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짜장면 먹고 싶어” 한마디에 성폭력범 2명 잡혔다

입력 2022.09.13 (10:03) 수정 2022.09.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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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화
"…."

#두 번째 전화
"…."

#세 번째 전화
"모텔…."

지난해 4월 11일 새벽 2시 30분, 112상황실에 연이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하지만 말없이 끊긴 전화. 세 번째 연결된 뒤에야 한 여성이 '모텔'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전화는 또 끊겼고, 잠시 뒤 네 번째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네 번째 전화
"아빠...나 짜장면 먹고 싶어서 전화했어."

112상황실 경찰은, 여성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경찰은 아빠인 척, 전화를 이어갔습니다. 모텔 이름과 층수를 확인한 뒤, 곧바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여성은 성폭력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객실에는 성폭력 가해 남성 2명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 2명을 특수강간 혐의로 붙잡았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112에 전화를 걸어도, 이렇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가해자나 범죄자가 바로 옆에 있거나 몸을 다쳐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겁니다.

지난 5월 대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신고자는 강제추행을 당했지만, 가해자가 바로 옆에 있어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12에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말하는 척 '어디야?'라고 했습니다. 경찰도 바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전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신고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와 복장을 설명했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신고자 : 어어, 어디야?
112 : 경찰입니다.
신고자 : 119, 삼덕 119 안전센터 건너에서 아직 택시 잡고 있어.
112 : 옆에 남자가 해코지합니까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경찰입니다.
신고자 : 응.
112 : 지금 여기 도로에 서 계세요?
신고자 : 아니, 아직 흰색 구두 신고 있어서 발 아파. 술 안 먹었는데….
112 : 네, 출동하겠습니다.

신고자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을 검거하게 도운 일도 있습니다.

지난 1월 경기도 시흥, 택시 운전사 이 모 씨는 한 승객을 눈여겨봤습니다. '출장을 간다'며 목적지에 도착하더니 몇 분 만에 다시 택시를 타는 것이 수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당신의 택시에 탔던 승객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었다'고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승객은 이미 떠난 뒤... 그런데 한 달 후 우연히 이 수상한 승객이 이 씨의 택시에 또 탔습니다.

이 씨는 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 이 씨는 "형님, 저 ○○ 가고 있으니, 식사하시죠"라고 둘러댔습니다. 112 상황실은 이를 접수해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앞의 사례들은 신고자의 용기와 경찰관들의 기지로 112신고가 검거로 이어진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대비해, 112 안내에 따라 숫자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신고가 이뤄지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112에 전화를 해서, 말을 하지 않으면 경찰은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숫자 버튼을 눌러달라"고 합니다. 신고자가 안내에 따라 숫자 버튼을 누르면, 경찰은 '신고 상황'임을 인지하고 '보이는 112' 링크를 발송합니다.

신고자는 이 링크를 따라, 개인정보·위치정보 활용 동의를 클릭하면 됩니다. 이 링크를 통해 경찰에 위치를 알리는 것은 물론 주변 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고, 비밀 채팅도 가능합니다.


이 시스템은 지난 1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이에 경찰은 '말 없는 112신고 캠페인 똑똑'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발생 이후, 가정 폭력 신고 건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어 112신고 방법을 알려야 한다는 게 경찰 설명입니다. 코로나로 집 안에 가해자와 함께 있다 보니, 신고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늘었다고 본 겁니다. (2019년 24만 439건→ 2020년 22만 1,824건 → 2021년 21만 8,680건)

경찰청 관계자는 "위치 추적이 어려운 알뜰폰도 이 같은 방법으로 신고를 할 수 있다"면서 "위기에 처한 국민이 용기를 내 신고하고, 경찰관도 누구나 상황을 빠르게 인지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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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짜장면 먹고 싶어” 한마디에 성폭력범 2명 잡혔다
    • 입력 2022-09-13 10:03:04
    • 수정2022-09-13 10:12:50
    취재K

#첫 번째 전화
"…."

#두 번째 전화
"…."

#세 번째 전화
"모텔…."

지난해 4월 11일 새벽 2시 30분, 112상황실에 연이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하지만 말없이 끊긴 전화. 세 번째 연결된 뒤에야 한 여성이 '모텔'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전화는 또 끊겼고, 잠시 뒤 네 번째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네 번째 전화
"아빠...나 짜장면 먹고 싶어서 전화했어."

112상황실 경찰은, 여성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경찰은 아빠인 척, 전화를 이어갔습니다. 모텔 이름과 층수를 확인한 뒤, 곧바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여성은 성폭력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객실에는 성폭력 가해 남성 2명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 2명을 특수강간 혐의로 붙잡았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112에 전화를 걸어도, 이렇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가해자나 범죄자가 바로 옆에 있거나 몸을 다쳐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겁니다.

지난 5월 대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신고자는 강제추행을 당했지만, 가해자가 바로 옆에 있어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12에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말하는 척 '어디야?'라고 했습니다. 경찰도 바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전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신고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와 복장을 설명했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신고자 : 어어, 어디야?
112 : 경찰입니다.
신고자 : 119, 삼덕 119 안전센터 건너에서 아직 택시 잡고 있어.
112 : 옆에 남자가 해코지합니까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경찰입니다.
신고자 : 응.
112 : 지금 여기 도로에 서 계세요?
신고자 : 아니, 아직 흰색 구두 신고 있어서 발 아파. 술 안 먹었는데….
112 : 네, 출동하겠습니다.

신고자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을 검거하게 도운 일도 있습니다.

지난 1월 경기도 시흥, 택시 운전사 이 모 씨는 한 승객을 눈여겨봤습니다. '출장을 간다'며 목적지에 도착하더니 몇 분 만에 다시 택시를 타는 것이 수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당신의 택시에 탔던 승객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었다'고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승객은 이미 떠난 뒤... 그런데 한 달 후 우연히 이 수상한 승객이 이 씨의 택시에 또 탔습니다.

이 씨는 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 이 씨는 "형님, 저 ○○ 가고 있으니, 식사하시죠"라고 둘러댔습니다. 112 상황실은 이를 접수해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앞의 사례들은 신고자의 용기와 경찰관들의 기지로 112신고가 검거로 이어진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대비해, 112 안내에 따라 숫자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신고가 이뤄지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112에 전화를 해서, 말을 하지 않으면 경찰은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숫자 버튼을 눌러달라"고 합니다. 신고자가 안내에 따라 숫자 버튼을 누르면, 경찰은 '신고 상황'임을 인지하고 '보이는 112' 링크를 발송합니다.

신고자는 이 링크를 따라, 개인정보·위치정보 활용 동의를 클릭하면 됩니다. 이 링크를 통해 경찰에 위치를 알리는 것은 물론 주변 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고, 비밀 채팅도 가능합니다.


이 시스템은 지난 1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이에 경찰은 '말 없는 112신고 캠페인 똑똑'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발생 이후, 가정 폭력 신고 건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어 112신고 방법을 알려야 한다는 게 경찰 설명입니다. 코로나로 집 안에 가해자와 함께 있다 보니, 신고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늘었다고 본 겁니다. (2019년 24만 439건→ 2020년 22만 1,824건 → 2021년 21만 8,680건)

경찰청 관계자는 "위치 추적이 어려운 알뜰폰도 이 같은 방법으로 신고를 할 수 있다"면서 "위기에 처한 국민이 용기를 내 신고하고, 경찰관도 누구나 상황을 빠르게 인지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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