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화(俗畵)에서 ‘K-아트’로”…민화(民畵)의 재발견

입력 2022.09.12 (10:05) 수정 2022.09.12 (10:0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신지혜 / KBS AI 앵커

"조선시대 때는 문인화(文人畵)에 밀려 속화(俗畫)로 취급받고, 현대 화단(畵壇)에서는 모작(模作)으로 치부됐던 '백성의 그림'. 민화(民畵)가 최근 국내외적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애호가와 전문가 등 '민화 인구'가 늘면서 교육 기관과 전시·축제 등이 성행하고 있고, 해외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른바 'K-아트'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신승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서울 인사동의 한 민화 교습소. 사오십대 중년 여성들이 알록달록한 물감을 붓에 찍어 색칠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풍성한 모란과 우아한 연꽃을 그리기도 하고 용과 해태 등 상상의 동물을 묘사하기도 하는데요.

모두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엄재권 화백의 문하생들로, 입문자부터 전문 작가까지 민화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한데 모였습니다. 이들이 민화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혜원 / 민화 작가

"색도 좋고,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게 좀 (작업하기가) 편해요. 그리면서 나도 수양도 하게 되고. 제가 거기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게 완성작을) 많이 보내요. 그러면 매우 좋아해요."

고인숙 / 민화 작가

"재미도 있고 괜찮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그림은 아니에요. 민화 배우기가 다들 접근하기 쉽고, 접하게 되면 재미있게 다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날 현대 민화는 원작의 기본 틀에 색을 입히는 일종의 '모사(模寫)'에서 출발합니다.

한지(韓紙)의 일종인 순지에다 먹으로 원작의 본을 뜨고, 분채(가루 형태의 안료)와 봉채(분채를 막대 형태로 굳힌 것) 등으로 색칠한 다음 배접(종이를 여러 겹 덧대 붙이는 작업)으로 마무리합니다. 완성된 작품은 표구(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를 뜨고 액자로 만들어 전시하거나 소장합니다.

요즘 민화 작가들은 단순 모사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축조하고 개성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황윤경 / 민화 작가

"기존의 연화도(蓮花圖)와 다르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기존 민화는 색깔이 화사한 편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금 톤을 다운시켜서 약간 어두운 연화도를 그리고 있어요. 주로 먹이 많이 들어가는."

엄재권 화백이 1년 여의 노력 끝에 완성한 민화 '십장생(十長生) 10폭 병풍'. 해·구름과 소나무, 학과 사슴 등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자연물들이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어우러져 인상적입니다.

엄재권 / 민화 작가,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십장생도나 일월도나 굉장히 잘된 원작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로 (조선시대) 화원(畵員·예조 산하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던 잡직)들이 그린 그림이 많거든요. 잘돼 있으니까 (현대 민화 작가들도) 보고 그려보는 건데. 모두가 모사부터 해보는 거예요. 실제로 모사가 더 어려워요. 자기 맘대로 그려버리면 쉽잖아요. 만약에 십장생도에 나와 있는 사슴 한 마리 그려보라고 하면 더 어렵거든요. 그 (모사) 과정을 거쳐서 자기 그림을 하면 좋죠.

(문인화 등) 우리 전통 회화는 그야말로 '재배된', 절제하고 중국 화풍을 이어온 면이 있는데, 민화는 야생적인 거예요. 야생적으로 파생된 거죠. (작가) 본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들이 반영되고), 원근법도 파괴되고 산보다 사람과 동물을 더 크게 그리고. (중요한 건) 본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민화를 배우는 사람들의 직업과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엄 화백은 "중·고등학생들이 방학 기간을 활용해 배우러 오기도 한다"며 "배우 예지원, 김규리씨도 민화를 배워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규리씨는 2008년 영화 '미인도'에서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으로 열연하면서 화단에 입문, 민화 작가로 활동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K-MINAF)' 홍보대사로 위촉,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등 데뷔작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근본 없는 속화'로 치부돼왔던 민화는 근대 일본의 민예 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에 의해 용어가 정립되고, 1930년대 우리나라에도 관련 담론이 전파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화단에서도 민화를 '우리 민족의 생활 정서와 사상을 가식 없이 드러낸 그림' '문인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정통 회화와 달리,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그림'으로 보는 시각이 짙어졌습니다.

