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법정화폐 실험 1년…비틀거리는 엘살바도르

입력 2022.09.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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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비트코인을 19,000달러에 80개 구매했습니다. 싸게 살 기회를 줘 감사합니다."

테라 루나 사태로 비트코인이 폭락한 직후인 지난 7월 1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정부의 비트코인 매수 인증 사진을 올렸습니다. 강한 비트코인 신봉자인 그는 평소에도 비트코인이 하락하면 "저가 매수 기회"라며 홍보해 왔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인구 650만 명으로 남미 최빈국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나라가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매수한 건 1년 전인 지난해 9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면서입니다.

사업가 출신인 부켈레 대통령은 1981년생으로 2019년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약한 엘살바도르 경제 구조를 혁신하겠다며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지정을 밀어붙였습니다.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는 여당이 힘을 보탰습니다. 엘살바도르는 2001년부터 미국 달러를 법정화폐로 사용해 왔는데, 비트코인을 2번째 법정화폐로 채택한 겁니다.

엘살바도르는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이용할 수 있도록 비트코인 지갑 '치보'를 만들고, 신규 개설하면 30달러를 주겠다고 홍보했습니다. 세금도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고, 기업들도 비트코인을 지불 수단으로 채택했습니다. 은행 대출 상환도 비트코인으로 가능합니다.


비트코인 간판을 걸어 놓은 엘살바도르 매점 (출처:비트코인 간판을 걸어 놓은 엘살바도르 매점 (출처:

엘살바도르는 국민에게 비트코인 사용을 독려하는 한편, 정부 차원에서 매수를 이어갔습니다. 한 번에 적게는 20여 개에서 많게는 500개까지 1년 동안 10여 차례 매수했고, 현재까지 사들인 비트코인은 모두 2,381개입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가격 흐름은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해 9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을 발표할 당시 비트코인은 47,000달러(우리 돈 6,498만 원) 선이었습니다. 이후 비트코인은 강한 상승세 속에 지난해 11월 한때 64,000달러(우리 돈 8,849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부켈레 대통령의 선택이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긴축정책 등이 겹치며 비트코인은 약세를 보이다가 테라 루나 사태를 거치며 현재는 19,000달러(우리 돈 2,627만 원)선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매수에 들인 비용은 모두 1억 715만 달러(우리 돈 1,481억 원)가량입니다. 이 가운데 절반 넘는 평가 손실을 기록 중으로 현재 평가금액은 4,600만 달러(우리 돈 636억 원) 정도입니다.

법정화폐 지정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용률이 높지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엘살바도르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국내로 송금된 64억 달러(우리 돈 8조 8,492억 원) 가운데 2% 미만이 비트코인을 통해 이체됐습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 하락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낮은 가격은 저가 매수 기회'라는 입장을 보이며, 각종 비트코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11월 발표한 '비트코인 도시' 건설입니다. 국내 일부 지역에 비트코인 전용 도시를 건설, 비트코인 채굴 등 다양한 관련 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도시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비트코인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으로 된 10억 달러(우리 돈 1조 3,827억 원) 규모 채권을 발행해 절반은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절반은 비트코인 도시 건설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실제 발행까지 이어지면, 전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채권이 됩니다.

당초 지난 3월 초 발행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올 연말로 발행을 늦췄습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보유 개수를 현재의 2배 정도로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은 미래"라고 주장하지만, 엘살바도르의 지난 1년을 두고는 우려 섞인 시선이 더 많습니다. 엘살바도르 프란시스코 가비디아 대학 과학기술혁신연구소의 오스카 피카르도 소장은 "비트코인은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금융 자산"이라며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은 이 가난한 나라에게 너무 위험한 정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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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2 0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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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비트코인을 19,000달러에 80개 구매했습니다. 싸게 살 기회를 줘 감사합니다."

테라 루나 사태로 비트코인이 폭락한 직후인 지난 7월 1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정부의 비트코인 매수 인증 사진을 올렸습니다. 강한 비트코인 신봉자인 그는 평소에도 비트코인이 하락하면 "저가 매수 기회"라며 홍보해 왔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인구 650만 명으로 남미 최빈국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나라가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매수한 건 1년 전인 지난해 9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면서입니다.

사업가 출신인 부켈레 대통령은 1981년생으로 2019년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약한 엘살바도르 경제 구조를 혁신하겠다며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지정을 밀어붙였습니다.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는 여당이 힘을 보탰습니다. 엘살바도르는 2001년부터 미국 달러를 법정화폐로 사용해 왔는데, 비트코인을 2번째 법정화폐로 채택한 겁니다.

엘살바도르는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이용할 수 있도록 비트코인 지갑 '치보'를 만들고, 신규 개설하면 30달러를 주겠다고 홍보했습니다. 세금도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고, 기업들도 비트코인을 지불 수단으로 채택했습니다. 은행 대출 상환도 비트코인으로 가능합니다.


비트코인 간판을 걸어 놓은 엘살바도르 매점 (출처:
엘살바도르는 국민에게 비트코인 사용을 독려하는 한편, 정부 차원에서 매수를 이어갔습니다. 한 번에 적게는 20여 개에서 많게는 500개까지 1년 동안 10여 차례 매수했고, 현재까지 사들인 비트코인은 모두 2,381개입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가격 흐름은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해 9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을 발표할 당시 비트코인은 47,000달러(우리 돈 6,498만 원) 선이었습니다. 이후 비트코인은 강한 상승세 속에 지난해 11월 한때 64,000달러(우리 돈 8,849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부켈레 대통령의 선택이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긴축정책 등이 겹치며 비트코인은 약세를 보이다가 테라 루나 사태를 거치며 현재는 19,000달러(우리 돈 2,627만 원)선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매수에 들인 비용은 모두 1억 715만 달러(우리 돈 1,481억 원)가량입니다. 이 가운데 절반 넘는 평가 손실을 기록 중으로 현재 평가금액은 4,600만 달러(우리 돈 636억 원) 정도입니다.

법정화폐 지정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용률이 높지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엘살바도르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국내로 송금된 64억 달러(우리 돈 8조 8,492억 원) 가운데 2% 미만이 비트코인을 통해 이체됐습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 하락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낮은 가격은 저가 매수 기회'라는 입장을 보이며, 각종 비트코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11월 발표한 '비트코인 도시' 건설입니다. 국내 일부 지역에 비트코인 전용 도시를 건설, 비트코인 채굴 등 다양한 관련 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도시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비트코인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으로 된 10억 달러(우리 돈 1조 3,827억 원) 규모 채권을 발행해 절반은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절반은 비트코인 도시 건설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실제 발행까지 이어지면, 전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채권이 됩니다.

당초 지난 3월 초 발행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올 연말로 발행을 늦췄습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보유 개수를 현재의 2배 정도로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은 미래"라고 주장하지만, 엘살바도르의 지난 1년을 두고는 우려 섞인 시선이 더 많습니다. 엘살바도르 프란시스코 가비디아 대학 과학기술혁신연구소의 오스카 피카르도 소장은 "비트코인은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금융 자산"이라며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은 이 가난한 나라에게 너무 위험한 정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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