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호랑이’로 불리는 대표적인 우리 민화 ‘작호도(鵲虎圖)’. 왼쪽은 19세기 조선시대 때, 오른쪽은 최근에 그려진 그림. (사진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엄재권민화연구소)
■ "사나운 범, 익살스럽게 그려"…' 따뜻한 정서'에 꽂힌 시선
우람한 덩치, 부리부리한 눈, 뾰족 튀어나온 송곳니…생김새는 분명 '맹수의 왕' 호랑이인데, 무섭기보다는 어쩐지 귀여운 모습이죠. 심술 난 고양이마냥 앙칼지게 입을 벌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회화의 일종인 민화(民畵)의 대표 작품 '작호도(鵲虎圖)', 일명 '까치 호랑이'입니다.
왼쪽은 19세기 조선시대 때, 오른쪽은 최근에 그려진 그림인데요. 요즘 외국인들은 작호도에서 느껴지는 '민화의 다정한 감성'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대들거나 무언가를 잡아먹는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돼온 호랑이를, 우리 곁의 '친근한 동물'로 익살스럽게 그려낸 필치(筆致). 그 속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따뜻한 시선'을 이채롭게 바라보며 공감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때 문인화(文人畵)에 밀려 속화(俗畵)나 모작(模作)으로 평가돼온 민화가 최근 국내외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근엄한 수묵화(水墨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하고 친근한 감성'은 애호가와 입문자를 늘게 합니다. 산업 디자인적 요소가 돋보이는 형식미는 '실용적 가치'로 인정받아 다양한 공예품에 활용됩니다.
다채로운 색감에 더한 '친근함과 실용성', 이 두 가지 매력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민화는 지금 '가장 한국적인 예술: K-아트'로 발돋움하는 중입니다.
■ 국내 아트페어부터 오스트리아 전시까지…'친근함·실용성'이 강점
지난 6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K-MINAF)'.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2년 만의 개최여서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는데요. 민화 작가 500여 명이 출품하는 등 '역대 최다 참가'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족자·액자부터 침구·보자기에 한복까지, 민화를 다방면으로 응용한 작품들이 전시됐습니다.
지난 6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개최된 제4회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에 관람객이 모여 있다. (사진 출처=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 홈페이지 캡처)
해외에서도 민화는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소재의 기메동양박물관은 유럽 최대의 동양미술 전문 박물관으로 조선시대 민화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책거리(冊巨里·책을 비롯한 문방사우 등 사랑방의 여러 물품을 그린 그림)' 작품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지난 4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책거리 민화 병풍' 등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내 민화 작가들이 그린 책거리(冊巨里·책을 비롯한 문방사우 등 사랑방의 여러 물품을 그린 그림)와 화조도(花鳥圖).
송창수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는 " 우리가 보통 '문인화'라고 부르는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동양화) 같은 경우는,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이 한중일(韓中日) 작품을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동양적인 색감이 확연히 드러나고, '책거리'처럼 소재가 고유한 민화가 'K-아트'로 여겨지는 이유"라며 " 이제 민화는 전통 공예품뿐 아니라 고급 화장품 같은 기성품에도 이미지로 삽입될 만큼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 학생부터 배우까지…"누구든 재밌게 배울 수 있다"
민화 그리기를 직접 배우려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40~50대 주부부터 10대 중·고등학생, 배우 등 연예인까지 입문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우 김규리씨는 과거 영화 '미인도'에서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으로 열연하면서 화단에 입문, 정식 민화 작가로 활동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제2회 민화 아트페어 홍보대사로 위촉,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등 데뷔작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민화 작가로 활동 중인 배우 김규리씨의 데뷔작 ‘일월오봉도’. 2018년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에 전시됐다. (사진 출처=KBS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 캡처)
민화 작가 손숙희씨는 " 화려한 오방색(五方色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청·백·적·흑·황색)의 민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고인숙씨는 "어려운 그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 재밌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습니다.
