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안방극장’ 돌아왔지만…이제는 역사 속으로?

입력 2022.09.08 (15:56) 수정 2023.01.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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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며 방송사들이 특선 영화 편성표를 공개했습니다. KBS는 올해 '어멍'과 '도굴' 등 모두 8편의 영화를 선보입니다. 지상파 3사의 올해 추석 특선영화 명단을 정리해 봤습니다.


눈에 띄는 건 MBC의 선택입니다. MBC는 나흘간의 추석 연휴 동안 특선 영화는 딱 한 작품만 편성했는데요. 대신 예능 프로그램인 '아이돌 스타 선수권 대회'를 사흘에 걸쳐 방영하는 등 자체 콘텐츠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입니다.

■ OTT·VOD 서비스에 밀려… 사실상 '편성 포기'?

사실 국민 10명 중 5명은 유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이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입맛에 맞는 영화를 편하게 골라 볼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방송사가 고른 영화를 정해진 시각에 맞춰 봐야 하는 'TV 안방 극장'의 매력은 예전보다 크게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은 방송사의 편성표에도 반영돼 있습니다. 올해 SBS가 고른 '미션파서블'과 '자산어보'는 지난해 추석에도 전파를 탔던 작품들입니다. 새 영화를 계약하기보다 기존 영화를 이른바 '재탕'하기로 한 겁니다.

이대로 가다간 곧 명절 편성표에서 특선 영화를 아예 찾아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기우일까요?

영화 ‘벤허’(1959)와 ‘소권괴초’(1979) 포스터. 출처 IMDB.영화 ‘벤허’(1959)와 ‘소권괴초’(1979) 포스터. 출처 IMDB.

■ 1970년대엔 서부극·대형 사극 인기…1980, 90년대엔 성룡·이연걸

TV 방송사들은 출범 초기부터 명절이나 공휴일을 맞아 '특선 영화'를 편성해 방영해 왔습니다.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 페이지를 통해 1972년 12월 24일 조선일보 지면을 살펴볼까요? 당시 성탄절 특선 명화로 KBS는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1961년 작 '왕 중 왕'을, MBC는 한국 영화 '자매의 화원' 등을 선택했다는 내용인데요. 이듬해 추석엔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황야의 결투'가 방영됐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작들이 쏟아졌던 1950년대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은 당시 우리 안방 극장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특히 성탄 특선으로 '십계', '벤허', '쿼바디스' 등 종교 영화들의 인기가 높았는데요. 1959년 작품 '벤허'는 60년이 흐른 최근에도 종종 방영하는 채널이 있을 만큼 특선 영화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성탄 특선뿐 아니라 광복 특선, 현충일 특선, 여름 특선까지 있었을 만큼 과거 방송사들은 특선 영화 방영에 열을 올렸습니다. 1980년 추석 특선이었던 '빠삐용', 1986년 설 연휴에 선보인 '닥터 지바고', 1989년 설 특선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지금까지 작품성을 인정받는 명작들이 선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준 낮은 영화로 시간 보내기용 편성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비슷비슷한 무술영화들이 쏟아지던 1980년대에 정점에 달했습니다. 1985년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면, "수준 낮은 무술 폭력 영화가 무분별하게 재방영돼 TV가 변두리 3번 영화관으로 전락했다"는 신랄한 평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때 언급하는 영화가 바로 성룡 주연의 한국-홍콩 합작영화 '당산비권'입니다.

■ 무분별 재방영에 '변두리 극장' 혹평도…이제는 시청률 한 자릿수

"명절엔 성룡"이란 말이 이때 생겨났을 만큼, 당시는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무술영화의 시대였습니다. 홍금보와 함께 출연한 '쾌찬차'와 '복성고조',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은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등 1990년대 후반까지 편성표엔 성룡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스타였던 이연걸의 '동방불패'는 1996년 추석과 1997년 설 연휴, 1997년 추석까지 연속해서 3차례나 방영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영화 전문 채널의 등장과 IPTV의 VOD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TV 특선 영화의 인기는 시들해집니다. 지난해 추석, TV 첫 공개로 큰 관심이 쏠렸던 SBS 특선 영화 '미나리'의 시청률이 11.3%였는데요. 30년 전 KBS가 당시 설 특선으로 방영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청률은 25.4%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기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이 64%를 넘길 때였지요.