이제 우리 민화는 국내 '20만 민화 인구'가 애호하는 예술을 넘어, 한류(韓流)의 멋을 전파하는 'K-아트'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색감의 전통 미술 작품으로, 근사한 부채와 달력 등 공예품으로, 형형색색의 패션 디자인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배우기 쉽고, 성취감이 크고, 전문가가 꾸준히 육성'되는 점을 민화의 경쟁력으로 꼽았습니다.

유정서 / 《월간민화》 편집국장

"다른 회화에 비해서 문턱이 낮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봐야죠.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은 그림인데도, 입문하는 과정에서 기초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들이, 그려놓고 나면 대부분 멋있잖아요. 결과도 좋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 이런 장점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고. 또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또 다시 가르치는 입장으로, 굉장히 많이 활약을 했어요. 백화점이나 지방자치단체 문화센터 등으로 (전문가들이) 많이 보급됐던 거죠."

특히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소재로 세계인의 눈을 매료시키는 민화의 매력은,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송창수 /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

"대체적으로 지금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화의 특징은 '동양적인 색감'이겠죠. 그러한 색감들이 사실은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한국 민화에서 좀 독특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보통 우리가 문인화라고 하는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동양화) 같은 경우는, 서양인들의 눈으로 보면 한중일(韓中日) 3국의 그림은 다 똑같거든요.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 (민화에 쓰인) 오방색 등 전통적인 채색이 가장 먼저 눈에 띄겠죠.

사실 저희(민화 업계)는 이제 시작이거든요. 미술계에서 저희가 전시를 하고, 발표를 하고, 활동을 하는 게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저희 민화 작가들의 역량이 올라갈 수 있도록, 아트페어나 언론을 통해 계속 (작품 세계와 활용 분야를) 소개하고, 민화의 흐름도 같이 논의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더 크겠죠. 저는 커진다고 생각을 해요."

아울러 전문가들은 우리 현대 민화가 더욱 발전하고 세계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전통미를 계승하는 것은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현대적 시각이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KBS 뉴스 신승민입니다.

(대문 사진: 원소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영상] “속화(俗畵)에서 ‘K-아트’로”…민화(民畵)의 재발견
    • 입력 2022-09-12 10:05:45
    • 수정2022-09-12 10:09:25
    현장영상

신지혜 / KBS AI 앵커

"조선시대 때는 문인화(文人畵)에 밀려 속화(俗畫)로 취급받고, 현대 화단(畵壇)에서는 모작(模作)으로 치부됐던 '백성의 그림'. 민화(民畵)가 최근 국내외적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애호가와 전문가 등 '민화 인구'가 늘면서 교육 기관과 전시·축제 등이 성행하고 있고, 해외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른바 'K-아트'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신승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서울 인사동의 한 민화 교습소. 사오십대 중년 여성들이 알록달록한 물감을 붓에 찍어 색칠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풍성한 모란과 우아한 연꽃을 그리기도 하고 용과 해태 등 상상의 동물을 묘사하기도 하는데요.

모두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엄재권 화백의 문하생들로, 입문자부터 전문 작가까지 민화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한데 모였습니다. 이들이 민화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혜원 / 민화 작가

"색도 좋고,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게 좀 (작업하기가) 편해요. 그리면서 나도 수양도 하게 되고. 제가 거기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게 완성작을) 많이 보내요. 그러면 매우 좋아해요."

고인숙 / 민화 작가

"재미도 있고 괜찮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그림은 아니에요. 민화 배우기가 다들 접근하기 쉽고, 접하게 되면 재미있게 다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날 현대 민화는 원작의 기본 틀에 색을 입히는 일종의 '모사(模寫)'에서 출발합니다.

한지(韓紙)의 일종인 순지에다 먹으로 원작의 본을 뜨고, 분채(가루 형태의 안료)와 봉채(분채를 막대 형태로 굳힌 것) 등으로 색칠한 다음 배접(종이를 여러 겹 덧대 붙이는 작업)으로 마무리합니다. 완성된 작품은 표구(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를 뜨고 액자로 만들어 전시하거나 소장합니다.