유정서 《월간민화》 편집국장은 "민화가 지금 각광받는 이유는 '자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일단 감상하는 사람이 '친근하게' 여기기 때문에 작가로 입문하기가 쉽고, 장식미가 화려하기 때문에 완성했을 때나 실용품에 접목했을 때 성취감이 크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모사'를 넘어 '창조'로…"수묵화는 재배, 민화는 야생"
민화가 하나의 독자적 미술 장르로 분류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화단(畵壇)에서도 민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잠재력과 가치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계속돼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정서와 사상을 가식 없이 드러낸 그림' '문인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정통 회화와 달리,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그림'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통 민화는 '속화', 현대 민화는 '모작'으로 보는 일각의 선입견이 없지 않았는데요.
물론 오늘날 현대 민화는 원작의 기본 틀에 색을 입히는 일종의 '모사'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요즘 민화 작가들은 단순 모사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축조하고 개성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색상을 다르게 칠하거나 원작의 기본 틀 자체를 새롭게 바꿔 독창적인 그림을 만드는 식입니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과 그의 문하생들인 ‘효문회’ 소속 민화 작가들.
민화 작가 황윤경씨는 "최근 연화도(蓮花圖)를 그리고 있는데, 원작과 달리 바탕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서 먹을 많이 사용했다"며 "'톤 다운'을 해서 어두운 연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신애씨는 "원작의 10폭 병풍을 한 장으로 축소 제작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내달 말쯤 전시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은 " 마음대로 변형해서 그리는 것보다 정확한 모사가 더 어려운 법이다. 완벽한 모사 작업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개성이 담긴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중국풍 영향을 받은 '재배적'인 수묵화와 달리, 우리 민화는 자체적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 왔다는 점에서 '야생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개최된 제4회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에서 ‘민화 패션쇼’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 홈페이지 캡처)
■ 'K-아트' 위상 지키려면…"현대 민화는 현대를 대변해야"
국내 인기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민화. 'K-아트'로서 위상을 지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전문가들은 '전통미를 창의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오석환 조선민화박물관장은 《월간민화》 2020년 3월호에서 "현대 민화는 현대를 대변하는 무언가, 즉 현대인이 민화에 바라는 목적성이나 예술성이 묻어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장도 지난 3월 '한국현대민화 - 전개와 흐름전(展)' 평론에서 " 과거의 소재를 그대로 모방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창작 민화' 로서 현대의 삶을 묘사하고 전달해야 한다"며 "재료, 제재, 구도, 기법, 색감 등 표현 방식이 여러 면에서 개별성과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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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화(俗畵)에서 ‘K-아트’로”…민화(民畵)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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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9-11 10:00:18
■ "사나운 범, 익살스럽게 그려"…' 따뜻한 정서'에 꽂힌 시선
우람한 덩치, 부리부리한 눈, 뾰족 튀어나온 송곳니…생김새는 분명 '맹수의 왕' 호랑이인데, 무섭기보다는 어쩐지 귀여운 모습이죠. 심술 난 고양이마냥 앙칼지게 입을 벌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회화의 일종인 민화(民畵)의 대표 작품 '작호도(鵲虎圖)', 일명 '까치 호랑이'입니다.
왼쪽은 19세기 조선시대 때, 오른쪽은 최근에 그려진 그림인데요. 요즘 외국인들은 작호도에서 느껴지는 '민화의 다정한 감성'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대들거나 무언가를 잡아먹는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돼온 호랑이를, 우리 곁의 '친근한 동물'로 익살스럽게 그려낸 필치(筆致). 그 속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따뜻한 시선'을 이채롭게 바라보며 공감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때 문인화(文人畵)에 밀려 속화(俗畵)나 모작(模作)으로 평가돼온 민화가 최근 국내외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근엄한 수묵화(水墨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하고 친근한 감성'은 애호가와 입문자를 늘게 합니다. 산업 디자인적 요소가 돋보이는 형식미는 '실용적 가치'로 인정받아 다양한 공예품에 활용됩니다.
다채로운 색감에 더한 '친근함과 실용성', 이 두 가지 매력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민화는 지금 '가장 한국적인 예술: K-아트'로 발돋움하는 중입니다.
