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공기살인’]② 옥시 본사에 묻다, “책임지겠습니까?”

입력 2022.09.02 (07:01) 수정 2022.09.0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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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기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아직도?"라는 의문이 든 분들 계실 겁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이 참사, 드러난 지 벌써 11년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참사는 여전히 해결된 게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공기 살인' 가습기살균제 이야기입니다.


◆ [추적, '공기살인'] 글 싣는 순서
① ‘아이에게도 안심’…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② 옥시 본사에 묻다, “책임지겠습니까?”
③ [취재후] 피해자만 남은 ‘가습기 참사’, 돌파구는 없나?

■사망자 85%가 쓴 '옥시' 제품…기업 책임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해서는 제품을 만든 기업의 배·보상과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합니다. 기업들이 피해 보상을 한 피해자는 4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피해자 4,350명의 10% 수준이고, 피해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까지 넓혀 보면 5%까지 떨어집니다.

참사의 핵심에 기업 '옥시'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았고, 피해도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 옥시와 애경이 가습기 살균제 조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사실상 모든 논의가 중단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간 불공정한 책임 비율'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책임이 너무 과하다는 게 이유입니다. 조정위원회가 11년 만에 내놓은 조정안에서 옥시의 몫은 전체 분담금 9천240억 원 중 54%입니다. 이게 불공정하다면서 옥시는 협상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조정위가 분담금을 천억 원가량 감면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습니다.

과연 이 주장이 합리적일까요? 피해자들이 사용한 제품을 모두 분석해봤습니다.


전체 피해자가 4,350명 가운데 옥시 제품만 썼거나, 다른 제품과 함께 옥시 제품을 쓴 피해자는 85.6%인 3,727명입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옥시를 얼마나 썼는지 살펴봤더니 913명이었는데 사망자 10명 중 8명이 넘습니다. 다른 회사 제품은 빼고 옥시 제품만 사용한 사망자만 봐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0명에 달합니다.

역시 조정위에서 빠진 애경의 경우 애경이 제조하거나 판매한 제품을 쓴 사용자는, 중복 사용을 포함해 전체 피해자의 34%입니다.

이렇게 제품 사용 비중을 볼 때 과연 옥시와 애경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옥시' 본사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KBS는 6월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옥시 영국 본사에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그간의 취재 과정에서 한국 지사의 답변은 앵무새같이 매번 똑같았고, 모호했습니다. 한국지사가 가진 권한이 많지 않은 게 이유로 추정됩니다. KBS가 한국지사가 아닌 영국 본사에 직접 물어본 이유입니다.


KBS는 6월 13일 처음 메일을 보냈지만, 열흘 가까이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옥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 채널을 통해서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로 첫 번째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8차례 더 메일이 오고 갔고, 옥시는 네 차례 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옥시의 답변, 짧게는 2줄, 길어야 7줄이었습니다.

KBS가 보낸 질문은 모두 14가지입니다. 옥시가 전체 분담금에서 책임져야 할 54%의 분담비율이 정말 과하다고 보는 건지, 공정한 분담 비율은 몇 퍼센트인지, 분담금 마지노선이 얼마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옥시는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에게 이미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는 답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동안 4백여 명에 대한 배상금 등 총 3천6백억 원 넘게 썼다는 게 옥시의 근거입니다. 추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합리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해 드렸지만, 이 400명은 옥시를 사용한 피해자의 10%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의지가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옥시는 이 같은 답을 내놨습니다. 옥시가 KBS 취재진에게 보낸 마지막 답변이기도 합니다.

옥시 답변 메일(7.15)
"2020년 특별법 개정으로 피해 구제 체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러분께 다시 묻고 싶습니다. 옥시의 답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피해자들, 옥시 답변은 '궤변'

"2020년 특별법 개정으로 피해 구제 체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KBS가 옥시의 답변 중 주목한 부분입니다. 옥시가 특별법 개정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2020년 9월에 개정됐는데, 이때 피해 인정 기준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 질환 중심으로 피해를 판정했던 것과 달리, 종합적으로 판정해 다양한 피해 상황을 인정할 수 있도록 인정 범위가 대폭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피해자 현황을 분석해 보면 특별법 개정을 계기로 과거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가 인정된 피해자들이 1,231명, 전체 피해자의 3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실제로 특별법 개정 이후, 공식 인정을 받은 피해자가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책임 의사를 물었더니 옥시가 특별법 개정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옥시의 "특별법 이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답, 배상한 400여 명 외에 나머지 피해자들과 이 추가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여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낸 겁니다. 보다 명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옥시 '한국'지사에 다시 물었고, 말 그대로 '피해 인정 체계 등이 바뀌었고,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옥시 측은 답했습니다.

