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강도살인’ 검거했지만…사과한 자 그리고 사과받지 못한 자

입력 2022.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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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년 만의 사과

두 사람이 기자 앞에 섰습니다. 2001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이승만과 이정학입니다. 어제(2일) 검찰 송치 전 대전 동부경찰서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승만은 "저로 인해 피해를 받으신 경찰관분, 유명을 달리하신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둔산경찰서 앞에서 이정학도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21년 만의 사과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있습니다. 20년 전 같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41살 김 모 씨입니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여덟 달 만인 2002년 김 씨 등 20대 남성 3명을 용의자로 체포했습니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증거는 없었습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습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사전 경찰의 강압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결국 이들을 풀어줬습니다. 하지만 풀려난 뒤에도 이들은 용의선상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2002년 경찰에 용의자로 지목됐던 41살 김 모 씨 2002년 경찰에 용의자로 지목됐던 41살 김 모 씨

■ "무작정 끌려가 폭행"…"경찰은 사과해야"

그렇다면 왜 경찰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말했지만 오히려 경찰이 폭행으로 허위자백을 유도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41살의 김 씨는 20년 전의 검거 당시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대전에 있는 경찰 기동대로 끌려간 뒤 수갑을 찬 채 마구잡이 폭행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목 뒷부분과 허리, 가슴 등 살이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을 집중적으로 맞았다"며 "몸을 모포로 말아놓고 때렸는데 방망이로 몇 대 맞으니까 정말 미칠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폭행을 주도하던 경찰 2명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폭행은 엿새 동안 이어졌고 거짓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김○○/당시 용의자로 지목
"'너 거기에서 여기로 갔잖아. 다시 써.' 하고 종이를 또 바꿔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하고 어느 정도 썼으면 나중에 와서 '네가 쓴 거에 대해서 보지 않고 얘기를 해봐'(라고 했습니다)"

결국, 김 씨는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에도 김 씨 등이 진범이 맞다는 논란은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범인인 걸 여전히 확신한다"는 인터뷰가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20년 넘게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겁니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이승만과 이정학을 검거한 뒤에야 "과거 용의자 3명과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은 관련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당시 수사가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열악한 면이 있었다"며 우회적으로 수사의 부실함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습니다. 김 씨가 바라는 건 경찰의 사과입니다.

김○○/당시 용의자로 지목
"우리는 아니었다는 게 지금 결과가 나온 거잖아요. 지금이라도 당연히 나와서 사과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 "아직은"…"대체 언제?"

이승만과 이정학을 잡은 뒤 경찰은 브리핑을 여러 번 열었습니다. 이 브리핑에서 김 씨 등 과거 용의자들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단서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은'입니다. 김 씨 등 2002년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은 "사건과 관련 없다"면서도 말미에는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현재까지는 그렇다"가 붙는 식입니다.

경찰의 이런 답변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어제(2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폭행이나 강압수사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수사 서류에 드러난 경우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정리해보면 김 씨 등 과거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건 아직 확실하지는 않고 경찰의 폭행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21년이 지났습니다. 김 씨는 경찰 스스로가 '새로운 피의자'를 잡아들인 지금도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체 언제 누명을 벗을 수 있냐고 김 씨는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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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강도살인’ 검거했지만…사과한 자 그리고 사과받지 못한 자
    • 입력 2022-09-03 10:00:24
    취재K

■ 21년 만의 사과

두 사람이 기자 앞에 섰습니다. 2001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이승만과 이정학입니다. 어제(2일) 검찰 송치 전 대전 동부경찰서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승만은 "저로 인해 피해를 받으신 경찰관분, 유명을 달리하신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둔산경찰서 앞에서 이정학도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21년 만의 사과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있습니다. 20년 전 같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41살 김 모 씨입니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여덟 달 만인 2002년 김 씨 등 20대 남성 3명을 용의자로 체포했습니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증거는 없었습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습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사전 경찰의 강압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결국 이들을 풀어줬습니다. 하지만 풀려난 뒤에도 이들은 용의선상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2002년 경찰에 용의자로 지목됐던 41살 김 모 씨
■ "무작정 끌려가 폭행"…"경찰은 사과해야"

그렇다면 왜 경찰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말했지만 오히려 경찰이 폭행으로 허위자백을 유도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41살의 김 씨는 20년 전의 검거 당시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대전에 있는 경찰 기동대로 끌려간 뒤 수갑을 찬 채 마구잡이 폭행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목 뒷부분과 허리, 가슴 등 살이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을 집중적으로 맞았다"며 "몸을 모포로 말아놓고 때렸는데 방망이로 몇 대 맞으니까 정말 미칠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폭행을 주도하던 경찰 2명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폭행은 엿새 동안 이어졌고 거짓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김○○/당시 용의자로 지목
"'너 거기에서 여기로 갔잖아. 다시 써.' 하고 종이를 또 바꿔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하고 어느 정도 썼으면 나중에 와서 '네가 쓴 거에 대해서 보지 않고 얘기를 해봐'(라고 했습니다)"

결국, 김 씨는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에도 김 씨 등이 진범이 맞다는 논란은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범인인 걸 여전히 확신한다"는 인터뷰가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20년 넘게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겁니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이승만과 이정학을 검거한 뒤에야 "과거 용의자 3명과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은 관련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당시 수사가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열악한 면이 있었다"며 우회적으로 수사의 부실함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습니다. 김 씨가 바라는 건 경찰의 사과입니다.

김○○/당시 용의자로 지목
"우리는 아니었다는 게 지금 결과가 나온 거잖아요. 지금이라도 당연히 나와서 사과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 "아직은"…"대체 언제?"

이승만과 이정학을 잡은 뒤 경찰은 브리핑을 여러 번 열었습니다. 이 브리핑에서 김 씨 등 과거 용의자들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단서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은'입니다. 김 씨 등 2002년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은 "사건과 관련 없다"면서도 말미에는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현재까지는 그렇다"가 붙는 식입니다.

경찰의 이런 답변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어제(2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폭행이나 강압수사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수사 서류에 드러난 경우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정리해보면 김 씨 등 과거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건 아직 확실하지는 않고 경찰의 폭행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21년이 지났습니다. 김 씨는 경찰 스스로가 '새로운 피의자'를 잡아들인 지금도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체 언제 누명을 벗을 수 있냐고 김 씨는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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