요즘 민화 작가들은 단순 모사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축조하고 개성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황윤경 / 민화 작가

"기존의 연화도(蓮花圖)와 다르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기존 민화는 색깔이 화사한 편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금 톤을 다운시켜서 약간 어두운 연화도를 그리고 있어요. 주로 먹이 많이 들어가는."

엄재권 화백이 1년 여의 노력 끝에 완성한 민화 '십장생(十長生) 10폭 병풍'. 해·구름과 소나무, 학과 사슴 등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자연물들이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어우러져 인상적입니다.

엄재권 / 민화 작가,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십장생도나 일월도나 굉장히 잘된 원작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로 (조선시대) 화원(畵員·예조 산하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던 잡직)들이 그린 그림이 많거든요. 잘돼 있으니까 (현대 민화 작가들도) 보고 그려보는 건데. 모두가 모사부터 해보는 거예요. 실제로 모사가 더 어려워요. 자기 맘대로 그려버리면 쉽잖아요. 만약에 십장생도에 나와 있는 사슴 한 마리 그려보라고 하면 더 어렵거든요. 그 (모사) 과정을 거쳐서 자기 그림을 하면 좋죠.

(문인화 등) 우리 전통 회화는 그야말로 '재배된', 절제하고 중국 화풍을 이어온 면이 있는데, 민화는 야생적인 거예요. 야생적으로 파생된 거죠. (작가) 본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들이 반영되고), 원근법도 파괴되고 산보다 사람과 동물을 더 크게 그리고. (중요한 건) 본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민화를 배우는 사람들의 직업과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엄 화백은 "중·고등학생들이 방학 기간을 활용해 배우러 오기도 한다"며 "배우 예지원, 김규리씨도 민화를 배워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규리씨는 2008년 영화 '미인도'에서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으로 열연하면서 화단에 입문, 민화 작가로 활동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민화 아트페어(K-MINAF)' 홍보대사로 위촉,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등 데뷔작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근본 없는 속화'로 치부돼왔던 민화는 근대 일본의 민예 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에 의해 용어가 정립되고, 1930년대 우리나라에도 관련 담론이 전파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화단에서도 민화를 '우리 민족의 생활 정서와 사상을 가식 없이 드러낸 그림' '문인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정통 회화와 달리,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그림'으로 보는 시각이 짙어졌습니다.

이제 우리 민화는 국내 '20만 민화 인구'가 애호하는 예술을 넘어, 한류(韓流)의 멋을 전파하는 'K-아트'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색감의 전통 미술 작품으로, 근사한 부채와 달력 등 공예품으로, 형형색색의 패션 디자인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배우기 쉽고, 성취감이 크고, 전문가가 꾸준히 육성'되는 점을 민화의 경쟁력으로 꼽았습니다.

유정서 / 《월간민화》 편집국장

"다른 회화에 비해서 문턱이 낮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봐야죠.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은 그림인데도, 입문하는 과정에서 기초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들이, 그려놓고 나면 대부분 멋있잖아요. 결과도 좋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 이런 장점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고. 또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또 다시 가르치는 입장으로, 굉장히 많이 활약을 했어요. 백화점이나 지방자치단체 문화센터 등으로 (전문가들이) 많이 보급됐던 거죠."

특히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소재로 세계인의 눈을 매료시키는 민화의 매력은,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송창수 /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

"대체적으로 지금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화의 특징은 '동양적인 색감'이겠죠. 그러한 색감들이 사실은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한국 민화에서 좀 독특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보통 우리가 문인화라고 하는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동양화) 같은 경우는, 서양인들의 눈으로 보면 한중일(韓中日) 3국의 그림은 다 똑같거든요.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 (민화에 쓰인) 오방색 등 전통적인 채색이 가장 먼저 눈에 띄겠죠.

사실 저희(민화 업계)는 이제 시작이거든요. 미술계에서 저희가 전시를 하고, 발표를 하고, 활동을 하는 게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저희 민화 작가들의 역량이 올라갈 수 있도록, 아트페어나 언론을 통해 계속 (작품 세계와 활용 분야를) 소개하고, 민화의 흐름도 같이 논의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더 크겠죠. 저는 커진다고 생각을 해요."

아울러 전문가들은 우리 현대 민화가 더욱 발전하고 세계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전통미를 계승하는 것은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현대적 시각이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KBS 뉴스 신승민입니다.

(대문 사진: 원소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