이 모호하지만, 의미심장한 답변. 피해자들은 옥시가 나머지 피해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규정했습니다.

추준영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위원회 공동 대표는 KBS 9시 뉴스에 직접 출연해 "피해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옥시에서는 법의 개정이라는 사실을 악의적으로 인용해서 피해자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상황과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 중증 질환 인정받았지만, 배상 못 하겠다는 옥시

추준영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입니다. 그의 아들, 박준석 군도 중증 피해자입니다.

박 군의 키는 172cm. 몸무게는 41kg에 불과합니다. 세 살 때 썼던 가습기살균제 탓에 폐가 심하게 손상됐고, 복합적인 건강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매일 먹는 약만 7가지, 2주에 한 번씩은 면역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준석이네는 '옥시' 제품만 사용했습니다. 2016년 처음 피해 신청을 했는데, 지난해 7월에 받았습니다. 원래 폐 질환 2단계에 해당한다는 의학적 소견까지 받았지만 정부의 판정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박 군은 옥시 배상에서 제외됐습니다. 2016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배상을 진행했는데, 정부의 판정이 늦어지면서 배상 대상에서 빠진 것입니다.

정부의 늑장 판정, 그리고 옥시가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를 이미 충분히 보상했다는 태도가 준석이를 더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기업 간 사회적 합의를 위해 만든 '조정위'는 옥시와 애경이 발을 빼면서 파행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걸 민간에 맡겨 둔 채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참사 11년, 해결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될 이 문제가 이번엔 해결될 수 있을지 꼭 지켜봐야겠습니다.

옥시 본사가 이메일을 통해 KBS에 보낸 답변은 모두 공개합니다.

옥시 본사 6월 24일 답변
2016년부터 레킷은 정부가 분류한 카테고리 1 및 2 옥시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1, 2단계에 대해 포괄적이고 투명한 보상 계획을 수립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로서 옥시 Reckitt Benckiser(한국지사)가 올바른 일을 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모두 보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사건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또한, 해결책에 대한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약속한 존중, 투명성, 공정성, 속도의 4가지 핵심 원칙과 같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귀하의 문의에 대한 답변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옥시 RB(한국지사)에 문의하여 자세한 설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옥시 본사 6월 28일 답변
이전 회신에서 언급했듯이, Reckitt은 2016년부터 올바른 일을 하고 Oxy Reckitt Benckiser(옥시 한국 지사)가 정중하고 공정하며 투명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가습기 살균제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에 충실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옥시 RB(한국 지사)는 존중, 공정성, 투명성, 속도라는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포괄적이고 투명한 보상 계획을 수립하고 완료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입니다.
이 보상 과정에서 옥시 RB(한국 지사)는 피해자 및 그 가족과 직접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옥시 폐 손상 1, 2단계 피해자와 그 가족과 400번 넘게 만났습니다. 옥시RB(한국 지사) 역시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일관된 규정을 적용하고 피해자 및 유족과의 협의를 통해 받은 의견을 신중하게 반영했습니다. 옥시 RB(한국 지사)는 레킷 그룹의 재정 지원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가습기 살균제 특별구호기금에 674억 원, 인도주의기금에 50억 원을 기부하는 등 총 3,640억 원 이상의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다양한 원인과 이해 관계자가 관련된 복잡한 문제이므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실질적으로 종결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의 심도 있고 투명한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조정 위원회의 논의에 성실하게 참여했으며 a)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종료 b) 합리적인 조정 기준 c) 공정한 기여금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음을 이해합니다.
Reckitt(영국 본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올바른 방식으로 옳은 일을 하도록 확고하게 약속해 왔으며, 우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례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옥시 본사 7월 8일 답변
옥시 RB(한국 지사)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조정 절차와 관련된 사안에 대응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Reckitt Group은 추가 의견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Reckitt(영국 본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책임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례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옥시 본사 7월 15일 답변
(KBS의 "우리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습니다. 당신의 메일에 따르면 폐 질환 1, 2단계가 아닌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인가요? 에 대한 답변)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과 관련하여 2020년 9월 한국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및 하위 규정을 개정하여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한 정부의 피해 구제 및 지원 체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특별법 개정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Reckitt Group은 옥시 RB(한국 지사)가 업계 전반의 대화에 참여하여 HS 문제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음을 이해합니다.
Reckitt(영국 본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례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연관 기사] [추적 ‘공기살인’]① ‘아이에게도 안심’…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5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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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적 ‘공기살인’]② 옥시 본사에 묻다, “책임지겠습니까?”
    • 입력 2022-09-02 07:01:02
    • 수정2022-09-02 15:21:18
    취재K
<strong>이 기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아직도?"라는 의문이 든 분들 계실 겁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이 참사, 드러난 지 벌써 11년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참사는 여전히 해결된 게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공기 살인' 가습기살균제 이야기입니다.</strong><br />

◆ [추적, '공기살인'] 글 싣는 순서
① ‘아이에게도 안심’…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② 옥시 본사에 묻다, “책임지겠습니까?”
③ [취재후] 피해자만 남은 ‘가습기 참사’, 돌파구는 없나?