이처럼 TV 특선 영화의 흥망성쇠는 곧 TV 시청률의 역사와 큰 흐름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지상파 방송만이 영화를 접할 창구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대형 영화가 아니라서 극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작품들에는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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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안방극장’ 돌아왔지만…이제는 역사 속으로?
    • 입력 2022-09-08 15:56:45
    • 수정2023-01-07 13:48:04
    취재K

추석이 다가오며 방송사들이 특선 영화 편성표를 공개했습니다. KBS는 올해 '어멍'과 '도굴' 등 모두 8편의 영화를 선보입니다. 지상파 3사의 올해 추석 특선영화 명단을 정리해 봤습니다.


눈에 띄는 건 MBC의 선택입니다. MBC는 나흘간의 추석 연휴 동안 특선 영화는 딱 한 작품만 편성했는데요. 대신 예능 프로그램인 '아이돌 스타 선수권 대회'를 사흘에 걸쳐 방영하는 등 자체 콘텐츠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입니다.

■ OTT·VOD 서비스에 밀려… 사실상 '편성 포기'?

사실 국민 10명 중 5명은 유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이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입맛에 맞는 영화를 편하게 골라 볼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방송사가 고른 영화를 정해진 시각에 맞춰 봐야 하는 'TV 안방 극장'의 매력은 예전보다 크게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은 방송사의 편성표에도 반영돼 있습니다. 올해 SBS가 고른 '미션파서블'과 '자산어보'는 지난해 추석에도 전파를 탔던 작품들입니다. 새 영화를 계약하기보다 기존 영화를 이른바 '재탕'하기로 한 겁니다.

이대로 가다간 곧 명절 편성표에서 특선 영화를 아예 찾아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기우일까요?

영화 ‘벤허’(1959)와 ‘소권괴초’(1979) 포스터. 출처 IMDB.
■ 1970년대엔 서부극·대형 사극 인기…1980, 90년대엔 성룡·이연걸

TV 방송사들은 출범 초기부터 명절이나 공휴일을 맞아 '특선 영화'를 편성해 방영해 왔습니다.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 페이지를 통해 1972년 12월 24일 조선일보 지면을 살펴볼까요? 당시 성탄절 특선 명화로 KBS는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1961년 작 '왕 중 왕'을, MBC는 한국 영화 '자매의 화원' 등을 선택했다는 내용인데요. 이듬해 추석엔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황야의 결투'가 방영됐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작들이 쏟아졌던 1950년대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은 당시 우리 안방 극장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특히 성탄 특선으로 '십계', '벤허', '쿼바디스' 등 종교 영화들의 인기가 높았는데요. 1959년 작품 '벤허'는 60년이 흐른 최근에도 종종 방영하는 채널이 있을 만큼 특선 영화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성탄 특선뿐 아니라 광복 특선, 현충일 특선, 여름 특선까지 있었을 만큼 과거 방송사들은 특선 영화 방영에 열을 올렸습니다. 1980년 추석 특선이었던 '빠삐용', 1986년 설 연휴에 선보인 '닥터 지바고', 1989년 설 특선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지금까지 작품성을 인정받는 명작들이 선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준 낮은 영화로 시간 보내기용 편성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비슷비슷한 무술영화들이 쏟아지던 1980년대에 정점에 달했습니다. 1985년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면, "수준 낮은 무술 폭력 영화가 무분별하게 재방영돼 TV가 변두리 3번 영화관으로 전락했다"는 신랄한 평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때 언급하는 영화가 바로 성룡 주연의 한국-홍콩 합작영화 '당산비권'입니다.

■ 무분별 재방영에 '변두리 극장' 혹평도…이제는 시청률 한 자릿수

"명절엔 성룡"이란 말이 이때 생겨났을 만큼, 당시는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무술영화의 시대였습니다. 홍금보와 함께 출연한 '쾌찬차'와 '복성고조',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은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등 1990년대 후반까지 편성표엔 성룡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스타였던 이연걸의 '동방불패'는 1996년 추석과 1997년 설 연휴, 1997년 추석까지 연속해서 3차례나 방영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영화 전문 채널의 등장과 IPTV의 VOD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TV 특선 영화의 인기는 시들해집니다. 지난해 추석, TV 첫 공개로 큰 관심이 쏠렸던 SBS 특선 영화 '미나리'의 시청률이 11.3%였는데요. 30년 전 KBS가 당시 설 특선으로 방영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청률은 25.4%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기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이 64%를 넘길 때였지요.

이처럼 TV 특선 영화의 흥망성쇠는 곧 TV 시청률의 역사와 큰 흐름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지상파 방송만이 영화를 접할 창구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대형 영화가 아니라서 극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작품들에는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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