다. (출처 : AFP, 2019년 6월)

이러다보니 북한 지도부는 '새 세대의 사상 이완'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같은 MZ 세대인 84년생 김정은이 '새 세대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향후 20~30년 이상 통치할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 세대를 아우르거나 결속하지 못하면 통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北, '법' 장벽 세워…사회주의 몰락 신호탄?

열병식 같은 대규모 행사에 동원된 청년들이 뒤에서 피곤함과 불만을 표출하고, 체제보다는 자신을 중시한다는 것은 평양을 방문한 외교관이나 소식통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이 부쩍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세태가 반영된 현상으로 보입니다. 한 탈북민은 "요즘 탈북해 들어오는 젊은이들은 남한 말씨에 능숙하고, 북한 젊은이들도 손전화(휴대전화)로 이모티콘 같은 표현을 주고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자유 분방함에 북한은 법이라는 장벽을 세워 맞서고 있습니다. 북한은 2020년 말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최대 사형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남한식 말투나 옷차림을 집중 단속했습니다. 김정은이 '인간개조'를 주문한 이후인 2021년 9월에는 청년 가정교육까지 의무화한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었습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 NK는 북한이 올해 말, 전 주민을 상대로 우회 프로그램 설치 차단을 위한 휴대전화 업데이트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청년들이 남한의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다 단속에 걸렸다는 보도는 최근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이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하자 "공식적인 처벌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며 "북한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몰락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습니다.

평양 휴대전화 전문매장 (출처 : 北 대외선전매체 서광)평양 휴대전화 전문매장 (출처 : 北 대외선전매체 서광)

그렇다고 북한 체제가 빠른 기간 내 붕괴될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태 의원은 최근 KBS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는 내부로부터의 변화 외에 해결 방법이 없다. 장마당 세대가 북한 정권의 중추세력이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 시점은 "최소 20년 후"로 내다봤습니다.

홍민 실장도 "내림식 세뇌가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체제 반기 쪽으로 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 북한은 사회주의와 시장 감성이 공존하는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유지되려면 시장이라도 돌아가게 해주든가 국가가 배급을 해주든가 하나라도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둘 다 막고 있다면 불만이 쌓여 장기간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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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개조! 애국자로 키우자’…체제위기 北, MZ 세대와 전쟁 중?
    • 입력 2022-09-01 15:50:46
    취재K

"새 세대들의 사상 정신 상태에서 심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당세포들이 청년 교양에 보다 큰 힘을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략) "당 세포들은 우리 사회에서 계급적으로 변질되지 않은 이상 교양 개조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인간개조 사업'에 목적 의식적으로 달라붙어야 합니다. 한두 번 하다가 포기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열 번 백번 꾸준히 설득하고 현실적으로 타일러주면서 '인간개조 사업'을 착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2021년 4월 6차 노동당 세포 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이 당 세포(말단 간부)들에 한 발언입니다. 젊은 세대의 사상 이완에 대해 '인간 개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청년층 사상 무장에 끈질기게 매달릴 것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북한판 MZ'로 불리는 '새 세대들'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새 세대, 애국자로 키워야!"

노동신문은 오늘(1일) 1면 사설에서 '국가제일주의를 전면적으로 구현해나가자"며 애국심을 요구했습니다. 김정은 집권 10년간 '불패 강국'이 됐다며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도 강조했습니다. "국가는 곧 수령"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눈에 띈 것은 '새 세대들'만 콕 집어 당부한 대목입니다. 신문은 "자라나는 새세대들이 어려서부터 국기를 사랑하고 국가를 즐겨 부르도록 교양하여 그들 모두를 열렬한 애국자로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청년층·부모 세대 모두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청년 사상 무장'의 단골 구호는 "반미·반제", "자력갱생", "김정은 결사옹위"입니다. '전승절'로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에는 노병들의 충성심을 배울 것을 주문하는가 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같은 유교 이념까지 주입해 청년들의 대(代)를 이은 우상화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69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평양 중심가에서 행진하고 있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2022년 7월)
■ 국가 도움 없이 자라 바깥 세상 눈떠


이른바 '북한판 MZ세대'인 '새 세대'는 북한에서는 '장마당 세대'로 불립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유년 시절을 보냈거나 그 이후 태어난 세대로,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2000년대 초와 현대식 매장까지 등장한 2010년대 이후 출생자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의존도가 낮다'는 점입니다. 국가 도움 없이 장마당을 통해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인데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배급 시스템 아래 국가 의존도와 충성도가 높았던 이전 세대와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세계관'으로 꼽힙니다. 2000년대부터는 북한에도 한국 드라마를 비롯해 외부 문물이 대량 유입됐습니다. 과거 세대가 철저한 통제 국가 범주 안에서 세상을 봤다면, 장마당 세대는 외부 문물도 거리낌 없이 수용해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트였고 또 동경하고 있다는 게 탈북민들의 전언입니다.

평양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한 남성이 태블릿으로 촬영하고 있다. (출처 : AFP, 2019년 6월)
이러다보니 북한 지도부는 '새 세대의 사상 이완'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같은 MZ 세대인 84년생 김정은이 '새 세대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향후 20~30년 이상 통치할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 세대를 아우르거나 결속하지 못하면 통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北, '법' 장벽 세워…사회주의 몰락 신호탄?

열병식 같은 대규모 행사에 동원된 청년들이 뒤에서 피곤함과 불만을 표출하고, 체제보다는 자신을 중시한다는 것은 평양을 방문한 외교관이나 소식통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이 부쩍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세태가 반영된 현상으로 보입니다. 한 탈북민은 "요즘 탈북해 들어오는 젊은이들은 남한 말씨에 능숙하고, 북한 젊은이들도 손전화(휴대전화)로 이모티콘 같은 표현을 주고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자유 분방함에 북한은 법이라는 장벽을 세워 맞서고 있습니다. 북한은 2020년 말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최대 사형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남한식 말투나 옷차림을 집중 단속했습니다. 김정은이 '인간개조'를 주문한 이후인 2021년 9월에는 청년 가정교육까지 의무화한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었습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 NK는 북한이 올해 말, 전 주민을 상대로 우회 프로그램 설치 차단을 위한 휴대전화 업데이트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청년들이 남한의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다 단속에 걸렸다는 보도는 최근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이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하자 "공식적인 처벌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며 "북한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몰락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습니다.

평양 휴대전화 전문매장 (출처 : 北 대외선전매체 서광)
그렇다고 북한 체제가 빠른 기간 내 붕괴될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태 의원은 최근 KBS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는 내부로부터의 변화 외에 해결 방법이 없다. 장마당 세대가 북한 정권의 중추세력이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 시점은 "최소 20년 후"로 내다봤습니다.

홍민 실장도 "내림식 세뇌가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체제 반기 쪽으로 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 북한은 사회주의와 시장 감성이 공존하는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유지되려면 시장이라도 돌아가게 해주든가 국가가 배급을 해주든가 하나라도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둘 다 막고 있다면 불만이 쌓여 장기간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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