■사망자 85%가 쓴 '옥시' 제품…기업 책임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해서는 제품을 만든 기업의 배·보상과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합니다. 기업들이 피해 보상을 한 피해자는 4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피해자 4,350명의 10% 수준이고, 피해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까지 넓혀 보면 5%까지 떨어집니다.

참사의 핵심에 기업 '옥시'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았고, 피해도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 옥시와 애경이 가습기 살균제 조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사실상 모든 논의가 중단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간 불공정한 책임 비율'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책임이 너무 과하다는 게 이유입니다. 조정위원회가 11년 만에 내놓은 조정안에서 옥시의 몫은 전체 분담금 9천240억 원 중 54%입니다. 이게 불공정하다면서 옥시는 협상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조정위가 분담금을 천억 원가량 감면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습니다.

과연 이 주장이 합리적일까요? 피해자들이 사용한 제품을 모두 분석해봤습니다.


전체 피해자가 4,350명 가운데 옥시 제품만 썼거나, 다른 제품과 함께 옥시 제품을 쓴 피해자는 85.6%인 3,727명입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옥시를 얼마나 썼는지 살펴봤더니 913명이었는데 사망자 10명 중 8명이 넘습니다. 다른 회사 제품은 빼고 옥시 제품만 사용한 사망자만 봐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0명에 달합니다.

역시 조정위에서 빠진 애경의 경우 애경이 제조하거나 판매한 제품을 쓴 사용자는, 중복 사용을 포함해 전체 피해자의 34%입니다.

이렇게 제품 사용 비중을 볼 때 과연 옥시와 애경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옥시' 본사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KBS는 6월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옥시 영국 본사에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그간의 취재 과정에서 한국 지사의 답변은 앵무새같이 매번 똑같았고, 모호했습니다. 한국지사가 가진 권한이 많지 않은 게 이유로 추정됩니다. KBS가 한국지사가 아닌 영국 본사에 직접 물어본 이유입니다.


KBS는 6월 13일 처음 메일을 보냈지만, 열흘 가까이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옥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 채널을 통해서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로 첫 번째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8차례 더 메일이 오고 갔고, 옥시는 네 차례 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옥시의 답변, 짧게는 2줄, 길어야 7줄이었습니다.

KBS가 보낸 질문은 모두 14가지입니다. 옥시가 전체 분담금에서 책임져야 할 54%의 분담비율이 정말 과하다고 보는 건지, 공정한 분담 비율은 몇 퍼센트인지, 분담금 마지노선이 얼마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옥시는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에게 이미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는 답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동안 4백여 명에 대한 배상금 등 총 3천6백억 원 넘게 썼다는 게 옥시의 근거입니다. 추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합리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해 드렸지만, 이 400명은 옥시를 사용한 피해자의 10%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의지가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옥시는 이 같은 답을 내놨습니다. 옥시가 KBS 취재진에게 보낸 마지막 답변이기도 합니다.

옥시 답변 메일(7.15)
"2020년 특별법 개정으로 피해 구제 체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러분께 다시 묻고 싶습니다. 옥시의 답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피해자들, 옥시 답변은 '궤변'

"2020년 특별법 개정으로 피해 구제 체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KBS가 옥시의 답변 중 주목한 부분입니다. 옥시가 특별법 개정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2020년 9월에 개정됐는데, 이때 피해 인정 기준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 질환 중심으로 피해를 판정했던 것과 달리, 종합적으로 판정해 다양한 피해 상황을 인정할 수 있도록 인정 범위가 대폭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피해자 현황을 분석해 보면 특별법 개정을 계기로 과거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가 인정된 피해자들이 1,231명, 전체 피해자의 3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실제로 특별법 개정 이후, 공식 인정을 받은 피해자가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책임 의사를 물었더니 옥시가 특별법 개정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옥시의 "특별법 이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답, 배상한 400여 명 외에 나머지 피해자들과 이 추가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여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낸 겁니다. 보다 명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옥시 '한국'지사에 다시 물었고, 말 그대로 '피해 인정 체계 등이 바뀌었고,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옥시 측은 답했습니다.