■ 국내 아트페어부터 오스트리아 전시까지…'친근함·실용성'이 강점
지난 6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K-MINAF)'.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2년 만의 개최여서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는데요. 민화 작가 500여 명이 출품하는 등 '역대 최다 참가'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족자·액자부터 침구·보자기에 한복까지, 민화를 다방면으로 응용한 작품들이 전시됐습니다.
해외에서도 민화는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소재의 기메동양박물관은 유럽 최대의 동양미술 전문 박물관으로 조선시대 민화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책거리(冊巨里·책을 비롯한 문방사우 등 사랑방의 여러 물품을 그린 그림)' 작품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지난 4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책거리 민화 병풍' 등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송창수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는 " 우리가 보통 '문인화'라고 부르는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동양화) 같은 경우는,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이 한중일(韓中日) 작품을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동양적인 색감이 확연히 드러나고, '책거리'처럼 소재가 고유한 민화가 'K-아트'로 여겨지는 이유"라며 " 이제 민화는 전통 공예품뿐 아니라 고급 화장품 같은 기성품에도 이미지로 삽입될 만큼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 학생부터 배우까지…"누구든 재밌게 배울 수 있다"
민화 그리기를 직접 배우려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40~50대 주부부터 10대 중·고등학생, 배우 등 연예인까지 입문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우 김규리씨는 과거 영화 '미인도'에서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으로 열연하면서 화단에 입문, 정식 민화 작가로 활동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제2회 민화 아트페어 홍보대사로 위촉,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등 데뷔작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민화 작가 손숙희씨는 " 화려한 오방색(五方色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청·백·적·흑·황색)의 민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고인숙씨는 "어려운 그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 재밌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습니다.
유정서 《월간민화》 편집국장은 "민화가 지금 각광받는 이유는 '자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일단 감상하는 사람이 '친근하게' 여기기 때문에 작가로 입문하기가 쉽고, 장식미가 화려하기 때문에 완성했을 때나 실용품에 접목했을 때 성취감이 크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모사'를 넘어 '창조'로…"수묵화는 재배, 민화는 야생"
민화가 하나의 독자적 미술 장르로 분류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화단(畵壇)에서도 민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잠재력과 가치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계속돼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정서와 사상을 가식 없이 드러낸 그림' '문인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정통 회화와 달리,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그림'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통 민화는 '속화', 현대 민화는 '모작'으로 보는 일각의 선입견이 없지 않았는데요.
물론 오늘날 현대 민화는 원작의 기본 틀에 색을 입히는 일종의 '모사'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요즘 민화 작가들은 단순 모사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축조하고 개성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색상을 다르게 칠하거나 원작의 기본 틀 자체를 새롭게 바꿔 독창적인 그림을 만드는 식입니다.
민화 작가 황윤경씨는 "최근 연화도(蓮花圖)를 그리고 있는데, 원작과 달리 바탕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서 먹을 많이 사용했다"며 "'톤 다운'을 해서 어두운 연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신애씨는 "원작의 10폭 병풍을 한 장으로 축소 제작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내달 말쯤 전시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은 " 마음대로 변형해서 그리는 것보다 정확한 모사가 더 어려운 법이다. 완벽한 모사 작업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개성이 담긴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중국풍 영향을 받은 '재배적'인 수묵화와 달리, 우리 민화는 자체적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 왔다는 점에서 '야생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K-아트' 위상 지키려면…"현대 민화는 현대를 대변해야"
국내 인기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민화. 'K-아트'로서 위상을 지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전문가들은 '전통미를 창의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오석환 조선민화박물관장은 《월간민화》 2020년 3월호에서 "현대 민화는 현대를 대변하는 무언가, 즉 현대인이 민화에 바라는 목적성이나 예술성이 묻어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장도 지난 3월 '한국현대민화 - 전개와 흐름전(展)' 평론에서 " 과거의 소재를 그대로 모방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창작 민화' 로서 현대의 삶을 묘사하고 전달해야 한다"며 "재료, 제재, 구도, 기법, 색감 등 표현 방식이 여러 면에서 개별성과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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