이 모호하지만, 의미심장한 답변. 피해자들은 옥시가 나머지 피해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규정했습니다.

추준영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위원회 공동 대표는 KBS 9시 뉴스에 직접 출연해 "피해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옥시에서는 법의 개정이라는 사실을 악의적으로 인용해서 피해자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상황과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 중증 질환 인정받았지만, 배상 못 하겠다는 옥시

추준영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입니다. 그의 아들, 박준석 군도 중증 피해자입니다.

박 군의 키는 172cm. 몸무게는 41kg에 불과합니다. 세 살 때 썼던 가습기살균제 탓에 폐가 심하게 손상됐고, 복합적인 건강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매일 먹는 약만 7가지, 2주에 한 번씩은 면역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준석이네는 '옥시' 제품만 사용했습니다. 2016년 처음 피해 신청을 했는데, 지난해 7월에 받았습니다. 원래 폐 질환 2단계에 해당한다는 의학적 소견까지 받았지만 정부의 판정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박 군은 옥시 배상에서 제외됐습니다. 2016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배상을 진행했는데, 정부의 판정이 늦어지면서 배상 대상에서 빠진 것입니다.

정부의 늑장 판정, 그리고 옥시가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를 이미 충분히 보상했다는 태도가 준석이를 더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기업 간 사회적 합의를 위해 만든 '조정위'는 옥시와 애경이 발을 빼면서 파행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걸 민간에 맡겨 둔 채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참사 11년, 해결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될 이 문제가 이번엔 해결될 수 있을지 꼭 지켜봐야겠습니다.

옥시 본사가 이메일을 통해 KBS에 보낸 답변은 모두 공개합니다.

옥시 본사 6월 24일 답변
2016년부터 레킷은 정부가 분류한 카테고리 1 및 2 옥시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1, 2단계에 대해 포괄적이고 투명한 보상 계획을 수립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로서 옥시 Reckitt Benckiser(한국지사)가 올바른 일을 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모두 보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사건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또한, 해결책에 대한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약속한 존중, 투명성, 공정성, 속도의 4가지 핵심 원칙과 같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귀하의 문의에 대한 답변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옥시 RB(한국지사)에 문의하여 자세한 설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옥시 본사 6월 28일 답변
이전 회신에서 언급했듯이, Reckitt은 2016년부터 올바른 일을 하고 Oxy Reckitt Benckiser(옥시 한국 지사)가 정중하고 공정하며 투명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가습기 살균제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에 충실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옥시 RB(한국 지사)는 존중, 공정성, 투명성, 속도라는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포괄적이고 투명한 보상 계획을 수립하고 완료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입니다.
이 보상 과정에서 옥시 RB(한국 지사)는 피해자 및 그 가족과 직접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옥시 폐 손상 1, 2단계 피해자와 그 가족과 400번 넘게 만났습니다. 옥시RB(한국 지사) 역시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일관된 규정을 적용하고 피해자 및 유족과의 협의를 통해 받은 의견을 신중하게 반영했습니다. 옥시 RB(한국 지사)는 레킷 그룹의 재정 지원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가습기 살균제 특별구호기금에 674억 원, 인도주의기금에 50억 원을 기부하는 등 총 3,640억 원 이상의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다양한 원인과 이해 관계자가 관련된 복잡한 문제이므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실질적으로 종결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의 심도 있고 투명한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조정 위원회의 논의에 성실하게 참여했으며 a)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종료 b) 합리적인 조정 기준 c) 공정한 기여금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음을 이해합니다.
Reckitt(영국 본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올바른 방식으로 옳은 일을 하도록 확고하게 약속해 왔으며, 우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례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옥시 본사 7월 8일 답변
옥시 RB(한국 지사)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조정 절차와 관련된 사안에 대응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Reckitt Group은 추가 의견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Reckitt(영국 본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책임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례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옥시 본사 7월 15일 답변
(KBS의 "우리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습니다. 당신의 메일에 따르면 폐 질환 1, 2단계가 아닌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인가요? 에 대한 답변)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과 관련하여 2020년 9월 한국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및 하위 규정을 개정하여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한 정부의 피해 구제 및 지원 체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특별법 개정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Reckitt Group은 옥시 RB(한국 지사)가 업계 전반의 대화에 참여하여 HS 문제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음을 이해합니다.
Reckitt(영국 본사)는 옥시 RB(한국 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례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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